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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폴란드 여왕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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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중 행적 == 아치칼레 원정 때 정훈에게 크림 경주를 제안한다. 정훈을 탐내 신하가 될 것을 제의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정훈이야말로 자신의 최후의 적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정훈에게 복수하려는 일념에 불타는 야누시를 뒤에서 지원한다. 아들인 알렉세이가 마르타를 정부로 삼아 데리고 돌아오자 그녀를 원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들을 핀란드 방면 전선에 보내게 된다. 러시아 황제를 선포했음에도 박정훈에 의해 전쟁에서 패배하고 슬라브의 주도권이 삼중연방으로 넘어갈 기미를 보이는 상황에서 알렉세이까지 포로로 잡히면서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할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모스크바 대공국]]의 [[류리크 왕조]]는 제14대 [[이반 4세]]가 [[루스 차르국]]을 선포하면서 차르국이 되었지만, 정작 이반 4세 다음에 즉위한 아들인 [[표도르 1세]]는 내내 정신적으로 미숙한 모습만 보이다 1598년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1613년까지 황제 자리를 놓고 [[혼란 시대]]를 열게 된다. 혼란 시대는 이반 4세의 첫 번째 황후였던 [[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의 가문이 왕위를 장악하면서 일단락되고, 그렇게 [[미하일 1세]]-[[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표도르 3세]]-[[이반 5세]]&[[표트르 1세]]의 4대가 집권하였다. 1682년 이반 5세와 공동 황제로 즉위한 표트르 1세는 이복형인 이반 5세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홀로 정권을 휘둘렀고 1721년 [[러시아 제국]]을 선포하며 전러시아의 황제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충분히 안정된 왕조 아니냐 싶을 수도 있지만, 이때까지도 러시아 황제 자리는 흔히들 러시아 황제 하면 떠올리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지 않았고 지명상속제라는 특성으로 인해 황족이 아닌 [[예카테리나 1세]]나 [[예카테리나 2세]]가 황후였다가 황제로 즉위하는 것도 가능했고, 이러다 보니 귀족들의 권력이 여전히 강해서 농노제가 19세기까지도 강력하게 이어진 원인이었다.[* 러시아 황위계승법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파벨 1세]]의 대에 가서였지만, 하필 준살리카법으로 개정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의도치 않은 트롤링]]으로 인해 [[러시아 혁명|처참하게 망한다]].] 문제는 슬라브의 주도권이 아직 러시아에게 완전히 넘어가지 않아 [[폴란드-리투아니아]]와 함께 치고박고 있었고 실제로 혼란 시대 때는 폴란드-리투아니아에게 탈탈 털리기도 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폴란드, 리투아니아뿐만 아니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역사에도 포함될 만큼 내부적 혼란과는 별개로 동유럽에서 높은 위세를 갖고 있었다.] 이때까지도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싸우며 확실한 우세를 점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원 역사와 달리 트립러인 정훈과 엘라라는 치터로 인해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루테니아[*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전신]까지 포함한 삼중연방을 선포하고, 정훈과 엘라의 연이은 승전으로 인해 '루스'의 정통성이 옛 [[키예프 루스]]령을 이어받은 루테니아에게 넘어갈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는 러시아 제국이 모스크바 대공국 시절로 돌아갈 정도로 망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작중에서 스웨덴이 모스크바를 점령한 이후로는 모스크바 대공국 수준으로도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게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나마 칼 12세가 그 이후로도 무리한 원정을 강행하는 바람에 이에 대한 앙갚음은 해냈지만 연방의 개입으로 확실한 마무리는 할 수 없었다. 결국 이대로면 고립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 오스만에 특사를 파견한다. 또한 전쟁으로 깎인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 아들을 이용해 반란을 유도해서 숙청을 진행한다. 반란 자체는 표트르가 설계한 거라서 그런지 쉽게 제압했지만 모스크바는 반란의 중심지가 된 지라 더 개판이 되었다. 이후 [[칼 12세]]의 러시아 침공 또한 모스크바를 버림패로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하고, 종군한 마리아 소비에스카까지 포로로 잡는데 성공하면서 유리한 휴전협정을 맺는데 성공하나 어떻게 보면 이것이 표트르의 마지막 불꽃과 같았으니, 오스만 제국까지 탈탈 털어버린 정훈이 이제 러시아를 목표로 놓고 공격해 오기 시작한 것. 이후 '적어도 자신이 마지막 거악으로 정훈의 숙적으로 기억되겠다'는 얀데레적 마음가짐(..)으로 정훈을 자신이 만든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인, 그 앞에서 수도원과 함께 불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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