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학
최근 수정 시각: ()
도쿄대학 東京大学 The University of Tokyo | ||||||||
모토 | 志ある卓越。 | |||||||
뜻있는 탁월함. | ||||||||
Discover Excellence. | ||||||||
국가 | ||||||||
분류 | ||||||||
개교 | ||||||||
총장 | 후지이 테루오(藤井 輝夫) | |||||||
재학생 | 학부 | 13,962명 (2022년) | ||||||
대학원 | 14,171명 (2022년) | |||||||
직원 | 교직원 | 8,188명 (2022년) | ||||||
행정직원 | 2,947명 (2022년) | |||||||
상징 | 마스코트 | 이치코 (Ichiko) | ||||||
색상 | UTokyo Yellow (#ffcd00) UTokyo Blue (#0b8bee) | |||||||
소재 | ||||||||
링크 | 파일:도쿄대학 심볼마크.svg 공식 홈페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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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학 소개 영상 |
1. 개요 [편집]
도쿄도 분쿄구[2]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립대학. 약칭은 토다이(東大, 동대)이며 한국에서는 한국 한자음으로 동경대(東京大), 혹은 도쿄대라고 부른다.[3] 영문 이름 The University of Tokyo[4]의 약칭은 UTokyo.
일본의 첫 번째 제국대학으로서 일본의 810여 개 대학 중에 최고(最古) 대학이며, 국립대학 중 최고 규모이기도 하다. 또한 가장 많은 한국인 유학생이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학 중 하나이자,[5] 대한민국의 대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해외 대학이기도 하다.[6]
아시아의 대표적인 연구대학으로서 20명의 노벨상 수상자[7], 5명의 프리츠커상 수상자[8], 3명의 필즈상/울프상(수학) 수상자[9], 7명의 우주비행사[10] 등을 배출했으며, 19명의 일본국 내각총리대신[11] 및 대한민국 국무총리[12] 등의 정치인, 또한 현재 닛케이 225를 구성하는 대기업 CEO의 약 4분의 1을 도쿄대가 배출하는 등[13] 정재계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의 첫 번째 제국대학으로서 일본의 810여 개 대학 중에 최고(最古) 대학이며, 국립대학 중 최고 규모이기도 하다. 또한 가장 많은 한국인 유학생이 박사 학위를 받은 대학 중 하나이자,[5] 대한민국의 대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해외 대학이기도 하다.[6]
아시아의 대표적인 연구대학으로서 20명의 노벨상 수상자[7], 5명의 프리츠커상 수상자[8], 3명의 필즈상/울프상(수학) 수상자[9], 7명의 우주비행사[10] 등을 배출했으며, 19명의 일본국 내각총리대신[11] 및 대한민국 국무총리[12] 등의 정치인, 또한 현재 닛케이 225를 구성하는 대기업 CEO의 약 4분의 1을 도쿄대가 배출하는 등[13] 정재계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 역사 [편집]
- 1684년: 에도 막부가 천체운행 및 역법 연구기관인 천문방(天文方, 텐몬가타) 설치
- 1797년: 학문소가 유시마 성당에서 분리되어 막부 직할로 편입
- 1811년: 천문방의 산하 기관으로 양서의 번역 및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만서화해어용(蛮書和解御用, 반쇼와게고요) 설치
- 1855년: 만서화해어용을 확충하여 난학과 양학 등을 가르치는 양학소(洋学所)를 개교
- 1856년: 안세이 대지진으로 소실된 양학소 교사를 재건하여 번서조소(蕃書調所)로 개칭
- 1861년: 막부 직할의 서양의학교육기관인 의학소(醫學所)를 창설
- 1862년: 번서조소를 양서조소(洋書調所)로 개칭
- 1863년: 양서조소를 개성소(開成所)로 개조
- 1868년: 의학소, 학문소, 개성소가 메이지 정부 산하로 편입, 각각 6월, 8월, 9월에 의학교(醫學校), 창평학교(昌平學校), 개성학교(開成學校)로 개칭
- 1869년: 창평학교, 개성학교, 의학교 3개교를 대학교(大學校)로 통합. 창평학교를 본교(本校)로, 개성학교와 의학교를 분국(分局)으로 하여 운영[17]
