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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aea/스토리/Act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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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Arcaea]][[분류:게임 스토리]] [include(틀:상위 문서, 문서명1=Arcaea/스토리)] [include(틀:스포일러)]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Arcaea/스토리, version=192, uuid=7f2f84be-1172-4b6b-a120-7fe2af1cdd79)]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Arcaea/스토리/Side Story, version=654, uuid=f1ccb718-6d2f-496d-8c2a-19b7c18f32bf)] [include(틀:Arcaea)] [include(틀:Arcaea/스토리)] [목차] == 개요 == [[Arcaea]] 스토리의 Act I: Creation의 첫 번째 파트를 기록한 문서. == Main Story == === Arcaea === [anchor(Story_Arcaea)] ||<-3><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eed,#bbb><rowbgcolor=#eeeeee,#333333> '''[[Arcaea/파트너#히카리|히카리]]/[[Arcaea/파트너#타이리츠|타이리츠]] 스토리 순서''' || ||<|2> [[Arcaea/스토리/Act I-I#Story_Arcaea|Arcaea]][br]{{{-2 Main : 0-1 ~ 0-3}}} ||<|2> → || [[Arcaea/스토리/Act I-I#Story_Hikari|Eternal Core]][br]{{{-2 Main : 1-1 ~ 1-3}}} || || [[Arcaea/스토리/Act I-I#Story_Tairitsu|Eternal Core]][br]{{{-2 Main : 2-1 ~ 2-3}}} || ==== 해금 조건 ==== [anchor(inkar-usi)][anchor(Grimheart)][anchor(Shades of Light in a Transcendent Realm)] ||<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eed,#bbb><rowbgcolor=#eeeeee,#333333> '''스토리 #''' || '''진행 순서''' ||<-3> '''해금 조건''' || || 0-1 || Arcaea-1 ||<|3> [[파일:arcaea_char_unknown_icon.png|width=50]] || [[파일:Arcaea/inkar-usi.jpg|width=50]] ||[[inkar-usi#Arcaea]] 클리어 || || 0-2 || Arcaea-2 || [[파일:Arcaea/Grimheart.jpg|width=50]] ||[[Grimheart#Arcaea]] 클리어 || || 0-3 || Arcaea-3 || [[파일:Arcaea/Shades of Light in a Transcendent Realm.jpg|width=50]] ||[[Shades of Light in a Transcendent Realm#Arcaea]] 클리어 || ==== Arcaea ==== =====# 0-1 #===== >—그리고 그들은 잠에 들었다. > >... >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끝을 맺고,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살아남아 되풀이된다. > >하지만, 글로 쓰이지 않은 이야기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듣지 못하지만, 줄곧 전해지는 이야기들... > >그런 이야기들은, 기억을 통해 전해진다. >---- >기억... > >기억에는 분별이 없다. >한 사람의 기억이든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기억이든 더럽혀지지 않은 채 형태를 이룬다. > >순수하고, 비극적이고,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기억은 그대로 간직한다. 기록은 잊을지라도 기억은 잊지 않는다. > >그렇게 기억으로만 전해진 이야기들,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결국 바스라져 사라져간다. > >그렇게 잊힌 것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 >몰락과 슬픔과 잠깐의 달콤함, 그 모든 걸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 >하지만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고민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 >기억의 보관소는 멈추지 않고 커져간다. >----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 >기억의 보관소에서 몇 줄기의 실이 풀려나왔다. > >두 소녀의 인생에 걸친 운명의 실. > >무채색으로 빛나는, 더럽혀지지 않은 이상. > >빛과 대립의 실... =====# 0-2 #===== >영업이 시작되려면 아직 몇 시간은 남은 카페에, 한 소녀가 굽은 등을 하고 앉아있다. > >잔에서 올라오는 김에 유리창이 뿌옇게 서린다. 아침의 차가운 공기가... > >포착되었다. > >한 남자가 검을 뽑는다. 그 눈에는 불타는 마을이 비춰지고 있다. 불을 붙인 장본인인 산적들이 등 뒤에서 웃으며 남자를 쳐다본다.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남자는 뒤로 돌아 검을 치켜올려... > >꿰메였다. > >엘레멘툼을 공부하는 학생이 빛과 불을 엮어 웃긴 장면을 엮어낸다. > >고양이와 개의 귀를 한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웃는다. 그 장면은 또 다른 친구가 실수로... > >결정화되었다. >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기억들이 결정화되었다. 수백, 수천개의... >---- >수천개의 기억 조각들이 끝나지 않는 낮의 하늘을 수놓는다. > >공중을 가로지르는 빛의 바람. 조각의 강. > >이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이 어떤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법칙 따위 없이 무작위하게 날아다니는 걸지도 모른다. > >어떤 조각들은 다른 조각들과는 달리 한 곳에 줄곧 머물러 있거나,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움직인다. 어느 쪽이든, 이 세계를 정의하는 것은 "유리"다. > >하늘에 자리잡은 것은 오로지 구름. 그 위로부터 비치는 빛이 모든 것에 내려앉는다.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 >눈이 부시다. 억지로 만들어 지나치게 밝은 미소처럼. > >그 밑으로는 대지가 펼쳐져 있다. 절반은 텅 빈 평원이며, 나머지 절반은 끝없는 구조물과 산맥이 차지하고 있다. > >무채색의 구조물, 무채색의 땅, 이것들은 어째서 존재하는가? >---- >“장소”는 기억과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닌가? > >눈물을 흘린 장소, 손을 잡았던 장소... > >그대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 >하지만... 이 탑과 벽, 이 건물과 성들은 기억을 기념하기 위해서만 세워진 것들이 아니다. > >이것들에 그런 시적인 낭만은 없다. >분명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긴 하나, 그건 전혀 심오한 것이 아니다. > >존재 이유 그 자체... > >그대가 생각하고 느끼기 위해 필요한, 너무나도 단순한 무언가... =====# 0-3 #===== >[[파일:arcaea/story/0-3.jpg]] >---- >또 하나의 이야기, 두 소녀의 이야기, 살아가기 위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 >인생을 이끌어주는 이정표 따윈 없다. 삶이 있을 뿐이다. > >삶이란 눈부시게 아름다우며, 험하고 가혹하다... > >그것만큼은, 두 소녀가 동감했다. > >너무나 아름다운 것을 보고 소리높여 울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 >억울함에 눈물을 흘려본 경험은 분명 있으리라. > >눈을 떴을 때, 그대는 노력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가는 것만으로 만족할 것인가? > >세상이, 그대를 행복해지도록 내버려둘까? >----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 >공중을 떠다니는 기억의 조각들. >행복한 기억과 불행한 기억들이, 희망에 찬 두 소녀들에게 이끌린다. >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가 어떻게 풀려나갈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 >그대를 둘러싼 기억의 풍경들. > >미래의 가능성이 아닌, 이미 일어난 사건을 비추는 무한한 세계들의 풍경이다. > >일어서서 응시하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라. > >그대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머나먼 장소에서부터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온 세상에 메아리쳤다. > >그리고 그들은 잠에 들었다. > >한 소녀는 무너진 벽에서, 또다른 소녀는 무너진 탑에서, 그들은 고요한 잠에 빠져들었다. > >하지만 이제는 깨어날 시간이다. > >드물게 드리우는 그림자가 백색의 소녀를 감쌌다. > >역설적이게도 밝은 빛이 흑색의 소녀를 비추었다. > >소녀들의 눈이 서서히 뜨였다. >---- >... > >빛과 대립의 이야기... > >그대는 알고 있나? > >이 기억은 감정이 뿌린 씨앗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 >소중한 기억과 미움받는 기억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 >시간과 같이 계속해 행진한다는 것을. > >축복받은 존재와 저주받은 존재의 뒤틀린 운명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 >그리고, 결국은 잊혀지리라. === 히카리 === [anchor(Story_Hikari)] ||<-7><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eed><rowbgcolor=#fffdec,#332d00> '''[[Arcaea/파트너#히카리|히카리]] 스토리 순서''' || || [[Arcaea/스토리/Act I-I#Arcaea|Arcaea]][br]{{{-2 Main : 0-1 ~ 0-3}}} || → || [[Arcaea/스토리/Act I-I#Story_Hikari|Eternal Core]][br]{{{-2 Main : 1-1 ~ 1-3}}} || → || [[Arcaea/스토리/Act I-I#Story_Hikari|Luminous Sky]][br]{{{-2 Main : 1-4 ~ 1-8}}} || → || [[Arcaea/스토리/Act I-I#Story_Prelude|Adverse Prelude]][br]{{{-2 Main : V-0 ~ V-4}}} || ==== 해금 조건 ==== [anchor(Lumia)][anchor(memoryfactory.lzh)][anchor(PRAGMATISM)][anchor(九番目の迷路)][anchor(Halcyon)][anchor(Ether Strike)][anchor(Fracture Ray)] ||<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eed><rowbgcolor=#fffdec,#332d00> '''스토리 #''' || '''진행 순서''' ||<-3> '''해금 조건''' || || 1-1 || Eternal-1 ||<|5> [[파일:arcaea_hikari_icon_new.png|width=50]] || [[파일:arcaea_lumia_base.jpg|width=50]] ||[[Arcaea/파트너#히카리|히카리]]로 [[Lumia#Arcaea]] 클리어 || || 1-2 || Eternal-2 || [[파일:arcaea_memoryfactory_base_256.jpg|width=50]] ||[[Arcaea/파트너#히카리|히카리]]로 [[memoryfactory.lzh#Arcaea]] 클리어 || || 1-3 || Eternal-3 || [[파일:Arcaea/PRAGMATISM.png|width=50]] ||[[Arcaea/파트너#히카리|히카리]]로 [[PRAGMATISM#Arcaea]] 클리어 || || 1-4 || Luminous-1 || [[파일:Maze_No.9.png|width=50]] ||[[Arcaea/파트너#히카리|히카리]]로 [[九番目の迷路#Arcaea|Maze No. 9]] 클리어 || || 1-5 || Luminous-2 || [[파일:Arcaea/Halcyon.png|width=50]] ||[[Arcaea/파트너#히카리|히카리]]로 [[Halcyon/리듬 게임 수록#Arcaea|Halcyon]] 클리어 || || 1-ZR ||<|2> Luminous-3 ||<|2>[[파일:zero_hikari_icon.png|width=50]] || [[파일:Arcaea/Ether Strike.jpg|width=50]] ||[[Arcaea/파트너#Zero - Ether Strike|히카리,,Zero,,]]로 [[Ether Strike#Arcaea]] 클리어 || || 1-7 ||<|3> [[파일:arcaea_jacket_locked_fractureray.jpg|width=50]] ||[[Arcaea/수록곡#lum|Luminous Sky]]의 [[Fracture Ray#Arcaea|Anomaly곡]] 해금 || || 1-8 || Luminous-4 || [[파일:arcaea_hikari_icon_new.png|width=50]] ||[[Arcaea/파트너#히카리|히카리]]로 [[Arcaea/수록곡#lum|Luminous Sky]]의 [[Fracture Ray#Arcaea|Anomaly곡]] 클리어 || || 1-9 || Luminous-5 ||<|2> [[파일:fracture_hikari_icon.png|width=50]] ||[[Arcaea/파트너#Fracture - Fracture Ray|히카리,,Fracture,,]]로 [[Arcaea/수록곡#lum|Luminous Sky]]의 [[Fracture Ray#Arcaea|Anomaly곡]] 클리어 || || V-0 || Luminous-6 || [[파일:Arcaea/Grievous Lady/Locked.jpg|width=50]] ||[[Arcaea/파트너#Fracture - Fracture Ray|히카리,,Fracture,,]]로 [[Arcaea/수록곡#vic|Vicious Labyrinth]]의 [[Grievous Lady#Arcaea|Anomaly곡]] 클리어 || ==== Eternal Core ==== =====# 1-1 #===== >[[파일:Arcaea/Story/1-1.jpg]] >---- >소녀가 깨어나자마자 그 눈앞에 보인 것은 유리로 된 나비의 무리였다. > >‘너무 예쁘게 날아다닌다. 줄에 달려 떠있는 걸까?’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 >무릎 꿇고 앉아 드레스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유리 나비들을 바라보았다. > >알고 보니 이것들은 나비가 아니라 유리 조각이었으며, 놀랍게도 스스로 떠다니고 있었다. > >“아름다워라!” 소녀는 느낀 대로 외쳤다. > >유리 조각은 지금 소녀가 보고 있는 이 새하얀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 >바다, 도시, 화염, 불빛이 차례대로 보였다. >소녀는 손을 뻗어 조각들을 흐트러뜨리며 즐겁게 웃었다. > >소녀는 이 유리 조각들에 “아르케아”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아직 몰랐다. > >사실,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조각들은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웠으니까. > >조각들을 만지고, 휘두르고, 바라보며 즐겼다. 그거면 충분했다. >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언제, 왜, 어떻게. > >그녀는 이 중 그 무엇도 묻지 않았다. >아르케아의 빛을 쐬고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웠다. > >새로운 세계와 소녀는, 그렇게 만났다. =====# 1-2 #===== >하지만 이윽고 의문은 찾아왔다. > >소녀는 유리 조각의 소용돌이 가운데에 서서 자신에게 물었다. > >“이 조각들의 정체는 대체 뭘까?” >어디론가 통하는 관문일까? 창문일까? 아니면 기억일까? > >기억. 마지막으로 떠오른 그 단어가 뇌리를 스쳐 소녀는 그게 답이라고 느꼈다. > >“기억이구나.”라고 조용히 속삭였고, 그렇게 의문은 끝났다. > >어째선지 이 장소는 기억들로 가득했다. 어떤 사람의 기억인지는 알 수 없었다. > >하지만 소녀는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다. >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리 조각들은 소녀를 따라다녔다. >손에 잡히진 않았지만, 조각들은 그녀의 곁을 벗어나지 않았다. > >소녀는 조각을 수집해보기로 했다. > >한 조각, 또 한 조각씩.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 1-3 #===== >소녀에겐 시계가 없었으므로, 자기가 며칠, 몇 시간을 걸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단 하나, 알게 된 것이 있었다. > >기억은 아름답다는 것, 그것만은 확실하였다. 기억이란 정확하지 않고 시간에 따라 변질되기도 한다. > >그러나 동시에 기억은 과거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생생한 방법이기도 하다. 달콤한 기억이든 씁쓸한 기억이든, 소녀는 기억에게서 큰 매력을 느꼈다. > >소녀는 이 세계와는 다른 장소와 사람들을 비추는 기억들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을 즐기기로 했다. > >이 낯설고 삭막한 세상에서 아르케아는 반짝거리며 빛날 뿐만 아니라, 즐거운 기억을 보여준다. >소녀가 아르케아를 좋아하게 되기란 시간문제였다. > >콧노래를 부르며 손을 하늘 높이 뻗은 채, 소녀가 온 세계의 기억을 데리고 부서진 길을 걸어갔다. > >추하고, 아름다운 세계의 기억들을 데리고서... > >“즐거워라...” >소녀가 숨을 내뱉고 미소를 지었다. 평온하다. 어쩌면 지나치게 평온할지도 모른다. > >하지만 근심 따위는 없었다. > >이 단순하고 행복한 세계는 계속해서 단순하고 행복하게 있기만 하면 된다. > >다만 그뿐이다. ==== Luminous Sky ==== =====# 1-4 #===== >행복한 풍경. 오랜 시간 동안 소녀는 이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것들을 찾고 감상했다. > >오랜 시간 동안 그녀가 이끌고 다니던 유리 조각의 무리는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이 되어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 >저 휘황찬란한 하늘은 언제나 반짝거리며 그녀의 곁을 지켰다. 소녀의 주변엔 즐거움과 행복만이 가득해, 세계가 마치 천국과도 같았다. > >소녀는 한때 저택으로 이어졌을 나선 계단을 깡충거리며 내려갔다. 저택의 벽은 모두 무너져 기억의 조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소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였다. > >그녀가 뛰어올라 기억의 조각들을 흩뜨리자 아르케아는 공중으로 떠올라 하늘과 하나가 되었다. > >소녀는 그것들이 발하는 빛을 온몸으로 쐬며 즐겼다. 황홀했다. 기운찬 웃음이 나왔다. >---- >꽃, 입맞춤, 사랑, 탄생의 기억들. > >강처럼 흐르는 유리의 조각들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광경을 소녀의 눈에 비춘 후 다른 조각들과 하나가 되었다. 