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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aea/스토리/Act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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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1 #===== >벽도 천장도 없이 뼈대가 앙상한 의자와 하얀 촛불만이 남은 교회에서, 검은 옷을 입은 소녀는 또 다른 소녀를 바라보았다. > >그녀의 길고 길었던 그 갈증을 해소해줄, 살과 피로 이루어진 진짜 사람이 드디어 앞에 나타난 것이다. > >하지만 즐겁지 않았다. 얼굴에 드러난 그 미소는, 감출 수 없는 거짓이었다. 그 미소는 마치 하얀 옷을 입은 소녀에게 “만나서 반가워”라 말하는 듯했으나, 그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 >“이름이 뭐니?” 검은 옷의 소녀가 메마른 목소리로 물었다. 예전이었다면, 자기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다. > >“내... 이름? 나도 잘 모르겠어.” 빛나는 소녀가 말했다. “넌 아니? 그, 자기 이름…” > >그녀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 >“그건...” > >이 한마디를 끝으로 말을 흐리며 화려하게 장식된 교회의 벽을 바라볼 뿐이었다. > >하얀 옷의 소녀는 혼란스런 표정을 지었다. >---- >기묘한 해후였다. 검은 옷의 소녀가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무기력함이 하얀 옷의 소녀에게 옮겨가고 있었다. > >갑작스레 불어온 차가운 바람 앞의 불처럼, 그녀의 희망이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 >불편함, 불안함, 걱정이 그 마음을 채웠다. >둘 사이에 무언가 잘못된 공기가 흘렀다. >마치 세계 자체가 이 만남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빛의 소녀에게 말하는 듯했다. > >금이 간 땅 위로 흐트러진 유리 조각들이 마치 이 기묘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 반짝거렸다. > >평소라면 이 유리 조각들은 망설임 없이 두 소녀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행복한 기억”은 하얀 옷의 소녀에게, “불행한 기억”은 검은 옷의 소녀에게. >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유리 조각도 움직이지 않았다. > >수많은 조각들이 소녀들의 주변을 에워싼 채 한 쪽 면으로 텅 빈 교회의 풍경을 비추었다. >하얀 소녀가 조각을 불러보았으나, 그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 >끔찍한 기억과 행복한 기억이 함께 늘어서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안함이 그녀의 마음을 엄습했다. > >아직 자신을 따라오는 조각은 자신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각, 자신을 자유롭게 해준 그 조각 뿐이었다. >---- >하얀 소녀는 그림자 같은 소녀를 쳐다보았다. > >“우리 서로 비슷한 상황이라면...”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 >“같이 다니지 않을래? 그럼 서, 서로 도울 수도 있고... 어쩌면...” > >그러다 말을 멈추었다. 상대가 텅 빈 캔버스 같은 하늘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자신의 말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검은 옷의 소녀는 모든 말을 듣고 있었다. > >“어쩌면.” 검은 소녀가 말했다. 희미하게... 비극 속에서 다시 태어난 뒤로, 그녀의 영혼은 칙칙한 심연과도 같았다. > >그러나, 하얀 소녀의 제안을 듣자 그 심연 안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아주 약하고 희미했지만, 다시 각성한 이후로 그녀의 마음을 계속해서 잠식하던 불만의 장막을 꿰뚫기에 충분했다. >---- >소녀의 마음속에 있던 과거의 조각, 이 세계에 처음 깨어났을 때의 ‘타이리츠’가,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절망감에 대적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번째 기회를 잡고 싶었다. > >하지만 ‘어쩌면’같이 애매한 대답은, 하얀 소녀에게 있어서는 부족했다. 아직 긴장된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 >최근 다시 정신을 차린 소녀, 히카리는 아르케아의 세계가 마냥 예쁘기만 한 장소가 아니며, 안전하지도 않은 장소임을 알고 있었다. > >그럼에도, 두 소녀는, 상황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고, 말을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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