- 1870년: 대학교를 대학(大學)으로 개칭, 본교를 대학본교(大學本校), 개성학교 분국을 대학남교(大學南校), 의학교 분국을 대학동교(大學東校)로 개칭. 같은 해 화학·한학파와 난학·양학파의 갈등 사이에서 양학파의 승리로 화학·한학파의 입지가 대폭 약화되어 대학본교가 무기한 휴교[18], 결국 대학교의 유명무실화로 대학남교와 대학동교 독립
- 1871년: 대학교 폐지, 문부성 발족, 대학남교와 대학동교를 문부성 산하로 편입함과 동시에 각각의 이름을 남교(南校)와 동교(東校)로 개칭
- 1872년: 학제 배포, 남구를 제일대학구 제일번중학교(第一大學區第一番中學校)로, 동교를 제일대학구 의학교(第一大學區醫學校)로 개칭
- 1873년: 제일대학구 제일번중학교를 전문학교로 전환, 제일대학구 카이세이학교(第一大學區開成學校)로 개칭
- 1874년: 제일대학구 카이세이학교를 도쿄카이세이학교(東京開成學校)로, 제일대학구 의학교를 도쿄의학교(東京醫學校)로 개칭, 도쿄카이세이의 전문과와 보통과를 각각 본과와 예과로 개편
- 1880년: 학사연구과[24] 설치
- 1881년: 구 도쿄카이세이학교의 후신인 법학부, 이학부, 문학부와 구 도쿄의학교의 후신인 의학부가 대학 기구 개편으로 하나의 총장을[25] 갖추게 되어, 두 학교 간의 느슨한 연합체에서 하나의 학교로 완전히 통합
- 1882년: 구 도쿄카이세이학교의 예과와 구 도쿄의학교의 예과를 통합, 하나의 통합된 예비문(대학예과) 시스템을 갖추게 됨
- 1885년: 도쿄법학교 통합. 도쿄대학 예비문[26] 분리
- 1890년: 도쿄농림학교[29] 통합
- 1947년: 제국대학령의 폐지로 도쿄대학으로 개칭
- 1991년: 대학원 중점화(大学院重点化)를 개시
- 1999년: 카시와 캠퍼스를 조성, 여러 연구소를 여기로 이전
- 2004년: 국립대학의 법인화로 국립대학법인 도쿄대학이 됨
- 2024년: 개교 150주년(2027년 예정) CI 발표
- 2025년 : 약학부 설치 이후 근 70년만에 College of Design 신설
3. 조직 [편집]
도쿄대학의 학부, 연구과, 연구소의 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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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입시 [편집]
5. 캠퍼스 [편집]
도쿄대학의 상징, 아카몬(赤門). 1827년 건축. |
- 코마바 지구 캠퍼스
- 코마바 I 캠퍼스
- 코마바 II 캠퍼스
- 코마바 III 캠퍼스
- 혼고 지구 캠퍼스
- 혼고 캠퍼스
- 아사노 캠퍼스
- 야요이 캠퍼스
- 카시와 지구 캠퍼스
- 카시와 캠퍼스
- 카시와 II 캠퍼스
- 카시와노하에키마에 캠퍼스
- 시로카네다이 캠퍼스
- 나카노 캠퍼스
- 코이시카와 캠퍼스
- 타나시 캠퍼스
- 케미가와 캠퍼스
- 토카이무라 캠퍼스
- 미타카 캠퍼스
일본의 대학은 기능에 따라 여러 캠퍼스로 분산되어 있는 형태가 대부분으로,[39] 도쿄대학의 경우 3극구조(三極構造)의 일환으로, 전통적인 전문영역 및 기초 분야 연구를 담당하는 혼고(本郷) 지구 캠퍼스[40], 학제간 연구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코마바(駒場) 지구 캠퍼스[41], 신생 학문 및 신영역 연구가 중심인 카시와(柏) 지구 캠퍼스[42]의 3곳을 주요 거점으로 두고 있다.[43] 상세 내용은 도쿄대학/캠퍼스 항목 참조.
일단 학부를 입학하면 모든 학생들은 코마바 캠퍼스에 위치한 교양학부에 소속되어서 2년간 다니다가, 2학년 겨울학기부터는 전공과목을 들을 수 있는 혼고 캠퍼스로 이동하게 되고[44], 4학년부터는 카시와 캠퍼스, 혼고 캠퍼스, 코마바 캠퍼스 등에 소속되어 있는 연구실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졸업논문을 작성한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는 마찬가지로 여러 캠퍼스에 분산되어 있는 연구실, 혹은 여러 부속 연구소에 소속되어 전문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다만 도쿄대학의 캠퍼스 내에 위치한 연구실이나 연구소가 아닌, 물질·재료 연구기구,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이화학연구소 등의 제휴 연구기구 및 연구소에 소속되는 경우도 있다.[45]
특이한 점은 도쿄대학의 주요 캠퍼스들에는 각각 숫자가 붙은 연못이 있다는 것. 혼고 캠퍼스의 중앙에 있는 연못은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산시로(三四郎)'가 출판된 이후에 '산시로 이케(三四郎池, 삼사(34)랑지)'로 이름 붙게 되었다. 이 연못의 이름을 따, 코마바 캠퍼스의 연못은 '이치니로 이케(一二郎池, 일이(12)랑지)', 카시와 캠퍼스의 연못은 '고로쿠로 이케(五六郎池, 오육(56)랑지)'가 되었다.