수없이 본 광경이지만 질리지 않았다. > >소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유리 조각들이 하늘에 스며들어 가자, 그 빛깔은 더욱 생생해졌다. 만족하며 미소를 짓고 길을 나섰다. 언제나 그랬듯, 행동의 결과 따위는 마음에 두지 않은 채로. =====# 1-5 #=====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소녀는 그 말을 몰랐거나, 알아도 신경쓰지 않았다. > >소녀는 한때 공연장이던 곳에 도착했다. 이 장소는 어떤 거대한 힘의 작용인지 완벽하게 두 쪽으로 나누어져 있어 예전에 지녔을 장엄함은 온데간데없었다. > >이 예술의 무덤에도 기억의 조각이 떠다니고 있었다. > >춤의 기억, 공연의 기억, 희망의 기억, 승리의 기억. > >소녀의 입이 움찔거렸다. 지루해진 걸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 >그녀가 손을 들자 아르케아가 모여들어 부드럽게 손바닥 위와 손가락 사이로 흘렀다. 무심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 >은퇴하는 악단의 마지막 외침을 들은 게 몇 번째지? 형제가 기쁨에 얼싸안는 모습을 본 건? 사랑을 너무나 많이 봐버린 소녀는, 잊힌 옛 세계에선 사랑은 당연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기억을 놓아주면서도 소녀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 >조각들이 공중으로 솟아올라 소녀가 만든 하늘에 합류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처음 조각을 모으기 시작할 때보다 훨씬 밝아졌다. 날이면 날마다, 점점 밝아지는 듯했다... > >여태까지 며칠이 지난 거지? 소녀는 그 생각에 표정을 찡그렸다가 고개를 휘저었다. > >조각을 더 모으면 된다. 그러면 이 공허함이 채워질 것이다. > >소녀는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고 다시 여행을 떠났다. > >뒤를 따라오는 아르케아를 떨쳐낼 수 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는 자기 자신을 애써 무시한 채로. =====# 1-ZR #===== >[[파일:Arcaea/Story/1-ZR.jpg]] >---- >“천국” 또한 일종의 지옥인 것일까. > >게으른 평화와 무질서한 쾌락의 대가는 열정의 죽음이다. > >무한히 행복함만을 경험한다면, 이윽고 행복과 평범함 사이의 경계가 흐려져 무엇이 행복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고, 행복해질 목적조차 잃게 된다. > >이제 그 무엇도 목적이나 의미가 없었다. 소녀에게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들이다. > >하늘이 눈이 멀 정도로 밝았다. > >소녀는 자기가 걷는지 멈춰있는지조차 몰랐다. > >안다고 한들 아무 의미 없었다. 그녀의 모든 신경은 자신이 만든 하늘에 쏠려있었다. 그러나 저 하늘을 이루는 각자의 기억은 구분해낼 수 없었다. > >흐릿하게 일렁이는 아지랑이 사이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 >정신이 마모되어가는 소녀는 주변이 점점 종말로 침식되어가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숨막힐 정도로 행복으로 가득찬 새장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 >소녀에게는 이에 절망할 자아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 >하늘이 밝아질수록 소녀의 정신은 더욱 세차게 무너져내렸다. >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소녀는 기도하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광휘와 행복, 그리고 아름다움이 펼쳐진 하늘. > >그곳에서 찬란히 빛나는 기억이 내려와 그녀를 덮쳤다. > >소녀의 정신이 새하얀 백지가 되었다. > >아무 의미 없이, 빛이 씻겨져 사라졌다.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이 지났다. >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녀. 영혼을 잃어버린 채, 그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 1-7 #===== >소녀는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이윽고 소녀의 창조물은 그녀를 망각의 빛으로 집어삼킬 것이다. > >머리 위에서 저것이 보고 있기에 고통스러운 부드러운 빛을 발하며 박동했다. 마음을 잃은 소녀는 창조물이 자신을 삼키도록 두었다. > >그 순간, 드넓은 공허에 등장한 무언가가 소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 >주변과 확실히 구별되는 이질적인 형태가 시선을 순식간에 잡아챘다. 단 한 개의, 아주 특별한 유리 조각. 그 옅은 붉은색은 다른 조각들과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 >현실인지, 소녀의 정신이 보여주는 환상인지 확실치 않지만, 그 강렬한 빛에 주변의 색이 바래는 듯했다. > >소녀가 생각했다. 세상의 색이 점점 진해졌다. > >소녀가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동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 >소녀의 하늘이 일렁이며 뒤틀리더니 곧 표면에 금이 생겼다. > >이 세상을 덮은 하늘이 단 하나의 새롭게 생겨난 기억을 중심으로 일그러지며 소용돌이쳤다. > >존재해서는 안 되는 기억, 저 기억이 창조물로부터 벗어나자, 하늘이 무너졌다. >---- >격렬하면서도 고요하게, 하늘이 무너져내리며 반짝이는 빛으로 공간을 채웠다. > >실로 장관이었으나, 소녀의 시선은 붉은 조각에만 꽂혀있었다. > >조각은 행복한 기억의 비를 뚫고 소녀의 손으로 사뿐히 내려왔다. > >이것 또한 행복한 기억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소녀 자신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 >“내가 언제 이런...” > >오랜 시간 말을 하지 않은 탓에 목소리가 갈라져있었다. > >그녀의 손에 내려앉은 것은 영(0)으로부터 태어났던 기억의 조각. 그것에 비치는 것은 소녀가 일어났을 때의 기억, 유리 조각들 사이에서 춤을 추던 기억, 유리의 세계를 여행하던 기억, 행복 그 자체의 기억이었다. >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 >소녀는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행복을 다시 찾아냈다. =====# 1-8 #===== >[[파일:Arcaea/Story/1-8.jpg]] >---- >유리의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지며 한때 존재했던 세계의 모습을 비추었다. >그 중심에 서있는 소녀는 새로운 기억, 지금 존재하는 세계의 기억을 보고 있다. >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하지만 소녀는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 >그녀의 정신은 아직 회복 중이었고, 자신이 여태껏 해온 일이 허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으며, 열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 >조각은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했던 소녀가 자신이 파놓은 함정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아를 잃으리라는 결말을 알면서도, 소녀는 또다시 행복해지기 위해 여행을 나설까? > >조각 속에 비치고 있는 붉은 옷은 지금 소녀가 입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녀는 조각을 꽉 쥐어 붉은 선혈로 조각을 적셨다. >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흐려지고, 반짝이는 표면에는 온기가 흐른다. 소녀는 이전보다 더욱 격렬한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은 너무나도 강한 후회였다. >---- >조각 속 소녀는 자신감 있게, 그러나 아무 의미 없이 여정을 계속했다. 아르케아를 모아 아름다움을 즐기며 목적 따윈 생각하지 않았다. > >스스로 만든 눈부신 감옥에 갇혀 괴로울 정도로 지루한 쾌락의 삶을 살았다. 그 행위에 아무런 의미는 없었다. 그 때문에 소녀는 자아를 잃을 뻔했다. > >왜 그랬는지, 소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행복해지기 위함은 아니었다. 소녀는 무릎을 꿇고 기억을 가슴에 꼭 안은 채 목이 메도록 울었다. 자신이 저지른 과실의 무게를 이제야 깨달았다. > >너무나 많은 사랑과 생명으로 자신을 감싼 탓에 그것들을 혐오하게 되었다. 그 사실이 슬펐다. > >소녀는 비탄에 잠겨 울었다. 울며 열심히 생각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그리고 이 세계의 의미에 대해. =====# 1-9 #===== >침묵이 세상을 메웠다. > >이따금씩 옛 세계의 조각이 떨어져 이 침묵을 깼다. 다행히도 괴로움은 멎어들었다. 소녀는 더이상 울지 않았다. > >그저 반짝이는 유리 조각들 사이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 >눈물이 말라 뺨에 자국을 만들었고, 손에 흐르던 피도 말라 있었다. > >두려움, 걱정, 후회는 끝났다. 이제 앞으로 나아갈 때였다. >그녀는 무지한 탓에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다. > >“행복한 기억은 많을수록 좋다”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하늘을 좋은 기억으로 뒤덮었다. > >이 조각들이 한곳에 모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소녀는 이제서야 창조물이 자신을 집어삼키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소녀가 계속해서 나아가려면, 목적이 필요했다. >---- >예전에 잊어버린 질문의 답을 찾아야 했다. 이 세계엔 무슨 의미가 있으며, 자신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 >왜 행복한 기억들은 자신 주위로 모이면서, 괴로운 기억들은 도망칠까? 나는 누구일까? > >소녀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비틀거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소녀가 움직이자 주변의 아르케아도 함께 움직였다. > >소녀는 그 유리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손을 들어 올리자 아르케아가 손을 따라왔다. 무언가 다르다. 아르케아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무언가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 >이제 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아르케아는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새장에 갇힐 일은 없을 것이다. 소녀는 피에 젖은 손으로 마른 눈물을 닦았다. > >그리고 자아를 되돌려준 기억의 조각들이 뒤를 따라오도록 했다. > >과거의 모습은 기억으로 묻어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 기묘한 세상과 마주하리라. > >그리고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세상의 의미를 찾아내리라. > >소녀는 그렇게 맹세했다. 그렇게 확신했다. === 타이리츠 === [anchor(Story_Tairitsu)] ||<-7><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213><rowbgcolor=#435> {{{#fff '''[[Arcaea/파트너#타이리츠|{{{#bbf 타이리츠}}}]] 스토리 순서'''}}} || || [[Arcaea/스토리/Act I-I#Arcaea|Arcaea]][br]{{{-2 Main : 0-1 ~ 0-3}}} || → || [[Arcaea/스토리/Act I-I#Story_Tairitsu|Eternal Core]][br]{{{-2 Main : 2-1 ~ 2-3}}} || → || [[Arcaea/스토리/Act I-I#Story_Tairitsu|Vicious Labyrinth]][br]{{{-2 Main : 2-4 ~ 2-8}}} || → || [[Arcaea/스토리/Act I-I#Story_Prelude|Adverse Prelude]][br]{{{-2 Main : V-0 ~ V-4}}} || ==== 해금 조건 ==== [anchor(cry of viyella)][anchor(Essence of Twilight)][anchor(Sheriruth)][anchor(Iconoclast)][anchor(conflict)][anchor(Axium Crisis)][anchor(Grievous Lady)] ||<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213><rowbgcolor=#435> '''{{{#fff 스토리 #}}}''' || '''{{{#fff 진행 순서}}}''' ||<-3> '''{{{#fff 해금 조건}}}''' || || 2-1 || Eternal-1 ||<|5> [[파일:Tairitsu_icon_new.png|width=50]] || [[파일:cryofviyella.jpg|width=50]] ||[[Arcaea/파트너#타이리츠|타이리츠]]로 [[cry of viyella#Arcaea]] 클리어 || || 2-2 || Eternal-2 || [[파일:Arcaea/Essence of Twilight.jpg|width=50]] ||[[Arcaea/파트너#타이리츠|타이리츠]]로 [[Essence of Twilight#Arcaea]] 클리어 || || 2-3 || Eternal-3 || [[파일:Sheriruth_art.png|width=50]] ||[[Arcaea/파트너#타이리츠|타이리츠]]로 [[Sheriruth]] 클리어 || || 2-4 || Vicious-1 || [[파일:Arcaea/Iconoclast.jpg|width=50]] ||[[Arcaea/파트너#타이리츠|타이리츠]]로 [[Iconoclast#Arcaea]] 클리어 || || 2-5 || Vicious-2 || [[파일:Arcaea/conflict.jpg|width=50]] ||[[Arcaea/파트너#타이리츠|타이리츠]]로 [[conflict/리듬 게임 수록/모바일 게임#Arcaea|conflict]] 클리어 || || 2-D ||<|2> Vicious-3 ||[[파일:Arcaea_char_6_icon.png|width=50]] || [[파일:Arcaea/Axium Crisis.jpg|width=50]] ||[[Arcaea/파트너#Axium - Axium Crisis|타이리츠,,Axium,,]]으로 [[Axium Crisis#Arcaea]] 클리어 || || 2-7 ||<|2> [[파일:Tairitsu_icon_new.png|width=50]] ||<|4> [[파일:Arcaea/Grievous Lady/Locked.jpg|width=50]] ||[[Arcaea/수록곡#vic|Vicious Labyrinth]]의 [[Grievous Lady#Arcaea|Anomaly곡]] 해금 || || 2-8 || Vicious-4 ||[[Arcaea/파트너#타이리츠|타이리츠]]로 [[Arcaea/수록곡#vic|Vicious Labyrinth]]의 [[Grievous Lady#Arcaea|Anomaly곡]] 클리어 || || 2-9 || Vicious-5 || [[파일:Arcaea_char_7_icon.png|width=50]] ||[[Arcaea/파트너#Grievous Lady|타이리츠,,Grievous Lady,,]]로 [[Arcaea/수록곡#vic|Vicious Labyrinth]]의 [[Grievous Lady#Arcaea|Anomaly곡]] 클리어 || || V-0 || Vicious-6 || [[파일:fracture_hikari_icon.png|width=50]] ||[[Arcaea/파트너#Fracture - Fracture Ray|히카리,,Fracture,,]]로 [[Arcaea/수록곡#vic|Vicious Labyrinth]]의 [[Grievous Lady#Arcaea|Anomaly곡]] 클리어 || ==== Eternal Core ==== =====# 2-1 #===== >[[파일:Arcaea/Story/2-1.jpg]] >---- >소녀가 무너진 탑에서 깨어나자마자 눈앞에 보인 것은 떠다니는 유리 조각들이었다. > >조각들은 그녀를 탑 밖으로, 새하얀 세계로 인도하였다. > >하얀색, 또다시 하얀색, 그리고 유리 조각으로 가득한 세계가 펼쳐졌다. 조각들은 소녀에게 이끌리는 모양이었다. > >호기심이 동한 그녀는 조각들을 세심히 관찰하였다. > >조각은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달리는 기차의 창문으로 보는 바깥 풍경과 같았다. > >한순간은 비, 또 다른 순간은 햇살, 그리고 죽음⋯ 소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러났다. > >조각들은 소녀를 따라왔으나, 손을 뻗어 조각을 깨부수려 하면 도망치듯 물러났다. > >소녀가 찡그린 표정 그대로 창백한 하늘을 바라보자, 이윽고 자신도 모르게 그 표정이 풀어졌다. > >입을 벌렸으나. 놀란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 >유리다. 머리 위로 격렬히 움직이며 반짝이는 저것은 유리의 폭풍이다. > >소녀는 하늘을 바라본 것을 후회했다. 폭풍이 그녀를 맞이하려는 듯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2-2 #===== >소녀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 > >유리 조각들은 깨지지도, 살을 베지도, 얼굴을 비추지도 않고 그저 강렬한 바람에 실린 듯 재빠르게 휘몰아치고 있을 뿐이었다. > >그녀는 자세를 바로잡고 서서 소용돌이를 자세히 관찰했다. > >이것들은... 기억...? 추악한 세계의 기억... > >“이게 뭐야...?!“ 소녀가 손을 뻗었다. “이건⋯!” > >고통, 배신, 질투의 기억. > >손을 뻗자 한 조각이 멈춰서고, 다른 조각들도 따라서 공중에 뜬 채 그대로 멈추었다. > >주변을 둘러보았다. > >“전부...” > >어둡다. 어두운 기억뿐이다. 이 조각들이 비추는 장소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조그마한 불빛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질 뿐인, 빛이 없는 풍경이었다. > >소녀는 입술을 깨물고 허탈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 >“이게 무슨 장난이지? 비극으로만 가득 찬 세상이라니...” > >그 말을 속삭인 후엔, 그 얼굴에선 쓴웃음마저 사라졌다. =====# 2-3 #===== >소녀에겐 시계가 없었으므로, 기억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 후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 >매우 긴 시간이 지난 것만은 확실했다. > >그녀가 찾는 것은 행복한 기억이었다. 