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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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 이상희의 본명2. MBC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줄임말3. 신(神)
3.1. 이나리(稲荷)3.2. 유부초밥3.3. 지명3.4. 이나리, 콩콩, 사랑의 첫걸음의 주인공3.5. 노리프로 소속 稲荷いろは3.6. 천년전쟁 아이기스의 등장인물 妖狐イナリ3.7. GARO 홍련의 달의 등장인물 稲荷(三狐神)3.8. Summer Pockets의 등장 동물3.9. 디아블로 시리즈의 등장인물 이나리우스를 일본에서 부르는 별명
4. 미니어처 게임 Warhammer 40,000 등장 팩션 Ynnari5. 신데렐라 일레븐의 등장인물6. 일본의 경주마1. 배우 이상희의 본명 [편집]
2. MBC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줄임말 [편집]
3. 신(神) [편집]
3.1. 이나리(稲荷) [편집]
이나리 稲荷 | |
곡물과 농경의 신 | |
신족 | |
이름 | 이나리노카미, 이나리신 (稲荷神) |
표기 | 이나리 (稲荷, 稲生, 稲成, 伊奈利) |
별칭 | 이나리 대명신(稲荷大明神) |
신사 |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 등 |
3.1.1. 유래 [편집]
이름이 이나리(イナリ)인 이유를 가장 대표적인 이나리 신사인 후시미이나리타이샤 공식 홈페이지에서 설명하길, 야마시로국 풍토기(山城国風土記) 기록 일부에서는 '벼가 다 되었다(稲が生った, 이네가 낫타)'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는데 농경신답게 벼농사와 관련된 추측이 눈에 띈다.
우카노미타마와 이나리를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15세기 무로마치 시대 이전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아마 이나리와 우카노미타마 둘 다 농경신이라 세월이 흐르며 신앙이 합쳐졌으리라고 추측한다. 일본에서 불교가 전래한 뒤 불교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신토가 불교와 합쳐져 1000년 넘게 신불습합(神仏習合) 시기였을 때는 다기니천(茶枳尼天)[2] 과 이나리를 동일시하기도 했다. 다기니천과 우카노미타마가 습합된 것으로 보는 논문도 있다.
원래 기존 일본 신화에서 이나리란 신격 자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나리 신사의 기원은 지금의 교토 지역으로 이주해 온 하타씨족이 711년 자신들의 씨족신(조상신, 수호신)을 모시며 제사를 지내던 것에서 비롯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타씨족이 백제계[3] 또는 신라계[4] 도래인이라는 점과, 이들이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해 올 때 농경기술을 포함한 각종 문물 전반을 전수해 주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나리 또한 신사를 세우기 이전부터 있었던 한반도계 도래신이거나 또는 이나리와 비슷한 신이 한반도에서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5] 실제로 위와 같은 점들을 반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도 이나리 신앙의 역사는 이나리 신사의 역사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추측한다.
'원래 농경신'의 제사는 여우굴에다 지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는데, 언제부터 여우 자체를 농경신으로 떠받들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 민간에서 여우를 이나리신의 사자나 신체(神體)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나라 시대부터이다. 일본 조정이 교토로 천도할 때에 이나리 신과 관계된 하타씨들이 교토를 개척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것이 이나리 신앙의 확산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말도 있으나, 실제론 헤이안 후기부터 이나리 신앙이 퍼져 나가기에 하타씨의 교토 건설 참여와 이나리 신앙의 흥성은 큰 관련성이 없다.
헤이안 시대 후기부터 이나리 신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사람들은 이나리 신의 상징을 여우로 믿기 시작했다. 무로마치 막부 시대부터는 신앙이 더욱 강해져서 이나리 신은 기존에 담당하던 농업과 양잠 외에도 상업과 생산 그 자체를 담당하게 될 정도로 그 격이 높아졌다.
현대의 일본에서 부자와 서민을 가리지 않고 가장 대중적으로 믿는 신들 중 하나가 되었으며[6][7] 오곡 풍요, 사업 번창, 가내 안전, 교통 안전, 예능 발달, 소원 성취 등의 분야도 담당하는 등, 막부 시대보다 더 중요성이 높아지고 신토 신들의 위계 질서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신으로 승격되었다.