일단 학부를 입학하면 모든 학생들은 코마바 캠퍼스에 위치한 교양학부에 소속되어서 2년간 다니다가, 2학년 겨울학기부터는 전공과목을 들을 수 있는 혼고 캠퍼스로 이동하게 되고[44], 4학년부터는 카시와 캠퍼스, 혼고 캠퍼스, 코마바 캠퍼스 등에 소속되어 있는 연구실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졸업논문을 작성한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는 마찬가지로 여러 캠퍼스에 분산되어 있는 연구실, 혹은 여러 부속 연구소에 소속되어 전문적인 연구를 진행한다. 다만 도쿄대학의 캠퍼스 내에 위치한 연구실이나 연구소가 아닌, 물질·재료 연구기구,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이화학연구소 등의 제휴 연구기구 및 연구소에 소속되는 경우도 있다.[45]
특이한 점은 도쿄대학의 주요 캠퍼스들에는 각각 숫자가 붙은 연못이 있다는 것. 혼고 캠퍼스의 중앙에 있는 연못은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산시로(三四郎)'가 출판된 이후에 '산시로 이케(三四郎池, 삼사(34)랑지)'로 이름 붙게 되었다. 이 연못의 이름을 따, 코마바 캠퍼스의 연못은 '이치니로 이케(一二郎池, 일이(12)랑지)', 카시와 캠퍼스의 연못은 '고로쿠로 이케(五六郎池, 오육(56)랑지)'가 되었다.
6. 국제 평가 및 교류 [편집]
2025년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 32위, 2024년 ARWU에서 28위, 2025년 THE 세계 대학 랭킹에서 28위, 2024년 CWUR 세계 대학 랭킹에서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학술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인 네이처 인덱스에선 2024년 14위를 기록했다.[46] 출신 인물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의 경우, 포브스와 뉴욕 타임스가 공동조사한 ‘미국의 기업이 선호하는 대학’에서 세계 10위, 세계 고용선호대학 평가 GEURS 세계 대학 랭킹에서는 2019년 세계 7위, 2020년 6위, 2021년 6위, 2022년 7위 등을 차지하고 있다.
도쿄대학이 상호 교환유학 협정을 맺은 한국의 대학은 다음과 같다. 다른 나라는 리스트 참고.
도쿄대학이 상호 교환유학 협정을 맺은 한국의 대학은 다음과 같다. 다른 나라는 리스트 참고.
7. 출신 인물 [편집]
8. 기타 [편집]
- 도쿄대학은 일본의 슈퍼글로벌대학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도쿄대학의 학부/연구과를 졸업하면 일본 고도인재 외국인 대상 포인트 우대제도 신청 시 가산점 10점을 받을 수 있다. 즉, 해당대학 졸업시 어지간하면 요건 점수 70점을 바로 채우게 되어 있어서 일본 영주권이 빠른 시간으로 나온다.