그 존재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 >결국 몇 개를 발견하기는 했으나, 자신을 사냥개처럼 쫓아오는 것은 비참한 기억들뿐이었다. > >소녀는 그 기억들이 비추는 세계를 혐오하였다. > >소녀는 마치 우주와 같은 풍경, 유리 조각의 소용돌이 그 중심에 서서 두 가지 가능성을 고려했다. > >하나, 이 조각들이 보여주는 세계, 또는 세계들이 그 자체로 끔찍한 곳이다. > >둘, 비참한 기억만이 자신을 따라오고 있으므로, 그 말인즉... > >어느 쪽이 정답이든, 그녀는 기억의 조각들을 없애버리기로 했다. > >소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변했다. > >그녀는 어두운 기억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고선, 즐거워하며 그 조각들을 모았다. > >“이 쓰레기 같은 기억들을 지울 수 있다면, 이 기억들이 비추는 장소들마저도 없애버릴 수 있다면...” > >혼돈, 그리고 조금의 빛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들을 없앨 수 있다면, > >그녀는 기뻐하며 그리 할 것이다. ==== Vicious Labyrinth ==== =====# 2-4 #=====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시점, 소녀는 자신감으로 차 있었다. > >유리와 거울의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을 모았다. > >목도리처럼 목 주변에 두른 유리 조각의 덩어리가 끝없이 길게 늘어져 살랑거렸다. > >소녀는 폐허가 된 탑 위에 서서 미소를 지은 채 먼 곳을 내다보았다. >등 뒤로 늘어진 끔찍한 기억의 조각들이 늘어져 위협하듯 움찔댔다. > >소녀는 쭉 신경 쓰였지만 직접 가보려고 하지는 않았던 장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궁처럼 보이는 건물이 하늘과 이어진 듯한 기형적인 형태의 구조물이었다. > >당연하지만, 저 미궁 또한 이 세계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 >또 당연하지만, 그녀는 미궁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추악함이 자신이 있는 곳까지 닿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아직 자세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소녀는 자기를 따라오는 유리 조각들을 모두 없애버릴 심산이었다. 조각들을 모으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이었다. > >지금은 적어도 이 추악한 기억들을 모두 한곳에 모아두었다는 데에서 안도했다. 이것들을 없애버릴 때가 왔을 때 일이 훨씬 쉬워질 테니까. 미궁은 그녀가 보아온 어느 것보다 특출나게 추했다. 소녀는 반드시 이 미궁의 조각들도 손에 넣으리라 결심했다. > >미궁 주변의 땅은 아름다운 기억들이 바다처럼 파도치며 반짝이는 곳이었다. 조금 전진하자, 그 바다가 갈라지고 조각 몇 개가 목도리로 섞여 들어왔다. > >소녀가 아름다운 기억들의 조각을 치우며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망설임이 마음속에서 피어났다. 그녀의 뒤를 따라오는 것은 절망,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은 희망. 입술을 깨물었다. 결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 2-5 #===== >모든 게 다 좋았던 시절도 있었으리라. > >소녀에겐 본인의 기억이 없었다. 유리의 세계에서 깨어난 후 다른 세계에 사는 다른 사람의 기억들을 본 것이 전부다. > >결국, 소녀는 조각에 비추어지는 기억을 비롯해 이 세계의 어떤 것에도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 생각이 흔들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 >추악함과 비극, 눈물과 고통, 그 사이의 작은 미소, 그리고 죽음의 기억들... > >모든 게 무가치하다. > >소녀가 처음 이 순수한 행복의 바다에 발을 들였을 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 >악으로 물든 생활을 너무 오래 지속한 나머지 단순한 선의 존재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완전히 압도되어 있었다. > >저 울퉁불퉁한 미궁의 입구를 향해 전진하며 희망의 빛에 시선이 사로잡힐 때마다, 멈추어 서서 자신이 아는 모든 것에 의문을 던졌다. > >알고 싶지 않았던 답이, 이 빛과 혼돈에 파묻혀 있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 >소녀의 생각이 답에 도달하기도 전에, 소녀는 기형적인 미궁의 입구에 도착했다. > >그녀는 아름다운 기억 조각의 무리를 향해 충동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중 꽃으로 만연한 초원을 비추는 기억들이 소녀를 에워싸며 따라왔다. > >어째서 그랬는지, 이 조각들이 자신을 구원 해줄 것인지, >그 답은 소녀 자신조차도 몰랐다. =====# 2-D #===== >[[파일:Arcaea/Story/2-D.jpg]] >---- >소녀에겐 자신도 모르는 이름이 있었다. >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면 이 칠흑 같은 미궁까지 올 일은 없었을 것이며, 지금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의혹은 어쩌면 더욱 커졌으리라. > >하지만 그 이름을 몰랐기에, 소녀는 어금니를 깨물며 결심을 되새겼다. 자신을 둘러싼 빛도, 주변을 맴도는 꽃으로 가득한 초원의 풍경의 소용돌이도, 그녀를 망설이게 할 순 없었다. > >소녀는 미궁으로 들어가 보이는 모든 것을 산산이 파괴하기 시작했다. > >비극으로 울부짖는 벽, 공포로 가득 찬 천장, 그리고 두려움에 젖은 모서리. > >소녀는 모든 것을 뜯어냈다. 이곳은 악으로 세워진 성채. 괴기한, 너무나도 괴기한 장소였다. > >소녀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미궁의 벽을 오르고, 복도를 가로질렀다. > >애초에 소녀가 지금의 결단을 내리게 한 것이 바로 이 미궁과 같은 역겨운 구조물이었다. 자신이 옳았다. 유리 조각과 거울은 사라져야만 한다. >---- >한창 소녀가 미궁을 무너뜨리는 와중, 그 미소가 뒤틀렸다.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 >이 미궁의 중심에, 그녀가 여태껏 보아왔던 그 어떤 기억보다 훨씬 끔찍한 “무언가”가 있었다. > >그것이 소녀를 부르고 있었다. > >몸을 채우던 광기와 같은 열정이 바닥을 드러내어 행동이 느려지기 시작한 소녀의 앞에 한 기억의 조각이 나타났다. > >세상의 끝을 비추는 조각이었다. > >소녀는 조각 안의 세계를 응시하며, 아래에 널려있는 아름다운 세계의 기억과 아직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꽃밭 풍경의 조각들을 떠올렸다. > >천장이 뜯겨나간 미궁의 벽들이 주변에 쓰러져 있었다. 검은 유리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저 멀리서 아름다운 기억들이 반짝였다. > >소녀는 손가락 사이로 종말의 세계를 훔쳐보았다. 침을 삼키고 결의를 다지며, 소녀는 손을 얼굴에서 떼어내 뻗어 그 조각을 가져왔다. > >미궁의 폐허를 바라보며 소녀는 강렬한 희열을 느꼈다. 앞으로 볼 기억들이 얼마나 끔찍하든 이에 비견할 수는 없으리라. 나는 강해졌다. 모두 부숴버릴 것이다. 그렇게 확신했다. > >그리고 소녀는, 꾸밈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 지친 웃음을 뱉으며 하늘에서 탑과 함께 강림했다. > >온몸에서 힘이 흘러넘치는 소녀는 마치 영웅과 같은 결의를 지니 채, 미궁의 폐허로 만들어진 탑을 뒤로 하고, 앞으로 행진하였다. =====# 2-7 #===== >소녀의 심장에 갑작스러운 통증이 찾아왔다. > >뒷걸음치며 입을 가렸다. 당혹감에 눈이 크게 뜨였다. >거대하고 추악한 미궁의 탑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녀가 완전히 쓰러지기도 전에 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슬픈 나날의 기억들이 소녀의 주변으로 모여 망토처럼 그녀를 감쌌다. 가랑비처럼 느리게 내리던 유리 조각의 비는 거세져서 폭우가 되었다. > >소녀와 함께 탑이 쓰러지고 있었다. 이렇게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음에도 소녀가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니라 혼란뿐이었다. > >행복한 세계의 기억이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땅으로 소녀는 엎어졌다. 탑이 무너지며 그 바다에 커다란 파도를 가져왔다. > >유리 조각들이 서로 부딪치며 아름답지만 동시에 추한 광경을 자아냈다. 그 폭풍 한가운데에, 소녀는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앉았다. >---- >갑작스러운 고통. 혼란스러웠다. 모든 게 아팠다. >심장이 터질 듯했다. > >여태껏 모아온 기억들로 이루어진 망토는 기괴한 구체가 되어 소녀를 둘러쌌다. > >새하얀 세계가 사라지고 끔찍한 기억들만이 소녀의 시야를 채웠다. 소녀는 거친 숨을 내쉬며, 벌벌 떠는 몸을 가까스로 세워 유리 조각, 아르케아를 응시했다. >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서져 내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또한 자신의 이성이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일전에 보았던 종말의 세계가 서서히 그녀의 시야를 채우기 시작했다. =====# 2-8 #===== >[[파일:Arcaea/Story/2-8.jpg]] >---- >소녀는 이 새하얀 폐허의 세계에서 깨어난 뒤로부터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보통은 분노였으나, 그녀에겐 그 분노를 기묘한 형태의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 있었다. >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저 이 걸음의 끝에 무언가 좋은 게 있겠거니, 하는 막연한 믿음 하나로 그녀는 여기까지 왔다. > >그런 희망이 있었다. 이 혼돈이 결국 빛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었다. 자신이 겪는 이 모든 고통과 공포가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지리라 믿었다. > >그렇기에, 감정에 휘둘리기 쉬웠던 소녀는 이 세계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과 마주했을 때, 고통에 몸부림쳤다. > >가장 끔찍한 운명이란 희망이 눈앞에서 부서지는 광경을 보는 것이다. > >소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을 둘러싼 죽음의 조각들과 함께 세상의 끝을 바라보았다. > >그녀가 슬픔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 슬픔은 빠르게 절망으로 바뀌었다. > >아르케아의 세계엔 의미가 없다. 이곳은 이미 사라진 세상의 모조품일 뿐이었다. >아르케아의 세계엔 본질이 없다. 그 본질을 비추는 거울만이 있을 뿐이었다. > >가끔 볼 수 있었던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조차 결국은 과거의 것이었다. 낮이 지나고 밤이 오듯, 아름다웠던 세계는 지금 소녀의 주변을 천천히 회전하는 종말의 풍경이 되었다. >소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 >깨어난 뒤로부터, 여태까지 너무나 많은 것을 느꼈다. >---- >즐거웠다. 즐거움이 소녀를 떠났다. > >두려웠다. 두려움이 소녀를 떠났다. > >분노도, 희망도, > >슬픔과 절망조차도 소녀를 떠났다. > >소녀의 눈이 검게 물들었다. 자신이 유리 조각과 공명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둘러싼 기억의 조각들에 금이 가며 깨지기 시작한다. >그 껍데기를 깨고 일어나, 찬란한 빛을 쐬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 2-9 #===== >그 저주받을 미궁의 기억들, 그녀가 가져온 기억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아름다운 기억들이 마치 기름으로 얼룩진 바닷물처럼 뒤섞였다. > >많은 기억들이 회색 덩어리로 뭉쳤고, 어떤 조각들은 바닥에서 가시처럼 솟아올랐다. > >소녀는 그저 가만히 서서 조각들을 바라보며 그것들을 세기 시작했다. > >기억의 가시가 눈을 찌를 뻔했을 때도,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조각을 셌다. > >이윽고 소녀는 손가락을 들어, 몇몇 조각을 자신의 위치로 불렀다. > >그녀가 생각으로 명령하자 조각들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나비의 모양을 취했다. > >그 나비를 하늘로 보내 이 새하얀 세계를 관찰하도록 하였다. > >그것이 다시 내려와 소녀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설명하자 소녀는 생각만으로 나비의 날개를 천천히 뜯어내, 공허로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 >소녀는 그 오염된 바다에서 걸어 나오며, 지나간 시대의 기억으로 이루어진 저 기둥들을 산산이 부수어버렸다. >---- >시간이 지나 소녀는 변했다. > >소녀는 더 이상 기억을 모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 목적 없이 그저 걸었다. 이따금 이 세계, 그리고 소녀 자신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열정을 잃어버린 소녀에겐 의미가 없었다. > >소녀는 언젠가 폐허에서 찾은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무너져내린 건물 옆을 지나고 있었다. > >추악한 나날의 기억을 비추는 유리 조각이 뭉쳐 만들어진 생물체가 하늘에서 조용히 내려와 소녀의 앞에 섰다. > >그 까마귀 같은 생물은 닳아빠진 칼날처럼 울퉁불퉁하며 반짝거리는 유리의 몸을 지니고 있었다. > >이 생물은 소녀에게 있어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탑이 무너졌던 그날부터 소녀는 아르케아를 다루는 데에 점점 익숙해져 이런 생물까지 창조할 수 있었다. > >까마귀는 이 새하얀 세계에서 소녀가 아직 가보지 못한 장소들을 이야기했다. 소녀가 눈길을 주자 까마귀는 터져나가듯 갈기갈기 찢어졌다.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 걸어갔다. >---- >소녀는 까마귀들이 가져오는 소식에 진절머리가 났다. >이 세계엔 소녀 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 까마귀들이 가져오는 소식이란 그게 전부였다. > >소녀는 그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직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만나야만 했다. 그러나 이는 운명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 아니었다. > >가슴속에 가득 찬 불만. 그것을 살아있는 것에 쏟고 싶다는 욕망을 위해서였다. > >소녀는 사람을 해치고 싶었다. ===# V-0 #=== >[[파일:Arcaea/Story/V-1.png]] >---- > 이 세계에서 폐허는 흔한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빛을 두른 소녀는 발을 내딛는 데에 조심스러웠다. > >소녀는 이 폐허들이 한때 어떤 건물이었는지, 어째서 여기에 있는건지 궁금해졌다. > >자신이 떠도는 이 세계에 과거가 있었을까? >아니면 우연히 처음부터 이렇게 생긴 세계였을까? > >소녀는 생각해야만 한다는 강박감이 들었다. 행복한 무지에 잠식되지 않도록. > >이 세상을 더 자세히 알면, 의미를 찾는 자신의 여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어쩌면 여긴 다른 세계의 장소를 비추고 있을 뿐 아닐까? > >소녀는 아르케아에서 이 폐허와 비슷한 건물을 보았다. >그렇다면, 폐허뿐만 아니라 높이 솟은 탑과 건물도 어딘가에 있는게 아닐까? > >아직 찾지, 마주치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 >이 폐허는 한때 커다랗고 장엄한 건물이었을 거야.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아름다운 장소였겠지.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렇다면 지금의 이 모습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광경이었다. > >소녀는 혼자였다. 혼자서 긴 의자와 부러진 촛대 사이를 헤쳐나갔다. > >소녀는 혼자였다. 눈을 깜빡였다. 혼자가 아니었다. 사람이 있었다. > >소녀의 왼편으로 무너진 벽 앞에 사람이 서있다. > >과거의 소녀였다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이 사람에게 화사한 미소를 지어보였을 것이다. > >지금의 그녀는 당혹해하며 저 그림자를 둘러싼 여자아이를 관찰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서 피어오르는 행복감은 억누를 수가 없었다. > >기억이 아닌,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는 진짜 사람. >혼자서 걸어온 무한한 시간 끝에, 마침내 다른 사람을 만났다. >살아있는, 타인이다! > >여자아이는 소녀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우산을 들고 가만히 서서 잠을 청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칠흑 같은 그 모습이 밝게 빛나는 주변의 광경과 강한 대조를 이루었다. >너무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소녀는 한순간 이게 꿈인 줄로만 알았다. > >소녀가 말을 걸려 입을 벌리려던 순간, 여자아이가 깨어나 눈을 떴다. > >슬프고 사악하며 잊힌 조각을 이끄는 자가 눈을 떠 다시 태어나 새하얀 색을 두른 소녀를 바라보았다. > >빛의 소녀가 너무나 반가워했던, 어둠의 소녀가 일순간 숨을 멈추었다. > >눈을 찡그리고선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 >하지만 금방 그만두고선, 숨을 들이켜고 눈을 크게 뜨며 우산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 >그 마음속에서 뒤틀린 행복감이 솟구쳤다. 이는 빛의 소녀의 그것과는 달리, 더욱 적극적인 감정이었다. > >곧 그 감정은 혼돈의 소녀의 얼굴에 꾸밈없는 미소의 형태로 나타났다. === 히카리/타이리츠 === [anchor(Story_Prelude)] ||<-5><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737081><rowbgcolor=#737081> {{{#eaeaf5 '''[[Arcaea/파트너#히카리|{{{#bbf 히카리}}}]]/[[Arcaea/파트너#타이리츠|{{{#bbf 타이리츠}}}]] 스토리 순서'''}}} || || [[Arcaea/스토리/Act I-I#Story_Hikari|Luminous Sky]][br]{{{-2 Main : 1-4 ~ 1-8}}} ||<|2> → ||<|2> [[Arcaea/스토리/Act I-I#Story_Prelude|Adverse Prelude]][br]{{{-2 Main : V-0 ~ V-4}}} ||<|2> → ||<|2> [[Arcaea/스토리/Act I-II#Story_Fate|Black Fate]][br]{{{-2 Main : VS-1 ~ VS-8}}} || || [[Arcaea/스토리/Act I-I#Story_Tairitsu|Vicious Labyrinth]][br]{{{-2 Main : 2-4 ~ 2-8}}} || ==== 해금 조건 ==== [anchor(Saint or Sinner)][anchor(Vindication)][anchor(Heavensdoor)][anchor(Ringed Genesis)] ||<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737081><rowbgcolor=#737081> '''{{{#eaeaf5 스토리 #}}}''' || '''{{{#eaeaf5 진행 순서}}}''' ||<-3> '''{{{#eaeaf5 해금 조건}}}''' || || V-1 || Adverse-1 || [[파일:Tairitsu_icon_new.png|width=50]] || [[파일:Arcaea/Saint or Sinner.jpg|width=50]] ||[[Arcaea/파트너#타이리츠|타이리츠]]로 [[Saint or Sinner#Arcaea]] 클리어[*스위치판 [[Nintendo Switch]] 에디션에서는 Saint or Sinner가 수록되지 않아 Vindication으로 대체되었다.] || || V-2 || Adverse-2 ||<|2> [[파일:arcaea_hikari_icon_new.png|width=50]] || [[파일:Arcaea/Vindication.jpg|width=50]] ||[[Arcaea/파트너#히카리|히카리]]로 [[Vindication#Arcaea]] 클리어 || || V-3 || Adverse-3 || [[파일:Arcaea/Heavensdoor.jpg|width=50]] ||[[Arcaea/파트너#히카리|히카리]]로 [[Heavensdoor#Arcaea]] 클리어 || || V-4 || Adverse-4 || [[파일:Tairitsu_icon_new.png|width=50]] || [[파일:Arcaea/Ringed Genesis.png|width=50]] ||[[Arcaea/파트너#타이리츠|타이리츠]]로 [[Ringed Genesis#Arcaea]] 클리어 || ==== Adverse Prelude ==== =====# V-1 #===== >벽도 천장도 없이 뼈대가 앙상한 의자와 하얀 촛불만이 남은 교회에서, 검은 옷을 입은 소녀는 또 다른 소녀를 바라보았다. > >그녀의 길고 길었던 그 갈증을 해소해줄, 살과 피로 이루어진 진짜 사람이 드디어 앞에 나타난 것이다. > >하지만 즐겁지 않았다. 