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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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 |
Samsung Lions | |
정식 명칭 | 삼성라이온즈 프로야구단 |
영문 명칭 | Samsung Lions Baseball Club |
창단 | |
법인 설립 | |
법인명 | ㈜삼성라이온즈 |
모기업 | |
상장 유무 | |
기업 규모 | |
구단 사무실 | |
주요 라이벌 | |
운영 법인 | ㈜삼성라이온즈 (1982~) |
연고지 | 대구광역시 (1982~) |
상징색 | 파란색 (#074CA1) |
구단주 | |
대표이사 | |
단장 | |
감독 | 70 박진만 |
주장 | 5 구자욱 |
영구 결번 | |
홈구장 변천 | |
제2 홈구장 포항 야구장 (2012~) | |
2군 구장 |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1995~) |
키트 스폰서 | |
링크 |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삼성라이온즈몰 | |
공식 애플리케이션 | |
KBO 한국시리즈 우승 (8회)[A] | |
페넌트 레이스 우승 (9회 / 최다 우승)[9] | |
단일 리그 | |
전·후기 리그 | |
양대 리그 | 1999년 매직 |
포스트시즌 진출 (30회 / 최다 진출) | |
한국시리즈 | |
플레이오프 | |
준플레이오프 | |
프랜차이즈 구단 기록 | |
1. 개요 [편집]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제일기획이 운영하는[17] KBO 리그 소속 프로야구단.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 창단한 원년 6개 구단 중 하나로,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원년부터 연고지·모그룹·구단명의 명맥을 이어온 구단이다.[18]
공식 연고지는 대구광역시지만, 실질적으로는 대경권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여겨진다. KBO 리그의 연고지 개념이 2000년부로 광역연고제에서 도시연고제로 바뀌기 전에는 공식적으로 대구광역시뿐만 아니라 경상북도까지 포괄했었고,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 제도가 존재하던 2014년부터 2022년까지는 강원도 영동 지역 고교에 대한 지명권도 보유했었다. 대구를 연고지로 삼은 것은 1938년 이병철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서 창업한 삼성상회(현 삼성물산의 전신)가 삼성그룹의 기원이기 때문이었다.
KBO 리그에서 공식적으로 8회의 우승을 차지해 KIA 타이거즈(12회)에 이은 2위다. 2010년대 초반에는 5년 연속 페넌트 레이스 우승(2011~2015)과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2011~2014)을 달성해 언론과 야구 팬덤으로부터 '삼성 왕조'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또한 통산 최다 승, 한국시리즈 최다 진출(18회),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 우승(4년 연속, 2011~2014),[19] 페넌트 레이스 최다 우승(9회)[20], 페넌트 레이스 최다 연속 우승(5년 연속, 2011~2015), 포스트시즌 최다 진출(30회), 포스트시즌 최다 연속 진출(12년 연속, 1997~2008), 아시아 시리즈 우승(2011년)[21] 등 여러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리그에서 유일하게 최하 순위를 기록한 적이 없는 구단이다.
상징 색은 모기업 삼성을 따른 파란색이며, 과거에는 빨간색(1982~1983, 2016~2023)과 노란색(1984~1994)도 사용했었다.[22] 상징 동물로 사자를 택한 것은 늠름한 백수(百獸)의 왕 사자의 기상으로 프로야구의 선구적인 팀이 되겠다는 의미였다. 마스코트 블레오는 팀의 상징 색 블루(Blue)와 만화 <밀림의 왕자 레오>의 주인공 백사자 레오(Leo)[23]를 결합해 만든 것이다.#
홈구장은 1982년부터 2015년까지 대구광역시 북구 고성동에 위치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사용했었고, 2016년부터 대구광역시 수성구 연호동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를 사용하고 있다.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 창단한 원년 6개 구단 중 하나로,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원년부터 연고지·모그룹·구단명의 명맥을 이어온 구단이다.[18]
공식 연고지는 대구광역시지만, 실질적으로는 대경권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으로 여겨진다. KBO 리그의 연고지 개념이 2000년부로 광역연고제에서 도시연고제로 바뀌기 전에는 공식적으로 대구광역시뿐만 아니라 경상북도까지 포괄했었고,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 제도가 존재하던 2014년부터 2022년까지는 강원도 영동 지역 고교에 대한 지명권도 보유했었다. 대구를 연고지로 삼은 것은 1938년 이병철이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서 창업한 삼성상회(현 삼성물산의 전신)가 삼성그룹의 기원이기 때문이었다.
KBO 리그에서 공식적으로 8회의 우승을 차지해 KIA 타이거즈(12회)에 이은 2위다. 2010년대 초반에는 5년 연속 페넌트 레이스 우승(2011~2015)과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2011~2014)을 달성해 언론과 야구 팬덤으로부터 '삼성 왕조'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또한 통산 최다 승, 한국시리즈 최다 진출(18회),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 우승(4년 연속, 2011~2014),[19] 페넌트 레이스 최다 우승(9회)[20], 페넌트 레이스 최다 연속 우승(5년 연속, 2011~2015), 포스트시즌 최다 진출(30회), 포스트시즌 최다 연속 진출(12년 연속, 1997~2008), 아시아 시리즈 우승(2011년)[21] 등 여러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리그에서 유일하게 최하 순위를 기록한 적이 없는 구단이다.
상징 색은 모기업 삼성을 따른 파란색이며, 과거에는 빨간색(1982~1983, 2016~2023)과 노란색(1984~1994)도 사용했었다.[22] 상징 동물로 사자를 택한 것은 늠름한 백수(百獸)의 왕 사자의 기상으로 프로야구의 선구적인 팀이 되겠다는 의미였다. 마스코트 블레오는 팀의 상징 색 블루(Blue)와 만화 <밀림의 왕자 레오>의 주인공 백사자 레오(Leo)[23]를 결합해 만든 것이다.#
홈구장은 1982년부터 2015년까지 대구광역시 북구 고성동에 위치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사용했었고, 2016년부터 대구광역시 수성구 연호동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를 사용하고 있다.
2. 지배 구조 [편집]
- 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 주식회사 삼성라이온즈 지배 구조 | |||
주주명 | 소유 주식 수 | 지분율 | 비고 |
135,000 | 67.5% | ||
29,999 | 15.0% | ||
29,000 | 14.5% | ||
5,000 | 2.5% | ||
기타 | 1,001 | 0.5% | |
합계 | 200,000 | 100.0% |
삼성스포츠단 중 최초의 독립 법인으로 출범했다.[27] 제일기획에 운영권이 넘어가기 전의 삼성 라이온즈는 삼성 계열사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창업주 이병철의 유언대로 특정 한 회사가 독점하지 않고 범삼성가가 지분을 각각 나눠 가졌다.
제일기획 인수 전 삼성 라이온즈 지분은 삼성전자 27.5% + 삼성SDI 15% + CJ제일제당 15% + 신세계 14.5% + 삼성전기 12.5% + 삼성물산 7.5% + 제일기획 3.0% + 이건희 2.5% +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 2015년부로 물산으로 합병) 2.0%로 분산되어 있었다. 삼성가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상징적 의미로 삼성 라이온즈는 나눠갖지 말고 다 같이 공동 운영하게 하려 했다고 한다. CJ그룹, 신세계그룹까지 포함한 범삼성가가 모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셈.
2021년 1월 신세계그룹이 이마트를 통해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신세계의 삼성 라이온즈 지분 소유 여부도 논란이 됐다. KBO 규약에 따르면 한 구단이 다른 구단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KBO는 ㈜이마트와 ㈜신세계가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28] 신세계는 삼성 라이온즈 지분을 보유할 수 있고 이마트는 SSG 랜더스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고 유권 해석을 내렸다. 결국 신세계는 그룹 산하 야구단이 생긴 이후에도 여전히 삼성 라이온즈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관련기사[29]
2015년 삼성의 스포츠단 운영 전략 변화의 일환으로 삼성스포츠단은 국내 광고 업계 1위이자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으로 일괄 이전되었다. 다만 제일기획은 구단의 운영비를 전액 지출하는 모기업이 아니며 단지 운영을 전담으로 하는 것이고 구단의 운영비는 삼성 내의 전자나 물산 등 다른 계열사에서 지원하는 형식이다. 제일기획이 기존 보유 중인 삼성 라이온즈 지분 3%에 더해, 타 계열사 보유분 64.5%(12만 9,000주)까지 6억 7천만 원[30]에 사들이며 2016년 1월 1일부로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되었다. #
제일기획 인수 후에는 제일기획, 신세계, CJ제일제당, 이건희가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건희가 사망하면서 상속세 납부의 일환으로 이건희가 가지고 있던 2.5%의 지분을 대구광역시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프로 스포츠단의 지분 구조에서 연고 지역 지자체가 구단의 지분을 소유한 것은 삼성이 최초다.
3. 디자인 [편집]
3.1. 엠블럼/워드마크/심볼 [편집]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 삼성 라이온즈의 역대 엠블럼 & 워드마크 | |||
1982~1988 | 1989~1994 | 1995~2007 | 2008~현재[31] |
3.2. 유니폼 [편집]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 2025 시즌 선수단 착용 유니폼 | |||
홈 | 원정 | 선데이 | 2002 올드 홈 |
2025 시즌 유니폼 스폰서 | |||||||||||||||||||||||||||||
제작사 | 모자 스폰서 | 유니폼 후면 스폰서 | 유니폼 사이드 스폰서 | 헬멧 사이드 스폰서[32] | |||||||||||||||||||||||||
3.3. 마스코트 [편집]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 삼성 라이온즈 마스코트 | |
블레오 | |
4. 홈구장 [편집]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 삼성 라이온즈 홈구장 | |||
홈구장 | 제 2구장 | 2군 구장 | 과거 구장 |
5. 역사 [편집]
6. 팀 컬러 [편집]
7. 팬 [편집]
7.1. 인기 [편집]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팬들 |
삼성 라이온즈는 연고지 대구·경북 지역을 넘어 KBO 리그의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서, 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와 함께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리그 구단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는 구단 중 하나로 꼽힌다. 우선 수도권에 비해 애향심을 매개로 고정 팬을 확보하기 쉬운 비수도권(대구·경북)에 연고를 두고 있고, 40년이 넘는 원년 구단의 역사에 더해 전통적 강호 이미지와 수많은 스타 선수들로 상징되는 팀이 바로 삼성 라이온즈이기 때문이다.
원년 멤버가 전원 국가대표 출신이고 리그 출범 후 가을야구 탈락은 몇 번 해봤을 지라도 꼴찌는 유일하게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전통의 강팀으로, 화끈한 타격을 시그니처 이미지로 삼았던 팀이었기에 한국프로야구 초창기부터 해태 타이거즈와 더불어 전국구 인기 구단이었다.#[35][36]
시즌 개막 직전 한국갤럽이 실시하는 여론조사 결과[37][38]를 살펴보면, 최근 20여 년간 나타난 삼성 라이온즈 구단 선호도의 추이를 확인할 수 있고 삼성의 선호도가 거의 항상 상위권에 위치해왔음을 알 수 있다. 해당 조사에서 2019년, 2024년을 제외한 모든 연도에서 선호도 순위 3위 안에 랭크되어왔다. 한국갤럽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조사는 1998년의 것으로, 당시 삼성의 선호도는 12%로 20%를 기록한 1위 해태 타이거즈(현 KIA 타이거즈)에 이어 LG 트윈스와 함께 공동 2위를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국민 타자' 이승엽의 전성기와 팀의 첫 KS 우승을 거치면서 2004년 21%(1위), 2005년에는 22%(1위)로 정점을 찍었다. 응답자 중 '좋아하는 구단이 있다'고 답한 이가 70%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당시 야구 팬 중 약 30%가 삼성 팬이었던 셈이다.[39]
이후 이승엽의 일본프로야구 진출(2004~11년)과 선동열 감독의 스몰볼 운영(2005~10년)에 대한 대구아재들의 반감이 겹치면서 2007년 17%(1위), 2008년 13%(2위), 2010년 11%(3위), 2011년 10%(2위)로 뚜렷이 하락하는 침체기를 겪었고 베이징 뉴비의 유입도 타 구단에 비해 적은 편이었지만 선호도 3위 아래로 내려간 적은 한번도 없었으며, 2011년 빅볼 부활을 선언한 류중일 감독의 취임 이후 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가 열리고 이승엽도 팀에 복귀하면서 2012년 조사부터는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2012년 삼성의 선호도는 13%(2위)로 전년 대비 3%p 가량 상승했으며 2014년 조사에서는 13%로 7년 만에 선호도 1위에 복귀, 2015년과 2016년에도 12%로 3년 연속 선호도 1위를 달성했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홈구장을 이전한 2016년부터는 일명 '99688'이라 불리는 최악의 암흑기가 찾아오면서 2017년 10%(롯데와 공동 2위), 2018년 11%(3위), 2019년 7%(4위), 2020년 9%(롯데와 공동 2위), 2021년 8%(3위)로 새 홈구장 개장에도 불구하고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선동열 감독 재임기의 양상과 비슷하게 좀처럼 3위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한국갤럽의 설명에 따르면 롯데·KIA·삼성은 전년도 성적과 무관하게 각자의 연고지(부울경/전라도/대구·경북)에서 최소 40%대의 선호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연고지 팬들의 충성도가 장기간 암흑기에도 선호도 상위권에 들 수 있는 힘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다 2021년에는 삼성이 정규시즌 2위로 6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2022년 9%(KIA와 동률)로 라팍 시대 들어 처음으로 선호도 1위를 차지했고, 그해 올스타전에서도 팬 투표로만 선정되는 드림 올스타 BEST 12를 한 자리 빼고 모두 독식하는 기염을 토했다.[40] 2022년과 2023년 7, 8위를 기록해 암흑기로 되돌아가면서 그 영향으로 2024년 조사에서는 선호도 6%, 5위까지 밀려나는 결과가 나왔지만,[41] 2024년 삼성이 하위권이 전망된 당초 예상을 뒤집고 정규시즌 2위와 9년 만의 KS 진출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면서 창단 첫 100만 관중 돌파, 누적 관중 134만 7,022명 기록으로 구단 역사를 새로 썼다. 이는 139만 7,499명을 기록한 LG 트윈스에 이은 2위로, 원정 팬이 많은 잠실 야구장의 특성 및 수도권과 대구권의 인구 차이를 감안하면 삼성의 관중동원력이 더 강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홈경기 매진율의 경우 41.4%로 KIA 타이거즈와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인 2025년 조사에서는 선호도 9%로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와 함께 1위 기아 타이거즈에 이은 공동 2위를 차지했다.
7.2. 분포 [편집]
삼성 라이온즈의 팬덤은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공식 연고지인 대구, 2군 소재지 경산, 제2구장 소재지 포항, 모기업 사업장이 위치한 구미 등 경북 중서부 · 동부 지역에서 안동 등 경북 북부 지역에 이르기까지 삼성 라이온즈는 대구·경북 전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절대적인 지지는 유교 문화의 영향력을 많이 받았던 대구·경북의 강력한 연고지 동류(同類) 의식과 삼성 왕조로 대표되는 우수한 성적의 결합에 기인한다.
또한, 같은 경상도인 부산·경남에도 상당한 팬덤이 분포하고 있다. 주로 직장, 학업 등의 이유로 인접한 지역인 부산·경남에 정착하게 된 대구·경북 출신들이 많은 편이다. 특히, 부산 사직 야구장에서 클래식 시리즈가 열리면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3루 전체가 삼성 팬들로 꽉 들어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창원 NC 파크 경기에서도 3루에 상당히 많은 삼성팬들을 볼 수 있다. 역대 창원 NC 파크의 매진 경기 상대팀은 롯데를 제외하면, 삼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도권에도 많은 삼성 라이온즈의 팬덤이 분포하고 있다. 수도권의 삼성 라이온즈 팬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대구·경북에서 취학·취업 등의 이유로 수도권으로 이주한 팬들이다. 이들이 수도권 팬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부모부터 대를 이어 응원하는 경우도 많다. 두 번째는 삼성 왕조 시절 호성적으로 인해 삼성을 응원하게 된 팬들이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5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등의 리그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인해 강팀을 선호하는 성향을 가진 입문 팬들이 삼성을 많이 응원했다. 세 번째는 삼성그룹 사원 및 삼성스포츠 팬들이 있다. 이들은 수원, 화성, 용인, 평택 등 삼성 사업장이 있는 경기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 삼성 썬더스,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등 타 삼성 스포츠 팬들 중 형제구단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팬들도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된 수도권 팬들이 많다.
이외 충청권에도 형제배구팀인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로 인해 의외의 팬들이 있다.
