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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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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 >최종 해결책이 수행되는 동안, 유대인들을 적절한 지침과 적당한 방식으로 동부로 이송시켜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야 한다. 성별과 노동력에 따라 구분하여 대규모 노동대열로 조직해 도로 건설에 투입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원은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 >불가피하게 최후까지 남은 이들은 신체적으로 가장 강인한 자이니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수단을 동원해야만 한다. 그런 자들은 자연도태를 거친 자들이므로 만약 그들이 풀려나게 되면 새로이 유대인이 번성할 수 있는 생식 세포 역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역사가 주는 교훈을 상기하기 바람). > >최종 해결책의 실제적 수행 과정에서 우리는 유럽을 서에서 동으로 쓸어낼 것이다. >---- >{{{#!folding [ 독일어 원문 펼치기 · 접기 ] Unter entsprechender Leitung sollen nun im Zuge der Endlösung die Juden in geeigneter Weise im Osten zum Arbeitseinsatz kommen. Im großen Arbeitskolonnen, unter Trennung der Geschlechter, werden die arbeitsfähigen Juden straßenbauend in diese Gebiete geführt, wobei zweifellos ein Großteil durch natürliche Verminderung ausfallen wird. Der allfällig endlich verbleibende Restbestand wird, da es sich bei diesem zweifellos um den widerstandsfähigsten Teil handelt, entsprechend behandelt werden müssen, da dieser, eine natürliche Auslese darstellend, bei Freilassung als Keimzelle eines neuen jüdischen Aufbaues anzusprechen ist. (Siehe die Erfahrung der Geschichte.) Im Zuge der praktischen Durchführung der Endlösung wird Europa vom Westen nach Osten durchgekämmt.}}} >---- >-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 총독 대리 겸 국가보안본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1942년 1월 20일 열린 [[반제 회의]]에서 '유대인 문제'의 처리 방안에 대해 논하며. 반제 회의 회의록 7, 8 페이지에서 발췌. [[:파일:Protokoll - page 7.jpg|7 페이지]]와 [[:파일:Protokoll - page 8.jpg|8 페이지]]의 상대적으로 밝게 표시된 문단 부분이다. [[반제 회의|반제(Wannsee) 회의]]에서 Endlösung(최종 해결책)이 채택됨에 따라 홀로코스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7월부터는 게토에서 학살수용소로의 강제이주가 이루어진다. 상술한 대로 [[베우제츠 절멸수용소]]를 필두로 한 학살수용소들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이 이때부터이다. 1942년 6월 초면 유대인을 서유럽에서 추방하는 사업의 틀이 갖춰졌다. 서유럽 유대인의 수송은 1942년 7월부터 이루어졌고, 대부분은 당시 가동되던 시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절멸수용소가 있던 [[아우슈비츠|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유대인들과 프랑스, 슬로바키아나 오스트리아 유대인들의 경우 [[소비보르 절멸수용소]]로 이송되기도 하였다. '최종 해법'은 실행에 옮겨졌고 조직적 대량 학살은 거칠 것이 없었다. 1942년 말까지 친위대 자체 집계에 따르면 이미 4백만 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다만 히틀러는 [[반제 회의]]에 대한 직접적 관여가 드러나지 않았다.[* 히틀러는 회의가 열리는 것은 알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사실 현재까지도 히틀러가 반제회의를 정말로 알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사실은 관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독일이 또다시 세계대전에 휘말려 든 이상 유대인은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1941년 12월 명백히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때쯤이면 지역 차원에서는 위에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유대인 살해에 앞장섰다. 그 중에서도 [[친위대]]의 핵심이였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히틀러의 포괄적인 유대인 동부 추방령을 등에 업고 유대인 박해를 범유럽 차원의 학살극으로 확대했다. 11월에 독일은 [[비시 프랑스]]를 기습적으로 점령한다. 이로서 프랑스 전역이 군정 통치하에 들어간다. 국방군 비밀야전경찰과 보안사단, 그리고 게슈타포와 보안대원들은 무제한적으로 프랑스 유대인들을 색출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은 대부분 아우슈비츠로, 일부는 소비보르 등지로 수송되어 살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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