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증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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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나치 독일의 문서들 [편집]
2.1. 히틀러의 장애인 학살 명령 [편집]
- 아돌프 히틀러가 서명한 장애인 학살 승인 서류 |
2.2. 1940년, 빅토어 브라크의 서신 [편집]
공익 재단 – 시설 관리 베를린 W 35, 티어가르텐슈트라세 4 전화: 22 35 56 긴급!!! 비밀 전달: 급행 우편 베를린 W 35, 1940년 11월 22일 수신: 총통 관저 국가지휘자 보울러 베를린 W 35, 1940년 11월 22일 수신: 총통 관저 국가지휘자 보울러 베를린 W 8 포스트슈트라세 4 존경하는 국가지휘자께, 여러 차례의 문의와 관련자 측의 재차 요청으로 인해, 유족(유가족)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믿을 만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하일 히틀러! 귀하의 (서명) |
나치 친위대 의사였던 빅토어 브라크는 장애인 학살에 가담했으며, 퓌러 비서실장인 필리프 보울러에게 T4 작전 진행상황을 보고했다.
그는 전후 뉘른베르크 의사 재판에서 반인륜 범죄 혐의로 사형이 선고되어 1948년에 처형당했다.
그는 전후 뉘른베르크 의사 재판에서 반인륜 범죄 혐의로 사형이 선고되어 1948년에 처형당했다.
2.3. 반제 회의 명령서 [편집]
1941년 7월 31일, 베를린 제국원수(Der Reichmarschall des Großdeutschen Reiches) 4개년계획부 전권 장관(Beauftragter für den Vierjahresplan) 국방위원회 의장(Vorsitzender des Ministerrats für die Reichsverteidigung) 공안경찰(Sicherheitspolizei) 및 보안대(SD) 최고책임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SS중장(SS-Gruppenführer) 귀하 베를린 1939년 1월 24일 최적의 수단을 동원해 유대인을 이주시키고 추방하라는 귀하의 의무에 더해, 독일의 영향력이 미치는 전 유럽에서의 유대인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기 위해 발생하는 조직적이고 기술적이며 실제적인 문제에 관련된 모든 필수적 사항들을 준비할 책임을 귀하에게 부여한다. 정부의 다른 부처가 관련될 경우 그들은 언제든 귀하에게 협조해야 한다. 나는 귀하에게 우리가 바라는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Endlösung der Judenfrage)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적, 기술적, 실제적 수단들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 계획을 가까운 시일 내에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바이다. 괴링(서명) |
독소전쟁이 발발한 지 1달 가량 지난 1941년 7월, 루프트바페 사령관 겸 나치 독일 부총리 헤르만 괴링은 SS 국가보안본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유대인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1942년에 개최된 반제 회의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최종 해결책은 '절멸'로 확정되었다.
2.4. 아이히만 리스트 [편집]
지역 | 숫자 |
분류A | |
131,800 43,700 420,000 2,284,000 400,000 74,200 -유대인 없음- 3,500 34,000 43,000 5,600 165,000 700,000 69,600 160,800 1,300 | |
분류B | |
불가리아 영국 핀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사르데냐 포함) 이탈리아 점령 하의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포르투갈 루마니아(베사라비아 포함) 스웨덴 스위스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스페인 튀르키예(유럽 지역) 헝가리 소련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벨라루스(비아위스토크 제외[6]) | 48,000 330,000 2,300 4,000 58,000 200 40,000 3,000 342,000 8,000 18,000 1,0000 88,000 6,000 55,500 742,800 5,000,000 2,994,684 446,484 |
도합: | 1,100만 이상 |
2.5. 보어만의 유대인 '절멸' 언급 금지 명령 [편집]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당 당관방(Partei-kanzlei)[8] 당 당관방장 퓌러 본부 1943년 7월 11일 서신 번호 33/43 G. 주제: 유대인 문제 처리. 퓌러의 지시에 따라 알린다: 공식적인 유대인 문제 처리에서 미래의 해결책에 대한 논의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적절한 작업에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은 언급될 수 있다. 서명: M. 보어만 7.d.R.: 배포처: 국가지도자(Reichsleiter) 가우 책임자 연합 지도자. - 주제 카드: 유대인 문제 처리. |
2.6. 헤움노 절멸수용소의 가스 밴에 관한 '개선 사항' [편집]
1942년 6월 5일 베를린.