또한, 같은 경상도인 부산·경남에도 상당한 팬덤이 분포하고 있다. 주로 직장, 학업 등의 이유로 인접한 지역인 부산·경남에 정착하게 된 대구·경북 출신들이 많은 편이다. 특히, 부산 사직 야구장에서 클래식 시리즈가 열리면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3루 전체가 삼성 팬들로 꽉 들어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창원 NC 파크 경기에서도 3루에 상당히 많은 삼성팬들을 볼 수 있다. 역대 창원 NC 파크의 매진 경기 상대팀은 롯데를 제외하면, 삼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도권에도 많은 삼성 라이온즈의 팬덤이 분포하고 있다. 수도권의 삼성 라이온즈 팬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대구·경북에서 취학·취업 등의 이유로 수도권으로 이주한 팬들이다. 이들이 수도권 팬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부모부터 대를 이어 응원하는 경우도 많다. 두 번째는 삼성 왕조 시절 호성적으로 인해 삼성을 응원하게 된 팬들이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5년 연속 페넌트레이스 우승,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등의 리그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인해 강팀을 선호하는 성향을 가진 입문 팬들이 삼성을 많이 응원했다. 세 번째는 삼성그룹 사원 및 삼성스포츠 팬들이 있다. 이들은 수원, 화성, 용인, 평택 등 삼성 사업장이 있는 경기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서울 삼성 썬더스,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등 타 삼성 스포츠 팬들 중 형제구단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팬들도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된 수도권 팬들이 많다.
이외 충청권에도 형제배구팀인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로 인해 의외의 팬들이 있다.
7.3. 성향 [편집]
삼성 팬층은 2016년 라팍 이전을 기점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두 팬층간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게 특징이다.
2016년 이전부터 삼성을 응원했던 팬들은 '명문 구단 팬'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강했다. 특히 왕조를 달리던 2010년대 전반기에는 선민의식 비슷한 게 느껴졌을 정도. 아무래도 모기업이 국내 최대 기업이라 그런지, 인터넷에서 삼성 팬을 자칭하는 이들의 경우 다른 구단과의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의견을 많이 표출하곤 했다. 삼성 팬덤 내부에서도 자제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거나 삼성 팬도 아닌데 어그로 끈다고 지적했을 정도. 이게 절정을 찍은 게 전성기 때 나왔던 "삼팬이지만 인정한다". 심지어 팬들이 직접 "우리는 가을야구 같은 건 직관 안 간다"라는 패기를 시전하는 등 매번 가을야구 가는 게 목표인 타 구단 팬들의 염장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42] 좋은 성적을 가져다준 구단 프런트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는 선수협 문제라든가 9, 10구단 문제 등에서도 구단을 옹호하는 팬들이 많았다.
또한 같은 영남 구단 아니랄까봐 이따금 롯데 팬 이상의 성깔과 대범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구아재 문서 참조. 물론 그 시절 전반적인 관중문화가 저런 성향이었던 것도 있지만 저런 단어가 나올 정도면 그 중에서도 만만치 않았던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2000년대엔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해서 그런지 많이 누그러진 편인데 예전, 특히 전통적으로 콩을 많이 찍은 구단의 특성상 유독 포스트시즌만 되면 경기마다 팬들이 민감해지고 평소엔 조용하고 사람 좋은 이웃이 가을이 되니까 전투민족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타 지역에 비해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이런 올드 팬들은 대부분 아저씨팬들과 남성팬들이다.[43]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다른 곳 같았으면 논란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사인을 해주기보다는 경기를 이겨라"라는 성향이 짙기에 별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라팍 이전하고 팬서비스는 전반적으로 시민구장 시절에 비해 양호해졌지만 반대로 성적이 하락하자 올드 팬들 사이에선 팬서비스가 곧 성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최근 모든 KBO구단들이 팬서비스를 강조하며 매년 사인회와 같은 팬서비스성 행사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드팬들은 이러한 변화 자체를 크게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라팍으로 홈구장을 옮긴 2016년부터 선수층의 대격변으로 팬덤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왕조를 지탱했던 선수들이 팀을 떠나고, 구단이 전보단 젊은 팬 및 여성 팬들을 겨냥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팬층도 서서히 젊어졌다.[44] 지금 삼성을 지탱하는 선수들, 특히 투수진의 나이는 상당히 젊다. 심지어 팀 연령대가 젊다고 말하는 두산보다도 젊다.[45] 게다가 강민호, 우규민, 이원석, 오재일 등 외부수혈이 늘어나면서 덕아웃 분위기도 예전 삼성과는 달라졌다. 반면 올드 팬들은 왕조시절 이후 지속된 주요 선수들의 이적과 구단의 지원 축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적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야구에서 멀어졌다.[46] 또한 라팍으로 이전하면서 잔디석, 외야 패밀리석 같이 가족 단위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이 생기고, 구단이 가족을 겨냥한 이벤트를 많이 개최하면서 가족 단위 팬들이 많이 찾아와 어린이팬들(일명 '삼린이')의 유입이 늘었다. 이와 동시에 젊은 세대 마케팅에 상당히 공을 들이면서 10~20대의 팬층, 특히 구매력이 센 여성팬층의 유입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성적 우선주의 성향이 강한 올드 팬들이 빠져나갔다. 또한 왕조멤버들이 하나둘씩 퇴단하면서 팀 케미가 무너지고 성적이 바닥을 찍어서 라팍 시대에선 매진을 보기 드물어졌다.[47]
이렇게 새롭게 유입된 젊은 팬들이나 여성팬들은 팬 서비스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구단에서도 이런 흐름을 아는지 혹은 제일기획 이전의 영향인지 구단에서도 마케팅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덕질용 SNS라고 불리는 인스타그램이 개설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에는 '삼스타'라고 불리는 관리자의 드립력 넘치는 글들도 올라온다! 삼성 야구를 오랫동안 봤으면 알겠지만 삼성에서 팬 서비스나 응원가는 부차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팀 컬러가 변화하면서 팬덤의 성향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즉 지금 삼성은 야구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격변기를 거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준학 단장이 인터뷰마다 "새로운 삼성"을 강조하는 것도[48]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모기업에서 지원은 해주지만 자생을 촉구하는 것도 있고, 야구 팬덤에서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자리잡았고 하니 나름대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
하지만 2021년에 6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7년만의 우승을 노리는 호성적을 기록하자 기존 팬층에 왕조시절 구단 수입에 막대한 기여를 했던 올드 팬들까지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코로나 시국임에도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다시로 찾는 것을 보면 관중수입 증대는 곧 성적이 답이라는걸 입증하고 말았다.
2022년에 와서는 2021년의 호성적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심각한 부진은 물론이고 경기력도 굉장히 저질스러워지면서 삼성 팬들마저 삼성야구에 크게 실망하여 등을 돌리는 팬들이 많아졌다.[49] 부진해진 성적과는 별개로 22시즌 관중 순위 3위를 기록하였고,[50] 홈구장 직관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현장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 성적에 관중수가 어느 정도 비례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약간 승패와 관계없이 야구 응원 문화를 즐기러 오는 사람도 많아진 영향이 없지는 않은 듯.
2022년 이후로는 전체적으로 올드팬들과 라이트팬으로 나뉜다. 성적이 더 나빠지기 시작한 2023년부터는 이들의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 성적을 중시하는 올드 팬덤은 분위기가 험악한 상태이며,[51] 홍준학 단장을 비롯한 구단 프런트 모두를 극도로 혐오하고 비난하는 극단적인 성향으로 치닫는 팬들도 생기고 있을 정도이다. 라이트 팬덤은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야구를 즐기면서 보는 팬덤이다. 야구장을 가는 목적도 이기는 경기를 보는 것 보다는 그 현장의 분위기를 즐길려는 이유가 더 크다. 이들은 특정 선수 개인 팬덤의 경향이 강하거나 비판의식 없이 경기를 보는 경향이 강해서 골수팬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한다.[52] 홍준학 단장의 마케팅 성공[53]으로 KBO 역사를 통틀어 장기적으로 암흑기를 겪는 구단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강성 팬덤보다는 라이트 팬덤이 우세한 구단이 되었다. 물론 서로의 스타일 차이를 인정하며 '삼성 라이온즈 팬'이라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며 공존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당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갈라치기를 조장하던 홍준학 단장이 퇴진하고 이종열이 새로운 단장으로 부임함으로써 리빌딩이 진행된다면 어느 정도 팬덤 분열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 신구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등 호성적을 기록하게 되면서 홍준학 체제에서의 올드 팬덤과 뉴비 팬덤의 갈등은 사실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덤으로 2024년 당시 라이온즈 올드 팬덤, 뉴비 팬덤이 결합된 관중 화력은 엄청났으며, 총 관중 수는 무려 134만명에 달해 창단 이래 최다 관중을 기록하였다. 시즌 종료 이후에도 올드 팬덤, 뉴비 팬덤 할 것 없이 전체 팬들이 모든 선수, 코칭스태프, 프런트 등을 칭찬하는 등 훈훈한 한 해였다. 역시 모든 문제와 갈등의 해답은 성적 상승임을 또 한 번 증명한 해였다.
2016년 이전부터 삼성을 응원했던 팬들은 '명문 구단 팬'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강했다. 특히 왕조를 달리던 2010년대 전반기에는 선민의식 비슷한 게 느껴졌을 정도. 아무래도 모기업이 국내 최대 기업이라 그런지, 인터넷에서 삼성 팬을 자칭하는 이들의 경우 다른 구단과의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의견을 많이 표출하곤 했다. 삼성 팬덤 내부에서도 자제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거나 삼성 팬도 아닌데 어그로 끈다고 지적했을 정도. 이게 절정을 찍은 게 전성기 때 나왔던 "삼팬이지만 인정한다". 심지어 팬들이 직접 "우리는 가을야구 같은 건 직관 안 간다"라는 패기를 시전하는 등 매번 가을야구 가는 게 목표인 타 구단 팬들의 염장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42] 좋은 성적을 가져다준 구단 프런트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는 선수협 문제라든가 9, 10구단 문제 등에서도 구단을 옹호하는 팬들이 많았다.
또한 같은 영남 구단 아니랄까봐 이따금 롯데 팬 이상의 성깔과 대범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구아재 문서 참조. 물론 그 시절 전반적인 관중문화가 저런 성향이었던 것도 있지만 저런 단어가 나올 정도면 그 중에서도 만만치 않았던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2000년대엔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해서 그런지 많이 누그러진 편인데 예전, 특히 전통적으로 콩을 많이 찍은 구단의 특성상 유독 포스트시즌만 되면 경기마다 팬들이 민감해지고 평소엔 조용하고 사람 좋은 이웃이 가을이 되니까 전투민족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타 지역에 비해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이런 올드 팬들은 대부분 아저씨팬들과 남성팬들이다.[43]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다른 곳 같았으면 논란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사인을 해주기보다는 경기를 이겨라"라는 성향이 짙기에 별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라팍 이전하고 팬서비스는 전반적으로 시민구장 시절에 비해 양호해졌지만 반대로 성적이 하락하자 올드 팬들 사이에선 팬서비스가 곧 성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최근 모든 KBO구단들이 팬서비스를 강조하며 매년 사인회와 같은 팬서비스성 행사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드팬들은 이러한 변화 자체를 크게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라팍으로 홈구장을 옮긴 2016년부터 선수층의 대격변으로 팬덤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왕조를 지탱했던 선수들이 팀을 떠나고, 구단이 전보단 젊은 팬 및 여성 팬들을 겨냥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팬층도 서서히 젊어졌다.[44] 지금 삼성을 지탱하는 선수들, 특히 투수진의 나이는 상당히 젊다. 심지어 팀 연령대가 젊다고 말하는 두산보다도 젊다.[45] 게다가 강민호, 우규민, 이원석, 오재일 등 외부수혈이 늘어나면서 덕아웃 분위기도 예전 삼성과는 달라졌다. 반면 올드 팬들은 왕조시절 이후 지속된 주요 선수들의 이적과 구단의 지원 축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적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야구에서 멀어졌다.[46] 또한 라팍으로 이전하면서 잔디석, 외야 패밀리석 같이 가족 단위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이 생기고, 구단이 가족을 겨냥한 이벤트를 많이 개최하면서 가족 단위 팬들이 많이 찾아와 어린이팬들(일명 '삼린이')의 유입이 늘었다. 이와 동시에 젊은 세대 마케팅에 상당히 공을 들이면서 10~20대의 팬층, 특히 구매력이 센 여성팬층의 유입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성적 우선주의 성향이 강한 올드 팬들이 빠져나갔다. 또한 왕조멤버들이 하나둘씩 퇴단하면서 팀 케미가 무너지고 성적이 바닥을 찍어서 라팍 시대에선 매진을 보기 드물어졌다.[47]
이렇게 새롭게 유입된 젊은 팬들이나 여성팬들은 팬 서비스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구단에서도 이런 흐름을 아는지 혹은 제일기획 이전의 영향인지 구단에서도 마케팅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덕질용 SNS라고 불리는 인스타그램이 개설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에는 '삼스타'라고 불리는 관리자의 드립력 넘치는 글들도 올라온다! 삼성 야구를 오랫동안 봤으면 알겠지만 삼성에서 팬 서비스나 응원가는 부차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팀 컬러가 변화하면서 팬덤의 성향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즉 지금 삼성은 야구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격변기를 거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준학 단장이 인터뷰마다 "새로운 삼성"을 강조하는 것도[48]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모기업에서 지원은 해주지만 자생을 촉구하는 것도 있고, 야구 팬덤에서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자리잡았고 하니 나름대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
하지만 2021년에 6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7년만의 우승을 노리는 호성적을 기록하자 기존 팬층에 왕조시절 구단 수입에 막대한 기여를 했던 올드 팬들까지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코로나 시국임에도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다시로 찾는 것을 보면 관중수입 증대는 곧 성적이 답이라는걸 입증하고 말았다.
2022년에 와서는 2021년의 호성적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심각한 부진은 물론이고 경기력도 굉장히 저질스러워지면서 삼성 팬들마저 삼성야구에 크게 실망하여 등을 돌리는 팬들이 많아졌다.[49] 부진해진 성적과는 별개로 22시즌 관중 순위 3위를 기록하였고,[50] 홈구장 직관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현장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 성적에 관중수가 어느 정도 비례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약간 승패와 관계없이 야구 응원 문화를 즐기러 오는 사람도 많아진 영향이 없지는 않은 듯.
2022년 이후로는 전체적으로 올드팬들과 라이트팬으로 나뉜다. 성적이 더 나빠지기 시작한 2023년부터는 이들의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 성적을 중시하는 올드 팬덤은 분위기가 험악한 상태이며,[51] 홍준학 단장을 비롯한 구단 프런트 모두를 극도로 혐오하고 비난하는 극단적인 성향으로 치닫는 팬들도 생기고 있을 정도이다. 라이트 팬덤은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야구를 즐기면서 보는 팬덤이다. 야구장을 가는 목적도 이기는 경기를 보는 것 보다는 그 현장의 분위기를 즐길려는 이유가 더 크다. 이들은 특정 선수 개인 팬덤의 경향이 강하거나 비판의식 없이 경기를 보는 경향이 강해서 골수팬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한다.[52] 홍준학 단장의 마케팅 성공[53]으로 KBO 역사를 통틀어 장기적으로 암흑기를 겪는 구단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강성 팬덤보다는 라이트 팬덤이 우세한 구단이 되었다. 물론 서로의 스타일 차이를 인정하며 '삼성 라이온즈 팬'이라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며 공존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당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갈라치기를 조장하던 홍준학 단장이 퇴진하고 이종열이 새로운 단장으로 부임함으로써 리빌딩이 진행된다면 어느 정도 팬덤 분열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 신구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등 호성적을 기록하게 되면서 홍준학 체제에서의 올드 팬덤과 뉴비 팬덤의 갈등은 사실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덤으로 2024년 당시 라이온즈 올드 팬덤, 뉴비 팬덤이 결합된 관중 화력은 엄청났으며, 총 관중 수는 무려 134만명에 달해 창단 이래 최다 관중을 기록하였다. 시즌 종료 이후에도 올드 팬덤, 뉴비 팬덤 할 것 없이 전체 팬들이 모든 선수, 코칭스태프, 프런트 등을 칭찬하는 등 훈훈한 한 해였다. 역시 모든 문제와 갈등의 해답은 성적 상승임을 또 한 번 증명한 해였다.
7.4. 목록 [편집]
- 단순 시구자를 근거 없이 팬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 강진주: 트위치 스트리머. 종종 라이온즈파크에서 발견된다.
- 권민지★: GS칼텍스 서울 KIXX 소속 배구선수. 대구광역시 출신이기도 하고, 같은 팀 유서연이 워낙 야구를 좋아해서 같이 삼성 라이온즈 야구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팬이 되었다고 한다.
- 김민경(코미디언)★: 대구 출신.
- 김블루★ : 대구 출신. 최근 유튜브 쇼츠에서 공개했다.
