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밥위키
최근 변경
최근 토론
특수 기능
파일 올리기
작성이 필요한 문서
고립된 문서
고립된 분류
분류가 되지 않은 문서
편집된 지 오래된 문서
내용이 짧은 문서
내용이 긴 문서
차단 내역
RandomPage
라이선스
IP 사용자
216.73.216.107
설정
다크 모드로 전환
로그인
서버 점검 공지
|
개인정보 처리방침 개정 안내
프로이센 왕국군
(r1 문단 편집)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역사 == 프로이센 왕국의 전신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시절에는 [[상비군]] 개념이 없었으며 [[용병]]에 의존한 방어 전략이 사용되었다.[* [[호엔촐레른 가문]]이 [[군국주의]] 성향이 강했다고 알려졌으나 이는 몇몇 밀덕 군주들로 인해 생긴 오해로, 실제 호엔촐레른 가문 군주들은 군대에 젬병이었다. 호엔촐레른 가문의 초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1세(브란덴부르크)|프리드리히 1세]]나 실질적인 프로이센 왕국 출범의 기틀을 닦은 [[요아힘 2세 헥토어]]는 각각 [[후스 전쟁]]과 대 [[오스만 제국|오스만]] 전쟁에서 수준 미달의 지휘력만 보여주고 추하게 물러난 이력만 있다.] 그러나 [[베를린]] 중심의 [[중앙집권제]]를 진두지휘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 시기에 들어 상비군이 창설되었으며 [[프리드리히 1세(프로이센)|프리드리히 3세 선제후]]가 [[동군연합]]이었던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에서 프로이센 국왕으로 칭왕하면서 우리가 아는 프로이센군이 창설되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부터 시작된 부국강병 정책에 힘입어 급격히 발전하였으며, [[프리드리히 2세(프로이센)|프리드리히 2세]] 시절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서 주변국 군대를 연파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나폴레옹 전쟁]]기에는 희대의 군사적 [[천재]]인 [[나폴레옹 1세|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대패하고 굴욕적인 [[틸지트 조약]]을 맺기도 했으나, [[러시아 원정]]이 실패로 끝난 후 [[라이프치히 전투]]와 [[워털루 전투]]에서 [[대육군|프랑스군]]을 격파하는 데 큰 축을 담당하였다. [[1855년]] [[알브레히트 폰 론]]이 군사개혁을 한 후 신프로이센군[* 구별을 위한 표현은 훗날에 붙여졌으며 [[독일어]]로는 Altpreußischen Armee(구프로이센군), Neupreußischen Armee(신프로이센군)으로 부른다. 관사로는 der(데어)를 붙인다.] 체제로 대거 재편되었다. 이후로는 [[전쟁론]]으로 대표되는 선진적인 군사 연구와 [[산업 혁명]]으로 대표되는 국가적 역량 강화 및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뛰어난 외교술에 힘입어 [[덴마크]], [[오스트리아 제국]], [[프랑스 제2제국]]을 차례로 격파하여 [[독일 제국|통일 독일]]을 선언했다. 프로이센군은 다른 제후국 군대들과 함께 신생 [[독일 제국군]]에 흡수되었지만[* 이는 [[바이에른 왕국군]]도 마찬가지이다.] 실질적으로는 제국군 그 자체가 프로이센군이라 봐도 되었다. [[빌헬름 2세]] 시절에는 [[독일 제국 해군|해군]]을 급격히 팽창시키며, 식민지 건설에 나서게 되면서 [[대영제국|영국]]과의 군비경쟁이 시작된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결국 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해산되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
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 BY-NC-SA 2.0 KR
또는
기타 라이선스 (문서에 명시된 경우)
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216.73.216.107)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사용자
216.73.216.107
IP 사용자
로그인
회원가입
최근 변경
[불러오는 중...]
최근 토론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