제국 기밀 업무(Geheime Reichssache)
현재 사용중이며 생산중인 특수차량(spezialwagen)에서 개선해야 할 사항.
1941년 12월 이래로 세 대의 특수차량을 이용해 97,000개의 화물을 처리했고 차량에 별다른 결함은 없었음. (중략) 이전의 사례들로 판단컨데, 다음의 사항들이 개선되면 좋을 것임.
1) 과잉압력을 막고 일산화탄소가 빠르게 퍼지게 하기 위해 차량 후방 벽면의 위에다 10x1cm의 구멍을 뚫을 필요가 있음. 압력 과잉은 밖에서 이 구멍을 막는 덮개를 여닫음으로써 조절할 수 있음.
2) 통상 적재 시 평방미터 당 9~10임. 사우러(Saurer) 사[9]의 더 커다란 차량에도 그리 많이 적재하진 않음. 과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최대한으로 적재 시 비포장도로를 주행할 때 차량 안정성에 문제가 있음. 적재공간의 축소가 필요해 보임. (중략) 이를 위해 지금껏 했던 것처럼 화물의 양을 줄여선 안됨. 화물의 양이 줄면 남는 공간에도 일산화탄소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가동 시간'이 늘어나게 됨. 반면 적재공간이 줄면, 공간이 완전히 화물로 가득찬 상태이므로 '가동 시간'을 줄일 수 있음. 제작자들과의 회의에서 적재공간을 줄일 경우 무게중심에 문제가 생겨 앞 차축에 과부하가 걸릴것이라는 주장이 나왔으나, 사실 적재공간의 화물들이 가동 중에 언제나 뒷문으로 몰리기 때문에 무게중심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수 있음. 따라서 앞 차축 과부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음.
4) 차량 내부 청소를 쉽게 하기 위해 바닥 중앙에 밀봉된 배수구를 설치해야 함. 배수구의 지름은 20~30cm로 하고 여기에 사이펀을 설치해 '가동 중에' 액체들이 빠져나갈 수 있게 해야 함. 파이프 위에는 거름망을 설치해 오물에 의해 막히는 것을 방지해야 함. 큰 오물들은 가동 후 차량을 청소할 때 배수구의 뚜껑을 열어 제거할 수 있음. 적재공간의 바닥은 중앙을 향해 약간 기울도록 해서 오물들이 중앙으로 모아져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함.
6) 적재공간 내 램프를 더 철저하게 보호해야 됨. 램프에 철망을 씌워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 함. 램프는 필요 없다고 없애버리자는 말도 있음. 하지만 관찰 결과, 문이 닫히려 할 때 깜깜해지기 시작하면 화물들은 언제나 문을 밀치고 나오려 하기에 문을 닫기 어려워짐. 이는 화물들이 어둠 속에서 조금의 빛이라도 드는 곳으로 향하려 하기 때문임. 또한 어둠으로 인한 공포로 화물들이 소음을 일으킴. 따라서 가동 초기엔 램프를 켜 두는 것이 더 적절함. 또한 야간 운영과 차량 내부 청소에도 도움이 됨.
상기한 사항들은 수리를 위해 입고될 경우에만 적용될 것임. 이미 주문한 10대의 사우러(Saurer) 사 차량들에는 가능한 한 개선이 이루어질 것임. 제작사는 회의 때 사소한 몇가지를 제외하고 개조가 당장 이루어지긴 어렵다고 함. 따라서, 10대 중 최소한 한대의 개조를 위해 다른 제작사를 알아본 결과 호헨마우트에 있는 회사가 적격이라고 제안함. 현 상황에서 이 차량의 개조엔 어느 정도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임.
II D 부서장 SS 상급돌격대지도자 발터 라우프(Walter Rauff) 귀하.
서신 전문
독일어 원문
빌리 유스트 친위대 국가보안본부(RSHA) 간부가 발터 라우프에게 보낸 가스 밴에 관한 문서. 대량 학살을 다분히 전문적이고 행정적인 '은유'로 담담히 묘사한다는 점에서 더욱 끔찍함을 안겨준다.
2.7. 슈탈레커 보고서 [편집]
1941년 10월, 특수작전집단 A그룹 지휘관 프란츠 발터 슈탈레커가 국가보안본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보낸 보고서. 유대인 정화(Judenfrei)라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표식으로 관짝을 집어넣은 모습이 끔찍하기 그지 없다.
