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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폴란드 여왕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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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폴란드 여왕 키우기/등장인물]] [include(틀:스포일러)] [include(틀:폴란드 여왕 키우기)] ||<-2><tablealign=right><tablewidth=420><tablebordercolor=#ffcd30><tablebgcolor=#fff,#1f2023><colbgcolor=#ffcd30><colcolor=#0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29300, #ffcd30 20%, #ffcd30 80%, #c29300)" '''[[러시아 제국|{{{#000 러시아 제국 초대 황제}}}]][br]{{{+1 표트르 1세}}}[br]Пётръ I'''}}} || ||<|2><width=100> '''출생''' ||[[1672년]] [[6월 9일]] ||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 || ||<|4> '''재위기간''' ||<bgcolor=#f5f5f5,#2d2f34>루스 차르 || ||[[1682년]] [[5월 7일]] ~ [[1700년]] || ||<bgcolor=#f5f5f5,#2d2f34>전러시아의 황제 || ||[[1700년]] ~ || || '''서명'''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background: #fff; border-radius: 4px" [[파일:표트르 1세 서명.svg|width=150]]}}} || ||<-2><bgcolor=#fff,#1f2023><color=#373a3c,#ddd>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100><colbgcolor=#ffcd30><colcolor=#000> '''가문''' ||[[로마노프 가문]] || || '''이름'''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로마노프[br](Пётръ Алексѣ́евичъ Рома́новъ[* 1919년 이후의 맞춤법으로는 Пётр Алексе́евич Романов.]) || || '''아버지'''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 || '''어머니''' ||나탈리야 키릴로브나 나리시키나 || || '''형제자매''' ||드미트리, 예브도키야, 마르파, 알렉세이,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로마노바|소피야 알렉세예브나]], 예카테리나, 마리야, [[표도르 3세]], 표도시아, 시메온, [[이반 5세]], 나탈리야 || || '''배우자''' ||예브도키야 로푸히나 ,,(1689년 결혼 / 1698년 이혼),, || || '''자녀'''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황태자]], 안나 페트로브나[* [[표트르 3세]]의 어머니.],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나탈리야 페트로브나[* 원래는 14명이나 되는 자녀를 뒀으나 위의 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나마 위의 4명에 포함된 막내딸 나탈리야 페트로브나 역시 6살의 어린 나이로 죽었다.] || || '''종교''' ||[[러시아 정교회]] || || '''신체''' ||'''203cm''' ||}}}}}}}}} || [clearfix] [목차] == 개요 == 루스 차르국의 차르이자 후세에 표트르 대제라고 불리는 차르. 본작의 최종보스로 유력시되는 인물이다. == 작중 행적 == 아치칼레 원정 때 정훈에게 크림 경주를 제안한다. 정훈을 탐내 신하가 될 것을 제의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정훈이야말로 자신의 최후의 적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정훈에게 복수하려는 일념에 불타는 야누시를 뒤에서 지원한다. 아들인 알렉세이가 마르타를 정부로 삼아 데리고 돌아오자 그녀를 원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들을 핀란드 방면 전선에 보내게 된다. 러시아 황제를 선포했음에도 박정훈에 의해 전쟁에서 패배하고 슬라브의 주도권이 삼중연방으로 넘어갈 기미를 보이는 상황에서 알렉세이까지 포로로 잡히면서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할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모스크바 대공국]]의 [[류리크 왕조]]는 제14대 [[이반 4세]]가 [[루스 차르국]]을 선포하면서 차르국이 되었지만, 정작 이반 4세 다음에 즉위한 아들인 [[표도르 1세]]는 내내 정신적으로 미숙한 모습만 보이다 1598년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1613년까지 황제 자리를 놓고 [[혼란 시대]]를 열게 된다. 혼란 시대는 이반 4세의 첫 번째 황후였던 [[아나스타샤 로마노브나]]의 가문이 왕위를 장악하면서 일단락되고, 그렇게 [[미하일 1세]]-[[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표도르 3세]]-[[이반 5세]]&[[표트르 1세]]의 4대가 집권하였다. 1682년 이반 5세와 공동 황제로 즉위한 표트르 1세는 이복형인 이반 5세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홀로 정권을 휘둘렀고 1721년 [[러시아 제국]]을 선포하며 전러시아의 황제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충분히 안정된 왕조 아니냐 싶을 수도 있지만, 이때까지도 러시아 황제 자리는 흔히들 러시아 황제 하면 떠올리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지 않았고 지명상속제라는 특성으로 인해 황족이 아닌 [[예카테리나 1세]]나 [[예카테리나 2세]]가 황후였다가 황제로 즉위하는 것도 가능했고, 이러다 보니 귀족들의 권력이 여전히 강해서 농노제가 19세기까지도 강력하게 이어진 원인이었다.