- 동대제국주의(東大帝國主義)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특히 일본 정재관계에서는 오랜 세월 누적된 차이로 완전히 도쿄대가 선두다. 중퇴자 2명[48]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17명의 총리대신[49]을 배출하여 총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이다. 하지만 2000년대 전후로 도쿄대학 출신은 하토야마 유키오 밖에 없다.[50] 즉, 도쿄대의 학벌권력이라는 건 관료적 권력 구조의 실무진을 도쿄대 출신 네트워크가 지배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업무에 정통해야만 하는 사무차관이라거나, 그 이하 각 국장, 과장 등에 이르기까지 관료조직은 대부분 도쿄대 출신자의 손에 장악된 상태라는 것이다.[51] 실제로 초선 국회의원들을 모아 놓고 관료들이 공부를 시켜 실무를 파악시키는 관행이 있을 정도. 어차피 일본은 관료 지배 국가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관료의 힘이 센 나라고, 일본 대기업들도 결국은 관료 조직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조직 구성이다. 엄밀히 말하면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학이 당시의 제국대학으로, 도쿄대학은 그 중에서도 최초이기에 그저 목적에 충실한 것뿐이다. 하지만 실상 관료의 이미지를 만든 건 도쿄대학 법학부 출신들이고(#), 문학부 같은 경우는 전통적으로 학구파적 성향이 강하고 관료적 풍토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일본의 근대 문학가들 중 상당수가 도쿄대학 출신인 점을 생각해 보자. 역사학의 경우 도쿄대는 마르크스주의 사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가끔 가다 도쿄대학에 2번째로 입학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2012년에는 아들의 입시 응원을 위해 같이 공부하던 어머니만 합격하는 일이 벌어졌다.[52]
- 5월병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최초의 5월병의 의미는 그야말로 약 20년의 인생을 갈아 넣다시피 하여 꿈에 그리던 도쿄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정작 도쿄대에 입학하고 난 후 봄철의 나른함을 겪고서 슬슬 더워질 기미가 보이며 햇빛이 비추는 시간이 길어지는 5월쯤이 되어 “도쿄대에 들어와서 좋긴 한데 이제는 기쁜 감정도 사라지고 나에게 도쿄대는 일상이 되었는데 이젠 또 뭘 해야 하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 같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어 버려 극도의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에 빠져 버리는 증상을 말했었다. 이렇게 5월병이 유행처럼 쓰이다 개념 자체가 좀 더 확장이 되어 봄철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첫 장기휴일인 5월의 골든 위크를 거치고 난 후에 극단적인 우울감과 무기력증에 빠져서 업무능력이 현저히 저하되거나 심하면 무단 결근 및 사표를 내는 일까지 벌어지는 상황에도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 한단계 더 발전해서 5월이 되면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싱숭생숭한 감정을 느끼는 것과 그런 사람들 자체를 5월병이라고 하는 듯 하다. #
- 입학식은 일본 무도관에서 치른다. 2020년도에는 무도관이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리뉴얼하는 바람에 그 대신 료고쿠 국기관에서 치를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아예 취소되어 버렸다. 졸업식은 언제나 야스다 강당에서 한다.
- 도쿄대 2024학년도 신입생은 총 3,126명으로 남학생은 2,480명, 여학생은 646명인데 여성 신입생 비율은 23%로 역대 제일 높은 기록이지만, 20%대에 그친다. 도쿄대의 후지지 총장은 도쿄대 입학의 성별에 큰 편차가 있다고 편차는 인문학보다 과학에서 훨씬 더 크다면서 도쿄대가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학생을 유치하는 대학인지, 다양한 학생을 환영하는 환경이 준비됐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도쿄대 학부, 석박사 전체 학생 (일본인 포함) 중 약 12%가 중국인이며, 전체 유학생의 67.8%가 중국인이다. 2024년 11월 기준, 도쿄대 석박사 대학원생 4명 중 1명은 중국인 유학생인데, 대학원생의 전체 인원이 약 1만 5,000명이고 중국인 유학생은 약 3,500명으로 파악되었다. 중국인 다음으로 많은 한국인이 360명인 것에 비하면 중국인이 지나치게 많다. 2024년부터 일본국민의 세금으로 도쿄대 중국인 유학생 좋은 일만 해준다는 식의 비판여론이 언론, 정치권에서도 강해졌다.# # 도쿄대 박사의 경우 1인당 생활비와 연구비를 연간 최대 290만엔(약2,900만원)을 지급했는데, 2024년 ‘차세대 연구자 도전적 연구 프로그램’ 지원을 받은 박사과정 대학원생 전체 수급자 중 27.5%가 중국인이었다. 수백만명의 일본인들이 정부에 항의하자 2026년부터 해당 생활비는 일본인에게만 지급되게 바꼈다. #
- 연 2회에 걸쳐 (3월/9월) 홍보지를 발행한다. 홍보지의 이름은 담청(淡青). 도쿄대의 상징색이기도 하다. 본래 불규칙하였으나 2010년대 들어서 3월과 9월로 정립되었다. “담청” 홍보 사이트 및 다운로드 링크
8.1. 교가 [편집]
도쿄대학의 노래 오직 하나(ただ一つ) | 도쿄대학운동회가 넓은 하늘과(大空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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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사건 사고 [편집]
- 도쿄대와 얽힌 가장 험한 기억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의 수난이다. 조선이 실록, 의궤 등 각종 기록물을 보관하기 위해 운용한 외사고(外史庫) 4곳(정족산,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 중 하나인 오대산사고본 실록이 1913년 3월 일본으로 무단 유출된 게 시작이었다. 도쿄제대에 있던 실록은 1923년 간토대지진 때 발생한 화재로 대부분 불탔다. 당시 대출 중이던 74권이 겨우 화를 면했는데 이 중 27권은 1932년 경성제대로 옮겨졌다. 하지만 47권(성종실록 9권, 중종실록 30권, 선조실록 8권)은 도쿄제대에 남았다. 도쿄대에 실록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환수운동이 전개됐다. 불법유출이 명백하다는 점을 근거로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압박에 도쿄대는 2006년 서울대에 ‘기증’을 결정했다. 일본 지성의 대표임을 자부하는 도쿄대가 문화재 약탈의 거점임을 인정하기는 싫었을 것이다. 우리는 일단 되돌려 놓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 #
- 일본 학생 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특히 도쿄대에서는 1968~69년에 분쟁(東大紛争)이 절정이었는데, 야스다 강당에서 공성전이 펼쳐는 등 심각한 상황 때문에 1969년도 입시가 중지되고 말았다. 최상위권 수험생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대학을 지원했고, 도쿄대 아니면 안 된다는 수험생은 재수를 해야만 했다.
