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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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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 4월, [[유고슬라비아 침공]]과 [[그리스 침공]]을 통해 발칸 반도 지역도 독일의 세력권에 들어간다. 유고슬라비아는 여러 조각으로 분할 점령당한다. [[그리스]]와 [[세르비아]] 지역에도 독일의 [[군정청]]이 세워져 독일군이 행정권을 장악한다. 독일 국방군과 친위대는 해당 지역에서 파르티잔 진압 작전을 빙자한 집단총살을 1945년까지 자행한다. 이미 1941년 말이 되면 세르비아 지역의 유대인들은 독일군에 의해 거의 살해되었다. 한편 크로아티아의 파시즘 집단인 [[우스타샤]]는 뉘른베르크 법을 본떠 유대인들의 권한을 박탈한 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지역에서 인종청소를 벌인다. 1941년 8월의 [[야세노바츠 강제수용소]]를 시작으로 여러 개의 강제수용소가 세워진다. 이들의 우선적인 타깃은 유고슬라비아 왕국 시절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세르비아인들이었으나 집시와 유대인들 또한 살해되었다. 당시 발칸 반도에서 유대인들이 안전했던 곳은 [[이탈리아 왕국]]의 점령지와 [[헝가리 왕국]]에 있는 유대인들 뿐이었다. 이탈리아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와 헝가리 섭정 [[호르티 미클로시]]는 유대인들의 지위를 박탈하라는 독일의 압박을 무시했다. 반면 [[루마니아 왕국]]의 경우 이미 1941년 초에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유대인들을 살해했으며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자 점령지역에서 대량학살을 벌이기 시작한다. [[불가리아 왕국]]의 경우 이미 1940년에 뉘른베르크 법을 본뜬 반유대주의 법안을 마련하고 본국과 점령지의 유대인들을 수용하거나 독일로 이송하고 있었다. 6월, [[바르바로사 작전]]을 통해 [[소련]] 공격이 개시되며 홀로코스트가 동유럽 전역으로 확대된다. 점령지에 대한 게토 설치가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게토들이 1940년~1941년 사이에 세워졌다. 한편 점령지 각지에서 [[아인자츠그루펜|친위특무대]]와 국방군, 및 친위대의 집단 총살을 통한 학살이 시작된다. 죽음수용소가 가동되기 전까지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목[* 여기에는 별의별 이유가 다 들어갔다. 오늘의 일과는 유대인 하나를 죽이고 끝낸다.(아트 슈피겔만의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쥐]] 참조.)] 아래 유대인, 소련인, 폴란드인을 대량학살했는데, 이틀 만에 3만 명이 살해된 경우도 존재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방식을 통해 총 160만 명이 살해된다. [[파일:오딜로 글로보츠닉.jpg|width=300]] ↑ 루블린의 SS 경찰 사령관 및 [[슈츠슈타펠|친위대]] 집단지도자(중장) [[오딜로 글로보츠닉]]. 라인하르트 작전 사령관으로 200만 명 이상의 유대인 학살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1급 전범으로 패전 이후 전쟁범죄 혐의로 연합군에게 체포되자 자살했다. 8월, [[T4 작전]]이 공식적으로는 종료된다. 이후 12월에는 최초의 절멸수용소가 헤움노(Chelmno)에 세워진다. 이곳, [[헤움노 절멸수용소]]에서는 가스 트럭을 통한 산업적인 방식으로 대량학살이 시행되었다. 10월에는 친위대 총수 [[하인리히 힘러]]의 명령으로 '라인하르트 작전(Aktion Reinhardt)'이 개시되며 폴란드 지역 유대인들에 대한 학살 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명령에 따라 루블린 시의 친위대 및 질서경찰 중장이던 [[오딜로 글로보츠닉]]의 주도로 [[베우제츠 절멸수용소]](Vernichtungslager Belzec)가 건설되며, 이듬해인 1942년 2월에 운영을 시작한다. 베우제츠는 고정된 가스실이 배치된 최초의 절멸수용소였다. 3달 뒤인 1942년 1월의 [[반제 회의]]에서 홀로코스트 방침이 절멸로 확정된 후 라인하르트 작전 수용소들은 더 확대되어 [[소비보르]](Vernichtungslager Sobibor), [[트레블링카]](Vernichtungslager Treblinka)가 연달아 세워졌다. 한편 본래 강제노동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와 [[마이다네크]]는 라인하르트 작전과는 상관이 없었으나 반제 회의 이후 역시 가스 시설을 확충하여 절멸수용소로 개조된다. 일반 친위대 소속 해골부대와 질서경찰이 운영했다. 그 중 라인하르트 작전 수용소들은 몇 개월 전 종료된 T4 작전에 참여했던 이들이 주축이 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6곳의 절멸수용소들에서만 총 300만 명이 학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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