[* 러시아 황위계승법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파벨 1세]]의 대에 가서였지만, 하필 준살리카법으로 개정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의도치 않은 트롤링]]으로 인해 [[러시아 혁명|처참하게 망한다]].] 문제는 슬라브의 주도권이 아직 러시아에게 완전히 넘어가지 않아 [[폴란드-리투아니아]]와 함께 치고박고 있었고 실제로 혼란 시대 때는 폴란드-리투아니아에게 탈탈 털리기도 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폴란드, 리투아니아뿐만 아니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역사에도 포함될 만큼 내부적 혼란과는 별개로 동유럽에서 높은 위세를 갖고 있었다.] 이때까지도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싸우며 확실한 우세를 점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원 역사와 달리 트립러인 정훈과 엘라라는 치터로 인해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루테니아[*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전신]까지 포함한 삼중연방을 선포하고, 정훈과 엘라의 연이은 승전으로 인해 '루스'의 정통성이 옛 [[키예프 루스]]령을 이어받은 루테니아에게 넘어갈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최악의 경우에는 러시아 제국이 모스크바 대공국 시절로 돌아갈 정도로 망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작중에서 스웨덴이 모스크바를 점령한 이후로는 모스크바 대공국 수준으로도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게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나마 칼 12세가 그 이후로도 무리한 원정을 강행하는 바람에 이에 대한 앙갚음은 해냈지만 연방의 개입으로 확실한 마무리는 할 수 없었다. 결국 이대로면 고립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 오스만에 특사를 파견한다. 또한 전쟁으로 깎인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 아들을 이용해 반란을 유도해서 숙청을 진행한다. 반란 자체는 표트르가 설계한 거라서 그런지 쉽게 제압했지만 모스크바는 반란의 중심지가 된 지라 더 개판이 되었다. 이후 [[칼 12세]]의 러시아 침공 또한 모스크바를 버림패로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하고, 종군한 마리아 소비에스카까지 포로로 잡는데 성공하면서 유리한 휴전협정을 맺는데 성공하나 어떻게 보면 이것이 표트르의 마지막 불꽃과 같았으니, 오스만 제국까지 탈탈 털어버린 정훈이 이제 러시아를 목표로 놓고 공격해 오기 시작한 것. 이후 '적어도 자신이 마지막 거악으로 정훈의 숙적으로 기억되겠다'는 얀데레적 마음가짐(..)으로 정훈을 자신이 만든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인, 그 앞에서 수도원과 함께 불타 죽는다. == [[스노하체스트보]] == 아버지가 아들의 정부를 빼앗는다는 전개에 많은 독자들이 황당해했지만 아들의 정부를 빼앗는 악습은 놀랍게도 고증이다.--원래 잘 가다가 이상한 전개 나오면 대부분 고증이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1102774|#]] 일단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취하는 행위' 자체가 아예 보통명사가 있을 정도니 굉장히 오래 된 악습인데, 여기서는 해당 풍습이 표트르 1세 때부터 성행했다는 설에 기반했는지 작중에서는 본인이 직접 스노하체스트보를 하고 있다. 원 역사에서는 다른 이의 하녀였던 [[예카테리나 1세]]가 이 소설에서는 자신의 아들, 알렉세이의 애인이었기 때문에[* 엘주비에타 여왕이 꾸민 모략이다. 다만 여왕 본인 또한 '''이게 이렇게까지 될지 몰라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한다.] 발생한 내용인데, 러시아의 야만성을 혐오하며 서구화를 외치는 인간이면서 정작 본인은 자기 아들의 정부를 빼앗는 것으로 모자라 황후로 올리는(?!) 야만족 추장도 안 할 법한 짓을 한 것 때문에 진짜 서구화가 필요한 건 표트르의 사고방식 아니냐는 평이 많다. 물론 이는 소설상의 표트르 1세의 행적으로 실제로 그가 스노하체스트보를 행했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 기타 == 본작에서 표트르 1세의 여러 추태가 고오증으로 자세히 묘사되면서 독자들에게 나쁜 의미로 재평가를 많이 받았다. 작중에서 보이는 여러 문제적인 행동과 주인공이 속한 나라가 [[폴란드-리투아니아]]라는 점을 들어 원 역사와 달리 배드엔딩을 맞이할 거라는 추측이 많았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자신이 세운 [[러시아 제국]]이 서비스 종료한 건 덤. 사실상 후대에는 막장스러운 사생활로 나라 말아먹은 희대의 [[폭군]]이자 [[암군]]으로 역사에 남을 듯하다. 남주인공인 정훈에 대한 애증과 집착이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이 작품]]의 [[아돌프 히틀러(검은머리 미군 대원수)|모 얀데레 퓌러 양반]]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심해서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평을 듣는다.[* 정훈의 처조카인 마리아 카시미라를 포로로 잡았을 때 승리왕의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닌데 왜 건들겠냐는 발언을 남겨 마리아와 독자들을 소름돋게 하기도 했다. 즉, 저 말은 역으로 말하자면 '''일국의 왕비더라도 승리왕의 혈통을 얻을 수 있다면 겁간했을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폴란드 여왕 키우기/등장인물, version=6, uuid=ef1b128a-c034-47e2-9ec3-53f1bfe95b15)] [include(틀:문서 가져옴/나무위키, title=표트르 1세(폴란드 여왕 키우기), version=23, uuid=ef7fb82a-8d9d-4dd5-8b0b-dbf31dc7b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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