- 김성균★: 대구 출신.
- 김인섭(레슬링)★: 대구광역시 출신 前 레슬링 선수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과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들 김재상이 202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참고로 김재상도 수도권에서 나고 자랐지만 대구 출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삼성 라이온즈 팬이었고, 삼성 라이온즈 1기 어린이 회원이었다.
- 남민정 : 대전 출신. 치어리더. 전 블루팅커스 응원단. 치어리더로서 원클럽이었으며 블루팅커스에서 떠난 이후에도 응원을 이어가고 있다.
- 문지윤: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소속 배구선수. GS 시절 동료들 중 삼성팬이 많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민효린★: 대구 출신. 야구를 별로 안좋아했으나 시구를 경험한 이후 고향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 박찬우(축구해설가): 축구해설위원이자 자칭 인테르 전문가. 이스타티비에 출연중이며 본인은 서울태생이지만 아버지가 대구 출신이라 자연스레 삼성을 응원하게 되었다고.
- 배말랭★: 대구 출신. 배말랭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
- 보라미유★: 대구 출신. 2025년 4월 18일 클래식시리즈에서 시구를 하였다.
- 슈가(방탄소년단)★: 대구광역시 출신이며 방탄소년단의 멤버이다. 트위터 등에 올라오는 작업실 사진에 삼성 라이온즈의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 때 본인의 트위터에 유니폼을 입고 인증까지 했다. 또한 화양연화 pt.2의 수록곡 중 'Ma City'라는 노래에서 '수혈 받기엔 좀 힘들어 몸 속의 파란 피' 라는 가사를 썼다.
- 안동구: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삼성팬이라고 밝혔다.
- 유서연: GS칼텍스 서울 KIXX 소속 배구선수. 인스타 스토리에 삼성라이온즈 경기 시청 인증을 올리고 있다.
- 이쌍도★: 유튜버
- 이준석: 국민의힘 前 대표이자 현 22대 국회의원. 본인은 서울 출생이나 이준석의 양친이 모두 대구·경북 출신이라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된 걸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대구 지역 공무원이셨던 조부의 영향이 컸다고 2013년에 말한 바 있다. SNS에 삼성 라이온즈에 관한 글을 종종 올릴 정도로 야구를 상당히 좋아하며 2021년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일정 중에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직관 인증샷을 올린 적도 있다.
- 이찬원★: 내일은 미스터트롯 미. 울산 출신이지만 3살 때부터 대구에서 살았다. 데뷔 전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구자욱의 팬이다. 2020년에 양준혁과 특별해설을 하기도 했는데 해설뿐만 아니라 아나운서까지 동시에 완벽하게 진행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유명세를 등에 업고 해설하러 왔다고 비판하던 타팀팬들을 버로우 타게 만들었다. 원태인과도 친분이 있어서 원태인의 인스타그램에 자주 댓글도 남기는 편이며 2024년에도 여전한 팬심을 드러내는 중이다.[61]
- 이채영★: 포항 출신 프로미스나인 멤버.
- 이철민★: 대구 출신 배우.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 출신.
- 이태훈★: 現 대구광역시 달서구청장.
- 장동윤★: 대구 출신 배우. 종종 인스타그램에 삼성라이온즈 관련 게시물을 올린다.
- 장문복★: 가장 삼성다운 한국시리즈 경기로 꼽히는 2002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인 6차전을 보고 감명 깊어 팬이 되었다고 한다. 야구를 하는 것도 좋아하며, 주 포지션은 포수.
- 장현정: 방송인. 축구 리포터이자 K리그 리포터로 유명하다. 야구는 처음은 아니지만 삼성 라이온즈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다. 추가로 2024년 코리안시리즈 때 대구삼성라이온즈 파크 직관한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 조재구★: 現 대구광역시 남구청장.
- 조희대★ : 제17대 대법원장.
- 최종훈: 최코디이자 푸른거탑 말년병장역 배우로 모종의 계기로 팬이 되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푸른거탑 방영기간 유일한 코시우승팀이 삼성이다.
- 한수진(배구선수): GS칼텍스 서울 KIXX 소속 배구선수. 2022년 5월 15일 유서연과 선수들과 친하기로 유명한 유튜버 미니쿵저러쿵을 따라 라팍을 갔다가 삼성팬이 되었다. 인스타 스토리를 보면 김지찬 응원가에 빠져있다고 한다.
- 홍준표★: 前 대구광역시장.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 경상남도지사에 재직할 당시 KBO리그 9번째 팀인 창원시 연고의 NC 다이노스의 팬으로 좋아하기도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이로인해 NC 팬덤에서는 미묘한 관계다. 대구에서 유년 시절을 주로 보냈던 만큼 삼성 라이온즈 역시 옛날부터 좋아했다고 고백했다. 대구광역시장이 되고 나서는 시장의 자격으로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 시구도 자주 하러 갔다. 2024년 플레이오프 2차전 때 김대진 캐스터와 김용국 해설위원이 진행하는 TBC 보이는 라디오에 깜짝 게스트로 출연하여 구단의 레전드인 장효조 선수를 옛날부터 정말 좋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요즘은 김지찬이 한 경기 한 경기마다 날쎄게 플레이 하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다.
8. 응원 [편집]
야구 인기가 절정이었고, 왕조로 불리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응원 문화로 리그를 주도하는 구단은 아니었다. 시민야구장 시절에는 응원가를 잘 따라하지 않는 아저씨팬들이 홈 내야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응원가의 퀄리티도 영 좋지 않아서 성적에 비해 응원 문화는 뒤떨어진 편이었다. 타 지역에 비해 무뚝뚝한 대구경북 지역 특성도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 한 몫을 했다.
그러다가 2013 시즌부터 김상헌 응원단장이 응원가를 재녹음하면서 응원가 퀄리티가 개선되기 시작했고, 2011~2014 4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최전성기를 맞으면서 응원석에도 젊은 팬들이 유입되어 응원가를 신나게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이미지가 '응원을 잘 하는 팀'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는 2016년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이전과 2017년의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를 들 수 있다. 기존의 좁고 불편했던 시민야구장에서 쾌적하고 팬 친화적인 라팍으로 홈구장이 옮겨지면서 많은 가족 단위 팬들이 야구장을 방문하게 되었고,[67] 응원석인 '블루존'에 최대한 많은 좌석을 배정하면서 평일에도 뜨거운 응원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또한 응원가 저작권 사태로 기존의 응원가를 대부분 쓰지 못하게 되자, 김상헌 응원단장이 직접 음악계에 종사하는 동료들과 함께 허니크루라는 이름으로 선수와 팀 응원가를 새로 만들게 되었고, 이게 삼성 팬은 물론 타 구단 팬들에게도 호평을 얻으면서 전화위복이 되었다.[68] 그 결과 라팍은 블루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잔디석 관중들도 응원가를 다 따라 부르는 응원 맛집이 되었다.
2024년에는 이종열 단장이 부임한 후 저작권자와 합의되어 팀 응원가인 엘도라도가 부활했다.
그러다가 2013 시즌부터 김상헌 응원단장이 응원가를 재녹음하면서 응원가 퀄리티가 개선되기 시작했고, 2011~2014 4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최전성기를 맞으면서 응원석에도 젊은 팬들이 유입되어 응원가를 신나게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이미지가 '응원을 잘 하는 팀'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로는 2016년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이전과 2017년의 KBO 리그 응원가 저작권 사태를 들 수 있다. 기존의 좁고 불편했던 시민야구장에서 쾌적하고 팬 친화적인 라팍으로 홈구장이 옮겨지면서 많은 가족 단위 팬들이 야구장을 방문하게 되었고,[67] 응원석인 '블루존'에 최대한 많은 좌석을 배정하면서 평일에도 뜨거운 응원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또한 응원가 저작권 사태로 기존의 응원가를 대부분 쓰지 못하게 되자, 김상헌 응원단장이 직접 음악계에 종사하는 동료들과 함께 허니크루라는 이름으로 선수와 팀 응원가를 새로 만들게 되었고, 이게 삼성 팬은 물론 타 구단 팬들에게도 호평을 얻으면서 전화위복이 되었다.[68] 그 결과 라팍은 블루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잔디석 관중들도 응원가를 다 따라 부르는 응원 맛집이 되었다.
2024년에는 이종열 단장이 부임한 후 저작권자와 합의되어 팀 응원가인 엘도라도가 부활했다.
8.1. 응원단 [편집]
응원단의 이름은 '블루팅커스'이며, 1995년부터 2024년까지 대구지역 이벤트 대행사인 놀레벤트 소속의 치어리더들이 무려 30년 동안 응원을 진행했다. 대구 라팍 홈경기에서는 6명, 원정 경기에서는 4명씩 나오며, 2020 시즌과 2021 시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홈경기에서도 4명씩 나오기도 했다. 대구경북 출신이 대다수였으며,[69] 야구 외 종목의 응원 구단들도 TK 지역에 몰려있었다.[70] 2023년에는 멤버 전원이 대경권 출신으로 채워졌다가 2024년 김유정 치어리더가 다시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71] 놀레벤트 전용 인스타그램에 경기의 라인업이 올라왔다.
2025 시즌을 앞두고 구단 응원단 입찰을 통하여 입찰 재계약에 실패한 놀레벤트 대신 새로운 응원단 업체 트윙클에서 삼성 치어리더를 맡게 되면서 박소영 치어리더와 오서율 치어리더를 비롯한 트윙클 소속 치어리더 전원이 삼성 치어리더를 담당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두 치어리더들은 모두 비 TK연고로 전국구 구단 진출을 예고했다. 김상헌 응원단장만 구단과의 재계약 체결로 2025 시즌도 함께하게 되었으며 제2단장으로 전 NC 다이노스 응원단장이었던 이범형 응원단장을 새로 영입했다.
2024 시즌부터 KIA 타이거즈처럼 정규시즌 144경기 전 경기에 응원단을 파견한다.
8.2. 응원가 [편집]
9. 타 구단과의 관계 [편집]
원년부터 존속한 팀이다 보니 웬만한 팀들과는 다 라이벌리가 어떻게든 엮여 있다. 하다못해 흥참동 신생 구단과도 2010년대 초반 SK, 2010년대 중반 넥센과 우승을 놓고 경쟁을 했고 2021년에는 kt와도 우승 경쟁을 하는 등 대결 구도가 붙은 적이 있다. 다만 의외로 잠실 시리즈나 낙동강 시리즈만큼 확고한 라이벌전은 없으며, KIA 정도를 제외하면 삼성을 최고 라이벌 구단이라고 생각하는 구단은 거의 없는 편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색채가 강한 구단답게 호남 지역 색채가 강한 KIA를 가장 주요한 라이벌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오랫동안 좋은 성적을 기록해왔지만 20세기에는 한국시리즈에서 자주 패퇴하던 구단이다보니 삼성 팬덤은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임팩트 있게 고꾸라뜨린 팀, 특히 삼성의 우승을 임팩트 있게 저지시킨 구단을 주로 라이벌 구단으로 꼽는 편이다. 한국시리즈 위주로 임팩트가 강했던 KIA, 두산 뿐만 아니라 1999년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의 20세기 롯데나 2021년 타이브레이커로 유명한 2020년대의 kt 역시 라이벌로 거론되는 게 그 예시.
과거에는 영호남 지역감정을 상징하던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와의 달빛 시리즈[72], 같은 경상도면서 원년부터 함께한 경상도 내 라이벌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클래식 씨리즈를 시작으로[73] 과거 재계 라이벌이었던 현대 유니콘스가 있던 당시 재계 1, 2위의 간의 경쟁으로 인해 라이벌로 가장 자주 꼽혔다. 실제로 정주영 계열의 현대-KIA는 이병철 계열의 삼성과 함께 국내 최고의 기업집단으로 꼽히며, 재계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라이벌리로 반드시 거론될 수밖에 없다. 현재는 기존 라이벌이었던 KIA, 롯데에다 포스트시즌 명승부 메이커로 싸대기 라이벌인 두산 베어스, 2020년대부터는 kt wiz 역시 손에 꼽히는 라이벌이 되었다.[74] 해당 구단들 모두 한 번 이상 포스트시즌에 삼성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줘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저지한 적이 있으며,[75]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여러 서사가 얽혀 있어 삼성 팬덤이 라이벌로 주로 꼽는다.
kt 역시 라이벌 중 하나로 꼽힌다. 사실 현대 시절부터 삼성과 현대는 대표 라이벌로 거론되었는데 이는 재계 라이벌 구도인 것도 있지만 현대의 임시 연고지가 수원인 것도 영향을 끼쳤다. 삼성 그룹의 핵심사업이 수원에 집중되어 있고 실제로 수원에도 팬들이 많다. 2020년대 들어 서서히 라이벌리가 되더니, 폭발해버린 2024시즌에는 오히려 롯데, 두산보다도 kt를 의식하는 삼성 팬들이 훨씬 더 많다. 특히나 이강철 감독이 야구인생 내내 삼성과 악연으로 엮여있어서 삼성 팬덤 중 그를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 많고, 거기다 박병호 이적까지 겹치며 KIA 타이거즈에 못지않게 사이가 나빠졌다. 18년에는 삼성과 kt가 6위와 9위로 멀어졌으나 상대전적은 7승 2무 7패로 동률을 기록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쭉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하위권 라이벌이란 인식이 있었으나, 2020년에는 kt가 가을야구가 유력해지고 삼성이 kt에 발목을 잡히면서 통산 전적에서 승패 수가 비슷해졌다. 본격적으로 라이벌리가 불붙은 것은 2021년으로, 이 해 삼성과 kt가 선두 경쟁을 하며 경쟁구도가 붙었다.[76] 이후 박병호가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며 점점 두 팀간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전자 라이벌인 LG 역시 1990년에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막고 팀의 첫 우승을 달성하면서 20세기까지 전자 라이벌인 LG와의 관계는 굉장히 안 좋은 편이었으나, 이후 삼성의 우승을 눈에 띄게 저지시킨 적이 없고 오히려 2002년에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주었으며, 2010년대 이후 삼성과 LG 사이 선수 및 코칭스태프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관계가 원만해진 상황이다. 특히 2024년 이종열이 삼성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어느 정도는 완화된 모양새인데, 반면 이들이 플레이오프에서 만나며 홈구장의 유불리 논쟁으로 약간의 신경전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팀 모두 2024년 기준으로 두산, KIA, kt와 적대적이기에 좋다기엔 애매할지언정 아주 틀어진 관계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2025년에는 최원태가 FA를 통해 LG에서 삼성으로 이적하는 바람에 사이가 다소 악화되었다.[77][78]
인천을 연고로 하는 SK-SSG 역시나 어느 정도의 경쟁의식이 있는 편으로, 삼성과 SK는 2010년부터 3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으면서 00년대 말과 10년대 초에는 SK 와이번스와도 라이벌리가 존재했다. 그리고 범 삼성가의 신세계그룹을 모기업으로 하는, 기존의 SK 와이번스의 후신이었던 SSG 랜더스가 2021년에 창단되며 '삼성가 시리즈'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되었다.[79] 다만 이후 삼성과 SK-SSG가 가을에서 유의미하게 만나는 일이 줄어들며 관심이 식어버렸고, SSG 랜더스는 삼성과의 집안 간 라이벌리보다 전통의 유통업계 맞수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쟁을 더 우선으로 보는 듯하다. 또한 별도의 문서가 생겼을 정도로 치열했던 한화 이글스와도 라이벌리가 존재했었다.
대신 비대기업팀이자 흥행참패동맹에 있는 키움 히어로즈와 NC 다이노스와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 넥센-키움 히어로즈의 경우 직접적으로 삼성의 우승을 저지시킨 적이 없고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준 데다가 삼성과의 선수단 교류가 적지 않아 상대적으로 프렌들리한 관계이며, 라이벌로 생각하는 팬덤이 적다. NC는 같은 경상도 구단에 삼성과 마찰을 일으킬 만한 일이 딱히 없었다. 창원 NC 파크에 가장 열정적으로 직관을 가는 원정 팬덤이 바로 삼성 팬덤 이기도 하다.[80][81]
여하튼 결론적으로 보통 삼성 팬들은 KIA, 롯데를 주로 라이벌로 꼽으며 수도권 구단 중에선 두산, kt를 라이벌로 가장 많이 꼽는다. 삼성이 암흑기에 빠지고 LG가 전성기에 돌입했을 때 유입된 뉴비 팬덤들은 그런 경우가 적지만, 올드 팬덤들은 LG 역시 라이벌로 꼽는다. 또한 이들 중 KIA, kt 팬덤과의 관계는 각자 지역감정과 이강철 감독, 박병호 트레이드 문제로 좋지 않으며, 두산과의 관계는 원래 좋았으나 2023년 이승엽이 두산 감독으로 선임되면서부터는 다소 좋지 않은 편. LG는 2000년대까지 구단 관계나 팬덤 관계나 안 좋았으나 2010년대 이후 완화되었다. 롯데는 경상도 라이벌이긴 하지만 같은 경상도라는 공통분모 때문인지 사이가 다른 팀에 비해 그나마 좋은 편이다. 물론 이것도 지역주의가 상당히 사멸한 요즘 팬덤이나 그렇지, 올드 팬덤 사이에서는 기롯삼 지방 3구단 팬덤 사이가 모두 매우 험악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구단들끼리 열린 시리즈에서 폭력 사태도 꽤 자주 일어났고 일단 패하거나 하면 후폭풍이 거셌을 정도. 20세기에서는 당시까지 무관이던 삼성과 달리 롯데가 우승을 두 번이나 한데다 아주 임팩트있게 삼성의 우승을 두 번이나 저지해서 라이벌리가 매우 극심했다. 물론 삼성이 무관을 성불하고 롯데가 하위권으로 굴러떨어진 21세기에는 관계가 많이 나아졌으며, 같은 경상도 구단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하여 사이가 상대적으로 좋지만 역시나 간간이 막장경기가 나오면 진 쪽 팬덤은 뒤집어진다.