2.8. 하인리히 힘러의 편지 [편집]
NO-4173 (문서 번호로 추정) 야전 지휘소, 1943년 6월 11일 SS 제국지도자 개인 참모부 문서 관리처 사건 번호: Beh: I [서명] [문서 상단 좌측] SS 제국지도자 일일보고서 번호 10/151/83 g. V RF/Bn [본문] 존경하는 졸만(Sollmann)에게! 귀관에게 즉시 프라하의 SS 상급집단지도자 프랑크(Frank)와 연락을 취하도록 지시하오. 가장 좋은 것은 귀관이 그를 방문하는 것이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저항 운동 가담자로 처형되어야 했던 아버지 또는 부모를 둔 체코 아동들의 Versorgung(보급/처리), Erziehung(교육), 그리고 Unterbringung(수용/거처 마련)이오. 결정은 당연히 매우 현명해야 하오. '나쁜' 아이들은 특정 아동 수용소로 보내시오. '인종적으로 우수한' 아이들은, 만약 인간적이고 올바르게 교육받지 못한다면 당연히 그들 부모의 가장 위험한 복수자가 될 수 있으므로, 내가 생각하기로는 레벤스보른(Lebensborn) 아동의 집을 통해, 그곳에 우선 시험적으로 수용하여 가능한 한 성격을 파악한 후, 독일 가정에 위탁 아동 또는 양자로 중개해야 하오. 하일 히틀러! 그대의 서명 H. 힘러 [문서 하단 추가 지시 및 참조] 2.) SS 상급집단지도자 프랑크, 프라하 3.) 보안경찰 및 SD 총수 인지 요망과 함께 사본 발송됨. 대리 서명 SS 중령 |
2.9. 아우슈비츠 소각로 공급 보고서 [편집]
N TOPF J. A. 토프 운트 죄네 귀하 에르푸르트, 1942년 9월 8일 부서 D IV.[10] 당사 참조: D IV/Prf./Hes. 관련 사항: SS 국가지도자, 베를린-리히터펠데-베스트. 표제: 아우슈비츠 소각장. 비밀! 극비! [붉은색 도장: 특별 문서] [좌측 메모] 8.9.42 [LT 서명으로 추정] 열람 필. 미회신 [수기: 기타 문서 d IV] 자체 서신. 양식 5 [우측 본문] SS 중위 크로네(Krone) 씨가 전화하여 자신이 SS 국가지도자에게 소환되었으며, 어제 돌아온 아우슈비츠 소각장 시찰에 관해 보고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아우슈비츠의 시설로는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웠기에, 현재 그곳에서 가동 중인 화장로(Muffeln)가 몇 개인지, 그리고 당사가 현재 그곳에 건설 중이거나 추가로 납품할 화장로가 장착된 소각로가 몇 개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현재 하루 처리 능력 250구인 2연식 화장로(Zwei-Muffel-Öfen) 3기가 가동 중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또한 현재 하루 처리 능력 800구인 3연식 화장로(DreiMuffel-Öfen) 5기가 건설 중입니다. 오늘 그리고 다음 며칠 내로 모길레프(Mogilew)에서 전용된, 각각 하루 처리 능력 800구인 8연식 화장로(AchtMuffel-Öfen) 2기가 발송될 것입니다. 크로네 씨는 이 정도 수의 화장로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11];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더 많은 소각로를 납품해야 합니다. 따라서 제가 목요일 오전에 베를린으로 가서 크로네 씨와 추가 납품에 관해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저는 아우슈비츠 관련 자료를 가져가서 마침내 긴급한 요구들이 잠잠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목요일 방문을 약속했습니다. |
소각로 건설 회사 토프 운트 죄네(JA Topf & Söhne)의 보고서. '하루 처리 능력', '긴급한 요구', '추가 납품 요구' 등의 문구들은 이들의 도덕적 무감각을 반증해준다.