- 2017년에 도쿄대생 노구치 시로(野口 志朗)와 모 여자 대학생 모리타 유노(森田由乃, 1996)가 일본 예능에 출연했다. 도쿄대생은 그 여대생의 내면을 알고 싶다고 했고, 2019년 12월에 여대생은 전 농림대신 5선의원과 스폰서 관계를 맺은 일로 신문 기사에 오르는 불명예를 얻고 만다. 이렇게 노구치 시로가 재조명되었다.
8.3. 작품에서의 도쿄대학 [편집]
- 한국에 도쿄대학의 유명세를 일려 준 것은 역시 만화 동경대학 이야기. 일본 사회에서의 동경대학의 위치를 전해 주고 있다.
- GO! 히로미 GO!가 도쿄대학을 배경으로 하는 캠퍼스물 순정만화다.
- 고독한 미식가의 2권, 8화에서 도쿄대학 혼고캠퍼스를 방문하는 내용이 나온다.
- 오자마녀 도레미(라이트 노벨)에서 마키하타야마 하나가 도쿄대 의대에 진학하는 것으로 나온다.
9. 둘러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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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신기관은 1684년에 설립된 천문방(天文方)[2] 분쿄(文京, 학문의 수도)라는 이름 탄생에도 영향을 주었다. 대학 캠퍼스는 분쿄구(혼고캠퍼스) 이외에도 메구로구(코마바캠퍼스), 카시와시(카시와캠퍼스) 등에 분산되어 있다. 참고로 비용 지출로 유명한 토끼팀 홈구장인 도쿄 돔도 여기에 있다.[3] 국립국어원 맞춤법 규정상 모두 다 옳은 표현이다. #[4] 구(舊) 제국대학 중 유일하게 이름이 XX University의 형태가 아니다. 다만 도쿄제국대학 시절의 영어 명칭은 Tokyo Imperial University였다.[5] 근거 기사 및 도쿄대 한국인 학생회에 의하면 도쿄대학은 해외 대학 중 가장 많은 한국인 박사를 배출한 대학이며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기준으로 1,161명 이상.[6] 2017년 12월 집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대학에 재직 중인 정교수의 박사학위 기준으로 도쿄대학 출신은 406명으로, 2위의 372명과 3위의 368명의 기록을 큰 폭으로 앞서고 있다.[7] 유카와 히데키(1949년), 찰스 하드 타운스(1964년), 도모나가 신이치로(1965년),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 에사키 레오나(1973년), 사토 에이사쿠(1974년), 볼프강 파울(1989년), 해리 마코위츠(1990년), 오에 겐자부로(1994년), 고시바 마사토시(2002년), 앤서니 레깃(2003년), 레오니트 후르비치(2007년), 난부 요이치로(2008년), 네기시 에이이치(2010년), 가지타 다카아키(2015년), 오무라 사토시(2015년), 오스미 요시노리(2016년), 제라르 무루(2018년), 혼조 다스쿠(2018년), 마나베 슈쿠로(2021년) 순서.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동문 12명 및 1명의 연구원, 7명의 교원(동문 중복 제외)이 도쿄대학을 거쳐갔다.[8] 단게 겐조(1987년), 마키 후미히코(1993년), 이토 토요오(2013년), 이소자키 아라타(2019년), 야마모토 리켄(2024년) 등.[9] 고다이라 구니히코(1954년/85년), 이토 기요시(1987년), 사토 미키오(2002/03년) 등.[10] 도이 타카오(STS-87 및 STS-123), 노구치 소이치(STS-114 및 ISS Exp.22/23), 야마자키 나오코(STS-131), 후루카와 사토시(ISS Exp.28/29), 오니시 타쿠야(ISS Exp.48/49), 스와 마코토, 요네다 아유 등.[11] 1. 하토야마 유키오 - 제 93대 / 2. 미야자와 기이치 - 제 78대 / 3. 나카소네 야스히로 - 제 71~73대 / 4. 후쿠다 다케오 - 제 67대 / 5. 사토 에이사쿠 - 제 61~63대 / 6. 키시 노부스케 - 제 56, 57대 / 7. 코노에 후미마로 - 제 34, 38, 39대 / 8. 아시다 히토시 - 제 47대 / 9. 카타야마 테츠 - 제 46대 / 10. 하토야마 이치로 - 제 52~54대 / 11. 요시다 시게루 - 제 45, 48~51대 / 12. 