얼굴에 드러난 그 미소는, 감출 수 없는 거짓이었다. 그 미소는 마치 하얀 옷을 입은 소녀에게 “만나서 반가워”라 말하는 듯했으나, 그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 >“이름이 뭐니?” 검은 옷의 소녀가 메마른 목소리로 물었다. 예전이었다면, 자기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을 것이다. > >“내... 이름? 나도 잘 모르겠어.” 빛나는 소녀가 말했다. “넌 아니? 그, 자기 이름…” > >그녀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 >“그건...” > >이 한마디를 끝으로 말을 흐리며 화려하게 장식된 교회의 벽을 바라볼 뿐이었다. > >하얀 옷의 소녀는 혼란스런 표정을 지었다. >---- >기묘한 해후였다. 검은 옷의 소녀가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무기력함이 하얀 옷의 소녀에게 옮겨가고 있었다. > >갑작스레 불어온 차가운 바람 앞의 불처럼, 그녀의 희망이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 >불편함, 불안함, 걱정이 그 마음을 채웠다. >둘 사이에 무언가 잘못된 공기가 흘렀다. >마치 세계 자체가 이 만남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빛의 소녀에게 말하는 듯했다. > >금이 간 땅 위로 흐트러진 유리 조각들이 마치 이 기묘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 반짝거렸다. > >평소라면 이 유리 조각들은 망설임 없이 두 소녀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행복한 기억”은 하얀 옷의 소녀에게, “불행한 기억”은 검은 옷의 소녀에게. >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유리 조각도 움직이지 않았다. > >수많은 조각들이 소녀들의 주변을 에워싼 채 한 쪽 면으로 텅 빈 교회의 풍경을 비추었다. >하얀 소녀가 조각을 불러보았으나, 그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 >끔찍한 기억과 행복한 기억이 함께 늘어서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안함이 그녀의 마음을 엄습했다. > >아직 자신을 따라오는 조각은 자신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각, 자신을 자유롭게 해준 그 조각 뿐이었다. >---- >하얀 소녀는 그림자 같은 소녀를 쳐다보았다. > >“우리 서로 비슷한 상황이라면...”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 >“같이 다니지 않을래? 그럼 서, 서로 도울 수도 있고... 어쩌면...” > >그러다 말을 멈추었다. 상대가 텅 빈 캔버스 같은 하늘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자신의 말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검은 옷의 소녀는 모든 말을 듣고 있었다. > >“어쩌면.” 검은 소녀가 말했다. 희미하게... 비극 속에서 다시 태어난 뒤로, 그녀의 영혼은 칙칙한 심연과도 같았다. > >그러나, 하얀 소녀의 제안을 듣자 그 심연 안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아주 약하고 희미했지만, 다시 각성한 이후로 그녀의 마음을 계속해서 잠식하던 불만의 장막을 꿰뚫기에 충분했다. >---- >소녀의 마음속에 있던 과거의 조각, 이 세계에 처음 깨어났을 때의 ‘타이리츠’가,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절망감에 대적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번째 기회를 잡고 싶었다. > >하지만 ‘어쩌면’같이 애매한 대답은, 하얀 소녀에게 있어서는 부족했다. 아직 긴장된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 >최근 다시 정신을 차린 소녀, 히카리는 아르케아의 세계가 마냥 예쁘기만 한 장소가 아니며, 안전하지도 않은 장소임을 알고 있었다. > >그럼에도, 두 소녀는, 상황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고, 말을 나눌 것이다. =====# V-2 #=====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졌다. > >“서로를 부를 이름이 있었으면 좋을텐데.” > >타이리츠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눈은 또다시 생명의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 >히카리는 이를 눈치채고 조금 불안해졌다. > >“그러게, 기억으로 가득 찬 세계인데 정작 내 기억은 없다니... 자기 이름도 모르고, 싫지.” > >그렇게 말하며 둘은 긴 의자에 같이 앉았다. 가까이 붙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앉은 의자는 대열의 가장 앞에 있는 것이었다. > >앞으로 계단을 몇 개 올라가면 넓고 평평한 단상이었다. 하얀 소녀는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선 걱정으로 물든 표정을 지은 채 새롭게 만난 친구를 바라보았다. > >검은 소녀는 앞에 펼쳐진 텅 빈 무대, 하늘, 그리고 먼 풍경을 아루는 장대하지만 무너진 건축물들을 차례대로 바라보았다. > >하지만 그것들에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 >그렇게 풍경을 구경하던 타이리츠는 갑작스레 말을 꺼냈다. >“이 유리 조각들. 이름이 뭔지 알고 있어?” > >“응? 어... 왠지는 모르는데, ‘아르케아’라는 이름인 건 알고 있어.” >---- >“나도야.” 히카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타이리츠가 말했다. “너랑 나, 다른 점이 뭐지?” > >히카리는 대답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외모 말고는...” > >“그럼 알아보자. 유리 조각에서 어떤 기억이 보여?” > >“거의 항상 행복한 기억만 보여.” > >“나랑은 정반대네...” 타이리츠가 한숨을 쉬고선, 발치로 시선을 떨구고 괴로운 듯 말했다. > >“이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다고 치자. 그럼, 우리가 정반대인 것에 뭔가 의미가 있는 걸지도 몰라.” > >“너한테는 아르케아가 행복한 기억을 안 보여줘?” >히카리가 타이리츠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이며 물었다. >“유감이야...” >---- >“뭐, 어떡하겠어.” >검은 소녀가 말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타이리츠가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런데 네 말대로면... 행복한 기억만 쭉 봐온 너조차, 행복해진 것 같진 않은데. 맞아?” > >히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 >“깨어나고 나서 고생만 해왔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 하늘을 뒤덮을 만큼 조각을 잔뜩 모은 적이 있었어. > >그렇게 내가 만든 하늘이 나를 거의 죽일 뻔했지… 빛이 조금씩 내 마음을 갉아먹는 느낌이었어. 내가 한 행동의 결과였지만 말이야.” > >두 소녀는 진솔하게 말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 >히카리가 순진함과 위험으로 가득 찬 빛의 여정을 이야기하고 난 후엔, 타이리츠는 차가운 억양으로 어둠의 폭풍에 맞선 투쟁을 이야기했다. > >둘 사이에 차이점은 많았으나, 단 하나, 확실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 무감각한 세계,{에서 감각을 찾고 있었다는 것.} 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아름다운 만큼이나 냉혹했다. >---- >히카리는 구원을 찾았으나, 이 기묘하고 무감각한 세계에게 자아를 잃을 뻔했었다. > >타이리츠는 영원한 상처를 입었다. > >그녀의 마음속에서 마치 파도처럼 폭력과 분노를 향한 충동이 쉴 새를 모르고 솟아올랐다. > >히카리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이 충동을 가슴속에 묻어두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이 살아있는 인간은, 마음속에 가득 찬 이 답답함을 쏟아내기에 최적의 상대였다. > >이따금씩 검은 소녀가 불안하게 덜덜 떨릴 정도로 손에 든 우산을 꽉 쥔다는 것을, 하얀 소녀는 놓치지 않았다. > >그들이 걸어온 길은 쉽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내가 원하는 건 그게 다였어. 그런데, 그 검은 알을 깨고 나오고 나서부턴, 그렇게 순진한 목표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어. 무고한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었어. > >내 마음속 공허를 채우는 건 끔찍한 충동들 뿐이야. 역겹도록 뒤틀려버린...” > >타이리츠가 마음을 쏟아냈다. > >“지금조차, 너를 해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해.” > >“괜찮아...” >히카리가 말했다. > >“네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나라도 그랬을지도 몰라. 하지만, 네 마음은 그렇게까지 뒤틀리지 않았어.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 >타이리츠가 히카리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치 어째서 그리 생각하느냐 묻는 듯이. > >“지금도 그 충동을 잘 참고 있짆아.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그러니까 넌 아직 착하고 강한 사람이야.” >히카리가 미소를 짓고 의자에서 일어선다. >“나보다 훨씬.” > >밝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보내고선, 그렇게 한마디를 건넸다. > >“나는 구원을 받았을 뿐이지만,” >히카리가 말을 이어갔다, 다시 한번 타이리츠의 눈을 바라보고서. > >“넌 스스로 자기 자신을 구원했잖아.” >---- >검은 소녀의 마음속에서 약하게 일렁이던 반짝임이 희미한 빛으로 바뀌어, 고통이 그녀의 몸을 타고 흘렀다. > >아니야.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야. 타이리츠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실패했고, 예전의 자신은 그 미궁이 무너졌을 때 함께 죽었다. >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겨우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라곤 증오뿐이었다. > >히카리와 만났을 때조차, 칼을 잡아 그 몸을 가르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아니다. 타이리츠는 자신을 구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단순히 해칠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 >어쩌면 사실, 그녀는 기적이 내려와 마지막으로 붙잡을 희망의 실 한 가닥을 건네주길 바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 >히카리는 너무 여리고 우유부단하여 직접 타이리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진 못했지만, 그녀의 존재, 그녀의 적대심 없는 그 모습이, 타이리츠가 찾던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 >타이리츠의 마음을 찌르는 것은 그 깨달음이었다. > >그녀의 자세가 흐트러진다. 히카리가 이를 눈치채고 도와주려 다가오지만, 아직 자신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손을 건네려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 >히카리는 반쯤 손을 들고 타이리츠의 앞에 서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검은 소녀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 >히카리는 손을 완전히 떨구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주변의 유리 조각들이 흔들렸다. 그중 하나가 뭔가 다른 빛을 내기 시작한다. > >그것이 비추는 것은, 익숙했지만, 불가능한 광경이었다. > >아무도 보지 못했을 기억. > >매우 기묘하고 괴상한, ‘변칙적’인 기억이, 한순간 반짝였다 사라졌다. =====# V-3 #===== >타이리츠는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겨운 숨을 몰아쉬었다. 하얀 소녀 덕에, 그녀에게 다시 생기가 돌아왔다. > >히카리가 건넨 너무나도 소중한, 안심과 격려의 한마디. 아직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이 새하얀 지옥에서 벗어날 마지막 길이, 단 하나 존재했다. > >타이리츠가 숨을 내뱉으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 >“그래, 뭔가 해보자. 이 빌어먹을 세계를 파헤쳐보자.” > >“그렇게 욕할 정도로 나쁘지는 않은데...” >히카리 또한 아주 약한 미소를 지으며, 그만큼이나 약하게 항의한다. > >아직 타이리츠에 대해 모든게 확실하진 않지만, 히카리는 단 하나 확신할 수 있는게 있었다. > >검은 소녀는 외견과 다르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 >그 사실만으로 손을 잡을 이유는 충분했다. ‘착한’ 사람... 히카리는 아직 자신이 그 호칭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 >히카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타이리츠의 기분이 바뀐 듯 했다. >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 >그 말은 질문의 형태를 했으나, 억양 탓으로 비난에 가깝게 들렸다. 히카리를 꿰뚫듯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텅 비어있었다. > >“정말 그렇게 생각해? 행복해지려고 했던 너를 먹어치우려고 했던 곳이잖아.” > >타이리츠가 호흡을 진정시키며 자세를 똑바로 가다듬으며, 가슴을 움켜쥐고 있던 손으로 우산을 다시 들었다. > >그리고 히카리와 눈을 맞추었다. >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 >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타이리츠의 기세에 잠시 짓눌린 히카리였지만, 더 이상 그녀는 예전의 근심 없는 순수한 소녀가 아니었다. > >조금의 자신감을 끌어모아, 히카리는 허리를 펴고 설명을 시작했다. > >“이렇게 살아있잖아. 적어도 그 정도는 허락해 주니까, 이 세계가 그렇게까지 나쁘다곤 생각 안 해.” > >“뭐어...?” >타이리츠의 눈빛이 더 강렬해졌다. > >“살려두고선 고통과 슬픔으로 우릴 고문하고 있을 뿐인데도? 그런 세상이 어떻게 나쁘지 않은 거지?” > >“그, 그렇지만, 그래도...” > >“그래도 뭐?” 타이리츠가 밀어붙였다. >---- >“그래도 그건 결단이 너무 빨라! 넌 정확히 뭘 하고 싶은건데?” > >“전부 부숴버릴 거야. 세계도, 유리 조각도, 전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부숴버릴 거야. 받은 만큼 돌려줘야 공평하지 않겠어?” >타이리츠가 덤덤하게 설명했다. > >“너도 동감하지? 너한테도 이 세계는 넓은 감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잖아.” > >“부수겠다고...? 부, 부술 수 있다 해도... 그건 종말이야. 우리가 아는 한 존재하고 있는 세계는 여기밖에 없어. >이 세계를 부수면, 우리도 함께 죽는 거 아니야? 여기서 살 바에야… 그냥 죽겠다는 거야? 말도 안 돼!” > >“그래, 죽겠어.” 덤덤하게 타이리츠가 대답했다. > >그런 대답이 날아올 거라 생각 못 한 히카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타이리츠의 말은 너무나 무섭고, 너무나 슬펐다. > >그 침묵을 뚫고, 타이리츠는 계속해서 히카리를 밀어붙였다. > >“달리 생각 있어? 계획 있냐고.” >---- >“아니... 없어. 너랑 같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고 싶었어.” >명백히 절망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하얀 소녀가 대답했다. > >그리고, 아까 막 희망과 감정을 되찾은 소녀, 타이리츠는 말을 멈추었다. > >하얀 소녀에게 화를 내기란 쉬운 일이었다. 그게 합리적이지 못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 >마음속에서 다시금 피어난 희망 덕에, 여태까지 자신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깨달았다. > >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마주하고서 취하는 행동이 비난이라니. 자신이 이렇게 옹졸한 사람이었던가? 타이리츠의 이 결심은 과거에도 그녀에게 안식이나 만족감, 그리고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 >목표로 향하는 길은 우울함으로 가득 찬 어두운 가시밭길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타이리츠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던 불길, 타오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던 불길을 사그라뜨렸다. 하얀 소녀와 손을 잡으려면... 그녀의 생각에 동의해야만 했다. > >“미, 미안해.” >타이리츠가 사과했다. 아까의 강렬한 눈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잠시 숙였다. > >“나도… 그래, 너와 함께, 뭔가 새로운… 계획을 생각해 보고 싶어.” > >타이리츠 앞에서 사그라들었던 히카리의 자신감이 조금 활기를 되찾았다. > >“괜찮아. 내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오래 이 세계에 갇혀있었던 거지?” >---- >타이리츠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던 그 불이면 충분했다. > >섬광처럼 잠시 불타올랐을 뿐이던 불이, 주변에서 잠자고 있던 유리 조각 하나를 일으켜세워 흔들었다. > >그것이 조용히, 두 소녀가 있는 곳까지 날아왔다. > >“희망을 잃지 마. 분명 더 나은 내일이 올거야.” 하얀 옷의 소녀가 말했다. > >빛바랜 색으로 일렁이는 유리 조각이 날아와 소녀들의 사이에 멈추어 섰다. 