대구/경북 지역의 색채가 강한 구단답게 호남 지역 색채가 강한 KIA를 가장 주요한 라이벌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오랫동안 좋은 성적을 기록해왔지만 20세기에는 한국시리즈에서 자주 패퇴하던 구단이다보니 삼성 팬덤은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임팩트 있게 고꾸라뜨린 팀, 특히 삼성의 우승을 임팩트 있게 저지시킨 구단을 주로 라이벌 구단으로 꼽는 편이다. 한국시리즈 위주로 임팩트가 강했던 KIA, 두산 뿐만 아니라 1999년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고의 20세기 롯데나 2021년 타이브레이커로 유명한 2020년대의 kt 역시 라이벌로 거론되는 게 그 예시.
과거에는 영호남 지역감정을 상징하던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와의 달빛 시리즈[72], 같은 경상도면서 원년부터 함께한 경상도 내 라이벌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클래식 씨리즈를 시작으로[73] 과거 재계 라이벌이었던 현대 유니콘스가 있던 당시 재계 1, 2위의 간의 경쟁으로 인해 라이벌로 가장 자주 꼽혔다. 실제로 정주영 계열의 현대-KIA는 이병철 계열의 삼성과 함께 국내 최고의 기업집단으로 꼽히며, 재계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라이벌리로 반드시 거론될 수밖에 없다. 현재는 기존 라이벌이었던 KIA, 롯데에다 포스트시즌 명승부 메이커로 싸대기 라이벌인 두산 베어스, 2020년대부터는 kt wiz 역시 손에 꼽히는 라이벌이 되었다.[74] 해당 구단들 모두 한 번 이상 포스트시즌에 삼성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줘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저지한 적이 있으며,[75]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여러 서사가 얽혀 있어 삼성 팬덤이 라이벌로 주로 꼽는다.
kt 역시 라이벌 중 하나로 꼽힌다. 사실 현대 시절부터 삼성과 현대는 대표 라이벌로 거론되었는데 이는 재계 라이벌 구도인 것도 있지만 현대의 임시 연고지가 수원인 것도 영향을 끼쳤다. 삼성 그룹의 핵심사업이 수원에 집중되어 있고 실제로 수원에도 팬들이 많다. 2020년대 들어 서서히 라이벌리가 되더니, 폭발해버린 2024시즌에는 오히려 롯데, 두산보다도 kt를 의식하는 삼성 팬들이 훨씬 더 많다. 특히나 이강철 감독이 야구인생 내내 삼성과 악연으로 엮여있어서 삼성 팬덤 중 그를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 많고, 거기다 박병호 이적까지 겹치며 KIA 타이거즈에 못지않게 사이가 나빠졌다. 18년에는 삼성과 kt가 6위와 9위로 멀어졌으나 상대전적은 7승 2무 7패로 동률을 기록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쭉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하위권 라이벌이란 인식이 있었으나, 2020년에는 kt가 가을야구가 유력해지고 삼성이 kt에 발목을 잡히면서 통산 전적에서 승패 수가 비슷해졌다. 본격적으로 라이벌리가 불붙은 것은 2021년으로, 이 해 삼성과 kt가 선두 경쟁을 하며 경쟁구도가 붙었다.[76] 이후 박병호가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며 점점 두 팀간의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전자 라이벌인 LG 역시 1990년에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막고 팀의 첫 우승을 달성하면서 20세기까지 전자 라이벌인 LG와의 관계는 굉장히 안 좋은 편이었으나, 이후 삼성의 우승을 눈에 띄게 저지시킨 적이 없고 오히려 2002년에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주었으며, 2010년대 이후 삼성과 LG 사이 선수 및 코칭스태프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관계가 원만해진 상황이다. 특히 2024년 이종열이 삼성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어느 정도는 완화된 모양새인데, 반면 이들이 플레이오프에서 만나며 홈구장의 유불리 논쟁으로 약간의 신경전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팀 모두 2024년 기준으로 두산, KIA, kt와 적대적이기에 좋다기엔 애매할지언정 아주 틀어진 관계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2025년에는 최원태가 FA를 통해 LG에서 삼성으로 이적하는 바람에 사이가 다소 악화되었다.[77][78]
인천을 연고로 하는 SK-SSG 역시나 어느 정도의 경쟁의식이 있는 편으로, 삼성과 SK는 2010년부터 3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으면서 00년대 말과 10년대 초에는 SK 와이번스와도 라이벌리가 존재했다. 그리고 범 삼성가의 신세계그룹을 모기업으로 하는, 기존의 SK 와이번스의 후신이었던 SSG 랜더스가 2021년에 창단되며 '삼성가 시리즈'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되었다.[79] 다만 이후 삼성과 SK-SSG가 가을에서 유의미하게 만나는 일이 줄어들며 관심이 식어버렸고, SSG 랜더스는 삼성과의 집안 간 라이벌리보다 전통의 유통업계 맞수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쟁을 더 우선으로 보는 듯하다. 또한 별도의 문서가 생겼을 정도로 치열했던 한화 이글스와도 라이벌리가 존재했었다.
대신 비대기업팀이자 흥행참패동맹에 있는 키움 히어로즈와 NC 다이노스와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다. 넥센-키움 히어로즈의 경우 직접적으로 삼성의 우승을 저지시킨 적이 없고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준 데다가 삼성과의 선수단 교류가 적지 않아 상대적으로 프렌들리한 관계이며, 라이벌로 생각하는 팬덤이 적다. NC는 같은 경상도 구단에 삼성과 마찰을 일으킬 만한 일이 딱히 없었다. 창원 NC 파크에 가장 열정적으로 직관을 가는 원정 팬덤이 바로 삼성 팬덤 이기도 하다.[80][81]
여하튼 결론적으로 보통 삼성 팬들은 KIA, 롯데를 주로 라이벌로 꼽으며 수도권 구단 중에선 두산, kt를 라이벌로 가장 많이 꼽는다. 삼성이 암흑기에 빠지고 LG가 전성기에 돌입했을 때 유입된 뉴비 팬덤들은 그런 경우가 적지만, 올드 팬덤들은 LG 역시 라이벌로 꼽는다. 또한 이들 중 KIA, kt 팬덤과의 관계는 각자 지역감정과 이강철 감독, 박병호 트레이드 문제로 좋지 않으며, 두산과의 관계는 원래 좋았으나 2023년 이승엽이 두산 감독으로 선임되면서부터는 다소 좋지 않은 편. LG는 2000년대까지 구단 관계나 팬덤 관계나 안 좋았으나 2010년대 이후 완화되었다. 롯데는 경상도 라이벌이긴 하지만 같은 경상도라는 공통분모 때문인지 사이가 다른 팀에 비해 그나마 좋은 편이다. 물론 이것도 지역주의가 상당히 사멸한 요즘 팬덤이나 그렇지, 올드 팬덤 사이에서는 기롯삼 지방 3구단 팬덤 사이가 모두 매우 험악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구단들끼리 열린 시리즈에서 폭력 사태도 꽤 자주 일어났고 일단 패하거나 하면 후폭풍이 거셌을 정도. 20세기에서는 당시까지 무관이던 삼성과 달리 롯데가 우승을 두 번이나 한데다 아주 임팩트있게 삼성의 우승을 두 번이나 저지해서 라이벌리가 매우 극심했다. 물론 삼성이 무관을 성불하고 롯데가 하위권으로 굴러떨어진 21세기에는 관계가 많이 나아졌으며, 같은 경상도 구단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하여 사이가 상대적으로 좋지만 역시나 간간이 막장경기가 나오면 진 쪽 팬덤은 뒤집어진다.
9.1. KIA 타이거즈 - 달빛 시리즈 [편집]
9.2. 롯데 자이언츠 - 클래식 씨리즈 [편집]
9.3. 두산 베어스 - 싸대기 매치 [편집]
9.4. 현대 유니콘스 - 재계 라이벌 시리즈 [편집]
10. 역대 선수 및 인물 [편집]
10.1. 영구 결번 [편집]
삼성 라이온즈 영구 결번 3인 좌측부터 이승엽, 이만수, 양준혁 |
이만수의 22번, 양준혁의 10번, 이승엽의 36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통적인 타격의 팀답게 리그 올타임급 타자 3명이 영구 결번의 영예를 안았다.
22번은 뛰어난 성적과 손꼽히는 인기로 80~90년대 삼성 라이온즈를 상징하는 선수인 역대 최고의 우타자 중 하나이자 최고의 공격형 포수인 헐크 이만수의 번호이며, 1997년 은퇴[82] 후 2003년에 지정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영구 결번.
10번은 마찬가지로 리그 올타임급 타자인 양신 양준혁의 번호로, 자타가 공인하는 성적[83]을 남겼기에 영구 결번이 기정사실이었고, 실제로도 삼성 라이온즈의 두번째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더불어 10번은 양준혁 이전 팀 레전드인 장효조의 번호였는데, 양준혁 역시 본인의 등번호와 관련하여 10번은 본인에 앞서 장효조 선배의 번호라고 생각하며 영구 결번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고, 팬들 또한 양준혁과 장효조의 공동 영구 결번을 염원한다. 구단에서도 등번호 10번 장효조 포토볼을 내놓는 등 10번과 장효조를 끊지 않고 있다.
36번은 리그 역사상 최고의 스타인 국민타자 이승엽의 번호로 2004년 일본 진출이 확정됨과 동시에 임시 결번으로 발표되었으며, 2012년 이승엽이 국내로 복귀하면서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2017년 10월 3일 은퇴경기를 끝으로 은퇴식과 함께 영구 결번이 되었다.
영구 결번 후보로는 좌타 계보의 원조이자 시대를 상징하는 타자였던 장효조의 10번, 80년대 투수 트로이카의 일원이자 삼성 투수의 상징인 김시진의 29번이 있으며, 이밖에도 원클럽맨으로 꾸준하게 기록을 남기며 팀에 큰 기여를 한 박한이의 33번[84],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의 21번[85], 통합 4연패를 이끌며 왕조이자 팀의 최전성기를 이끈 류중일 감독의 75번이 있다. 이적 이전의 최형우의 34번, 박석민의 18번도 영구 결번 후보로 거론되었다. 현역 중에선 베테랑이 되기 전에 이미 팀레전드의 위상을 얻은 구자욱이 유력하며, 현재 성적을 유지한다면 원태인도 그 뒤를 이을 가능성이 크다.
2025년 8월 6일 오승환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구단은 오승환의 21번을 구단 4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로 하였다.
22번은 뛰어난 성적과 손꼽히는 인기로 80~90년대 삼성 라이온즈를 상징하는 선수인 역대 최고의 우타자 중 하나이자 최고의 공격형 포수인 헐크 이만수의 번호이며, 1997년 은퇴[82] 후 2003년에 지정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영구 결번.
10번은 마찬가지로 리그 올타임급 타자인 양신 양준혁의 번호로, 자타가 공인하는 성적[83]을 남겼기에 영구 결번이 기정사실이었고, 실제로도 삼성 라이온즈의 두번째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더불어 10번은 양준혁 이전 팀 레전드인 장효조의 번호였는데, 양준혁 역시 본인의 등번호와 관련하여 10번은 본인에 앞서 장효조 선배의 번호라고 생각하며 영구 결번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고, 팬들 또한 양준혁과 장효조의 공동 영구 결번을 염원한다. 구단에서도 등번호 10번 장효조 포토볼을 내놓는 등 10번과 장효조를 끊지 않고 있다.
36번은 리그 역사상 최고의 스타인 국민타자 이승엽의 번호로 2004년 일본 진출이 확정됨과 동시에 임시 결번으로 발표되었으며, 2012년 이승엽이 국내로 복귀하면서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2017년 10월 3일 은퇴경기를 끝으로 은퇴식과 함께 영구 결번이 되었다.
영구 결번 후보로는 좌타 계보의 원조이자 시대를 상징하는 타자였던 장효조의 10번, 80년대 투수 트로이카의 일원이자 삼성 투수의 상징인 김시진의 29번이 있으며, 이밖에도 원클럽맨으로 꾸준하게 기록을 남기며 팀에 큰 기여를 한 박한이의 33번[84],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의 21번[85], 통합 4연패를 이끌며 왕조이자 팀의 최전성기를 이끈 류중일 감독의 75번이 있다. 이적 이전의 최형우의 34번, 박석민의 18번도 영구 결번 후보로 거론되었다. 현역 중에선 베테랑이 되기 전에 이미 팀레전드의 위상을 얻은 구자욱이 유력하며, 현재 성적을 유지한다면 원태인도 그 뒤를 이을 가능성이 크다.
2025년 8월 6일 오승환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구단은 오승환의 21번을 구단 4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로 하였다.