히로타 고키 - 제 32대 / 13. 시데하라 기주로 - 제 44대 / 14. 하마구치 오사치 - 제 27대 / 15. 히라누마 기이치로 - 제 35대 / 16. 와카츠키 레이지로 - 제 25, 28대 / 17. 카토 타카아키 - 제 24대 / 18. 하라 타카시 - 제 19대 / 19. 사이온지 긴모치 - 제 12, 14대 순. 도쿄대학의 전신 학교 출신 및 중퇴자 포함.[12] 김상협 #[13] 단순 CEO 뿐만 아니라 토요타, 히타치, 닛산, NEC, 리크루트 홀딩스, SOMPO홀딩스, 화낙, 니콘과 같은 거대기업의 창업자/설립자도 도쿄대학 출신이 많다.[14] 도쿄대학 코이시카와 캠퍼스에 위치. 현재는 종합연구박물관 코이시카와(小石川) 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15] 천주교의 성당이 아니라 공자를 모시는 서원이다.[16] 창평 언덕(昌平坂, 쇼헤이자카) 부근에 세워졌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있는 서당이라는 뜻으로 창평횡(昌平黌)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17] 훗날 도쿄로 이전하는 일본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교토의 병학교(兵學校)와도 통합하여 분국으로 운영할 예정이 있었으나 대학교의 이른 폐지로 무산되었다.[18] 이후 창평횡 계열은 30여 년이 지난 1903년에야 카이세이 중학교 · 고등학교의 야학으로 재설립되어 재단법인 창평재단으로 겨우 그 명맥이 이어지게 되며, 현재는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 학교법인 창평횡이라는 이름으로 동일본국제대학, 이와키단기대학, 부속유치원과 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19] 여기서 말하는 대학은 제도상의 진짜 대학(大學)을 말한다. 강습소, 의숙, 학원, 전문학교 등을 전신으로 한다며 수백 년의 역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곳은 얼마든지 있지만, 실제 대학으로 인가받은 교육기관은 도쿄대학이 최초이다. 동양 최초의 제도적인 대학이기도 하다.[20] 다만 학사 학위는 1876년에 설립된 삿포로농학교(現 홋카이도대학)가 일본 최초로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도적인 고등교육기관은 이쪽이 먼저라는 의견도 있다. 1886년에 제국대학령이 반포되기 전까지 학사 학위를 부여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은 구제 도쿄대학, 공부성의 공부대학교, 개척사의 삿포로농학교, 농상무성의 코마바농학교, 사법성의 법학교 밖에 없었다.[21] 제도 상으로는 이때의 도쿄대학이 구제 도쿄대학, 현재의 도쿄대학이 신제 도쿄대학으로 구별된다. 사실 신제 도쿄대학은 1949년부터이지만, 도쿄대학으로의 개칭은 1947년인지라 이름이 겹치는 시기가 생기는고로 1947년부터를 신제 도쿄대학으로 부른다.[22] 교원양성소와 같은 성격을 지녀 대부분의 졸업생이 교사가 됐기에 실질적으로는 사범학교와 같은 성격이었다.[23] 법학사, 문학사, 이학사, 의학사, 제약사.[24] 대학원에 해당[25] 그 전까지는 의학부는 총장이 따로 있었다.[26] 1886년에 제1고등중학교가 됨.[27] 공부성 소속의 학교. 현재의 공학부.[28] 일본 제국 최초의 제국대학.[29] 농상무성 소속의 학교. 농상무성의 재정난으로 인해 코마바농학교와 도쿄산림학교가 통합되어 설립되었다. 현재의 농학부.[30] 제국대학령을 근거로 1897년 교토제국대학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도호쿠제국대학, 규슈제국대학, 홋카이도제국대학, 경성제국대학, 대북제국대학, 오사카제국대학, 나고야제국대학이 설립되었다.[31] (구제)도쿄고등학교는 구제중학교+구제고등학교를 통합한 7년제 학교로 일반적인 5+3에 비해 제국대학 진학까지 1년의 수업연한을 줄일 수 있었다. 졸업생의 80%는 도쿄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명문교였다.