2.10. 오스발트 폴의 편지 [편집]
2.11. 아우구스트 프랑크의 메모 [편집]
August Frank Memorandum
아우구스트 프랑크의 메모는 죽은 유대인의 우표 수집품과 속옷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지시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나치독일이 유대인들의 가치 있는 모든 것을 몰수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우구스트 프랑크의 메모는 죽은 유대인의 우표 수집품과 속옷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지시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나치독일이 유대인들의 가치 있는 모든 것을 몰수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12. 코르헤어 보고서 [편집]
V. 유대인의 이주(EVAKUIERUNG DER JUDEN) 유대인의 이주(Evakuierung)는, 적어도 제국 영토 내에서는, 유대인의 국외 이주(Auswanderung)를 대체했다. 이는 1941년 가을 유대인의 국외 이주 금지 조치 이후 대대적으로 준비되었으며, 1942년에는 제국 영토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다. 유대인 통계 총계에서는 이것이 "이출(Abwanderung)"로 나타난다. 1943년 1월 1일까지 국가보안본부(Reichssicherheitshauptamt)의 집계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이출(abwanderten)했다: 출발지 유대인 수 구 제국 영토 및 주데텐란트에서 100,516 명 오스트마르크(오스트리아)에서 47,555 명 보호령(보헤미아-모라비아)에서 69,677 명 합계 217,748 명 Sheets로 내보내기 이 숫자에는 테레지엔슈타트 노인 게토로 이주된 유대인도 포함되어 있다. 제국 영토(동부 지역 포함) 및 그 외 유럽 내 독일 세력권 및 영향권에서 1939년 10월 또는 그 이후부터 1942년 12월 31일까지의 전체 이주(Evakuierungen)는 다음과 같은 숫자를 나타냈다: 바덴 및 팔츠에서 프랑스로 유대인 이주 .................................... 6,504 명 제국 영토(보호령 및 비알리스토크 관구 포함)에서 동부로 유대인 이주 ......... 170,642 명 제국 영토 및 보호령에서 테레지엔슈타트로 유대인 이주 ..................... 87,193 명 동부 주(Ostprovinzen)에서 러시아 동부로 유대인 이송: .................... 1,449,692 명 총독부(Generalgouvernement) 내 수용소를 거쳐 이송된 인원 ............ 1,274,166 명 바르테가우(Warthegau) 내 수용소를 거쳐 이송된 인원 .................... 145,301 명 다음과 같은 다른 국가들로부터 유대인 이주: 프랑스 (1942년 11월 10일 이전 점령 지역까지) ...................... 41,911 명 네덜란드 ......................................................... 38,571 명 벨기에 ........................................................... 16,886 명 노르웨이 ......................................................... 532 명 |
SS 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힘러의 지시에 따라 통계학자 및 SS소령 리하르트 코르헤어가 작성한 것으로, 유럽 유대인의 '최종 해결책', 즉 홀로코스트 진행 상황에 대한 통계를 담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사용된 '이주(Evakuierung)', '이출(Abwanderung)', '이송(Transportierung)', '거쳐 이송됨(durchgeschleust)' 등의 용어는 나치가 사용한 완곡어법으로, 실제로는 강제 추방, 게토 및 절멸 수용소로의 이송,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대량 학살을 의미했다.
2.13. 회플레 전보 [편집]