둘 다 유리 조각을 바라보았으나, 그것이 비추는 기억은 검은 옷의 소녀에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 V-4 #===== >[[파일:Arcaea/Story/V-5.png]] >---- >종말. > >그림자로 몸을 감싼 소녀가 깨진 유리창을 통해 다른 시간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 미소가 찾아왔다. > >바보같으니. >아니, 하얀 옷을 입은 아이 말고. >나. > >이 유리 조각이 비추는 것은 기억이 아니었다. > >기억일 수가 없었다. > >이것은 미래다. 바보같은 몽상가, 자신이 예상했어야 했을 미래. > >유리 조각에 비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자신이었다. [[Testify|날카로운 유리 기둥에 몸이 꿰뚫려, 상처로부터 새어 나오는 창백한 불꽃에 옷과 몸이 불타는 모습.]] > >그녀의 등 뒤로 텅 비고 황량한 아르케아의 대지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엔, 하얀 옷을 입은 소녀가, 눈부시게 불타는 빛을 어깨에 두르고 손으로 기둥을 쥐고 있었다.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으나, 등을 돌린 탓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 >분명 지금 자신의 앞에 서있는 이 소녀와 같은 인물이다. >방금 만난 사람. >이건 기억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의 예언이다. > >타이리츠는 이를 깨닫고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여태껏 무시해온 진실을 마주했다. > >그녀의 결의 따윈 아무 상관 없었다. >이 세계에서 좋은 것 따위 찾을 수 없다. > >마지막 희망조차 검게 물들어, 절망의 바다에 빠진 채, 잊혔다. > >달리 어떻게 됐을 거라 생각했나? >희망은 대체 왜 가졌나? >어리석음이었다. 짜증이 날 정도의 어리석음. > >짜증 나는 노력. >짜증 나는 기억. >짜증 나는 존재. > >짜증났다, 싫었다. 질렸다. 이제 질렸다. 자신이 질렸다. >이 끝나지 않는 조롱과 같은 연극에 질렸다. > >기적 따윈 없다. > >스스로도 말하지 않았나. 이 세계는 지옥이라고. >잘 알고 있었다. 조각나버린 다른 세계의 기억에서도 보았다. >천사조차 타락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 >빛의 소녀는 그 천사와 같았다. >최후의 순간에, 타이리츠의 가슴을 좀먹던 조그마한 구멍이 점점 넓어졌다. >구멍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선, 차갑고 끝없는 공허만을 남겼다. > >그 속에서 어둠이 기어 나와 그녀의 생각조차 뒤덮으려 할 때, 히카리를 보았다. > >유리 조각을 보는, 그 당황한 눈빛, 히카리는 이 조각이 뭔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 >너무나도 잘 알고 있겠지. >그래서 히카리는 타이리츠의 눈을 마주 볼 수 없는 것이다. >분명히 타이리츠의 모습이 보임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 >당황했나? 불안해졌나? 뻔뻔하다. >용서할 수 없다. > >그 분노가 뒤틀려 증오로 바뀌어, 그녀의 시선에서 쏟아져 나온다. > >저주받을 배신자. 이 저주받을 세계. >타이리츠는 우산을 꼭 쥐었다. >조각 너머에 아직도 꼼짝도 않고 서있는 히카리를 보았다. > >자신의 악의가 들통났다는 사실에, 두려워 움직일 수 없는 것인가? >웃기는군. > >타이리츠는 눈을 감고 이렇게 새로 피어오른 감정을 잘라내었다. > >그렇게 감정을 비우고 나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이 거울의 풍경도, 타이리츠의 분노도, 결국 일방적이었다. >히카리는 유리 조각에 무엇이 비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점점 창백해지는 타이리츠의 얼굴을 혼란스러워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하키리의 마음에 위기감이 피어올랐다. 이유는 몰랐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대지로부터 그림자가 기어올라와 닿는 빛을 모두 없애고 있었다. > >어둠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숨이 가빠졌다. 히카리는 한걸음 물러섰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 >눈부신 빛의 하늘에 잡아먹힐 뻔했던 그 위기를 겪고 나서도, 또다시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가 그녀를 덮치고 있었다. > >하지만 그때에도 히카리는 살아남았다. >이번에는, 살아남기 위해선 타협 따위 할 여유가 없었다.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 >히카리는 그걸 명심하고선,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 >그녀는 유리 조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장 절망해있을 때에 자신에게 안식과 인도를 내려준 그 조각. > >히카리가 그 조각을 들고 가슴에 가져다 대자, 타이리츠의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 >공포, 그리고 다시는 비극을 겪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몸이 잠식된 채, 타이리츠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3.0 업데이트 전까지 To be continued...라는 말과 함께 '''"2-F!t<A\bPDbN_"'''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열이 적혀있었다. 이 코드를 Ascii85로 풀면 [[https://www.youtube.com/watch?v=5YWmU4s2oLI|'''"5YWmU4s2oLI"''']]가 나온다. == Side Story == === 사야 === ||<-5><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354><rowbgcolor=#476> {{{#fff '''[[Arcaea/파트너#사야|{{{#BECAA4 사야}}}]] 스토리 순서'''}}} || || [[Arcaea/스토리/Act I-I#s-3.1.2|Absolute Reason]][br]{{{-2 Side : 3-1 ~ 3-6}}} ||<|2> → ||<|2> [[Arcaea/스토리/Act II-I#s-2.3.2|Absolute Nihil]][br]{{{-2 Main : 18-1 ~ 18-7}}} || ==== 해금 조건 ==== [anchor(Antithese)][anchor(Corruption)][anchor(Black Territory)][anchor(Cyaegha)][anchor(Vicious Heroism)] ||<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354><rowbgcolor=#476> '''{{{#fff 스토리 #}}}''' || '''{{{#fff 진행 순서}}}''' ||<-3> '''{{{#fff 해금 조건}}}''' || || 3-1 || Ab.Reason-1 ||<|2>[[파일:arcaea_char_unknown_icon.png|width=50]] || [[파일:arcaea_antithese_base.jpg|width=50]] ||[[Antithese(Arcaea)#Arcaea|Antithese]] 클리어 || || 3-2 || Ab.Reason-2 || [[파일:Arcaea/Corruption.jpg|width=50]] ||[[Corruption(Arcaea)#Arcaea|Corruption]] 클리어 || || 3-3 || Ab.Reason-3 ||<|4>[[파일:arcaea_char_23_icon.png|width=50]] || [[파일:Arcaea/Black Territory.jpg|width=50]] ||[[Arcaea/파트너#사야|사야]]로 [[Black Territory#Arcaea]] 클리어 || || 3-4 || Ab.Reason-4 || [[파일:Arcaea/Cyaegha.jpg|width=50]] ||[[Arcaea/파트너#사야|사야]]로 [[Cyaegha#Arcaea]] 클리어 || || 3-5 || Ab.Reason-5 || [[파일:arcaea_antithese_base.jpg|width=50]] ||[[Arcaea/파트너#s-4.5|사야]]로 [[Antithese(Arcaea)#Arcaea|Antithese]] 클리어 || || 3-6 || Ab.Reason-6 || [[파일:Arcaea/Vicious Heroism.jpg|width=50]] ||[[Arcaea/파트너#사야|사야]]로 [[Vicious Heroism#Arcaea]] 클리어 || ==== Absolute Reason ==== =====# 3-1 #===== >[[파일:Arcaea/Story/3-1.jpg]] > >이른 저녁, >태양이 저물며 붉은 황혼의 빛으로 하늘을 물들였다. > >초원을 둘러싼 장치들은 그 빛을 흡수해, 달빛과도 같은 색의 광선으로 탈바꿈시켰다. > >파티장에는 어떤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 >비록 저택 밖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하나, 상류층에게 이미지란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 >여자는 그걸 처음부터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그녀는 햇빛으로 만들어진 조명이 미치지 않는 어두운 방에 앉아 조용히 그 의미를 곱씹고 있었다. > >“라비니아.” > >여자가 술잔에서 시선을 돌려 목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약혼자였다. 그는 답답해 보일 정도로 잘 차려입었으나, 몸짓에서 격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 >“오늘은 뭐 마시고 있어?” > >“안녕… 도노반, 자두 주스야.” > >여자가 멀쩡한 쪽의 눈으로 잔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 >“잘 골랐네.” > >남자가 미소 지으며 말하고선 방의 전경을 살펴보았다. 여자는 감정 없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 >“어머니나 친척들은 크랜베리가 더 좋다고 하시더라... 건강에 더 좋다나. 그런데...” > >남자가 여자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 >“맛이 써서 난 별로야. 너도 그렇지?” > >여자는 잠시 생각하다, 표정을 찡그렸다. > >“나도 안 좋아해.” > >“그럴 줄 알았어.” > >남자가 한 번 웃더니 등을 돌렸다. > >“난 모건이랑 이야기하고 있을게. 나중에 와.” >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벽난로 옆에 서 있는 소꿉친구에게 다가갔다. >---- >저택의 풍경은 좋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 >벽난로에서 나오는 불빛은 먼 거리를 가지 못하고 바닥에 설치된 조명장치로 흡수되었다. 이 때문에 방은 조금 어두웠지만 어딘가 포근하고 안도감으로 가득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천장의 조명들은 간신히 책을 읽을 정도, 또는 사람의 표정을 보거나 테이블 위의 음식과 술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빛나고 있었다. > >반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방 밖의 풍경은 이른 밤의 푸르름을 감싼 야생화, 바위, 그리고 강이 꾸미고 있었다. > >이 파티에 초대받은 손님은 약 스무 명, 그중 반은 이 방에 있고, 나머지는 홀, 또는 서재에 있을 것이다. > >여자는 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 > >주스를 음미했다. 자두 주스를 마셔본 적은 별로 없었기에, 단 맛 이외에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 >다른 곳에서 마셨던 더 맛있는 음료가 생각나지만, 혀 위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해 보았다. > >그럼에도 주스의 맛은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이게 싫은지 좋은지조차 정할 수가 없었다. > >여자는 고급스러운 잔 받침 위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 자리에 앉아서 백색소음과 같은 사람들의 말소리와 방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불현듯 자신의 오른 눈에서 피어난 꽃의 잎을 만져보았다. >---- >“이미 꽤 진행된 모양이야. 처음 그 소식 들었을 땐 솔직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 >도노반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 >“찰스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 >모건이 아닌 나탈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놀랍지 않아?” 도노반이 머리 위쪽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다니.” 그가 말한다. “인류는 대단해.” =====# 3-2 #===== >여자의 시선이 반짝이는 조명의 불빛을 보았다가, 약혼자를 찾았다. > >잔을 들어 한모금 마셨다. 여전히 지극하게 평범한 맛이었다. > >“인공 세계”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별로 없었기에 그다지 이야깃거리로 삼거나, 애초에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았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라곤 여자에겐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것들이었다. > >짜증이 났다. 무슨 말을 하는지 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 >인내심이 떨어진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 빛으로 물들어 조금 더 화려해진 홀을 향해 걸어갔다. > >그녀는 아주 조금이지만, 이 저택의 방들을 알고 있었다. >여자는 저택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 >조명이 꺼진 칠흑 같은 복도, 열쇠구멍이 없지만 잠겨있는 문들. 잠겨있지 않은 방 안에는 남녀 몇 명이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 >여자의 존재를 눈치챈 사람들은 한 번 눈길을 슥 주고는 다시 대화로 돌아갈 뿐이었다. >----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 >저택은 최신 기술의 보고와 같았으나, 동시에 낡아빠진 계급 의식을 표출하는 출구이기도 하였다. 빛 흡수 장치나 인공 자연도 놀라운 기술이었지만, 여자가 가장 흥미를 가진 것은 정원의 빛 변환 장치였다. >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직접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 >한마디로, 그녀는 “궁금했다”. > >파티 손님들과 한 시간이 천년처럼 느껴질법한 따분하고 시답잖은 대화나 하며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 >우리 삶을 둘러싼 생명과 그 창조물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흥미로운 존재들이다. 그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 >그러나, 여자가 정문으로 걸어가는 순간… > >그 손이 문고리에 닿자마자… > >깨달았다. 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에 그녀가 있을 곳은 여기뿐이다. > >여자의 자리는 기계장치들을 감상할 수 있는 초원이 아니라 약혼자의 옆, 이 저택의 방 안이었다. > >“바깥”이란건 실체가 없는 개념일 뿐이었다. > >이런건 깨닫지 않는 편이 차라리 좋았다. >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샹들리에 밑에 섰다. 샹들리에의 조각 하나하나가 지금 이 순간 세계의 다른 장소를 비추고 있었다. > >계속해서 변화하며, 그녀가 가볼 수 없는 장소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 >흐릿한, 거의 우주에서 온 것만 같은 빛이 샹들리에 주변을 감싸며 비현실적인 광경을 자아내었다. > >여자는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새로이 생겨난 조그마한 불만의 불씨를 가슴에 안은 채, 다시 저택의 깊은 곳으로 돌아갔다. =====# 3-3 #===== >반 유리 벽 너머로 폭풍 바람에 꽃잎들이 휘날렸다. > >눈을 사로잡는 백색과 사파이어색의 빛. >파티의 젊은 손님들이 풍경의 변화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린다. > >마치 마법같이 신기하다. > >여자도 라운지로 돌아와 인공 자연 풍경이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감상했다. > >화려한 연극이다. > >저 흩날리는 꽃잎들을 처음 보았던 때를 기억하다가, >이제 “기억” 하는 것조차 질린 듯 눈을 감는다. > >여자는 몇 시간 동안 여러 가지를 시험했다. > >창문은 잠겼고, 뒷문에는 빗장이 걸려있었으며, 환풍구는 막혀있었다. >이에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 >“누군가 이 통로들을 막은 걸까? 아니면 내가 여기에 갇혀있기 때문에 막힌 걸까?” > >비유와 감상은 소녀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 >정말로 그런 건지 알기는 힘들었지만. > >저택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구석구석까지 살펴본 후, >여자는 지인 또는 친구로서 알고 있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 >“날씨가...” >“국왕 전하께서...” >“지난주에...” > >지루하고, 아무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 >질문을 해도,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의미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 >마치 처음부터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 >여자의 흥미 분야인 공학, 기술, 진보에 관한 이야기는 >손님들에게서 한 조각의 흥미도 끌어내지 못했다. > >짜증이 난 여자는 아무 말없이 대화를 듣고 있기로만 했는데, 이윽고 이 말을 들었다. > >“지금은 그냥 흙공 같은 모양인데, 곧 테라포밍 할 거라더군.” > >그 말에 질문을 던졌지만... 역시나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자는 다시 휴게실로 향했다. > >그곳에 서서, 폭풍을 바라보며, 교감했다. 저 폭풍이, 자기 자신인 것처럼. > >여자는 자신을 향해 미소짓는 약혼자 옆을 지나갔다. > >“라비니아, 어디 갔다 왔어.”라고 말한다. 여자는 그의 옷깃을 바라보았다. > >남자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낌새다. > >이 세계의 주민들은 항상 그랬다. >눈에 띄고 특출난 것엔 관심이 없다. > >여자가 아무리 대담한 짓을 해도, 언제나 자신들의 루틴을 따를 뿐이었다. > >사교 파티라는 좋은 그림을 유지하기 위해. >여자는 묻고 싶어서 더이상 견딜 수가 없는 질문을 내놓기로 했다. > >“그 인공 세계란 거... 혹시 유리로 만들어진 거 아니야?” > >“음? 그게 무슨... 당연히 아니지. 싸구려 장식도 아니고.” > >여자의 눈이 크게 뜨이고, 동공이 작아졌다. > >찾았다. > >도노반은 여자의 어깨 너머, 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아름답지? 