10.1.1. No.22 이만수 [편집]
삼성 라이온즈 No.22 | |
프로입단 |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
역대 프로 소속팀 | |
영구 결번 | 2003년 6월 16일 |
역대 기록 | ||||||||||||||||
경기 | 타수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wRC+ | WAR |
1449 | 4310 | .296 | .388 | .519 | .907 | 1276 | 193 | 7 | 252 | 861 | 625 | 52 | 554 | 490 | 159(2위) | 58.06 |
10.1.2. No.10 양준혁 [편집]
삼성 라이온즈 No.10 | |
프로입단 | 1993년 1차 지명 |
역대 프로 소속팀 |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9~1994).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1993~1998, 2002~2010 / 18시즌 / KBO)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해태 타이거즈 (1999)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2000~2001) |
영구 결번 | 2010년 9월 19일 |
역대 기록 | ||||||||||||||||
경기 | 타수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wRC+ | WAR |
2135 (4위) | 7332 (4위) | .316 | .421 (2위) | .529 | .950 | 2318 (2위) | 458 (5위) | 25 | 351 | 1389 (4위) | 1299 (2위) | 193 | 1278 (1위) | 910 | 165.0 (1위) | 91.06 (1위) |
10.1.3. No.36 이승엽 [편집]
삼성 라이온즈 No.36 | |
프로입단 | 1995년 연고구단 자유계약 |
역대 프로 소속팀 | |
파일:치바 롯데 마린즈 엠블럼.svg 치바 롯데 마린즈 (2004~2005) 파일:요미우리 자이언츠 엠블럼(2006~2010).svg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2010) 파일:오릭스 버팔로즈 엠블럼.svg 오릭스 버팔로즈 (2011 / 8시즌 / NPB) | |
영구 결번 | 2017년 10월 3일 |
역대 기록 | ||||||||||||||||
경기 | 타수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wRC+ | WAR |
1906 | 7132 (5위) | .302 | .389 | .572 (1위) | .960 (1위) | 2156 | 464 (2위) | 28 | 467 (2위) | 1498 (2위) | 1355 (1위) | 57 | 953 | 1344 | 149.8 | 73.04 (4위) |
10.1.4. No.21 오승환 [편집]
삼성 라이온즈 No.21 | |
프로입단 | 2005년 2차 1라운드(전체 5번) |
역대 프로 소속팀 | |
파일:한신 타이거스 엠블럼.svg 한신 타이거스 (2014~2015 / 2시즌 / NPB) 파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엠블럼.svg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16~2017) 파일:토론토 블루제이스 엠블럼.svg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8) 파일:콜로라도 로키스 엠블럼.svg 콜로라도 로키스 (2018~2019 / 4시즌 / MLB) | |
영구 결번 | 2025년(예정) |
10.2. 삼성의 스타들 [편집]
10.3. 역대 구단주 [편집]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1 | 1982~2001 | ||
대행 | 김정순 | 1995 | 당시 제일제당 사장 |
대행 | 안덕기 | 1996~1997 |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삼성 라이온즈 4대 사장 |
대행 | 이종기[87] | 1998~1999 | 당시 삼성화재 부회장, 삼성 라이온즈 2대 사장 |
대행 | 이대원 | 2000 | 당시 삼성항공 부회장 |
대행 | 2001 | 당시 삼성물산 회장 | |
2 | 2002 | ||
3 | 2003~2017 | 삼성생명 회장, 삼성 라이온즈 초대 사장 | |
4 | 임대기 | 2017~2020 | 전 제일기획 사장, 삼성 라이온즈 사장 겸직 |
5 | 2020~2023 | 전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사장) 겸직 | |
6 | 2023~현재 | 제일기획 사장,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사장) 겸직 |
10.4. 역대 사장(대표이사) [편집]
1985년까지는 단장이었다. 대표이사의 직급은 부사장 ~ 사장급이다. 임대기부터는 사장과 구단주 겸직.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1 | 1982~1983년 4월 26일 | 당시 제일제당 사장 | |
2 | 이종기 | 1983년 4월 27일~1988 | 당시 중앙일보 사장 |
3 | 편송언 | 1989~1990 | 前 제일기획 대표이사 전무 |
4 | 안덕기 | 1991 | 前 삼성의료기기 사장 |
5 | 1992~1994 | 前 삼성물산 전무 | |
6 | 이광진 | 1995~1996 | 前 삼성중공업 총괄전무 |
7 | 전수신[88] | 1997~1999 | 前 삼성물산 건설부문 부사장 |
8 | 한행수 | 2000~2000년 7월 9일 | 前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사장, 일신상 이유로 사임 |
9 | 신필렬 | 2000년 7월 10일~2004 | |
10 | 2005~2010 | 감독에서 승진, 최초 야구인 출신 야구단 사장 | |
11 | 2011~2015 | 前 삼성SDS 사장 | |
12 | 김동환 | 2016~2017 | 前 삼성웰스토리 대표이사 부사장 |
13 | 임대기 | 2018~2020 | |
14 | 2020~2023 | 前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 |
15 | 2023~현재 | 제일기획 사장 |
10.5. 역대 단장 [편집]
1983년까지는 이사와 부단장이 혼용됐고, 1985년까지는 부단장이었다. 단장의 직급은 상무보 ~ 상무 정도이다.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1 | 김동영 | 1982 | 前 동방생명 관리이사 |
2 | 김삼용[91] | 1983~1983년 4월 27일 | |
3 | 노진호 | 1983년 4월 27일~1983년 11월 | |
4 | 이달종 | 1984~1985 | 前 중앙일보 사업국장 |
5 | 윤경헌 | 1986~1989 | 前 중앙일보 문화센터국장 |
6 | 조복래 | 1990~1992 | 사무국장에서 승진 |
7 | 지용하 | 1993~1994 | 前 중앙개발 이사 |
8 | 김대훤[94] | 1995~1996 | 前 삼성물산 해외업무실 팀장 |
9 | 김종만[95] | 1997~1999 | 스카우트팀장에서 승진 |
10 | 2000~2010 | ||
11 | 2011~2014. 8. 16 | 부단장[97]에서 승진, 건강상 이유로 사임 | |
12 | 2014. 8. 16~2016 | ||
13 | 2017~2023 | 구단지원팀장에서 승진 | |
14 | 2024~ | 구단 역사상 최초의 프로야구 선수 출신[99] 단장 |
삼성 라이온즈는 퇴직 직전 전역대기 느낌으로 배치되는 구단주(사장)의 특성상 그 권한이 단장 선임 권한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100] 상당히 약한 편이며, 단장에게 구단 운영의 전권을 위임하는 운영을 해왔다. 대체로 삼성의 단장은 전통적으로 메이저리그의 구단주+GM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따라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팀의 운영을 논하면 보통 단장의 업무를 의미한다.
이종열 이전의 단장들은 거의 전원이 그룹 내 내부승진인사 출신이었으며, 비야구인 출신 전문 프런트였다. 거기다 대부분이 대구광역시 출신인 것은 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안현호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단장들은 논란은 있을지언정 평가가 긍정적인 편이다.
전반적으로 삼성스포츠가 운영이 좋지 않아지기 시작한 시기인 안현호 부임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안현호 이전 단장들은 대다수 평가가 좋았다. 가장 평가가 좋았던 단장은 김재하인데, 이 시기 삼성은 꾸준히 성적이 좋았으며, 지나친 FA 투자로 돈성이라는 오명을 샀으나 이 기간동안 성적 뿐만 아니라 육성까지 신경을 쓰며 2010년대 초 삼성 왕조 시기의 기틀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안현호 부임 이후인 안현호와 홍준학은 매우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101] 안현호는 단장 관련 업무에서 아무런 장점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으며 홍준학 역시 약팀에 오랫동안 재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리빌딩을 경시하며 5년 이상을 무의미하게 날려먹었다. 이 기간동안 삼성그룹 차원의 지원이 감소하였다는 참작사항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강팀을 장기적 약팀으로 전락시킨 데에는 이 둘의 무능함이 제일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현재까지도 이 둘은 삼성 라이온즈 팬덤에게 재평가 불가의 금지어 취급을 받고 있다.[102][103]
홍준학의 자진사퇴 이후 새로운 단장으로는 LG 트윈스 선수 출신으로 삼성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이종열이 부임하였다. 구단 역대 최초의 외부 수혈 단장이자 역대 최초의 KBO 리그 선수 출신 단장으로 부임 직후 팀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어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했던 전임 단장들인 안현호와 홍준학과는 달리 팬덤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10.6. 역대 감독 [편집]
삼성 라이온즈 No.70 | |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비고 |
1 | 1982~1983 | 69승 1무 40패 (0.633) | |
2 | 1983 | 31승 3무 36패 (0.462) | |
3 | 1984~1986 | 202승 2무 114패 (0.643) | |
4 | 1987~1988 | 120승 2무 94패 (0.560) | |
5 | 1989~1990 | 123승 7무 110패 (0.527) | |
6 | 1991~1992 | 137승 3무 112패 (0.550) | |
7 | 1993~1995 | 193승 13무 172패 (0.528) | |
8 | 1996~1997 | 120승 10무 120패[105](0.500) | |
9 | 1998~1999 | 139승 4무 115패 (0.547) | |
10 | 2000 | 69승 5무 59패[106](0.524) | |
11 | 2001~2004 | 312승 16무 204패 (0.604) | |
12 | 2005~2010 | 454승 13무 380패 (0.544) | |
13 | 2011~2016 | 465승 12무 333패 (0.583) | |
14 | 2017~2019 | 183승 10무 239패 (0.434) | |
15 | 2020~2022 | 178승 16무 188패 (0.486) | |
16 | 2023~ | 139승 3무 146패 (0.488) |
삼성 라이온즈가 99688 이전까지는 꾸준히 강호로 평가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송삼봉 시대까지 나름 괜찮았던 단장들의 평가와 달리 감독들의 평가는 예로부터 과반수가 좋지 않은 편이다. 김성근 이후의 감독들은 혹평받은 인물들이 호평받은 인물들보다 많다.[107] 물론 야구감독 자체가 좋은 소리 듣기 힘든 직업임은 사실이지만, 삼성은 독특하게도 성적을 매우 잘 내면서도 감독이 크게 혹평받고, 나아가 다른 팀 감독들에 비해서도 무능한데 그룹 지원빨, 프런트빨, 팀빨로 성적을 냈다는 소리를 들은 경우가 많다.[108] 물론 삼성의 성적이 99688 이전까지는 좋았을 뿐더러 99688 이전까지는 그냥 강한 팀으로, 99688시기부터는 못하지만 조용히 못해서 딱히 관심은 없는 팀으로 여겨졌기에 삼성 외 타 구단 팬덤은 삼성 감독이 혹평받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보통 팀 역대 최고의 감독을 꼽으라면 김응용과 류중일이 제일 많이 꼽힌다. 삼성 최전성기인 2002-2014시즌을 상징하는 감독일 뿐더러[109] 우승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아예 거의 모든 삼성 팬덤이 최고의 감독을 꼽으라 하면 무조건 이 둘부터 거론하며 다른 감독들은 아예 끼지도 못하는 수준. 이 둘 중에서도 굳이 꼽자면 김응용은 해태 시절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막은 적이 많기에 왕조 시절을 빛낸 류중일이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백인천과 김영덕이 삼성 감독들 중에서 평가가 좋은 편이고, 나머지 감독들의 평가는 나쁘다.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태업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평가받는 백인천이 삼성에서는 제대로 감독직을 수행했었다. 여기서도 백골퍼 소리는 들었고, 강기웅, 김성래, 이종두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타 팀으로 보낸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승엽을 발견한 것[110]과 김태균, 김한수, 신동주, 정경배, 최익성으로 단 한시즌만에 타선의 세대 교체를 한 것만으로도 그가 삼성에서 한 일은 대단하다.[111] 또한 백인천 감독 체제에서 주축 선수는 아니었지만 도중에 트레이드되어 꾸준히 백업 멤버의 선두로 활약했던 김종훈도 있었다.
이 멤버를 데리고 1997년 5월 초, 대구에서 정경배의 역사적인 연타석 만루 홈런을 포함해서 3일 동안 LG 트윈스를 상대로 17홈런을 때리며 49점을 내며 발라버리자 뜬금없이 제 3자인 김성근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이 KBO에 공식적으로 조사의뢰를 넣는 바람에 이른바 부정 배트 의심 사건을 겪기도 했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삼성 타선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엽도 이 시즌부터 홈런왕의 기질을 보였다.
다만 백인천 본인이 포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포수 육성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옥의 티.[112] 뇌출혈로 쓰러진 적도 있고 전병호의 뺨을 때린 사건도 있어 재계약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타자들을 키운 공 때문에 나중에 삼성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롯데에 가서는...
선동열 감독 체제에서, 숙원이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2회(2005, 2006)나 해내 '공공의 적'으로 불렸다. 단 공공의 적임에도 불구하고 욕 먹은 것은 주로 야구 외적인 일이었고[113] 더티 플레이나 빈볼 시비와 같은 야구 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 특유의 무리한 계투진 운용과 타선의 리빌딩 지연, 선수들의 줄 부상으로 2008 시즌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더군다나 원년부터 이어져 온 골수 삼성 팬들은 전통적인 강타자 중심의 팀 컬러에 대한 향수와 함께 삼성 프랜차이즈 강타자이자 당시 SK 와이번스 수석 코치로 있던 이만수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114]
선동열의 임기 6년 동안 삼성 팬덤의 단결력은 올드 팬 vs 2천년대부터 유입된 신규 팬, 연고지 팬 vs 타 지역 팬, 프랜차이즈 팬 vs 감독 팬 등의 대립으로 박살나다시피 했다. MLB 파크, 디씨 삼갤, 구단 공홈은 특정 세력이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하고 다른 의견은 키배 끝에 잠수타고 있는 것이 현실. 그리고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까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선동열을 옹호하는 팬들은 기아 팬으로 의심 받는 현상 있었다. 특히 팀이 아무리 잘해도 안나타 나다가, 선동열 감독만 비난받으면 갑자기 삼성 팬임을 주장하면서 글을 적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이유없는 의심도 아니었다. 선동열 감독이 물러난 이후 실제로 기아를 응원하는 팬들도 다수 있어서 완전히 틀린 추측도 아니었다고.
2009년 5위로 마감하면서 12년간 이어오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행진이 중단되면서 못해도 가을야구는 가던 삼성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고 2010 시즌 더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양준혁을 사실상 강제 은퇴시키면서 일부 팬들의 반감을 샀다. 추가적으로 일본에서 부진하던 이승엽이 삼성 복귀를 얘기했을 때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며 이를 거부함으로써[115] 삼성의 레전드들을 부정한 선 감독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악화되었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상대로 4전 전패로 참담하게 패배하면서 선동열에 우호적이었던 많은 삼성 팬들은 급격하게 선 감독의 안티 팬으로 돌아섰다. 게다가 2011년 류중일 신임 감독이 선동열과 전혀 다른 투수 운용으로 놀라운 성적을 내는 바람에[116] 선수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욱 대비되었고, 부임 후 정규시즌 5연패,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성적을 내며 삼성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류중일 감독의 도움으로 이승엽은 8년만에 고향 팀 삼성에 복귀하여 팀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기에 선동열 감독의 "와도 자리 없다" 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거기다 2014년에 선동열과 마찰을 일으켰던 임창용이 삼성에 다시 복귀하여 마무리를 맡아 불펜의 중심 축 역할을 하고 팀 통합 4연패의 주역이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많은 삼성 팬들에게 선동열은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한편 홍준학 단장 체제에서 부임한 김한수, 허삼영, 박진만 감독은 모두 평가가 좋지 않다. 이 시기는 성적도 좋지 않고 리빌딩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 다만, 이 세 감독 위에서 팀을 운영하던 홍준학이 리빌딩을 극단적으로 경시하는 성향임을 참작해야한다는 여론도 있으나, 저 세 감독이 무능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들은 각각 두산, kt, KIA 상대로 극도로 약한 면모를 보여주었다.[117] 이 팀들이 모두 삼성의 라이벌로 꼽히기에 체감은 더 안 좋았다.
그러나, 박진만 감독이 홍준학 단장 체제가 끝나고 이종열 체제에서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며 평가가 확연히 개선되었다. 2025 시즌에 부진하고 있기는 하나 역대급으로 힘들었던 시즌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경력이 어디 간 것은 아니고, 수비를 리빌딩한 공이 있기에 아주 최악의 평가를 받기는 어려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2025 시즌 최악의 문제점인 불펜진이 이 모양이 된 이유가 홍준학 단장과 정현욱 투수 코치로 대표되는 과거의 지도자 및 프런트의 육성 실패이므로 해당 측면에서만큼은 박진만 감독도 피해자라며 비교적 쉴드를 받고 있다.
10.7. 역대 주장 [편집]
10.8. 역대 선수 [편집]
10.9.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 [편집]
연도 | 이름 | 상대 |
1982 | 對MBC | |
1983 | 對해태 | |
1984 | 對삼미 | |
1985 | 對해태 | |
1986 | 對청보 | |
1987 | 김훈기 | 對해태 |
1988 | 전용권 | 對해태 |
1989 | 對롯데 | |
1990 | 對태평양 | |
1991 | 對롯데 | |
1992 | 對롯데 | |
1993 | 對쌍방울 | |
1994 | 對롯데 | |
1995 | 對LG | |
1996 | 對OB | |
1997 | 對현대 | |
1998 | 對롯데 | |
1999 | 對한화 | |
2000 | 對SK | |
2001 | 對한화 | |
2002 | 對LG | |
2003 | 對두산 | |
2004 | 對롯데 | |
2005 | 對롯데 | |
2006 | 對롯데 | |
2007 | 對두산 | |
2008 | 對KIA | |
2009 | 對LG | |
2010 | 對LG | |
2011 | 對KIA | |
2012 | 對LG | |
2013 | 對두산 | |
2014 | 對KIA | |
2015 | 對SK | |
2016 | 對두산 | |
2017 | 對KIA | |
2018 | 對두산 | |
2019 | 對NC | |
2020 | 對NC | |
2021 | 對키움 | |
2022 | 對KT | |
2023 | 對NC | |
2024 | 對KT | |
2025 | 對키움 |
10.10. 역대 선수단 및 등번호 [편집]
10.11. 은퇴식 [편집]
11. 역대 기록 [편집]
12. 지역 연고 학교 [편집]
대구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구단으로서, 지역 내에 3개의 고등학교 야구부가 있다.
과거 1차지명이 있던 시절에는 강원도 영동 지역[119]의 강릉고등학교, 설악고등학교까지 삼성이 우선 지명권을 가진 적이 있었다. 다만 두 학교는 지역 초등학교, 중학교 팜이 열악해 대부분 타 지역(주로 수도권)에서 진학 또는 전학한 선수들이 주축이라 사실상 큰 의미가 없었다.[120]
참고로, 과거에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연고 대상 학교였으나 폐부된 학교들은 다음과 같다.
참고로, 과거에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연고 대상 학교였으나 폐부된 학교들은 다음과 같다.
- 경주상업고등학교 : 1983년 창설, 1985년에 해체되었으며, 지명 대상이긴 했지만 해당 야구부에서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 영남고등학교 : 1968년 창설, 1974년 해체되었다. 실업 야구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은 있었으나, 삼성 창단 시에는 아무도 창단 멤버로 지목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 2013년 마이스터고로 전환되면서 같은 재단의 자사고인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야구부가 이관되었다. 포철공고의 역사는 포철고에 이관되어 있으므로, 위의 해당 문서 참조.
13. 사건 사고 [편집]
14. 여담 [편집]
- 타자와 포수가 쓰는 헬멧에는 양 옆에 삼성전자가 출시한 플래그십 스마트폰 이름이 새겨져있다.