[32] 일본 제국의 경우 11년의 소학교-구제중학교를 마친 후 제국대학에 입학하려면 3년제 구제고등학교를 거쳐야 했다. 독일식으로 대학 예과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패전 후 중학교를 6년제로 바꾼 뒤 49년 중학교를 신제중학교-신제고등학교로 바꾸면서 이름이 동일했던 구제고등학교 다수는 근처의 대학에 흡수 통합되었다.[33] 입시 구분의 ~류 와는 전혀 관계 없다.[35] 구 명칭인 신후리(進振り,진학배정)이라고 부른다. 공식명칭은 수년 전에 진학선택으로 바뀌었으나, 이 신후리가 워낙 악명이 높아 거의 고유명사화되었을뿐더러 바뀐 게 사실상 이름뿐이라.[34] 교양학부는 전기교양학부와 후기교양학부로 나눠진다. 입학한 동경대의 신입생들은 1학년부터 2학년 여름학기까지 1년 반 동안 모든 학생들은 교양학부에 속한다. 학과 구분 없이 학류 구분으로 이과 1류, 2류, 3류, 문과 1류, 2류, 3류로 구분을 한다. 2년 동안 교양학부에서 교육을 받은 후 성적에 따라서 전공을 지망해서 선택할 수 있는 진학선택제도가 있다.[35] 이론상 성적이 좋으면 이과 3류가 아니어도, 심지어 문과여도 의학부에 갈 수 있지만, 미리 생명과학(2단위) 수업을 듣고 여타 다른 과목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거둬야 하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문과가 아닌 이과 3류 입학으로 의학부를 가는 게 더 쉽다.(이과 1류에서는 한두명, 2류는 상위 2% 정도의 성적을 받으면 의학부에 진학할 수 있다.) 법학부는 비교적 정원이 많기 때문에 문과 2류/3류에서 상위 10% 안에 드는 좋은 성적을 받으면 진학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문과 1류에서 법학부가 아닌 다른 학과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즈마 히로키가 있다.[36] 후기교양과정은 2학년 겨울학기~4학년까지의 전공으로써 교양학부 소속의 학생들을 일컫는 말이다.[참고] 2026년 가을부터 신입생을 위한 입학시험이 치뤄지며, 그 다음해 가을에 개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부과학성의 인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2028년 이후로 개강하는 변동가능성이 존재한다. 도쿄대학 공식 안내문.[38] 한자 総合를 그대로 한국 한자음으로 읽어 총합문화 연구과라고 하기도 한다.[39] 도쿄대는 그나마 역사가 오래된 국립대학이기 때문에 넓은 캠퍼스를 확보하는 게 가능했지만,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땅값의 압박 때문에 그냥 좁은 부지에 높은 빌딩 하나를 세워놓고는 캠퍼스라고 우기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 일본 최대 규모의 대학인 니혼대학의 경우, 대학 캠퍼스만 무려 21개가 존재한다.[40] 본부 기능을 하며, 분쿄구에 위치. 혼고 캠퍼스, 야요이 캠퍼스, 아사노 캠퍼스를 합쳐서 혼고 지구 캠퍼스로 부른다.[41] 메구로구에 위치. 코마바 제1캠퍼스, 코마바 제2캠퍼스, 코마바 제3캠퍼스를 합쳐서 코마바 캠퍼스라고 부른다.[42] 카시와시에 위치. 카시와 캠퍼스, 카시와II 캠퍼스, 카시와노하에키마에 캠퍼스를 합쳐서 카시와 지구 캠퍼스라고 한다.[43] 교토대학 역시 이와 비슷하게 요시다 캠퍼스, 우지 캠퍼스, 카츠라 캠퍼스, 이 3곳의 거점이 환상의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44] 다만 교양학부와 이학부 수학과 학생들은 혼고로 이동하지 않고 코마바에서 4년간 다니게 된다.[45] 따라서 자신의 소속 연구실에 따라 수업을 듣는 캠퍼스와 실제 연구실이 있는 곳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며 이 경우, 수업을 듣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도 한다. 물론 최근에는 코로나 등의 영향으로 온라인 수업이 많아져서 이런 불편은 크게 줄었다.