꼭 당신처럼...” >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 >남자의 답변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행동으로 옮길 때이다. > >꽃의 소용돌이가 고요하게 휘몰아치는 동안, >여자는 음식이 올려진 테이블 앞으로 가, 빵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 >“그 세계에선 이런 멋진 쇼가 끝없는 골짜기에서 펼쳐질 거라더군. >지금은 황량한 폐허이지만 말이야.” >도노반이 계속 말했다. > >여자는 그의 말을 들으며 어떤 물건의 손잡이를 잡았다. > >“객석을 하나 잡을 수만 있으면, 정말 훌륭한 경험이 될거야. >거기다 그 잠재력을 생각해보라고.” > >여자가 숨을 내뱉었다. 이번 여정도 의미가 없었다. >매끈한 나무 손잡이를 꽉 쥐었다. > >등을 돌려 약혼자에게 다가가, >그 목으로 손에 쥔 것을 휘둘렀다. > >빵칼의 날이 목을 깊숙히 파고들었다. > >아무런 감정 없이, 단 한 줌의 적대감조차 지니지 않은 채, 여자는 말없이 남자의 목을 베고, > >그곳에서 나오는 것을 조심히 살펴보았다. =====# 3-4 #===== >피가 아니다. > >그 무엇도 아니다. > >남자의 목이 끔찍하게 잘렸으나… 이 기억에는 “끔찍함”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여자의 눈앞엔 피로 흥건한 끔찍한 광경이 아니라, 잘려서 구겨진 종이와 같은 모습을 한, 남자의 목이 있었다. > >그 안은 “그림자”가 아닌 “무공간”, 아무것도 없는 공허가 채우고 있었다. 상처의 끝부분은 희미하게 하얀색으로 빛났고, 여자가 든 칼 주변으로 형형색색의 조각들이 부유했다. > >도노반을 포함한 파티 손님들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사람들이 쓰러지고, 여자들은 기절하며, 도노반은 자신의 목을 만졌다. > >몇몇 남자가 여자에게 달려들어 팔과 목을 잡아 제압했다. >여자는 칼을 강하게 쥐고, 무표정으로 약혼자의 놀란 눈을 바라보았다. > >자신을 구속하는 사람들에게 별다른 저항을 보이지 않은 여자는, 도노반 뒤에서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보았다. > >그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뒤틀리다가, 시끄러워졌다. 조용해졌다. 그 순간에 이미, 이 기억은 망가져있던 것이다. >---- >이 기억의 원본은 이렇지 않았다. 시간의 풍파에 매우 달라져버린 기억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 평화로운 파티에서, 예비 신부가 자신의 약혼자를 공격하다니... > >여자는 어떤 형태로든 반응을 이끌어내고자 했으므로, 지금 상황에 만족했다. > >방 안의 어떤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인지조차 못했고, 어떤 사람들의 얼굴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긴 했지만. 이 정도의 기억 변조는 처음이었다. > >최소한 성공이라 부를 수는 있을 정도의 성과였다. > >세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바스러졌다. 공간이 구겨져 보일 정도로. >---- >“휴양을 위해 세계를 하나 통째로 만들다니... 그것보다 훨씬 좋을 쓰임새가 있었을 텐데.” > >여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손에 쥔 빵칼이 공중에 뜬 채 움직일 생각을 않자, 여자는 한숨을 쉬며 손을 놓았다. > >“‘기억’도, ‘메아리’도, ‘반사상’도, 가장 중요한 ‘유리’도... 언급이 전혀 없었어.” > >방이 줄어들었다. > >“또 쓸모없는 꿈이었던 모양이네.” > >행성이 갈라졌다. >---- >풍경이 무너지며 하얀 빛이 사방에 나타나 눈을 쏘아붙였다. 이 기억에 존재했던 모든 소리가 한 번에 재생되었다. > >여자는 그 유리 조각에서 눈을 감고 서서, 빛과 소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눈을 뜨자 보인 것은 희미하게 빛나는 텅 빈 세계였다. > >마음속으로 명하자, 눈부실 정도로 찬란한 빛의 파도가 그녀를 덮치고, 이윽고 소녀의 앞에 펼쳐진 것은 가장 익숙하고, 가장 경멸스러웠던 세계. > >하얀색 폐허의 세계. 아르케아, 기억의 세계였다. > >“이번엔 예감이 좋았는데.” 소녀가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회전하는 유리 조각을 보며 중얼거렸다. > >“이 기억에도 이 세계의 창조에 관련된 단서는 없었어. 기억을 볼 수 있다면, 없애버릴 수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 >소녀가 유리 조각을 떠나보내자 그것이 땅 위에 흐르는 반짝이는 강으로 돌아갔다. 사야라는 이름의 소녀는 아무것도 없는 지평선을 쳐다보고서, 무의식적으로 입술에 손을 대고는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 >방금 전 기억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다시 생각하며, 그전에 방문했던 수천 개의 기억과 비교했다. =====# 3-5[* 6.0 업데이트 이전에는 3-0.] #===== >사야가 처음 깨어났던 날. > >이 세계에서 깨어나는 이들은 누구도 그전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사야도 마찬가지였다. > >그러나, 그녀가 느끼는 감각은 보통과는 달랐다. >소녀의 마음이, 정열적으로 요동쳤다. > >점점 격렬해지는 그 감정에 낮은 신음 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 >자신의 복부를 덮은 옷을 꽉 쥐었다. >잠시 자신의 귀가 멀었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 >그 순간 눈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 >“응...?” > >소녀는 기침을 한 번 하고 일어섰다. 오른 눈이 있어야 할 자리를 만져보자 장갑 낀 손 너머로 느껴진 것은, 단단한 물체를 감싼 부드러운 무언가였다. > >소녀는 그제야 자기가 장갑을 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몸을 살피며, 왜 이런 옷을 입고 있는지 고민했다. > >그다음 어째서 자기가 “옷”이라는 게 뭔지 알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 >소녀는 벽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었다. 주변은 그 벽과 같은 모양의, 하지만 심하게 부서진 벽이 3개 더 있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았으나 그곳에 지붕은 없었다. > >그리고 소녀는 왜 자신이 저 위에 지붕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궁금해했다. >사실, 소녀는 이 장소를 아주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그녀는 자신이 기대어 자고 있었던 벽을 따라 터덜터덜 걷다, 넘어갈 수 있을 만한 턱을 발견했다. > >그곳에 쌓인 하얀 벽돌들을 넘어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 벽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하얀색이었다. > >이 세상은 낡고 패배한 인류 사회의 흔적, 또는 여러 사회를 모방한 장소였다. > >기묘하다... 그보다 더, 이 세상이 기묘하다고 생각하는 소녀 자신이 기묘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 >기억의 조각을 찾기 전까지, 소녀는 이 장소와 자기 자신의 정체에 관해 수십 개의 이론을 내놓았다. 혼자서, 자신의 이름조차 모른 채로,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냈다. > >시간이 지나, 특히 그중 하나의 이론을 증명할 증거들을 찾아냈다. >---- >소녀는 천성적으로 끈질기고 호기심이 많았다. >이 새하얀 세계는 수많은 질문을 던졌으나, 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 >수일이 지나도, 이 폐허 속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수주가 지나도, 기억의 유리 속에 답은 없었다. > >이 세상은 유리 조각으로 가득했다. 소녀를 놀리듯이, 이 세계보다 더욱 생생하고 다채로운 세상을 비추는 유리 조각들. > >인류 문명의 모방으로 가득 찬, 현실 세계를 인쇄해낸 듯한 메아리의 세계. 아마 두 달, 어쩌면 그보다 긴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이론에 확신이 생길 것 같다.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 >얼마 전 소녀가 깨어난 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계단층 꼭대기에서, 소녀는 하늘의 일부분이 물결치며 조각조각 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음을 관찰했다. > >그 무엇도 비추지 않는 깨진 유리 창문 같았다. 그 실상은 수백 개의 아르케아가 모여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그 순간, 소녀는 확신했다.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 >하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증거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관찰만으로 결론을 내릴 순 없었다. >---- >그렇게 소녀는 맹세했다. 질문만 던지고 답은 주지 않는 이 세계의 수수께끼를 풀어내어, 존재 목적을 찾아내겠노라고. > >이 세계의 유일한 주민으로서, 그것이 소녀의 첫 번째 의무가 될 것이다. > >그렇게 소녀는 아르케아를 받아들였고, > >아르케아도 소녀를 받아들였다. > >드넓고 무한한 기억의 세계를, 단지 관찰할 뿐 아니라, 살아갈 것이다. =====# 3-6 #===== >“이 세계들에선 인간은 거의 신과 같아.” > >소녀는 그걸 깨달았다. > >오른 눈에 꽃이 핀 소녀가 머릿속에서 재생시키던 기억의 표지를 다시 덮었다. 완전히 무의미했던 여정은 아니었다. > >거의 무의미했을 뿐. > >처음엔 짜증이 났다. 그 세계는 아주 시시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 시시함 덕분에 인류의 잠재성에 대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그래도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 >“방법”에 대한 이론보다,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이 그녀의 원동력이었다. 이번 여정 또한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한, > >적어도 그 일부라도 붙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이 언제나 그녀를 앞으로 향하게 만들어주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기억을 200개쯤 보았을 때, 다른 목적이 생겨났다. >---- >“이론을 재구축해버릴 만큼 새로운 건 없었어.” > >소녀가 유리 조각의 강으로부터 한 조각을 불러오며 속삭였다. > >“하지만 어느 정도 가치 있는 정보는 얻었지.” > >소녀는 그 조각의 빛을 바라보며, 그 너머에 비추어지고 있는 과거의 영상을 살폈다. > >“거의 다 왔다...”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속삭였다. > >소녀는 손 위에 조각을 올리고서, 이젠 익숙해진 다리를 건넜다. 왼쪽으로는 한때 도시였을 건물들이 중구난방으로 무너져있고, 오른쪽으로는 유리와 돌이 혼란스럽게 섞여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는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 >그녀는 다리를 따라 “태어났던” 장소로 돌아갔다.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는 상관없었다. > >소녀는 오랫동안 걷다, 네 개의 무너진 벽 사이로 반짝이는 커다란 유리 구체가 있는 장소에 도달했다. > >그 구체는 만들어지다 만 듯, 깨진 조개껍질과 같이 부서져있었다. 웃음, 눈물, 죽음, 그리고 축제의 기억이 구체의 일부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 >꽃과 들판, 사막과 바다, 동물과 사람, 그리고 기계... 그런 기억들이 구체를 채웠다. >---- >기억을 서로 이어 붙인다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을지는 소녀도 몰랐다. 이렇게 갖다 붙인다고 해서 기억끼리 “연결”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 >소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새로 가져온 조각의 빛을 보았다. > >“너는 얼마나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을까.” 소녀가 말한다. > >그렇게 조각이 열리고, 소녀는 새로운 시간대로 들어갔다. 곧, 인공조명과, 저녁놀로 물든 하늘에 뜬구름을 뚫을 정도로 높이 솟아오른 탑과, 공중을 나는 차량으로 가득 찬 세계를 마주했다. > >불쾌한 공기가 폐를, 불협화음이 귀를 엄습했다. > >그렇게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과거를 지니게 된 소녀는, 감정 없이 앞에 펼쳐진 광경을 살폈다. > >수백 개의 질문이 떠올랐다. > >무슨 대가를 치르든, 무슨 일을 해야 하든, 반드시 그 답을 찾으리라. === 레테 === ||<-5><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741><rowbgcolor=#874> {{{#fff '''[[Arcaea/파트너#레테|{{{#ddd 레테}}}]] 스토리 순서'''}}} || || [[Arcaea/스토리/Act I-I#s-3.2.1|Ambivalent Vision]][br]{{{-2 Side : 5-1 ~ 5-6}}} ||<|2> → ||<|2> [[Arcaea/스토리/Act II-I#s-3.1.1|Ambivalent Vision]][br]{{{-2 Side : 18-I ~ 18-III}}} || ==== 해금조건 ==== [anchor(Genesis)][anchor(Moonheart)][anchor(vsキミ戦争)][anchor(Blossoms)][anchor(corps-sans-organes)][anchor(Lethaeus)] ||<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741><rowbgcolor=#874> '''{{{#fff 스토리 #}}}''' || '''{{{#fff 진행 순서}}}''' ||<-3> '''{{{#fff 해금 조건}}}''' || || 5-1 || Ambivalent-1 ||<|6>[[파일:charicon_Lethe.png|width=50]] || [[파일:Arcaea/Genesis.jpg|width=50]] ||[[Arcaea/파트너#레테|레테]]로 [[Genesis(Arcaea)#Arcaea|Genesis]] 클리어 || || 5-2 || Ambivalent-2 || [[파일:Arcaea/Moonheart.jpg|width=50]] ||[[Arcaea/파트너#레테|레테]]로 [[Moonheart#Arcaea]] 클리어 || || 5-3 || Ambivalent-3 || [[파일:Arcaea/vsキミ戦争.jpg|width=50]] ||[[Arcaea/파트너#레테|레테]]로 [[vsキミ戦争#Arcaea|Romance Wars]] 클리어 || || 5-4 || Ambivalent-4 || [[파일:Arcaea/Blossoms.jpg|width=50]] ||[[Arcaea/파트너#s-4.2|레테]]로 [[Blossoms#Arcaea]] 클리어 || || 5-5 || Ambivalent-5 || [[파일:Arcaea/corps-sans-organes.jpg|width=50]] ||[[Arcaea/파트너#레테|레테]]로 [[corps-sans-organes#Arcaea]] 클리어 || || 5-6 || Ambivalent-6 || [[파일:Arcaea/Lethaeus.jpg|width=50]] ||[[Arcaea/파트너#레테|레테]]로 [[Lethaeus#Arcaea]] 클리어 || ==== Ambivalent Vision ==== =====# 5-1 #===== >[[파일:Arcaea/Story/5-1.jpg]] >---- >절벽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 >생의 굴레에서 벗어난 이들은 소라게가 껍질을 버리듯 영혼을 두고 가는 법이며, 새로운 생명이 그로 말미암아 태어난다. 그들의 정신은 머리 위에서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연못으로 승천한다. > >마치 물처럼, 정해진 형태가 없는 영혼들. 그 새하얀 영혼들이 하늘을 꿰뚫은 강렬한 색채의 연못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회색으로만 가득 찬 세계에 비추는 형형색색의 빛깔. > >이를 혹자가 보았다면 경이로운 광경이라 했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소녀에게 이는 일상의 풍경이자, 일감에 지나지 않았다. >---- >“방금 왼쪽에서 뭔가 흔들렸나?” > >소녀의 뒤쪽에서 동료가 물어왔다. 소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그가 바닥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 >동료의 무릎 위에 얹혀 있는 넓고 얕은 검은색 그릇에는 물이 담겨있었다. > >물 위에 물체를 떨어뜨려 그 파문으로 운명을 점치는, 일종의 주술에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물 표면에 파문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막 점을 친 참이었다. > >“아니, 왜? 뭔가 이상해?” > >소녀가 가볍게 대답했다. > >“땅이 조금 흔들린 것 같아.” 남자가 말했다. > >“이런... 좋지 않은데. 더 가까이 다가가볼까?” > >“흠... 균열이 벌어졌을 수도 있겠는데, 한 번 가봐.” > >“그래.” > >소녀는 그렇게 대답하고선, 절벽 밑으로 뛰어내렸다. >---- >빽빽하게 들어찬 영혼들 덕에 소녀는 천천히 낙하할 수 있었다. 소녀가 자신의 옷을 꽉 맞게 조이던 실을 찾아내 당기자 옷이 헐렁해지며 약한 빛을 발했다. > >옷이 큰 소리를 내며 펄럭거리자 영혼들의 영향이 적어져 소녀의 낙하가 빨라졌다. > >소녀는 착지함과 동시에 허리춤에서 낫을 꺼내들어 펼쳤다. 그리고 날을 위로 향하게 뒤집은 뒤 밑동 위에 올라타, >멀리 있는 목적지까지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 >균열 내에 갇힌 영혼들을 구슬려 빼낸 후 균열을 닫는 것. > >다시 절벽으로 돌아와 또다른 이상이 생기는지 감시하는 것. > >그것이 소녀의 임무였다. 매일이 이런 일의 반복이었다. >임무를 수행하다 자신의 때가 오면 소녀 또한 영혼들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 >사실, 소녀의 때는 이미 왔었다. > >아주 오래전에 이미... 소녀가 알던 세상과 삶은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었다. =====# 5-2 #===== >죽음이라는 게 이래서는 안된다. > >죽음이란 결말이다. “다음 생” 따위는 없다. 태어나, 살아가고, 죽은 세계가 전부다. > >소녀가 살아있을 적엔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천국이니, 지옥이니, 연옥이니, 모두 고대적 사람들이나 믿던 교훈적 허구에 불과했다. > >그렇다면 이 장소는 도대체 뭘까? 소녀는 어째서 이 정체불명의 세계에서 깨어나게 된 걸까? 대체 뭘까? 대체 뭘까... > >이제 와서 그 질문에 의미가 있긴 한가? >---- >“흠...” > >소녀는 등대 위에서 무릎을 감싸고 앉아 사막을 살펴보았다. 하얀색, 하얀색, 끝없는 하얀색... 그 사이에 반짝이는 유리 조각. “아르케아”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이었다. > >소녀는 턱을 괴고 나른하게 왼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다리가 있었다. > >“휴우...” >소녀는 숨을 한 번 내쉬고는 일어서서 허리춤에서 낫을 꺼냈다. 