우카노미타마와 이나리를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15세기 무로마치 시대 이전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아마 이나리와 우카노미타마 둘 다 농경신이라 세월이 흐르며 신앙이 합쳐졌으리라고 추측한다. 일본에서 불교가 전래한 뒤 불교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신토가 불교와 합쳐져 1000년 넘게 신불습합(神仏習合) 시기였을 때는 다기니천(茶枳尼天)[2] 과 이나리를 동일시하기도 했다. 다기니천과 우카노미타마가 습합된 것으로 보는 논문도 있다.
원래 기존 일본 신화에서 이나리란 신격 자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나리 신사의 기원은 지금의 교토 지역으로 이주해 온 하타씨족이 711년 자신들의 씨족신(조상신, 수호신)을 모시며 제사를 지내던 것에서 비롯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하타씨족이 백제계[3] 또는 신라계[4] 도래인이라는 점과, 이들이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해 올 때 농경기술을 포함한 각종 문물 전반을 전수해 주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나리 또한 신사를 세우기 이전부터 있었던 한반도계 도래신이거나 또는 이나리와 비슷한 신이 한반도에서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5] 실제로 위와 같은 점들을 반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도 이나리 신앙의 역사는 이나리 신사의 역사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추측한다.
'원래 농경신'의 제사는 여우굴에다 지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는데, 언제부터 여우 자체를 농경신으로 떠받들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 민간에서 여우를 이나리신의 사자나 신체(神體)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나라 시대부터이다. 일본 조정이 교토로 천도할 때에 이나리 신과 관계된 하타씨들이 교토를 개척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것이 이나리 신앙의 확산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말도 있으나, 실제론 헤이안 후기부터 이나리 신앙이 퍼져 나가기에 하타씨의 교토 건설 참여와 이나리 신앙의 흥성은 큰 관련성이 없다.
헤이안 시대 후기부터 이나리 신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사람들은 이나리 신의 상징을 여우로 믿기 시작했다. 무로마치 막부 시대부터는 신앙이 더욱 강해져서 이나리 신은 기존에 담당하던 농업과 양잠 외에도 상업과 생산 그 자체를 담당하게 될 정도로 그 격이 높아졌다.
현대의 일본에서 부자와 서민을 가리지 않고 가장 대중적으로 믿는 신들 중 하나가 되었으며[6][7] 오곡 풍요, 사업 번창, 가내 안전, 교통 안전, 예능 발달, 소원 성취 등의 분야도 담당하는 등, 막부 시대보다 더 중요성이 높아지고 신토 신들의 위계 질서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신으로 승격되었다.
3.1.2. 여우와의 관계 [편집]
이나리신의 사자(使者)는 여우 모습이라고 하는데 야생의 평범한 여우가 아니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여우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투명하다는 특징을 비슷하게 반영한 색깔인 흰색과 악귀를 쫓는 효과가 있다는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여우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8] 농사를 지을 때 벼이삭 낱알을 노리는 쥐를 잡아먹는 여우의 특성이 농경신 이나리와 어울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래는 불교 영향으로 자칼(야칸)이었다고도 하며, 쥐를 사냥하는 특성은 자칼도 해당한다.
여기서 유래한 별명으로서 여우를 이나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도 자주 헷갈리는지 이나리신을 여우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나리신 자체는 여우가 아니다. 이나리신이 부리는 심부름꾼이 여우 모습일 뿐이다.
이러한 이나리신과 여우와의 관계로 인해 이나리 신앙 종교 의식의 일환으로서 신악(神楽, 카구라), 축제(祭り, 마츠리) 등 이나리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여우탈(狐面, 키츠네멘)을 쓰는 경우가 있다. 선사시대부터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탈에 새긴 얼굴에 인격을 부여하여 종교적인 용도로도 사용해 왔고, 이는 일본 신토에서도 마찬가지라 '탈(가면)은 착용했을 때 신이 깃든다(탈이 지닌 인격을 대신한다)'고 여겨서 원래는 이렇게 종교 기관에서 쓰던 제사 도구였던 탈을 에도 시대 이후부터 서민들도 축제에서 쓰는 경우가 생겼다고 한다. 여우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나리신에게 전해주고 해당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이나리신의 복을 사람들에게 다시 전해주는, 사람과 신을 오가며 이어주는 행운의 존재이니 여우탈을 부적 겸 풍수 인테리어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과 신을 동물이 이어준다는 종교적인 면에서는 마치 대한민국의 솟대와 비슷한 뜻을 지니는 물건이다.