[46] 2021년 기준 네이처 인덱스의 세부적인 순위는 물리학 2위, 화학 7위, 지구&환경 21위, 생명과학 28위에 해당[47] 한국과학기술원 공과대학과 도쿄대학 신영역창성과학연구과의 부국(部局)간 교환 유학이 가능하다.[48] 하라 다카시, 고노에 후미마로[49] 사이온지 긴모치 - 가토 다카아키 - 와카쓰키 레이지로 - 하마구치 오사치 - 히로타 고키 - 히라누마 기이치로 - 시데하라 기주로 - 요시다 시게루 - 가타야마 데쓰 - 아시다 히토시 - 하토야마 이치로 - 기시 노부스케 - 사토 에이사쿠 - 후쿠다 다케오 - 나카소네 야스히로 - 미야자와 기이치 - 하토야마 유키오.[50] 거기다가 하토야마는 법학부가 아닌 공학부 계수공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공학자 출신이다.[51] 예를 들어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의 최고위관료 사무차관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단 3명만이 비 도쿄대 법학부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 3명중 1명은 도쿄대 경제학부.[52] 아들이 수험생이 되자 함께 공부하여 어머니는 도쿄대에 합격했지만 아들은 떨어졌다고 한다. 관련 글[53] 자세한 기록들은 다음을 참조. 야구부 공식 사이트 내 기록, 일본 위키백과 도쿄대 야구부 항목, 리그 공식 사이트 내 기록[54] 참고로 94연패를 끊기 위해, 야구를 잘 하는 고등학생들을 감독이 무료로 도쿄대 입시 공부를 시켜(...) 전력을 보충해 끊었다고 한다.[55] 가장 최근은 2017년, 법학부 재학 중인 투수 미야다이 코다이(宮台康平)가 드래프트를 신청,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7순위로 지명되어 화제가 되었다. 미야다이는 야쿠르트로 트레이드되고 2022년 시즌후 은퇴를 선언해서 5년만에 프로 생활을 접었다.[56] 蘊奧, 깊이 숙고하여 끊임없이 학문을 쌓는 것[57] 이곳에서 말하는 정신(精神)은 영어의 'Mind'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신이라는 단어는 본래 정교하다는 의미의 '정'(精)과 기운을 의미하는 '신'(神)이라는 두 글자를 합성한 번역어로, 원문은 이러한 본래 뜻에 충실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정신의 학부'란 '생각이 깊고 진지한 이들의 배움터'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58] 튼튼한 팔뚝. 한문에서 이러한 표현은 학문과 기예에 두루 출중한 수재(문무양도, 文武兩道)를 일컫는 말이다.[59] 참고로 일상(만화)의 애니메이션판 23화는 2011년 9월 3일에 방영했다. 그리고 사건은 9월 9일에 발생했는데, 10월 14일에 누군가가 모방범죄를 시도했다.[60] 학력 편차치 75의 일본 주부지방고.[61] 즉 '심플'이지 '이지'가 아니다.[62] 류자키와 함께 공동 만점이었다. 실제로는 데스노트가 완결된 후에도 한참이나 지나 2018년 입시 통계(즉 2017년 센터 시험)에서 센터시험 역사상 첫 만점자가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2020년에 센터시험이 폐지되고 대학입학공통테스트로 대체되면서 기록상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점자다.[63] 그 유명한 삿포로를 안동시라고 번역한 에피소드에서는 홋카이도대학에도 지원했었지만 안타깝게 여기도 불합격했다.[64] 한국판에서는 한국대학교라고 번역되었다.[65] 국가 공무원 1종 시험 합격 후 자신들이 배정받은 정부기관(경시청, 방위성 등)에서의 지위를 이용해 경시청 시큐리티 폴리스 내부의 내통자 경찰관들이나 전직 자위관 등의 병력들을 포섭 및 동원하여 쿠데타를 벌이려 하고, 시큐리티 폴리스 4과 소속인 주인공이 이 쿠데타를 저지하는 것이 SP 시리즈 극장판 겸 완결편인 "혁명편" 의 메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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