낫은 소녀가 살아있을 때만큼 효과적이진 않았지만, 여전히 훌륭한 이동 수단이었다. > >소녀는 무의식적으로 앞머리를 가르마의 반대편으로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손가락 끝이 소녀의 왼쪽 뿔에 닿았다. > >그래, 나에겐 뿔이 있었지... >여태껏 아르케아에서 본 어떤 기억에서도, 뿔이 달린 인간은 본 적 없었다. >---- >이 황량한 세계에서 유희라고는 그 유리 조각들이 비추는 기억밖에 없었기에, 소녀는 아르케아를 들여다보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그들을 분류했다. 마치 기록처럼. >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녀와 같은 모습의 사람이 등장하는 기억은 없었다. > >소녀와 같은 종족... 종족... 종족? 종족이라 해도 되는 걸까? 소녀는 살아있을 적 어떤 “민족”의 일원이었던 걸까? > >살아있을 때에도 지금처럼 영혼들을 관리하는 민족의 일원이던 걸까? 이제 와서 의미 없는 질문이지만, 생전의 기억을 좀 더 떠올린다면 예전의 자신에 더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 >지금은, 소녀가 집으로 삼은 장소에서 어떤 유리 조각이 사라졌고, 남았으며, 새로 생겼는지 기록해야 한다. > >소녀는 등대에서 내려와, 또 다른 일과를 준비했다. =====# 5-3 #===== >낫은 여전히 잘 날았다. > >마녀가 빗자루를 타듯 낫의 손잡이 위에 올라탄 소녀는 파괴된 거리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 >날은 그녀의 뒤에 위를 향한 채 꼿꼿이 서있다가, 모서리를 돌 때마다 기울어졌다. >소녀는 낫을 타는 것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는 모양새였다. > >소녀는 날아가는 도중 한 유리 조각의 무리로 시선을 옮겼다. 마치 강처럼 도로를 따라 흐르는 모습이었는데, 적어도 이 무리를 발견한 이후로 그 어떤 조각도 벗어나거나 새로 합류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 >이는 매우 특이한 일이었기에, 소녀는 매일 이 조각의 무리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도 무리를 이루는 유리 조각에 변화는 없었다. > >연극, 노래, 슬픔, 기묘하고 거대하며 재빠른 기계에 대한 기억들.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실로 특이한 조합이다. > >그 사실이 소녀에겐 매우 흥미로웠다. > >소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기억을 찾으려 눈을 굴렸다. >---- >물론 기억의 무리에서 특정한 기억 하나를 찾아내는 일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 같다. 하지만 그 기억은, 소녀에게 특별히 이끌리고 있었다. > >한 유리 조각이 무리에서 벗어나 소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선, 낫을 잡고 있던 오른손을 들어 올려 조각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 >그 기억에는 조그만 수제 피리가 만들어지는 최종 공정이 담겨 있었다. 악기를 완성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 >하지만 장인은 이 마지막 한순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다. > >악기가 소리를 내는 그 순간을 위해. > >장인이 플루트를 불어보았다. 그리고선 음이 안 맞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 >하지만 소리는 났다. >---- >이 기억은 한 기나긴 여정의 끝이기도 했고, 더욱 장대한 여정의 시작이기도 했다. > >참으로 흥미로운 순간을 포착한 기억이다. > >무리 속의 다른 기억들 또한 특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5-4 #===== >그 기억은 소중하다. > >사실, 소녀가 "소중하다"라고 생각하던 기억은 적어도 한 번쯤 그녀에게로 날아온 적이 있는 것들이다. > >첫 반려동물의 기억, 생존과 희생의 기억, 첫 말의 기억, 용기를 주는 연설의 기억, 중요하고 개인적인 대화의 기억... > >가끔, 소녀가 기억의 무리 옆을 지나갈 때면, 이런 소중한 기억들이 그녀를 따라오곤 했다. > >그럴 때면 기분이 썩 괜찮았다. 이렇게 특별한 기억들이 한 장소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까지 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훨씬 더 좋은 일은 따로 있었다. > >아르케아의 세계는 기억의 보관소다. 충치의 기억, 맛있는 식사의 기억, 승마의 기억, 우유를 엎지른 기억, 무엇이든, 기억되었다면 이 장소로 오게 되어있다. >---- >그리고 그런 평범하거나 특별한 기억 하나하나가 사람을 이룬다.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뿐만 아니라, 기억이란 어떤 사람이 살아있었다는 유일한 증거이다. > >사람들은 기억을 남기기 위해 기념비와 묘비를 세우기도 한다. 잊힌다는 것은... 아르케아의 세계에서 소녀가 경험하고 있듯, 어쩌면 죽음보다 더 비극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 >“...” > >소녀는 말없이 멈추어 서서 한때 광장이었을 장소에 발을 디뎠다. 이곳에선, 셀 수도 없이 많은 수의 유리 조각이 공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 >소녀가 생각하기에, 이 장소는 마치... 정원과 같았다. 정원을 이루는 “식물”들은 여기서 자라난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온 것이긴 했지만. > >소녀는 어찌 됐든 이 정원을 가꾸었다. 이 조각들은 소녀가 이 아르케아의 세계에서 “집”으로 여기는 장소 주변에서 찾아낸 것들이다. > >이 조각들은 소녀가 깨어났을 때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흘러들어온 것들이다. >---- >“흐음...” > >그녀가 콧소리를 내며 유리 조각들을 모았다. 조각들은 보통 떠나진 않지만, 가끔 무리에서 벗어날 때가 있다. > >소녀는 그게 걱정이었다. > >...아르케아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형태를 한 것에 이유는 있는 걸까? > >...생전에, 소녀는 질문은 많이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걸 깨달았었다. =====# 5-5 #===== >“음?” > >아르케아를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흔들렸다. >... 왜 생전의 기억이 떠올랐지...? > >소녀의 머릿속에 마치 손님처럼 나타난 것은, 조그만 기억의 편린이었다. > >처음엔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그것이 자신의 기억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 >기억이 난다. 어떤... 무슨 일이 있었는지. >---- >오래된 나무 두 그루 밑에 조용히 앉아있던 소녀와 동료. 영혼의 강은 아래로 떠내려갔고, 밤이 하늘을 뒤덮었다. > >“모순이야.”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모든 생명이 중요하다고? 이 일을 반복해 봐. 매일매일... > >영혼은 숫자로밖에 안 보이지. 많냐, 적냐. 그게 다라고. 그런데 그게 우리가 인간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니야. > >오히려... 인간성에 너무 매달려서, 차가운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지.” > >“하지만 이런 걸 너무 신경 쓰지 마.” 남자가 영혼의 강을 보며 소녀를 다독이듯 말했다. “너무 깊게 생각하면 정신이 먼저 망가져버릴 테니까. > >너, 글렌(Glen)에 갔을 때 이 길을 걷고 싶은 이유가 뭐라고 설명했지?” > >소녀가 대답했다. > >“역시, 다들 똑같이 대답한다니까.” 남자가 말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 >“그 대답만 기억해. 그럼 괜찮을 거야.” >---- >기억은 그렇게 끝났다.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소녀의 정신이 현재로 돌아왔다. 대답을 기억하라고? > >대답... 대답... 내가 뭐라고 답했었지? > >“기억이... 안 나.” > >소녀가 약하게, 그러나 무겁게, 속삭였다. > >남자가 욿았다. 소녀는 그걸 이제야 느꼈다. 슬픈 사실을 깨달아버린 소녀의 눈이 흐릿하고 따스한 애도의 색으로 차올랐다. 새로운 기억이 떠올랐다. > >하지만 너무 크게 조각나버린 기억은, 멋대로 질문을 던지고서 그 답은 주지 않았다. 소녀는 낙심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 >자신이 온전한 자신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의 고통. 이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까? >---- >유리의 구름 아래에서 소녀는 눈을 감고서, 고개를 숙이고 손을 얼굴에 갖다 댔다. 울지 않을 것이다. > >울 수는 없다. 여기서 울어버리면, 무시하기로 했던 현실이 자신을 덮쳐올 것만 같아서. 소녀는 가만히, 그 자세로 앉은 채 입술을 깨물었다. > >울지 않을 거야. 절대로. 절대로! > >새하얀 세계에 홀로 웅크려앉은 사신은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껴안았다.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한다. > >돌리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진정시키는 동안, 피하고 싶지 않았던 생각이 고개를 든다. 만약, 이곳이 죽음 이후의 세계라면... > >소녀는 차라리 모든 것을 망각하길 바랄 것이다. =====# 5-6 #===== >[[파일:Arcaea/Story/5-6.jpg]] > > 소녀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혼란은, 침묵을 가져왔다. >원래 말이 없던 그녀지만, 그 정도가 더 심해져 며칠이고 이어졌다. > >그 기억의 가장 중요한 부분, 질문은 많이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 소녀가 깨달은, 여태껏 지키려던 철칙이었다. > >그러나 이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옛 기억의 맛은 너무나 달콤했다. 소녀는 그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 >하지만, 기억해낸 것보다 그렇지 못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자신이 반쪽짜리 인간임을 다시 깨닫게 될 뿐이었다. > >이젠 그냥 잊어버리자. >---- >소녀는 오늘도 형형색색의 기억들을 마을 광장으로 인도했다. 이 행위를 일과로, 습관으로, 결국은 본능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 >어쩌면 단순한 일만 반복하다 보면 마음속에서 자신을 잡아먹으려 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절망의 구덩이로부터 멀어질지도 모른다. > >감정을 가져서 느낄 수 있는 게 가슴이 찢어질 듯한 슬픔뿐이라면, 차라리 모든 걸 잊어버리는 망각을 택하겠다. > >아르케아 조각들을 이끄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하늘에서 반짝이던 어떤 조각에 눈이 갔다. 소녀는 별생각 없이, 그 조각을 가까이 끌어왔다. > >그것에 비친 것은 길가에 쭈그려앉아 손으로 무언가를 감싼 아이의 모습이었다. 개미들이 아이의 손을 피해 갔다. > >하지만 그 손이 감싸고 있는 것에는 관심이 있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 >사신은 좀 더 집중해서 이 기억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숨기고 있던 것은 다친 딱정벌레였다. 잠시 생각한 후, 아이는 두 손에 딱정벌레를 담아 올렸다. > >그게 기억의 전부였다. >---- >소녀는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 >이 얼마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기억인가. > >딱정벌레는 살아났나? 아이는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 언제까지 이 일을 기억했을까? > >바보같다... > >소녀는 웃음을 내뱉었다. >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기억을 떠올림으로 자신이 이 세계에 있는 목적을 잊어버리게 되다니. > >아르케아는 기억의 세계다. 죽은 자의 기억인지, 산 자의 기억인지. 그런 건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아르케아는 모두가 잊어버려도 좋을 법한 이야기들을 기록한 곳이다. > >영혼이, 몸이, 기념비가, 대지 그 자체가 소멸해버릴지라도, >어떻게든, 아르케아는 그들을 기록한다. >---- >소녀는 여기선 혼자다. 동료도 곁에 없다. 깨어났을 때 무얼 하라고 시키는 이도 없었다. 그렇다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 > >소녀는 지금 이 세계에 살고 있다. 옛 삶은 끝났다. 결말이 지어진 이야기다. > >하지만 소녀에겐 아직 주체성이 남아있다. 아직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왜 영혼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 >하지만… 어쩐지 지금의 반쪽짜리 자신도, 당시의 완전했던 자신과 같은 답을 내놓았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 >삶도 기억도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선 다르다. 소녀 자신의 기억은 잊어버렸을지 몰라도, 이 기억들은 그렇지 않다. > >“영혼의 관리자”에서 “기억의 관리자”로. 나쁘지 않은 울림이다. >---- >그대들은, 내가 여기에 있는 한, 기억될 것이다. > >영원히. === 코우 === ==== 해금조건 ==== [anchor(Paradise)][anchor(Party Vinyl)][anchor(Flashback)][anchor(フライブルクとエンドロウル)][anchor(Nirv lucE)][anchor(Diode)][anchor(GLORY : ROAD)] ||<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eab><rowbgcolor=#fde,#330019> '''{{{#634,#cb99a9 스토리 #}}}''' || '''{{{#634,#cb99a9 진행 순서}}}''' ||<-3> '''{{{#634,#cb99a9 해금 조건}}}''' || || 4-1 || Crimson-1 ||[[파일:arcaea_char_unknown_icon.png|width=50]] || [[파일:Arcaea/Paradise.jpg|width=50]] ||[[Paradise(Arcaea)#Arcaea|Paradise]] 클리어 || || 4-2 || Crimson-2 ||<|3>[[파일:external/wikiwiki.jp/?plugin=ref&page=%A4%B3%A4%DC%A4%EC%CF%C3&src=charicon_Kou.png|width=50]] || [[파일:Arcaea/Party Vinyl.jpg|width=50]] ||[[Arcaea/파트너#코우|코우]]로 [[Party Vinyl#Arcaea]] 클리어 || || 4-3 || Crimson-3 || [[파일:Arcaea/Flashback.jpg|width=50]] ||[[Arcaea/파트너#코우|코우]]로 [[Flashback(Arcaea)#Arcaea|Flashback]] 클리어 || || 4-4 || Crimson-4 || [[파일:Arcaea/Paradise.jpg|width=50]] ||[[Arcaea/파트너#코우|코우]]로 [[Paradise(Arcaea)#Arcaea|Paradise]]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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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폈다. > >비몽사몽한 상태로 문을 찾아, 끝없이 넓은 아르케아의 세계에서 일과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 >소녀의 모험은 즐거운 일만 가득한 건 아니었고, 긴 여정의 끝에 언제나 대단한 발견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 >하지만, 소녀가 완전 백지의 상태로 이 세계에 깨어난 이후로 단 두 가지, 절대로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 >하늘, 그리고 소녀의 열정. 이 둘은 계속해서 빛나고 있다. > >“좋았어... 우선 준비운동부터 할까!” 혼잣말로 속삭였다. > >소녀가 앞으로 손을 뻗자 커다란 유리가 소녀 쪽으로 날아왔다. >기억의 조각, “아르케아”가 아니다. > >크기가 많이 클 뿐인 평범한 유리판이다. 소녀는 유리판에 올라타 또다른 유리판을 불러냈다. >---- >이 세계를 수놓은 폐허 도시들과는 멀리 떨어진 섬의 해변에 있는 외딴 건물. 그것이 소녀의 집이었다. > >해변이라고 해봐야 바다는 없었고, 그녀의 집과 같은 건물이 마치 가재가 버린 껍질처럼 해변 곳곳에 세워져있을 뿐이었다. > >섬의 중심부는 하얗고 커다란 기괴한 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숲이었다. > >소녀의 손에 집들은 성한 곳이 없었다. 손가락질 한 번에 벽과 창문은 임시 계단이 되었다가, 경주로가 되었다가, 터널이 되었다. > >소녀는 반짝이는 터널을 순식간에 내달렸다. 이것이 준비운동이었다. > >깨어난 후로 며칠이 되지 않아 소녀는 빠르게도 이 세계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르케아의 세계는 그녀의 변덕에 맞춰 움직여주었다. > >그 와중, 텅 빈 바다의 모래 위에서 무언가가, 한때 바다였던 드넓은 땅 위에 흩어져 있는 무언가가 반짝였다. > >소녀는 그것에 한 번 눈길을 주고선 숨을 들이쉬고,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 4-2 #===== >소녀는 자신이 올라탄 유리판은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었지만 아르케아만큼은 다룰 수 없었다. > >이 기억의 세계에서 소녀를 따라오는 기억의 조각은 없었다. 관찰하거나 방문할 수 있는 게 고작이었다. > >과장된 기합 소리를 내며 소녀는 유리판에서 뛰어내렸다. 소녀의 뒤에 있던 터널은 어느새 무너진 채였다. > >그녀는 공중에서 오른손을 뻗어, 침대에 있던 이불을 불러와 자신의 몸을 감쌌다. > >그러고는 무겁고 푹신한 어떤 물건을 불러냈다. 색이 바랜 커다란 흔들의자가 날아와 아직 공중에 있던 그녀를 받았다. 나태한 자의 옥좌와 같았다. > >그렇게 소녀는 옥좌에 앉은 채 집 위로 날아가, 묘비와 같은 고층건물로 가득 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 >소녀는 숨을 내쉬었다.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오늘의 “아침”도 완벽했다. 그러나 수평선을 바라보는 소녀의 마음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 >이 세계는 얼마나 큰 걸까? 대체 뭐가 있는 걸까? 내가 여태껏 보아왔던 게 전체의 3분의 1은 될까? 16분의 1일까? > >이 세계는 거대하고, 거대한 만큼 흩어져 있는 기억의 조각도 많다. >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평화로운 날씨를 만끽하며 흔들의자에 앉아 몸을 부드럽게 앞뒤로 흔들던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 >여긴 무지막지하게 거대한데다 이치를 알 수 없는 세계다. 이 경이로운 세계가 소녀, 자신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 >소녀가 눈을 떴다. 