-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1985년 한국시리즈를 무산시켰다.
- 최초의 한국시리즈, 최초의 플레이오프, 최초의 준플레이오프를 모두 경험한 팀이다. 최초의 한국시리즈와 플레이오프 상대 팀은 모두 OB 베어스였으며, 최초의 준플레이오프 상대 팀은 태평양 돌핀스이다. 최초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그 해 페넌트레이스 성적이 너무 좋아서 경험하지 못했다.
- 삼성에서는 개념이었던 감독이 타 팀에 가서는 역대급 막장이 되거나, 그 반대로 딴 팀에서는 명장인데 삼성에서는 도무지 적응 못하고 말아먹는 사례가 종종 보인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백인천. 김응용도 한화에 가서는 막장 운영을 보여주며 커리어의 마지막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류중일 감독도 LG 감독이 되고 나서부터는 이 대열에 합류 중이었다가 2019 시즌에 살아났다. 또 21세기 들어 SK 감독 시절에 한해 김성근은 삼성에서는 흑역사급 추태만 보여준 희한한 경우이긴 한데, 삼성 감독 시절 이전에도 투수 혹사로 악명 높은 감독이었으니 예외가 있다면 정동진 감독인데, 1994년 태평양 돌핀스를 한국시리즈까지 올렸다.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 시절 때와 마찬가지로 LG한테 4대0으로 깨지기는 했지만.
- 소속 선수가 한국프로야구에 남을 대기록을 세우면 팀이 지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프로야구 1호 홈런, 1호 타점은 1호 패전과 같이 나와버린 건 유명하고, 아시아 리그 신기록으로 인해[122] 허용투수 딱지가 박힌 그 분도 그 경기 승리투수이다. 단, 예외적으로 양준혁이 2000안타를 기록했을 때에는 팀이 이겼다.(6대1로 승리, 상대는 두산 베어스) 물론, 기록의 성립 조건 중 하나가 팀의 승리일 때도 예외이다. 권영호의 프로 통산 첫 100세이브, 김시진과 이상목의 개인 통산 100승 등, 공교롭게도 100승을 올린 두 명의 등번호가 모두 29번이다.
- KBO 역사상 두 번밖에 없는 디펜딩 챔피언을 2위로 내리고 우승한 전년 2위팀이다. 1984년 롯데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준 이듬해 롯데를 2위로 내린 것도 모자라 한국시리즈 행 사다리를 걷어찼으며, 2010년에는 SK에게 한국시리즈에서 0-4로 압살당했지만 다음해 한국시리즈에서 꺾고 우승했다.
-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사용된 그림판 마스코트는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잘 나온 디자인이다. 물론 여러 스포츠에서 우려먹긴 했지만(농구, 배드민턴, 럭비단, 배구단). 2008년부터 팀 로고와 색상이 바뀌었어도 디자인은 그대로인 듯. 가히 본좌급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캐릭터 디자인은 비슷하나 전기형(1995년~2007년)은 원정 유니폼 색과 같은 파란색, 후기형(2008년~2015년)은 짙은 하늘색이다. 전기형 마스코트는 2002년, 2005년~2006년, 후기형 마스코트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 1995년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5회와 6회의 대량 득점으로 역전했다가 재역전패를 거둔 바 있다. 그 당시 7회에 11점이나 실점했는데, 이닝 점수를 두 자리로 찍을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11 대신 B라는 글자가 찍혔었다. 2008 시즌에도 SK 와이번스한테 0-18로 처참하게 패배했는데, 8회에 11점을 실점하는 바람에 전광판에 B가 찍히는 진풍경을 13년만에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삼성 라이온즈는 B성 라이온즈라는 별명을 얻었다.[123] 2013년 6월 6일에는 이닝별 점수는 아니고 총 사사구 수 11개를 기록하며[124] 또 전광판에 B를 띄웠다. 최신식 전광판이 있는 라팍으로 홈구장을 옮긴 2016 시즌부터는 이 광경을 볼 수 있다! 3루측 띠전광판이 예전 시민구장 방식을 따르는지라 유일하게 점수판에 알파벳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왕조시절의 선수들이 전부 개그 본능이 충만하다. 대표적인 개그맨 박석민을 시작으로 채태인, 정인욱, 안지만, 진갑용 등 거의 모든 선수들이 입담이 좋고 성격이 밝다. 외모에서도 날카롭거나 잘생긴 선수들은 딱히 없고 개구장이 같이 정감가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는 외국인 투수들과 외부 영입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덕분에(?) 당시 8개 구단 팀들 중 가장 팀 분위기와 팀워크가 좋았던 팀들 중 하나로 뽑힌다. 이 때문에 생긴 별명이 개그 라이온즈. 현재는 오히려 준수한 외모를 가진 선수들이 많다.
- 개그 라이온즈라는 별명에 걸맞게 마스코트인 사돌이와 사순이(블레오)의 엽기 행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선수들의 외모가 역변하는 것을 삼적화라고 한다. 해당 문서 참조.
- 2008년 7월 19일 토요일, 삼성은 1985년 통합 우승 기념 올드 유니폼을 입었는데 초반에는 한화가 2-1로 승기를 잡을 듯했으나 실책과 투수의 폭투로 인해 2-2 동점, 박한이의 역전타로 4-3으로 승리했다. 올드 유니폼은 의외로 예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후로 올드 유니폼 데이를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미스터리.[125] 왜 안 하는가 의문이 들겠지만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하지 않아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한 2008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9년, 2020년, 2022년, 2023년 다 끝이 좋지 않았다. 특히 라팍으로 옮긴 이후인 2016년부터는 8위 이하의 성적으로 끝내서 올니폼에 혐오감을 느끼는 팬마저 많아졌다. 야구계의 저주들에서 올드 유니폼의 저주 참고.
- 오래된 특징으로 유독 외국인 투수와 신인 투수에게 약하다. 외국인 투수에게 약했던 역사는 꽤 오래되어서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부터 내내 약했으며[126] 소위 말하는 먹튀급 선수를 제외하고는 삼성 상대로 성적이 안 좋았던 투수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 거기에 어느 순간부터 신인이나 1군 등판 경력이 거의 없어 처음 만나는 투수들에게도 약점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이승우, 강철민, 송창식, 유희관 등. 특히 강철민은 사이버 투수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며 송창식도 버거씨병 이후 복귀해서 첫 승리를 삼성에게 따냈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좀 심각한 수준. 하지만 두 번째로 만나면 얄짤없다. 그래서 감독들이 삼성 상대 첫 경기를 치른 투수들을 다시 올리면서 "저번에 잘 던졌으니 삼나쌩이겠지"라며 방심하다가 역관광당하는 사례도 많다.[127] 팬들 중에서는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같은 에이스 투수에게도 물론 약하다면서 종특으로 꼽는 사람도 있는데 [128] 그리고 애초에 잘하니까 에이스인 것이고 특정팀에 유독 털리면 에이스 소리 못 듣는다. 류현진이 특정팀에 특별히 약했던가? 다시 말해 에이스니까 강한 거지 삼성이라서 에이스가 이긴 게 아니란 소리.
- 한때 응원단이 최대 약점이라 불렸던 적이 있다. 배영수와 입단동기인 치어리더 노숙희가 2013년까지 활동했을 정도로[129] 구단에서는 치어리더 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 90년대 후반에는 박채경과 김순희라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치어리더도 있었으나 몇 년 후, 한 명은 결혼을, 한 명은 유학을 떠나며 치어리더에서 은퇴하게 된다.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 LG 트윈스 → SK 와이번스의 강윤이, NC 다이노스의 김연정, 심지어 넥센 배트걸 민수진과 롯데 배트걸 신소정도 전국적으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삼성 치어리더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한 때 삼성 치어리더는 SSAT 성적순[130]으로 뽑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이수진을 비롯한 새로운 치어리더들의 등장으로 삼성팬들은 드디어 잔혹사가 끝났다며 기뻐하고 있다. 또한 응원가는 김용일이 응원단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스포츠쟈키라는 직함을 스스로 만들어 여전히 현 응원단장 옆에서 활동하며 희망이 보이질 않고 있다...가 2016년 시즌 종료 후 그만두었다.[131] 1990년대까지는 김한수 등의 괜찮은 응원가도 있었으나, 응원단장 김용일의 장기집권으로 흑역사가 되었다. 팀 응원가에 대해서는 다른 구단에 비해서도 괜찮다는 평이 있으나, 선수 응원가가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정도로 충격과 공포의 수준이다. 그나마 2013 시즌에 모든 선수 응원가가 재녹음되면서 채태인, 최형우 등 일부 선수 응원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KBO 전체 수준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진다는 평이 다수다.
- 대구 지역을 연고로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독 여름에 승률이 좋다. 다른팀은 퍼질 때 "대구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라는 듯 선수들이 체력 저하 없이 멀쩡하게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오죽하면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다 죽었다"는 구단 관계자의 농담까지 나올 정도이며 이를 빗대서 봄데, 여름성, 가을슼, 겨울쥐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법칙은 2013년 들어 깨지나 싶었으나, 개막 한 달동안 단 3승밖에 못 거두며 최하위를 맴돌았던 2017 시즌 여름 6월 월간 승률 5할을 찍고 분위기 전환에 성공하며 뜬금없이 부활했다.
- 다른 팀 선수들 프로필 사진은 홈 유니폼을 입고 찍으나[132], 라이온즈만 원정 유니폼을 입고 찍는다. 파란색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 2018년 전반기 기준 유일하게 모기업 외 유니폼 스폰서가 없는 프로야구단, 아니 프로스포츠단이었다. 다른 팀은 유니폼만이라도 비 모기업 제품을 쓰지만 삼성 라이온즈만 광고 패치는 물론이고, 유니폼과 모자 및 의류 제작사까지 삼성 계열사 것이다. 다른 삼성스포츠단의 경우에는 과거에 자사 용품사(라피도)를 쓰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 사라졌고,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이후에는 외부 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또한 2020 시즌부터 유니폼 제작사가 벡스에서 언더아머로 바뀌면서 이 특이성은 사라지게 되었다.
- 올드 멤버 중에서 유독 대구 지역 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출신이 많다.[133] 이에 해당하는 선수들로는 류중일(경북고-한양대), 장효조(대구상고-한양대), 이만수(대구상고-한양대), 김성래(대구상고-한양대), 김용국(대구상고-한양대), 김현욱(경북고-한양대), 성준(경북고-한양대), 오대석(대구상고-한양대) 등이 있다. 한편 이승엽도 경북고 졸업이후 한양대 진학을 고려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담으로 현재는 대다수가 고교 졸업이후 바로 프로에 입단하는 경우가 많아 지면서 스쿼드에서 대구 지역 고교 - 한양대 출신의 선수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최채흥(상원고-한양대)이 등장하여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박해민이 한양대 출신[134] 선수로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2021시즌 종료 이후 FA로 LG 트윈스에 이적했다.
- 상대적으로 2루수가 취약한 포지션이다. 김성래, 강기웅을 제외하면 그나마 정경배, 신명철이 돋보였으나 유리몸 조동찬이나 백업 수준의 김재걸, 박정환같은 그저그런 선수들도 2루수였다. 공수겸장인 야마이코 나바로가 삼성 통합우승 시절 드디어 이 자리를 매웠으나 그마저 떠나고 난 이후는 뭐...... 2019년 스프링캠프에서는 이학주와 김상수가 번갈아 유격수-2루수를 보고 있었고 결국 김상수가 그 해부터 2루수로 낙점되었다. 그래도 김상수가 2019년 약간의 반등 후 2020년 리그 상위권 2루수가 되나 싶었지만 2021년 공격력에서 망하면서 아직 최상급 2루수 배출은 숙제로 남게 되었다.
- 한 때 개념 운영으로 칭송받던 팀이었으나 라팍으로 옮긴 후 막장운영으로 비판받고 있다. 합리화를 외치며 선수들을 안 잡아 전력이 급락했고[138], 한정판 물품 무한 재판매로 크게 비판을 받기도 했고, 성적 나쁘다는 핑계로 팬 행사를 안 하기도 했으며, 선동 금지라는 핑계로 현수막을 제지하기도 했다. 점차 나아지는가 싶더니 2018년 스페셜 유니폼 데이를 취소하는 등 아직 막장기가 남아 있다.
- 창립 멤버 구단들 가운데 KBO 한국시리즈 우승이 가장 늦다. OB 베어스가 전신인 두산 베어스가 리그 원년인 1982년도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고[140] 삼성과 더불어 '진골' 창단 멤버인 롯데 자이언츠가 1984년 첫 우승을 이뤄냈으며[141], 해태 타이거즈가 전신인 KIA 타이거즈도 1983년 첫 우승을 달성한 반면, 라이온즈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은 무려 2002년, 그러니까 21세기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셈이다. 구단의 첫 우승이 1985년이지만[142] 이 당시엔 전, 후기리그 통합우승이었던 관계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진짜 우승으로 간주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143]. 넓게 적용해 MBC 청룡이 전신인 LG 트윈스까지 창립 멤버로 쳐준다면 트윈스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 1990년이므로 제일 늦은 것이다. 심지어 1986년 대전에서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한 두산(당시 OB)의 공백을 메우고자 충청권을 연고로 창단된 한화 이글스(창단 당시에는 빙그레 이글스) 조차도 삼성보다 3년 먼저인 1999년, 창단 13년만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뤘다.
- 2006년 한국시리즈를 제외하고 항상 3루 더그아웃에서 뛰어나와 우승 순간을 만끽했다. 1루에서 우승했다고 뛰어나오는 일은 광주에서 KIA 타이거즈를 꺾고 우승하지 않는 이상 볼 일이 없다.[145]
- 21세기 들어서 對삼성 경기 이후 상대팀 감독의 경질 또는 사퇴 소식이 잦아지면서[예시] 다른 의미로 감독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
- 팀의 레전드급 선수들 대부분의 말로가 별로 좋지 않다. 그나마 현재까지 처지가 양호한 사람은 양준혁[150]이나 류중일,[151] 권오준 정도밖에 없고, 그 외의 인물들은 팀과 마찰을 빚어 말년 커리어가 꼬였거나, 이전의 언행 등이 문제가 돼 은퇴 전후로 여론이 나빠지는 등 커리어 끝을 좋게 맺은 경우가 별로 없다. 삼성의 원조 에이스 김시진과 타격의 달인 장효조는 선수협 파동으로 구단 눈 밖에 나버려 롯데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한 뒤 그곳에서 쓸쓸하게 유니폼을 벗었으며, 당대 최고의 포수 이만수 역시 말년에 본인의 대우 때문에 구단과 마찰을 빚고 결국 은퇴식 하나 없이 쫒겨나듯 방출당한 뒤 그라운드를 떠났다. 심지어 은퇴 후에도 자비를 들여 코치 연수를 가야 했고, 어찌어찌 영구 결번은 됐으나 이마저도 은퇴한 지 몇 년이 지난 2003년에야 이뤄졌다. 심지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코칭스태프로 일하던 중 삼성의 코치 제의를 받아들이고 귀국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삼성 측에서 코치 제의를 없던 일로 해버리는 해프닝까지 있었다.[152] 삼성 왕조의 배터리를 책임졌던 진갑용의 도핑 전력과 안지만의 원정 도박 의혹 및 불법 인터넷 도박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구단 역대 최고의 3루수로 평가받는 김한수는... 감독 시절의 처참한 팀 성적으로 이제는 오히려 삼성빠들의 금지어가 돼 버렸다. 한때 간첩도 안다는 말까지 있었던 국민타자 이승엽은 KBO 리그 최초로 은퇴 투어를 갖고 본인의 은퇴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쳐내는 등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선수 커리어를 마무리했지만, 현역 시절 본인의 희소성 발언 때문에 은퇴 이후 한때는 호날두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여론이 나빴으며[153], 또 불혹에 가까워지는 나이에도 삼성의 선발진을 지탱해준 황태자 윤성환과 차기 영구 결번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끝판대장 오승환 역시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여론이 안 좋은 상태다. 결국 윤성환은 또다시 원정 도박 스캔들로 방출되었고 추후 승부조작 사실까지 드러나고 말았다. 비록 팀을 떠났지만 삼성팬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던 박석민마저 2021년 NC 다이노스 원정숙소 방역수칙 위반 사건으로 그간의 이미지에 큰 흠집을 내고 만 상황. 하지만 이중에서도 정말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사례는 바로 박한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의 8번의 우승 중 무려 7번을 함께하며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리던 그였으나, 딸의 등교를 위해 차를 몰다 접촉사고를 낸 것이 그만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음주운전으로 걸리고 말면서 영구 결번은커녕 은퇴식도 못 치르고 불명에 은퇴하면서 팀의 레전드로서는 최악의 결말을 내고 말았다.