12. OMX 발 OMQ 수신 1000 89 ? ? 제국 극비 사항! 제국보안본부(Reichssicherheitshauptamt) SS 중령 아이히만(EICHMANN) 귀하, 베를린 ... [나머지 부분 누락] 13/15. OLQ 발 OMQ 수신 1005 83 234 250 제국 극비 사항! 보안경찰 총사령관 SS 중령 하임(HEIM) 귀하, 크라카우(KRAKAU). 제목: 라인하르트 작전(Einsatz REINHART) 14일 보고. 참조: 현지. 무선 보고. 42년 12월 31일까지의 도착 인원: L 12761, B 0, S 515, T 10335 합계 23611. 현황... 42년 12월 31일 기준: L 24733, B 434508, S 101370, T 71355, 합계 1274166. SS 및 경찰지도자 루블린(LUBLIN)[12], 회플레(Höfle), SS 소령. |
해석 * Einsatz REINHART (라인하르트 작전): 폴란드 총독부 내 유대인 절멸 작전. L: 루블린(마이다네크 강제수용소) B: 베우제츠(Bełżec) 절멸 수용소 (해당 14일간 보고 기간 동안 도착 인원 0명) S: 소비보르(Sobibór) 절멸 수용소 T: 트레블링카(Treblinka) 절멸 수용소 첫 번째 숫자 세트(합계 23611)는 14일간의 보고 기간 동안 각 수용소에 도착한(즉, 살해된) 유대인의 수를, 두 번째 숫자 세트(합계 1274166)는 작전 시작부터 1942년 12월 31일까지 살해된 유대인의 총 누계를 나타낸다. 즉, 총 127만 4166명의 유대인이 단 몇 개월만에 학살당했다는 소리이다. |
3. 전후 보고서 [편집]
3.1. '테레지엔슈타트' 게토 보고서 [편집]
테레지엔슈타트 1. 보호령에서의 수송 - 1941년 11월 24일 1. 독일에서의 수송 - 1942년 6월 2일 1. 빈에서의 수송 - 1942년 6월 21일 1. 네덜란드에서의 수송 - 1943년 4월 22일 1. 덴마크에서의 수송 - 1943년 10월 5일 1. 슬로바키아에서의 수송 - 1944년 12월 23일 1945년 4월 20일 테레지엔슈타트에 도착: 보호령 - 7만 3468명 독일 - 4만 2921명 오스트마르크 - 1만 5244명 네덜란드 - 4897명 덴마크 - 466명 슬로바키아 - 1447명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를 경유하여 - 1074명 총계 - 13만 9517명 그중 사망한 인원 - 3만 3521명 24% 동부로 이주된 인원 - 8만 7063명 62.5% 스위스나 스웨덴으로 추방된 인원 - 1만 9138명 13.5% 마지막 수송이 출발하기 전(1944년 10월 28일) 1944년 12월 31일 기준: 테레지엔슈타트에 도착한 인원 - 13만 1563명 테레지엔슈타트에서 태어난 인원 - 192명 그중 사망한 인원 - 3만 3124명 25.2% 동부로 이주된 인원 - 8만 7063명 66.9% 스위스나 스웨덴으로 추방된 인원 - 1만 1568명 7.9% 1945년 6월 1일 테레지엔슈타트에 아직 남아 있는 인원: 약 1만 명 1945년 5월 6일 테레지엔슈타트에 남아 있는 인원 독일에서 5,500명, 비엔나에서 1,400명 그 중 연령대 비율: 0-15세(독일: 4.2%, 빈: 5.3%) 16-60세(독일: 52.7%, 빈: 37.9%) 60세 이상(독일: 43.1%, 빈: 56.8%) |
[1] 나치당 당수인 히틀러 바로 밑의 당 최고위 간부들이다.[2] 당시 당 총통 비서실장 즉 히틀러의 당무 비서실장이다.[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0px-Weimar_Republic_1930.svg.png 1938년 이전의 나치 독일 영토. 바이마르 공화국의 영토와 같다.[4] 합병된 오스트리아 + 슬로베니아 크렌스카 지방 + 코로스카 지방[5] 독일 제국 시절의 구 동방영토 중 1차 대전 패전으로 상실한 지역. 서프로이센, 포젠 등.[6] 비아위스토크는 오스트프로이센에 병합되었다.[7] 적국, 동맹국과 그 점령지, 중립국 등.[8] 당관방은 나치당의 당조직 가운데 하나로서 대략 총무처에 해당한다.[9] 스위스의 차량 제작 회사. 사우러 사가 직접 가스 밴을 제작한 건 아니었고 사우러 사의 트럭을 독일의 Gaubschat Fahrzeugwerke사가 가스바겐으로 개조했다. 사우러 사의 제품 외에 르노, 오펠 사의 트럭이 가스바겐으로 개조되었고 이렇게 전쟁 중에 개조된 가스바겐의 수는 약 20여 대로 추정된다. 즉, 이 가스바겐들 상당수는 처음부터 유대인을 죽일 목적으로 만든 차량이 아니었단 뜻이다.[10] SS 경제행정본부(SS-Wirtschafts- und Verwaltungshauptamt, 약칭 WVHA)(경제행정본부장 오스발트 폴) 소속의 D 처부(Amtsgruppe D) - 강제수용소 관리국(Inspektion der Konzentrationslager) 내의 **D IV과(Amt D IV) - 수용소 행정과(Verwaltungsamt)를 지칭한다.[11] 하루 총 6,750구의 처리능력 조차도 부족하다고 하는 것에서 홀로코스트의 그 희생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12] 오딜로 글로보츠닉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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