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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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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 이후 === 건축기사가 된 지 1년이 지난 [[1930년]], 그는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하던 잡지 '조선'에서 [[장편소설]] 《12월 12일》을 9회 동안 연재한 것을 시작으로 문학계에 데뷔했다. 퇴사 전까지 그는 이상(李箱)을 포함해 비구(比久), 보산(甫山) 등의 필명으로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작품들을 투고했다. 그러던 [[1931년]], 그는 갑작스럽게 [[폐결핵]]을 진단받았다. 이상은 하루에 담배를 50개피 이상 피는 것을 자신의 일과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엄청난 [[골초]]였는데, 그 때문인지 병세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담당의가 그의 폐를 확인하고는 형체도 안 보인다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결국 [[1933년]]부터는 각혈까지 시작되었고, 건축기사 일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상은 [[조선총독부]]에서 퇴사하고 황해도에 있는 배천 온천으로 요양을 간다. 요양 후 서울로 돌아온 이상은 [[종로구|종로]]1가에 다방 제비를 차리고, 온천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을 다방의 마담 자리에 앉혀 동거하기 시작했다. 이상은 이때부터 [[박태원]], [[정지용]], [[김기림]], [[이태준]] 등의 문학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는데, 이중 [[정지용]]의 주선을 통해 가톨릭청년에서 시 꽃나무와 이런시를 발표했고, 이듬해인 [[1934년]]에는 순수문학 단체 [[구인회]]에 가입했다. 또한 [[이태준]]의 도움을 받아 [[조선중앙일보]]에서 [[오감도]]를 연재했지만, 독자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15회만에 연재를 중지하였다. [[1935년]] 경영난에 시달린 끝에 다방 제비를 폐업하고[*b 다방을 운영할 당시 손님에게 주문과는 다른 음료를 내주는 등의 기행을 저지른 적이 많았는데 이랬으니 장사가 잘될 리 없다.] 금홍과 결별하게 된다. 이상은 틈틈이 창작활동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인사동에 [[두루미|쓰루(つる)]], 종로1가에 69와 같은 다방을 차례로 운영했지만 모두 제비와 같은 이유로 남에게 양도했고, 그러고도 다시 명동에 [[보리|무기(むぎ)]]라는 다방을 열었으나 이것 또한 망하고 만다. [[1936년]]에는 친구 [[구본웅]]의 아버지 구자혁이 운영하던 출판사인 창문사에 잠시 취직하여 출판물의 편집과 교정을 도맡다가 퇴사했다.[* 창문사에서 근무하던 중에 [[구인회]]의 창간호이자 종간호인 시와 소설을 편집 및 발간했다.] 동년 [[6월]]에는 수필가 변동림과 결혼하여 경성 황금정에서 신혼생활을 하는데, 이때 소설 [[지주회시]]와 [[날개(소설)|날개]]를 발표하여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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