상술한 대로 전통적으로는 원래 흰색 탈이었지만 현대에 상품화의 일종으로 색깔이나 무늬를 바꾼 디자인으로 판매하기도 하는데 색깔, 무늬별 부적으로서 상징 차이는 딱히 없다고 한다. 풍수 인테리어로서 집에 장식해 둘 때는 손님이 드나드는(복이 드나드는) 현관문을 내려다 보는 방향으로 놓아야 좋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는 듯 하지만 어느 일본인이 후시미이나리타이샤로 문의한 결과 그냥 마음에 드는 곳 아무 데나 놓아도 상관 없다고 한다.
옛날부터 동아시아에서 탈을 만들 땐 종이를 여러 겹 두껍게 겹쳐 만들거나 나무를 깎아서 만드는게 공통적인 방식이었는데, 현대에는 중국 등지에서 값싸게 찍어내어 대량생산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파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통방식으로 만들면 값이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어느 나라나 대다수는 서민들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흔히 접할 수 있는 저가형 제품들이 전통 문화의 입문 장벽을 낮춰주고 전통을 현대화 하여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면도 있다.
여기서 유래한 별명으로서 여우를 이나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도 자주 헷갈리는지 이나리신을 여우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나리신 자체는 여우가 아니다. 이나리신이 부리는 심부름꾼이 여우 모습일 뿐이다.
이러한 이나리신과 여우와의 관계로 인해 이나리 신앙 종교 의식의 일환으로서 신악(神楽, 카구라), 축제(祭り, 마츠리) 등 이나리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여우탈(狐面, 키츠네멘)을 쓰는 경우가 있다. 선사시대부터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탈에 새긴 얼굴에 인격을 부여하여 종교적인 용도로도 사용해 왔고, 이는 일본 신토에서도 마찬가지라 '탈(가면)은 착용했을 때 신이 깃든다(탈이 지닌 인격을 대신한다)'고 여겨서 원래는 이렇게 종교 기관에서 쓰던 제사 도구였던 탈을 에도 시대 이후부터 서민들도 축제에서 쓰는 경우가 생겼다고 한다. 여우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나리신에게 전해주고 해당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이나리신의 복을 사람들에게 다시 전해주는, 사람과 신을 오가며 이어주는 행운의 존재이니 여우탈을 부적 겸 풍수 인테리어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과 신을 동물이 이어준다는 종교적인 면에서는 마치 대한민국의 솟대와 비슷한 뜻을 지니는 물건이다.
상술한 대로 전통적으로는 원래 흰색 탈이었지만 현대에 상품화의 일종으로 색깔이나 무늬를 바꾼 디자인으로 판매하기도 하는데 색깔, 무늬별 부적으로서 상징 차이는 딱히 없다고 한다. 풍수 인테리어로서 집에 장식해 둘 때는 손님이 드나드는(복이 드나드는) 현관문을 내려다 보는 방향으로 놓아야 좋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는 듯 하지만 어느 일본인이 후시미이나리타이샤로 문의한 결과 그냥 마음에 드는 곳 아무 데나 놓아도 상관 없다고 한다.
옛날부터 동아시아에서 탈을 만들 땐 종이를 여러 겹 두껍게 겹쳐 만들거나 나무를 깎아서 만드는게 공통적인 방식이었는데, 현대에는 중국 등지에서 값싸게 찍어내어 대량생산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파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통방식으로 만들면 값이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어느 나라나 대다수는 서민들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흔히 접할 수 있는 저가형 제품들이 전통 문화의 입문 장벽을 낮춰주고 전통을 현대화 하여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면도 있다.