- KBO 리그 구단 중 유일하게 연고지 지방자치단체가 구단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초대 라이온즈 구단주였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보유하던 지분 2.5%(5000주)가 이 회장 별세 후 유산 상속 과정에서 대구광역시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것은 삼성 측이 대구시에 무상 기부한 것이다. 유족 중 장남이자 열혈 삼빠 중 한 명인 이재용 부회장이 구단 지분을 받지 않고 대구시에 넘긴 것은 "대구가 삼성의 발상지였고 대구시민의 사랑 덕분에 라이온즈가 명문 구단이 될 수 있었던 만큼 지역 사회에 이를 넘기는 것이 맞다"는 이 회장의 뜻을 유족이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신인선수들 같은 경우 입단 후 무조건 일정기간[156]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에서 숙소생활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 동안 1군 출전 시, 구단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된다.
- KBO 원년 때부터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작은 축에 들어가는 팀이었다. 이만수, 장효조, 김시진 등이 활약했던 1980년대부터 팀의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다른 팀들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현재도 김상수나 김헌곤 같은 다소 작은 체구의 선수들이 포진되었고 김지찬, 김성윤 같은 160대 초반 선수가 있어서 평균 신장으로는 여전히 작은 축에 들어간다. 공교롭게도 삼성 뿐만 아니라 연고 지역인 대구도 대한민국 지역 중에서는 평균 신장이 최하위권에 있는 지역이다. 물론 평균 신장이 큰 수도권과 최대 1~2cm 정도 차이라서 크게 의미는 없다.
- 의외로 야구의 인기가 저조한 국가인 중국에서도 삼성이라는 이름값 덕분에 인지도가 좀 있는 KBO 구단이기도 하다.
- 프로야구 지방을 연고로 하는 원년팀 가운데 유일하게 외국인 감독을 뽑지 않은 구단이다.
- 현재까지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 kt wiz와 더불어 팀 창설일부터 지금까지 구단명이 바뀌지 않은 팀이다. 또한 최근에 두산 베어스가 하계 원정 유니폼으로 회색 유니폼을 내놓으면서 신생팀 축에 속하는 NC와 kt를 제외한 기존 8개 구단 중 2023년 현재 한 번도 회색 유니폼을 출시 및 착용해본 적이 없는 유일한 팀이 됐다.[157]
- 2025년 기준 1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응원단장이 장내 아나운서를 겸임하고 있다.
- 최근 '내향인 라이온즈', 'LIONS'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유독 내향적인 선수들이 많은 팀이 되었다. 2025년 기준으로 김영웅, 이재현, 이성규, 백정현, 박병호 등이 낯 가리기로 유명하며 1군급 선수 중에서 외향적인 선수는 강민호, 구자욱, 류지혁 정도밖에 없다.
15.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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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년부터 삼성 내의 프로 스포츠단을 인수하기 시작해 2016년 1월 1일부로 삼성 라이온즈도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되었다.[2] 대구 사무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내.[3] 서울 사무실, 삼성화재 역삼빌딩 20층.[4] 2025시즌 홈 최종전 영구결번식 진행 예정[5] 24,000석 규모이며, 최대 29,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6] 삼성물산 산하에 패션 브랜드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좀 의외일 수도 있다. 실제로 빈폴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스폰서를 했지만 2019년부터 물러났고, 2021년 2월을 끝으로 스포츠웨어 사업을 접어서 스폰서를 할 수 없다.[A] 7.1 7.2 1985 시즌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 (KBO 공식 기록 명칭은 '전·후기 통합 우승')[9] 단일 리그 기준.[10] 전기, 후기 리그[11] 전기, 후기 리그.[12] KBO 역대 최다 연승 2위[13] 정규 시즌 기준. 경기당 평균 18,452명.[14] 정규 시즌 기준. 경기당 평균 3,292명.[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무관중 경기들은 예외.[16] 연봉 총액 90억 원, 옵션 30억 원.[17] 2015년까지는 삼성 라이온즈도 삼성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였고 최대주주는 삼성전자였으나, 2016년 1월 1일부로 제일기획 산하로 이관됐다. 다만 제일기획은 구단 운영만 전담하고, 구단 운영비는 여전히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그룹의 여러 계열사들이 나누어 부담하고 있다. 또한 창업주인 이병철 초대 회장의 뜻에 따라 범삼성가인 CJ제일제당(15%), 신세계(14.5%)도 구단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건희 전 회장이 보유했던 지분(2.5%)은 2020년 사망 이후 대구광역시에 모두 기부됐다.[18] 이는 삼성과 롯데의 맞대결이 '클래식 씨리즈'로 불리는 이유다.[19] 1986~1989 해태 타이거즈(現 KIA 타이거즈)와 동률.[20] 단일 리그 기준. 전·후기 리그, 양대 리그 기록까지 포함하면 17회인데 이 역시 리그 최다.[21] 또한 KBO 리그의 유일한 우승구단이기도 하다.[22] 1982년 창단 당시 삼성전자의 로고가 빨간색이었기에 삼성 라이온즈도 한동안 빨간색 위주의 유니폼을 입었었고, 1984년부터 1994년까지 보조 색으로 사용된 노란색은 이건희 전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이후 빨간색은 2016년 유니폼 디자인 변경과 함께 보조 색으로 부활했지만, 공교롭게도 암흑기와 맞물려 지속적인 혹평을 받은 끝에 2024년 개막을 앞두고 사라졌다.[23] 일본프로야구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마스코트이기도 하다.[24] 정용진의 이마트가 아니라, 정유경의 신세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같은 신세계그룹이지만 별도의 법인이다.[25] 이건희 사후 대구광역시에 기부.[26] 팬 보유 1주 포함.[27] 야구단이 독립법인화 된 후 축구단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도 법인회사로 전환했으며 그 외 다른 스포츠단들은 전부 모기업의 부서로 포함된다.[28] 같은 그룹 내에 있지만 두 회사의 최대 주주도 다르다. 이마트는 이명희의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는 장녀인 정유경이 최대 주주다.[29]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선례가 있는데 2001년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여 KIA 타이거즈를 출범시켰을 때 같은 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가 현대 유니콘스 지분을 보유했다.[30] 아무리 야구단이 적자를 본다고 해도 지분 64.5%를 6억 7천만 원, 주당 5,360원으로 시장에 내놨다면 아파트를 팔고 빚을 내서라도 살 국민들이 넘쳐날 것이다. 계열사 간의 거래였기에 가능했던 일.[31] 올해로 17년째 사용되고 있으며, 2011~2015년의 전성기(5연속 정규시즌 우승, 4연속 KS 우승)와 2016~2023년의 암흑기(99688378)를 모두 거쳐온 영욕의 엠블럼이다. 현 시점에서 삼성 구단 역사상 최장수 엠블럼일 뿐만 아니라 KBO 리그 최장수 엠블럼이다. 한화 이글스가 2007년부터 사용해오던 엠블럼을 2025년부로 교체하면서 KBO 리그 최장수 엠블럼으로 등극했고, 현재로서 삼성은 리그에서 유일하게 2000년대에 제작한 엠블럼을 사용하고 있는 구단이다. 의외로 이 부문 2위는 구단 역사가 가장 짧은 kt wiz(2013~)로, 종전 2위는 두산 베어스(2010~2024)였지만 여기도 한화처럼 2025년부로 엠블럼을 교체했다.[32] 갤럭시 S25 울트라(좌)|갤럭시 S25 시리즈(우)->갤럭시 S25 엣지->갤럭시 Z 폴드7|Z 플립7 통합 로고[33] 현재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전시관과 사회인야구장으로 활용된다. 바로 옆에 대구 FC의 홈구장 대구iM뱅크파크가 있다.[34] 롯데 자이언츠의 제2구장인 울산 문수 야구장은 2014년에 지어졌지만 제1구장인 사직 야구장이 1986년에 개장했다. 아울러 한화 이글스는 제1구장인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는 2025년에 완공된 KBO 리그 구장 중 가장 최신 구장이지만 제2구장인 청주 야구장이 1979년에 개장했다.[35] 당시 야구 국가대표의 70% 이상이 대구·경북 출신이었다.[36] 대구·경북 지역 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을 실패해서 타 지역 고교에 간 일이 비일비재했을 정도.[37] 2005~08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38] 수치는 반올림된 값으로 작성하며 '야구 팬' 중 선호도가 아니라 '전체 응답자' 중 선호도임에 유의.[39] 다만 2000년대 중반에는 한국 대표팀의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에서 비롯된 축구 열기와 인기 구단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의 암흑기가 겹치면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전반적으로 저조했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추세는 한국 대표팀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과 KIA의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8~12년 롯데의 로이스터 매직 등에 힘입어 2000년대 말부터 상승세로 반전된다.[40] 하지만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2021 올스타전은 취소되었다.[41] 조사 이래 삼성이 기록한 선호도 및 선호도 순위 중 가장 낮은 결과다. 이것은 전년도에 있었던 팀 역사상 최악으로 언급되는 시즌의 영향이 있다.[42] 이런 분위기는 2010년대 후반 암흑기를 보내면서 어느 정도 자정이 이루어졌다.[43]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만 왕조 시절까지는 리그에서 가장 여성팬 비중이 낮은 구단이었다. 그래서 삼성 관중측을 비추면 비교적 시꺼먼 남정네가 득시글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관중수입의 절대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왕조시절에는 아재팬들로만으로도 충분히 경기장을 쉽게 채웠다.[44] 사실 구단이 일부러 이러한 팬들 확보를 위해 뛰어든 것이 아니라 직관을 가지 않는 이상 TV중계로만 야구를 접하던 시대에서 점차 핸드폰이나 SNS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45] 구자욱이 야수 중에 고참급이지만 93년생으로 젊은 편이다.[46] 심지어 마케팅 팀장의 팬 무시 등으로 프런트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그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사실 이 사건도 팀 성적이 개판이라서 일어난 거다. 왕조시절 성적이었으면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재팬들은 성적이 장땡이기 때문이다.[47] 다만 이는 시민야구장과 라이온즈파크의 수용 인원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48] 당장 2018~2021 시즌 팀 슬로건도 "NEW LIONS!"이다.[49] 오죽하면 7월에 와서는 심각한 부진이 연이어 계속되자 트럭 시위까지 열렸을 정도였다. 사실 이는 부진한 성적을 규탄하는 성격도 있었지만 특정 선수를 고집스럽게 기용하는 감독에 대한 항의성이 더 짙었다.[50] 1,2위는 각각 SSG,LG로 순위와 일치한다.[51] 이들 중에는 도박 사건, 우승 실패라는 대형 악재가 겹친 2015년부터 야구를 멀리하고 있다가 팀이 2021년에 반등하자 다시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렇게 돌아온 바로 다음 시즌에 팀이 다시 침체에 빠졌으니 좋게 볼 리가 없다.[52] 정작 홍준학 단장은 팬들을 보는 시선이나 운영에서 문제가 있을 뿐이지 티켓값을 유지시키고 포퓰리즘적인 운영을 하는 등 라이트 팬덤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53] 물론 스케치북 검열이라는 병크가 있었으나 굿즈 판매나 굴비즈 마케팅은 잘했다.[54] 선수 개인 인스타그램에 가보면 삼성 유니폼을 입고 대구시민구장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다.[55] 본인의 페이스북에 푸른색 원정 김상수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올리면서 "김상수 유니폼 개시가 새 컬링 유니폼 개시 순간보다 더 설렌다"고(...) 삼밍아웃을 해버렸다.[56] 이후 이승엽의 은퇴식에서도 사회를 맡았었다.[57] 그런데 2017년 9월 5일 한화 이글스의 홈경기에 초청되어 신진식 감독이 시구를 맡았고 박철우 선수가 시타를 맡았는데, 신진식 감독은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던 반면 박철우 선수는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다. 소속팀 삼성화재가 대전 연고팀인 만큼 대전 연고팀끼리의 유대관계 강화를 위해 이뤄진 시구라서 그랬다. 영상[58] 現 대구광역시 군위군[59] 애초에 김상수도 친정팀 삼성에 대한 애정을 지금도 숨기지 않고 있다.[60] 딸 유담도 삼성팬이다.[61] 평소에는 빨간 하트를 남발하지만 원태인의 인스타그램에서만큼은 파란색 하트를 쓴다.[62] 삼성은 그 날 연장전 패라는 혈압오르는 경기력을 보였다. 덤으로 그담날과 다다음날 시구는 올림픽 출전한 TK출신인 원래 시구자들이 각각 스케줄과 경북대학교병원 입원 때문에 나가리행.[63] 다만 성범죄 누명으로 중국 귀화를 하였고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기에 이를 감안할 필요는 있다.[64] #[65] 사실 원래 지역구는 옆 지역구인 수성구 을인데 21대 총선 때 옆 지역구인 수성구 갑으로 옮겨 당선되었다.[66] 해당 영상 대댓글에서 확인#[67] 상술된 내용처럼 이 무렵부터 성적과 상관 없이 야구 경기를 즐기는 팬들이 늘어난 것도 한 몫을 했다.[68]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 시절 이학주의 응원가와 일명 '짭도라도'로 불린 팀 응원가 '승리를 위해'.[69] 2000년대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의 대들보였던 노숙희 놀레벤트 팀장, 2010년대 쌍두마차로 이연주 전 치어리더도 대구 출신이었으며 전 팀장이었던 이수진 치어리더는 구미시 출신아옸더.[70] 대구, 경북지역 행사에도 놀레벤트 소속 치어리더들이 많이 참여한다.[71] TK 출신 치어리더들이 타팀으로 이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2016~17년에 블루팅커스로 활동하던 서유림 치어리더가 한화로, 2018~19년에 활동하던 박현영 치어리더가 SSG로 이적한 사례가 있다.[72] KIA는 일부 극성 삼성 팬이 김영웅을 김도영에 어느 정도 비교하다가 성적 차이가 심각하게 벌어지며 원래 지역감정으로 사이가 나빴는데 더 안 좋아졌다.[73] 구자욱 사구 사건 이후 롯데에 대한 인식이 다소 험악해지기는 했으며, 이후 박건우도 사구로 이탈하자 삼성 팬덤 역시 분노한 NC 팬덤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74] KIA 입장에서도 보통 삼성을 최고 라이벌로 자주 꼽는 편이다. 단 롯데는 NC가 가장 압도적 라이벌 구단이며, 삼성은 KIA와 함께 그 뒤로 꼽힌다. 두산은 LG 트윈스나 SSG 랜더스가 더 확실한 라이벌전이다. 보통 두산에 있어서 지방 구단 중 대표적 라이벌리가 싸대기 매치이다.[75] KIA:1986, 1987, 1993, 2024년 한국시리즈. 두산: 1982, 2001, 2015년 한국시리즈, 2021년 플레이오프. 롯데: 1984년 한국시리즈, 1999년 플레이오프. 현대: 2004년 한국시리즈. kt: 2021년 정규시즌 1위 결정전.[76] kt가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지만 상대전적은 삼성이 압도우위이다. 작년에는 삼성이 kt에게 압도적으로 썰린 것과는 정반대. 그런데 kt가 타이브레이크에서 쿠에바스의 호투로 삼성을 이기더니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썰어버리며 우승에 성공했다.[77] 최원태는 윈나우 트레이드로 2023년 하반기부터 LG에서 뛰었는데, 비록 LG는 2023년 우승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최원태 자신은 기대 대비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포스트시즌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드러내며 LG 팬덤에게 크게 욕을 먹었고, 결국 2024시즌 종료 후 FA를 신청했으나 삼성과 계약하기 전까지의 한동안은 FA 미아 위기였다.[78] 결국 최원태가 팀을 옮긴 뒤에도 LG 팬덤에서는 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으며, 특히 상대 선발로 최원태가 등판하는 날에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삼성 팬덤에서도 LG 팬덤의 이러한 행동을 좋지 않게 보며, 결국 서로간의 신경전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79] K리그1에 존재하는 현대가 더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전북 현대 모터스의 모그룹 현대자동차그룹과 울산 HD FC의 모그룹 HD현대(舊 현대중공업그룹), 삼성 라이온즈의 모그룹 삼성그룹과 SSG 랜더스의 모그룹 신세계그룹은 엄연히 다른 기업이지만 나란히 창업자가 똑같고 현재도 기업 총수 간의 친인척 관계(정의선-정몽준, 이재용-정용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80] 삼성 팬들이 원정을 갈 때면 창원 NC 파크의 네이비색 인테리어, 삼성 원정 팬들의 파란색 물결, NC 홈팬들의 하늘색 물결이 어우러져 꽤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비인기팀인 NC 팬덤은 관중을 몰고오는 삼성 팬덤에 감사해하고 있다.