하늘을 여전히 빛으로 반짝였다. > >세상 반대편 어딘가의 하늘은 별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 하늘 아래에선 다른 소녀가 태양을 보고 싶다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 >붉은 옷의 소녀는 이불을 잡아끌어 어깨까지 덮었다. > >낮이 끝나지 않는다는 건, 매일매일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이다. > >이 여정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 4-3 #===== >“흐음... 그런데...” > >소녀가 안락의자로 몸을 더 파묻으며 혼잣말로 속삭였다. > >“저 위에 태양이 있긴 한 건가?” > >소녀가 눈을 찡그리며 하늘을 쳐다보고선 조용히 생각한다. > >태양이라 할 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이리도 고르게 빛이 퍼지는 이유가 뭘까? > >여태껏 소녀는 땅 위에서만 움직였다... 하늘로 올라가 보는 건 어떨까? >---- >악동같은 미소가 소녀의 얼굴에 퍼졌다. > >소녀는 의자 위에 서서 이불을 내던졌다. 떨어지는 이불 옆으로 나무 기둥이 날아올라왔다. > >소녀는 의자에서 뛰어내려 날아오던 기둥에 달린 조그만 철막대를 잡았다. 기둥의 옆면에 단단히 발을 고정하고,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 >소녀는 이 기둥이 다른 세계에선 전기를 전달하는 용도로 쓰였던 구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밑 쪽에 있는 다른 철막대에 소녀가 발을 갖다 대자, 기둥에 한 발, 한 손으로 매달린 모양새가 되었다. 옛 세계의 흔적에 매달려있는 소녀에게 두려움은 없어 보였다. > >소녀는 한 번 더 수평선 너머의 도시를 바라보고선,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타고 오를 것이 필요하다 느꼈다. > >소녀의 집을 제외한 해변의 건물들이 또 해체되기 시작했다. 벽, 침대 뼈대, 수납장, 무너진 터널의 파편들이 모래를 박차고 일제히 하늘로 솟아올랐다. > >그것들이 한곳에 모여, 서서히 어떤 물체의 모양이 되어갔다. 그러나 소녀는 건축에 재능이 없었다. > >소녀가 만든 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으며, 서서히 하늘을 향해 쌓아 올려지다가 이따금씩 이상한 각도로 뒤틀렸다. >---- >아쉽게도 소녀가 사는 섬에 자원이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재가 모두 쓰고도 반밖에 완성되지 않은 탑을 보며 소녀는 표정을 구겼다. 아직 높이가 1킬로미터도 되지 않았다. > >소녀는 짜증을 내며 수평선 너머의 도시를 바라보고선 손을 뻗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잡아당겼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당연한 일이다. > >소녀는 강력했지만 신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4-4 #===== >소녀는 힘없이 손을 다시 떨구고 다른 해결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그래, 탑 대신 나선 계단은 어떨까? 한 시간이 지났다. > >또 한 시간, 또다시 한 시간, 마지막으로 두 시간이 더 지났다. > >마침내 완성된 작품을 소녀는 자랑스레 바라보았다. > >아직 뒤틀리고 뒤죽박죽인 생김새지만 아까 전의 탑보다는 훨씬 괜찮은 만듦새였다. 적어도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자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 >소녀는 지체 없이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떨어질 때를 대비해 안락의자를 옆에 동행시킨 채로, 소녀는 한 걸음 한 걸음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 >일정 높이에 다다를 때마다, 소녀는 가장 밑에 있는 계단을 뜯어내 위에 붙였다. > >영원히 파괴와 재조립을 반복하는 무한 계단의 완성이었다. 안개를 뚫고 세상의 정점을 향하는 계단을 소녀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 >여정의 끝은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밤”이 되어 잠을 자야 할 정도였다. > >4일 정도 지났을 때 즈음, 마침내 “천상”이 소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제야 소녀는 “천상”이란 뚫을 수 없는 거대한 구름의 천장임을 깨달았다. > >아무리 소녀가 계단을 그 위로 올려보려 해도 구름은 뚫리지 않았다. 소녀는 일단 계단을 물렀다. > >곧, 소녀는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 계단의 가장 윗단까지 올라갔다. > >소녀는 계단의 가장 윗단을 해체해 커다란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서서 손을 위로 들어 구름을 밀어내려 했다. >아무리 밀어도 구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하지만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까치발을 들고 밀었다. 조금이라도 좋으니 구름 너머의 광경을 보고 싶었다. > >하지만, 결국 소녀는 실패했다. >---- >“말이 되냐고...” > >소녀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 >그렇게 낙담하던 와중, 무언가가 그녀의 시선을 빼앗았다. > >소녀의 오른편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마치 나무를 흔들었을 때 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소녀가 힘껏 밀었던 구름의 천장에서 반짝이는 물체들이 떨어졌다. > >아르케아다. 어림잡아 스무 개의 아르케아가 소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 >그리고 붉은 옷을 입은 소녀는 깨달았다. > >태양이 없는 아르케아의 하늘까지 와서야, 마침내 자신에게 이끌리는 기억의 조각을 찾아냈다는 것을. =====# 4-5 #===== >향이 타는 냄새가 고르게 퍼진 공기. > >널리 울려퍼지는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의 목소리. > >밝고 활기찬 분위기. > >거리로 새어 나오는 향기로운 요리의 냄새까지, 소녀는 모두 느낄 수 있었다. > >위를 올려다보자, 텅 빈 푸른 하늘에 태양이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 >소녀가 본 적 없는 기억의 세계다. 소녀는 가만히 서서 이 모든 것을 만끽했다. > >이 기억은 한 장인의 조수가 지녔던 기억이다. 이 아이는 지금 심부름 중이었다. > >소녀는 이 아이가 아직 무엇을 만드는 장인의 조수인지는 몰랐으나, 딱히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 > >이 세계는, > >“멋져...!” > >마치 환상과 같았다. > >눈을 반짝거리며 입을 헤벌레 벌린 소녀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머리 위로는 색색의 종이와 천이 묶여 옥상과 옥상을 이었다. 마치 전깃줄에 장식을 해놓은 모양새였다. > >축제 같은 분위기를 풍겼기에 전깃줄은 아니겠지만. 판석으로 포장된 길, 붉은 벽돌로 지은 집, 검은 연기를 뿜어대는 굴뚝을 보아하니 이곳은 오래된 마을이거나 도시겠구나, > >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 >가판대의 상인들이 신기하게 생긴 장신구를 팔고 있다. 태양을 모티브로 한 목걸이, 부적, 반지들이 길을 수놓고 있다. > >어떤 가판대는 다른 기억의 책에서 본 적 있는 생물의 인형을 팔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복장은 소녀의 것과 비슷했다. >마치 축제 의상과도 같지만, 지나치게 화려하지는 않은 느낌의 의상. 따뜻한 계열의 색으로 가득 찬 세계지만 이따금씩 보이는 푸른색이 눈을 사로잡았다. > >소녀는 돌아다니다 한 무리의 음유시인들과 마주쳤다. 그들의 노래는 청자들에게 교훈과 경고를 번갈아 주다, 마지막으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 >소녀는 거리를 활보하며 과자를 마구 시식했다. 너무 큰 주의를 끌지 않도록 조심하며, 눈에 보이는 과자 매대의 시식품을 모두 입에 넣었다. > >그렇게 시식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이에 특히나 소녀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한 붉고 매혹적인 조각 과자였다. 딸기 타르트, 그렇게 불리는 듯했다. > >조수가 지니고 있던 동전으로 소녀는 타르트를 사 한 입 베어 물었다. 그와 동시에 소녀는 실감했다. > >이 세계는 실로 경이롭다! 경이롭도록 멋진 세계다! 달콤한 간식이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환상적인 세계다. > >소녀는 이 기억의 세계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의욕이 충만해진 소녀는 더욱 빠른 걸음으로, 거의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가끔씩 빙글빙글 돌기도 하며 거리의 구석구석을 탐험했다. =====# 4-6 #===== >달리면 안 된다. 달렸다가는 이 거리의 사소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감상할 수 없게 될 테니까. > >소녀는 광장의 건물앞에 세워진 간판들을 읽었다. 이곳 사람들은 미신을 믿고 있었다. > >신, 악마, 요괴 따위의 정령과 요정을 믿고 있었다. 무대에 선 예술가들은 “허구적이고”, “기묘하고”, “불가능한” 공연을 펼쳤다. > >그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마법”을 행하고 있다 믿고 있었다. “주문 외우기”는 손에 색색의 가루를 쥐고 불꽃과 연기를 내는 트릭이고, “운명 점치기”는 고인 물에 말을 건 뒤 파문을 해석하는 점치기고, “다른 존재와의 소통”은 조명을 이용한 어떤 마술인데 소녀가 한눈에 봐서는 트릭을 알 수 없었다. > >이러한 믿음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 놀랍고 경이로운 마법과 신앙의 세계. 그 누구도 의심 한 톨 없이 그 모든 게 사실이라 믿고 있다. > >이런 진기함으로 가득 찬 거리를 걸어가던 소녀는 이윽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일종의 공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가치 있는 전통이지만, 절대로 사실은 아니다. >---- >소녀는 도시의 외곽에 다다랐다. 이는 이 기억의 한계선이기도 했다. 이 선을 넘는 것은 몇 번을 시도해도 불가능했다. > >낮은 나무 울타리 너머로, 푸르른 언덕과 몇 개의 떡갈나무, 그리고 반짝이는 호수가 보였다. 소녀는 어떻게 이 세계의 주민들이 그렇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지 이제서야 이해했다. 그녀 자신도 유리가 날아다니는 기묘한 세계에서 왔다. > >이런 세계에 요정이 있다고 한들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 >자연과 논리를 뛰어넘는 존재가 있다 한들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 >소녀는 지금 한 장인의 조수가 지녔던 기억 속에 들어와있다. 그 장인은 자칭 마법사로, 요정과 같은 환상의 존재를 연구하는 자다. > >소녀가 빌리고 있는 몸의 주인은 그 마법사의 연구가 모두 마땅한 결과를 내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 >소녀가 생각하길, 장인의 목적은 환상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신앙을 더 굳게 하고, 그로 인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그것이 마법사의 목적이다. >---- >붉은 옷을 입은 소녀는 미소 지으며 숨을 한 번 내쉬고는 생각에 빠졌다. 참 웃기네. 기둥에 손을 기대고 머릿결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던 소녀는, 서쪽에 있는 아주 오래된 숲을 보았다. > >심부름 한 번의 분량에 불과한 기억에 들어온 지금은 멀리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직접 가볼 순 없었다. > >하지만 언젠가 다른 기억을 통해 이 세계로 돌아오리라 소녀는 다짐했다. 이 마법과 눈속임의 세계는 소녀의 성미에 아주 잘 맞았다. > >그리고 하늘에서 찾아낸 아르케아의 무리는 분명 이 세계의 다른 장소들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 >기분이 좋아진 소녀는 드레스의 앞자락을 쥐었다. > >너무 좋아서 믿을 수가 없다. 소녀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움찔거렸다. 여태껏 이렇게나 큰 기쁨을 소녀는 느낀 적이 없었다. =====# 4-7 #===== >[[파일:Arcaea/Story/4-7.jpg]] >---- >스무 번인지, 그보다 많은지, 소녀는 진작에 세기를 그만두었다. > >“영...차...” > >소녀는 아직 마무리가 덜 된 목재로 만들어진 상자 앞에 쭈그려 앉아, 상자를 위로 손을 스윽 흘려보았다. > >먼지 무리가 휘날려 땅으로 가라앉았다. >곧 자물쇠를 풀어, 상자를 열어보았다. > >소녀는 이번엔 고고학자의 몸에 들어와, 홍수로 망해버린 고대의 성을 탐험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상자 안에 들어있던 종이들은 상자의 방수 기능 덕에 젖지 않고 살아남아있었다. > >오래된 경첩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자, 소녀의 동료가 무엇을 찾았냐 물었다. 소녀는 제4시대의 두루마리들을 찾았다며 대답했다. > >하나를 꺼내 펼쳐보자, >그곳에는 소녀의 민족과 언실리(Unseelie) 사이에 있었던 대립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 >소녀는 이런 이야기들에서 큰 즐거움을 느꼈다. >과거의 사람들이 무엇을 요정과 같은 환상의 존재로 착각했는지 추측하는 것은 특히나 재미있었다. > >어제의 소녀는 이야기꾼이 되어서 조상들에게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풀어냈다. > >한 남자가 머나먼 해변에서 수많은 보물을 모았는데, 집으로 돌아가려 호수를 건너던 와중 바람의 요정 실프가 남자의 쪽배를 바람으로 흔들고, 지나가던 물의 요정 나이아데스가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에 결국 쪽배가 뒤집어지고 말았다. > > > 그러고는 두 요정이 보물을 모두 가져가버렸다고 한다. 그냥 배의 조작이 서툴렀다고 하면 될 것을, 참으로 장대한 변명이다. > >그래도 소녀는 그렇게 못돼먹은, 또는 착한 요정이 실제로 있다 믿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고고학자로서의 하루가 끝나고 소녀는 아르케아의 세계로 돌아와, 이제는 임시 숙소가 된 발판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 >그 후 학교 선생의 기억으로 들어가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이 혼돈스럽고 위협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다. > >사람들이 마법의 존재를 믿으니, 이러한 수업들은 소녀에게 매우 흥미로웠다. 참으로 즐겁고 매력적인 세계다. >매번의 방문이 즐겁다. > >아르케아를 방문할 때마다 점점 익숙해지는 사람들의 얼굴, 이제는 기억에 확실히 새겨진 장소들, >소리와 풍경, 모든 것이... >---- >놀랍도록 아름다우며, 그립다. > >하늘에서 찾은 모든 조각을 방문해, 적어도 그녀가 생각하기에 갈 수 있는 모든 장소를 들러본 후, 소녀는 마지막으로 사람으로 가득 차 떠들썩한 축제의 밤을 비추는 조각으로 들어갔다. > >악한 정령들을 몰아내고, 신들께 탄생과 추수에 감사드리는 축제다. > >소녀는 란캐스터와 시아라는 이름의 주민을 발견했다. 신사스러운 건축가들이었다. 소녀가 마지막으로 그들과 만난 기억에서 몇 년 정도 나이를 더 먹은 모습이었다. > >그들이 소녀에게 사과 사탕을 건네주자 그녀는 그 무엇을 받았을 때보다 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신사들이 하늘을 보라며 손가락을 뻗었다. 수천 가지 아름다운 빛깔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신과 삶에게 보내는 헌사였다. >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서도, 소녀는 감동하지 않았다.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았다. 소녀의 표정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즐거움도, 사색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 >그리하여, 이 어딘가 그리운 기억들이 보여주는 마지막 밤에, 소녀는 만족한 채 불꽃놀이를 바라보았다. > >눈물을 머금고, 가슴 한 편에 아픔을 안은 채, >소녀는 기쁘게 불꽃놀이를 바라보았다. =====# 4-8 #===== >그 세계의 기억들은 소녀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친숙한 곳처럼 편안했다. 소녀는 기억들 안에서 몇 개월을 지냈다. > >떠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끝이 있음을 알면서도, 보고싶지 않았다. > >기억 속에 미래는 없었다. > >다시는 기억 속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소녀는 이 새하얀 세계로 돌아왔다. > > > 지나간 세월이란 그런 것이다. >결말이 지어진 이야기이며, 끝난 삶이며, 헤어진 사랑이다. >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았다. 소녀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가며, 다시 한번 구름을 바라보았다. > >그 기억 속에서 보냈던 모든 순간, >매분 매초가 그녀에게 값진 선물이었다. > >그녀가 품지도 않았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은 듯한 기분이었고, 그것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 >한순간 마치 하늘이 무너지고 있는 듯했다. >소녀가 잠시간 머물렀던 숙소가 무너지며 땅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 >소녀는 가슴에 약간의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 > >[[Arcahv|그때, 하늘이, 진짜 하늘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 >유리판 위에 선 소녀의 머리칼이 얼굴 옆으로 휘날렸다. 반짝이는 기억의 조각들은 아직 제자리에 있었다. > >그 조각들의 뒤로, 소녀가 본 적 없는 새로운 밤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Arcaea/파트너#이리스|반짝거리는 점의 무리가 수놓은 어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 >끝없이 펼쳐진 어둡고 비단결 같은 풍경을 짙은 보랏빛 파도가 넘실거리며 빛냈다. > >별이다. >낮이 끝났다. > >소녀의 가슴이 갑자기 아파왔다. > >이름을 속삭여보았다.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이름. 소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 >소녀가 울라탄 유리판이 구름층을 뚫고 낙하했다. 복잡한 회색 지형이, 시야가 닿는 곳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 >미소를...! > >이것이 소녀의 새로운 삶이다. 소녀는 손을 뻗었다. 언젠가, 저 지평선 너머에 있는 누군가가, 이 손을 잡아주리라 믿을 것이다. > >언젠가, 그 손으로 위대한 일을 이룩할 것이다. > >그때까지, 소녀는 앞을 바라볼 것이다. > >아르케아에서, “현재”를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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