3.1.2.1. 창작물에서 [편집]
여우로서의 이나리를 소재로 한 노래와 춤이 있는데 제목은 '건너편 골목길 이나리 씨(向こう横丁のお稲荷さん)'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나리는 이나리 신과는 관련이 없고 여우로 비유한 듯한 여성[9]과 찻집에서 만나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다.[10]
여우탈을 쓰고 여우의 몸짓에서 따온 듯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데 가사 자체는 에도 시대부터 내려오는 동요(...)라고 하며 춤에 대한 설명은 찾기 어려운 것으로 보아 일본 무용 형식으로 현대에 만든 창작 무용인 듯 하다. 노래 가사와 해설(일본어)
여기서 말하는 이나리는 이나리 신과는 관련이 없고 여우로 비유한 듯한 여성[9]과 찻집에서 만나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다.[10]
여우탈을 쓰고 여우의 몸짓에서 따온 듯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데 가사 자체는 에도 시대부터 내려오는 동요(...)라고 하며 춤에 대한 설명은 찾기 어려운 것으로 보아 일본 무용 형식으로 현대에 만든 창작 무용인 듯 하다. 노래 가사와 해설(일본어)
당시 여대생이었다는 개인이 만든 창작 무용. 여우가 옮겨붙은 듯한 모습을 표현했다.
3.2. 유부초밥 [편집]
3.3. 지명 [편집]
3.4. 이나리, 콩콩, 사랑의 첫걸음의 주인공 [편집]
3.5. 노리프로 소속 稲荷いろは [편집]
3.6. 천년전쟁 아이기스의 등장인물 妖狐イナリ [편집]
3.7. GARO 홍련의 달의 등장인물 稲荷(三狐神) [편집]
3.8. Summer Pockets의 등장 동물 [편집]
3.9. 디아블로 시리즈의 등장인물 이나리우스를 일본에서 부르는 별명 [편집]
공략 사이트나 관련 스레에서 이나리우스(イナリウス)를 줄여 이나리(イナリ, 稲荷)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4. 미니어처 게임 Warhammer 40,000 등장 팩션 Ynnari [편집]
5. 신데렐라 일레븐의 등장인물 [편집]
6. 일본의 경주마 [편집]
[1] 이나리의 원래 표기이자 가장 오래 된 표기이다. 한국 한자음으로 읽어도 '이나리'라는 발음이며 고대 삼한이나 왜국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언어를 음차하여 기록하던 방식과 비슷한데, 예를 들면 광개토대왕릉비에서 나오는 '아리수(阿利水)'나 야사카신사를 세운 고구려인 '이리지(伊利之)'같은 사례가 그렇다.[2] 티베트 불교 등에서 말하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밀교 수행자를 돕는 여자 호법신들. 다기니천 신앙이 티베트 불교에서는 매우 활발하고 일본 불교에도 일부 있다.[3] 일본서기 출처[4] 후시미이나리타이샤, 교토시 공식 홈페이지 출처[5] 알고 보면 한국도 여러모로 여우와 인연이 참 많은데, 자세한 건 구미호 문서를 같이 참고하길 추천한다. 단군 신화의 마이너한 버전으로 여우가 등장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6] 이나리 신을 '이나리 씨(お稲荷さん, 오이나리상)'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경우도 있고,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이나리 신앙을 '서민 신앙(庶民の信仰)'이라고 표현하였다.[7] 물론 성공의 신인 만큼 돈 있는 사람들도 많이 믿는 듯하다. 신사에 늘어선 수많은 토리이들 하나당 가격을 생각해 보면... 대형 토리이 봉납 금액 기독교식 용어로 비유해서 표현하자면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헌금을 하고 해당 금액에 맞는 크기의 토리이에 헌금한 사람의 이름이나 회사명을 새긴 뒤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신의 가호를 바라며 신사에 세워두는 식이다.[8] 이나리 신사를 빨갛게 칠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주칠(朱漆)'이라고 하는데, 건물이나 그릇 등 무언가를 붉은색으로 옻칠하는 풍습은 고대 한중일 모두 존재했다.[9] 가사에서 나오는 '오센(お仙)'이 에도 시대 때 존재했던 어느 가게의 미인 간판 아가씨를 뜻한다고 한다.[10] 해당 노래 가사가 정말로 이런 뜻을 지닌 가사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명목상 찻집 형태를 한 성매매 중간매개체 업소들이 존재한다. "우연히 저희 찻집에서 만난 남녀가 눈이 맞아서 윗층에 있는 프라이빗 룸에서 따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 것 뿐이지 저희 찻집과는 관련이 없어요~" 하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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