[81] 반면 롯데와는 NC와 같이 KBO의 대표적인 앙숙관계로 진정한 더비 매치의 격렬한 양상을 보인다.[82] 구단과 좋은 모양새로 헤어지지 못하고 방출된지라 은퇴식은 치르진 않았다.[83] 은퇴 시점 통산 9개 부문 1위.[84] 박한이가 숙취운전으로 인해 불명예 은퇴를 해서 영구결번이 되진 못했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33번을 결번처리해두고 스토어에서도 영구결번과 똑같은 취급을 하는등, 실질적인 비공식 영구결번이라고 봐야한다.[85] 2025년 기준으로 지금도 현역이다.[86] 구단주 취임 당시는 삼성그룹 부회장이었고 1987년 아버지 이병철의 사망 이후 회장이 된다.[87] 이병철의 넷째 사위이며 이건희와는 매형-처남 관계였다. 자세한 인물 이야기는 범 삼성가 항목 참조.[88] 2000년 초 새천년민주당의 인재 영입 때 입당해 16대 총선에서 수원 팔달 선거구에 출마, 남경필과 겨뤘으나 낙선한 뒤 곧바로 정계에서 은퇴했다.[89] 구단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했다.[90] 성균관대학교 이사 겸임.[91] 중학생이던 1957년에 동인천중을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바 있다. 한국야구사에 기록된 최초의 퍼펙트 게임.[92] 선수 시절에는 국가대표에도 뽑힌 적이 있으나 은퇴 후 한동안 야구계에서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부단장으로 선임됐다. 게다가 부산 출신이라 대구·경북 연고인 삼성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 김삼용이 부단장이 된 건 이건희 회장과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추천했기 때문(김삼용과 천신일은 중, 고교 동문이다.). 시즌 초반부터 저조한 팀 성적을 빌미로 서영무 감독의 작전권을 빼앗아 이충남 조감독에게 이양하는 등 잡음만 일으키다 결국 잘렸다.[93] 1984년 중앙일보로 돌아갔다가 1985년 빙그레 이글스의 초대 단장을 맡았다.[94]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서 18년간 감독을 했으며 해설가로도 유명했던 김계현의 아들.[95] 삼성 라이온즈의 초창기 프런트 중 한 명으로, 선수단 매니저로 프런트 활동을 시작했다.[96] 1999 시즌이 끝나고 취임. 상무보에서 시작해서, 2002년 1월 상무, 2005년 1월에 전무로 승진했고, 2009년 12월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2010년 12월에 용퇴했다.[97] 2006년 신설됐는데, 송삼봉이 부단장에서 단장으로 승진한 후 후임 부단장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98] 삼성 입사 후 처음 발령받은 곳이 삼성 라이온즈였다.[99] 야구인 출신으로는 2대 단장을 맡았던 실업야구 출신 김삼용 단장이 있었다.[100] 하지만 단장 선임도 그룹 윗선과 팬들의 여론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권한이라 보기 힘들다.[101] 사실 이것도 매우 점잖게 말해서 이 정도인거지 올드 삼성 팬덤에게 있어서 저 두 이름은 쌍욕을 반사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라이온즈의 역적 중의 역적으로 취급받는다. 후술하겠지만 삼성 감독들 중 상당수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는데도 정작 이 둘보다 심하게 욕을 먹는 감독은 없다. 이들 단장 시기에 감독을 지낸 류중일, 김한수와 박진만은 선수 시절 내내 KBO 올스타급이었고 삼성 소속으로 맹활약했다.[102] 보통 원래부터 약했던 집단을 말아먹는 것보다 강했던 집단을 망쳐서 회생 불가에 가까울 정도로 초토화시키는 것이 훨씬 더 낮은 평가를 받는다. 당장 발전 가능성이 높았던 중국과 아르헨티나를 망친 마오쩌둥과 호르헤 비델라가 어떤 평가를 받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안현호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사례에 해당하며, 홍준학같은 경우 조금 애매하기는 하나 전반적인 시스템 붕괴와 육성 실패, 장기적 부진이 있었다는 것은 데이터상으로 확인 가능하다.[103] 공교롭게도 이 둘은 운영 방침은 완전히 다르지만 1965년생 동갑내기이며, 다른 계열사나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를 해온 전임 단장들과 달리 평사원 출신으로 시작해서 단장 자리에 오른 레전드이다. 야구단 운영만 잘했어도 둘 다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불렸을 것이다.[104] 공식적으로는 감독 대행이었지만 삼성 구단 홈페이지의 역대 감독란에서는 정식 감독으로 인정하고 있다.[105] 조창수 감독대행 성적 포함[106] 장효조 감독대행 성적 포함[107] 서정환, 선동열, 김한수, 허삼영은 삼성 팬덤에게 상당한 졸장으로 취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다 김성근, 서정환, 선동열은 암흑기 이전 감독이며 승률도 5할 5푼을 찍었는데도 심하게 욕을 먹는다. 이 때문인지 재임 기간 당시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김응용, 류중일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기도 하다. 물론, 저들도 대부분 안현호, 홍준학 전 단장보다는 평가가 좋은데 그 이유는 감독 중 최악으로 평가받는 김한수도 선수 시절에는 삼성 소속으로 맹활약했기 때문이다.[108] 특히나 삼성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뽑히는 류중일이 이런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매우 잦다.[109] 단, 2005-2010시즌에 있었던 선동열의 평가는 나쁘다. 이는 선동열이 전력빨로 성적을 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며 삼성 감독직에 앉아서 여러 망언과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리빌딩 자체로는 매우 좋은 평을 받는다.[110] 사실 이승엽을 발견한 건 우용득 감독이었고, 그런 이승엽을 최정상급 타자로 발전시킨 것도 박흥식 코치와의 합작품.[111] 이때 이승엽-정경배-김태균-김한수의 내야 라인은 당시 최강급으로 평가 받았다.[112]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백인천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백인천의 주 포지션은 외야수(중견수)다. 포수로 뛴 시기는 고등학교 때와 실업 야구 농협 시절, 그리고 도에이 플라이어즈 입단 초창기 때였다.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한 이후에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외야수로 활약했다.[113] 외국인 선수 한 명만 잘 뽑아도 팀 순위가 두세 계단씩 오르내릴 만큼 규모가 작은 한국 야구계에서 막강한 자금력으로 자기 팀의 주축 선수를 빼가는 삼성이 다른 팀 팬들의 입장에서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114] 사실 이만수의 팬들은 대부분 4~50대의 아저씨들이 많고 신세대 삼성 팬들은 이만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은 없다. 오히려 2012년 이후 SK에서의 삽질 때문에 이만수를 꺼리는 삼성 팬들이 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만수의 전성기를 본 사람들이 50이 넘어가는 나이가 된지라 더더욱.[115] 2011 시즌 삼성의 1루수는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 정도인데 셋의 평균 타율은 2할 2푼 정도, 그들의 홈런 개수를 모두 더한 것이 2011 시즌 일본 퍼시픽 리그의 이승엽의 홈런 개수와 같을 정도로 막장이었다.[116] 소위 '믿음의 야구'라 하는데, 5회 정도면 선발을 내려 버리는 선 감독과 달리 선발을 최대한 믿고 길게 쓰는 투수 운용으로 인해 불펜의 과부하를 최대한 방지하고 선발들의 책임감을 강화시켜 2011 시즌 삼성의 선발, 불펜의 성적을 모두 크게 향상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117] 단순히 못하는 것을 넘어서 같은 기간 해당 팀 상대로 리그에서 가장 약한 감독 중 하나였다. 김한수 두산전 2017-2019년 3년간 10승 달성, 허삼영 kt전 2020/2022년 각각 4/5승 달성과 2021년 타이브레이크 1:0 패, 박진만 KIA전 2023-2024년 도합 9승 20패 기록.[118]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과 LG 트윈스의 김용수가 있는데 최동원은 사후에 영구 결번식이 거행되었으나 김용수는 공식 은퇴식은 없었어도 현역 시절에 영구 결번식이 미리 거행된 적이 있다.[119] 영동 지역(강릉시의 강릉고등학교, 속초시의 설악고등학교)은 지역 고교 팀을 대상으로 연고 구단 및 1차 지명을 할 권한을 갖고 있다. 영서지역은 한화 이글스가 담당한다.[120] 유일하게 해당 지역 출신으로 1차 지명을 받았던 김영한은 그래도 해당 지역에서 쭉 운동을 했던 선수였다.[121] 전승준의 경우 2003년 SK 와이번스도 기록한 바 있다. 반면 전패준은 1987년 삼성이 기록한 게 유일하다.[122] 이후 도쿄 야쿠르트의 발렌틴이 경신했다.[123]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삼성은 두산 베어스에게 3회말에 발비노 갈베스, 김진웅, 박동희가 줄줄이 두들겨 맞으면서 무려 12점을 내줬다.[124] 단, 이건 삼성이 기록한 게 아니고 상대팀인 넥센 히어로즈(현재 키움 히어로즈)의 기록. 즉 삼성 타자가 사사구로 출루한 게 11번이라는 뜻. 이때의 B성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서도 B성을 떠올렸다 카더라.[125] 현재 올드 유니폼 데이를 가장 많이 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비롯하여 두산으로 간판을 바꾼 두산 베어스도 올드 유니폼 행사를 자주 하고 있고, 그리고 여태껏 해태의 무게에 짓눌리던 KIA 타이거즈도 최근에 한 차례 열었던 바 있다. 어른의 사정에 의해 올드 유니폼 데이 따위는 꿈도 못 꾸는 한화 이글스조차 2012년 들어 올드 유니폼 데이를 열었다.[126] 이 역사의 종결자는 2005~2006 시즌 현대 유니콘스 소속이었던 미키 캘러웨이가 있다. 2005년 대 삼성전 4승 0패 방어율 1.73/06년 대 삼성전 3승 0패 방어율 1.19. 삼성을 상대로 단 한번도 진적이 없으며 이 시절을 기억하는 삼성 팬들은 캘러웨이를 금지어 취급할 정도다. 전 두산 베어스, kt wiz 소속 더스틴 니퍼트도 삼성 상대로 극강의 모습을 보여 팬들이 두려움을 넘어서 경외의 감정을 가질 때도 있었다. 그나마 니퍼트는 한국시리즈에서 이겨 보기라도 했지만 삼성 공식 페이스북에서 박해민 삼행시로 '해로운 미국인 니퍼트'가 선발되는 등 드립소재로도 많이 써먹는 편.[127] 이게 삼성의 전력 분석 시스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분석 외에도 자신의 팀 선수에 맞춰 상대방 선수의 공략점을 분석을 하는 것의 비중이 큰데 그 때문에 맞춤 데이터가 적은 선수의 경우 쉽게 공략하지 못한다는 것. 그동안의 결과를 보면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모양[128] 물론 에이스들도 날 잡으면 털긴했다. 에이스도 사람이다.[129]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4년 동안 활동하면서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년까지 총 6번의 우승을 함께했다. 현재는 현역에서 은퇴하여 치어리더 팀장으로 있다.[130] 실제로 각 구단에서 응원단은 외부 이벤트기업과 계약하여 SSAT는 드립으로 봐도 된다.[131] 현재는 V-리그 여자배구단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 중이다.[132] 한화도 2018년에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바꿨으나 주황색도 엄연한 홈 유니폼이다.[133] 최근에는 타 대학으로 진학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그 예가 조무근.[134] 박해민은 서울 토박이로 영중초, 양천중, 신일고, 한양대학교를 거쳐서 전부 서울에서 학업을 마쳤다. 대학리그에서 우수타자 상을 받았다.[135] 의외로 이 계보는 90년대 해외파 선수로 삼성 역사상 당당히 흑역사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최창양으로부터 시작한다. 최창양은 필라델피아 산하 마이너에서 선수생활을 했었다.[136] 왕조 당시만 해도 김상수 한 명 사인 받았으면 다 받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반면 투수조의 경우에는 예나 지금이나 팬서비스는 확실하다.[137] 김상수가 지속된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부상으로 드러누웠다.[138] 그러나 2017년 이원석을 저렴한 가격에 잡고 저비용 고효율 FA라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139] 삼성 오자마자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투수를 접고 타자를 시작했다.[140] 그 제물이 바로 삼성이었다.[141] 이 역시 삼성.[142] 이를 이룬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143] 사실 구단 자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가 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계기로 구단 역사에 포함시킨것.[144] 2020년이 돼서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시작한 kt는 그렇다 치더라도, NC는 역사에 비해 포스트시즌 진출이 상당히 많은 편이였음에도 삼성과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에서 맞대결을 펼친 적이 없다. 이는 NC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삼성의 암흑기와 묘하게 겹치기 때문인데, 삼성과 NC가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14시즌과 15시즌에도 직접 맞붙지는 못했으며 나머지 시즌에는 삼성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거나(13,21) NC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거나 (16~17,19~20,23) 둘 다 떨어졌다(18,22).[145] 이건 KIA도 마찬가지라 대구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하지 않는 이상 1루에서 뛰어나올 일은 더 이상 없다.[146] 특별히 잘했던 호남 출신 선수들은 없었다. 유망주라 데려왔더니 망한 경우가 더 많았을 정도.[148] 다만 자진사퇴가 공식적으로 수리된 것은 5월 10일이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 조계현 수석코치가 사실상 감독대행 역할을 했으니 삼성이 보낸게 맞다.[149] 후술한 수베로 감독과 함께 유이하게 삼성을 이기고 감독이 교체된 경우[예시] 2002년 KS 패배 이후 LG 김성근 감독 경질, 2011년 8월 19일 문학 삼성전 9:0 패배 이후 SK 김성근 감독 경질, 2013년 KS 패배 이후 두산 김진욱 감독 경질, 2014년 4월 22일 대구 삼성전 1:8 패배 이후 LG 김기태 감독 사퇴[148], 2016년 10월 8일 문학 삼성과의 최종전 이후 SK 김용희 감독 재계약 불발[149], 2017년 5월 21일 대전 삼성전 8:7 패배 이후 한화 김성근 감독 경질, 2018년 6월 3일 마산 삼성전 8:7 패배 이후 NC 김경문 감독 사퇴, 2021년 5월 9일 대구 삼성전 6:8 패배 이후 롯데 허문회 감독 경질, 2023년 5월 11일 대전 삼성전 4:0 승리 이후 한화 수베로 감독 경질.[150] 아이러니하게도 양준혁 역시 선수 시절 중간에 해태-LG로 트레이드됐다가 돌아오는 등 온갖 산전수전을 겪었고, 은퇴하는 모습도 당시 감독 때문에 사실상 반강제 은퇴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라 그렇게 좋은 결말을 맺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다만 아예 은퇴식조차 안 열어주고 방출시켜버린 이만수와는 달리 은퇴경기라도 성대히 열어줬다.[151] 삼성 구단 창단 후 첫 은퇴식의 주인공이고, 은퇴 후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오르는 등 그야말로 성골 그 자체의 모습이다.[152] 2003년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불펜 코치로 일하던 이만수에게 삼성에서 코치 제의를 했고, 이에 이만수는 즉시 화이트삭스에 사표를 낸 뒤 미국에 있던 집과 자동차까지 모두 처분하고 비행기 티켓까지 발권해뒀다고 한다. 그런데 돌연 삼성 쪽에서 코치 제의를 없던 일로 하자고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붕 떠버릴 뻔했고, 그나마 이러한 사정을 들은 화이트삭스 구단에서 재계약을 해줘서 다행히 잘 풀렸지 하마터면 삼성 때문에 지도자 경력마저 망칠 뻔했다.[153] 물론 이승엽은 나중에 이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이미지가 어느 정도 희석된 덕분에 이 문단에 적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사정이 좋은 편이다.[154] 단 1999년 이전에는 특출나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1994~6년에는 삼성의 556 암흑기와 맞물려 3연패를 당했다. 그 중에서도 1996년 현대와의 경기는 신인 외야수 장정석에게 만루홈런을 맞은데다가 정명원과 이승엽의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진 끝에 패배하며 역대 6월 2일 경기 중 가장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155] 2012년 두산과의 막장 경기 끝에 5할 승률을 기록, 2013년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의 기적 끝에 승리, 2015년 롯데와의 포항 야구장 경기에서 안지만의 150홀드 기록, 2017년 KIA전 최충연의 첫승, 2020년 LG전 원태인의 무실점 투구, 2021년 SSG전 난타전 끝에 김지찬의 공수 맹활약으로 승리 등[156] 고졸 3년, 대졸 2년.[157] 특이한 점은 회색 유니폼을 한 번이라도 입어 봤던 다른 구단들은 팀 엠블럼에 회색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인 반면에 삼성은 반대로 엠블럼에 회색이 있으나 회색 유니폼을 입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158] 사회 정치 기사를 다루는 게시판이 대구나 보수에 대해 적대적이지, 오히려 정치유머 게시판과 같은 곳은 진보에 적대적인 커뮤니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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