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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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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세라]]의 자회사 시기 (1986년~2005년) === [[1984년]], 창립자 미하엘 코건이 출장지인 로스앤젤레스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고, 2년 후인 [[1986년]]에 프린터, 핸드폰 등으로 유명한 전자기기 제조 업체인 [[교세라]]가 타이토를 인수했다. [[1987년]]에는 일본 게임 제작사 중 최초로 전문 [[게임 음악]]팀 [[ZUNTATA]]를 발족시키며 일본 내 게임 음악의 열풍을 주도하였으며, [[1988년]]에 창립 35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기업 아이덴티티(CI, Corporate Identity)를 도입하였고, 로고 디자인도 1980년대 중반까지 쓰던 세리프폰트의 TAITO 글씨에서 지금까지도 친숙한 삼각형 도안으로 A가 포함된 로고타이틀로 새롭게 일신하였으며, 슬로건을 '캐치 더 하트'(キャッチ・ザ・ハート)[* 교세라 산하 당시에는 일본 TV에서 타이토의 게임 상품 광고의 로고콜 장면에 항상 저 슬로건이 들어갔다. 스퀘어 에닉스 인수 이후로는 슬로건이 폐지되었다.]로 제정하였다.[* 이 로고가 처음으로 사용된 게임이 바로 [[뉴질랜드 스토리]].] [[교세라]]에 인수된 뒤, [[닌텐도]], [[세가]]에 버금가는 대규모 게임 회사로 성장한 타이토에서는 이 때부터 게임을 직접 제작하는 것뿐 아니라 [[테크노스 저팬]], [[토아플랜]], [[비스코]], [[카네코]], [[세이부 카이하츠]], East Technology 같은 중소기업에 게임 개발 하청을 의뢰하거나 그곳에서 자체 제작한 게임을 유통했으며 일부 게임은 타이토 명의로 발매하였다. 이 시기에 타이토에서 유통을 담당한 대표적인 작품들이 바로 [[열혈경파 쿠니오군]], [[더블 드래곤]], [[구극 타이거]], [[타수진|타수진(타츠진)]]. 그러나 타이토는 이들의 게임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갖지 않았다. [[http://shmuplations.com/rayforce/|레이포스 제작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교세라에 인수된 후 타이토의 개발 방침은 '마스터 플랜'이라고 해서 '이 시기에는 어떤 장르의 게임이 유행이니까 우리도 이러한 게임을 만든다'라고 상층부에서 결정하는 방식이었으며, 질보다 양을 우선하는 전략으로 게임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명작과 괴작의 수준차가 굉장히 큰 회사로 유명했으며, 게임의 엔딩도 주인공이 죽거나 불행해지는 [[배드 엔딩]]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서 [[메탈 블랙|최종 보스를 무찔렀더니 지구처럼 보이는 별이 두 동강나거나]], [[레이포스|지구의 중심을 장악한 슈퍼컴퓨터를 파괴하지만 지구도 폭발해 버리고 주인공도 폭발에 휘말린다거나]], [[레이스톰|임무를 완수한 후 돌아왔더니 지구가 이미 사라져 있었다거나]] 하는 배드 엔딩들이 많다.] [[아이렘]]과 쌍벽을 이루는 부분이다. 그러나 배드엔딩만 있는 게 아닌 해피엔딩도 있고, 굿엔딩도 배드엔딩도 아니지만 인상깊은 엔딩으로 팬들에게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꿈 결말|꿈 엔딩]]도 있고, '실은 주인공이 플레이한 게임이다'라는 엔딩도 있다(다라이어스의 Y존엔딩, 다라이어스 외전의 W엔딩).] 타이토는 당시에 모회사인 [[교세라]]가 '''게임이란 분야에 대해서 완전히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게임 개발자에 대한 대우가 [[블랙 기업|매우 열악한 것]]으로 유명했다.[* 교세라의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떠받들어지고 있었지만, 경영 철학 등을 보면 '즐겁게 일하면 야근이 힘들지 않다' 등의 경영자 중심이자 근로자의 권리를 무시한 것이 많고, 최근에는 '아메바 경영'으로 포장된 독립적인 소조직들간의 무한 경쟁과 이념 주입의 원조로 비판받고 있다. 교세라 역시 교조주의적인 [[블랙 기업]] 이미지를 갖고 있는 기업이다. 이런 기업 문화가 타이토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여름철에 전기료를 아낀다고 출근한 인물의 수가 적으면 냉방을 금지했다가 건 프론티어의 그래픽 작업을 하던 컴퓨터가 과열되어 데이터가 전부 날아갔는가 하면([[https://web.archive.org/web/20150307174454/http://www6.ocn.ne.jp/~t-1008dx/GF.html|개발자가 말하는 건 프론티어]]), 한참 개발 때문에 바쁠 때 사원들을 불러다가 군대식 정신 교육을 실시했다거나, 외주급의 저예산으로 자사의 슈팅 게임 개발 라인을 개척하려고 했지만 주변의 이해를 얻지 못해서 좌절을 겪었고([[https://web.archive.org/web/20150307170355/http://www6.ocn.ne.jp/~t-1008dx/MB.html|개발자가 말하는 메탈블랙]]), 인원도 부족한 마당에 3개월 만에 게임을 완성시키라는 무리하고도 지나친 영업 측의 요구([[https://web.archive.org/web/20071130021429/http://www6.ocn.ne.jp/~t-1008dx/drex.html|개발자가 말하는 디노렉스]]), [[버블보블]]이라는 명작을 만든 [[MTJ]]에게 게임 속에 숨겨진 요소를 넣었다는 이유로 윗 사람들이 불러내서 '수익이 떨어지면 책임지고 회사를 사퇴하라'면서 문책을 했다는 등 안 좋은 쪽의 이야기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위에 열거된 경영자들의 병크와 게임 업계의 판도가 슈팅 게임에서 액션 게임으로 바뀌자 타이토는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선, [[마스터 오브 웨폰]](1989)은 훌륭한 그래픽에 비해서 난이도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동시대의 [[메가 블래스트]]는 수준 이하의 연출력과 게임플레이로 게이머들의 외면을 받았고, [[건 프론티어]](1990)는 게임성 자체는 역대급이었지만 대중성에서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라이덴]]에 밀려서 흥행에 실패하였다. 이후 타이토에서는 마니아 층을 타겟으로 설정과 그래픽에 신경을 쏟은 [[메탈 블랙]](1991), 초심자 위주의 게임 디자인을 한 [[그리드 시커]](1991)를 동시에 발매하지만 [[캡콤]]의 [[스트리트 파이터 2]](1991)의 등장으로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결국 타이토에서는 슈팅 게임에서 액션 게임으로 주요 장르를 변경하고 [[루나크]](1990), [[프리루라]](1991), [[아라비안 매직]](1992), [[카이저 너클]](1994) 등을 연속적으로 발매했지만, 게임성이 부족하거나 난이도와 패턴 등이 어려워 플레이어가 가까이 할 수 없어서 흥행에 참패하였다. 그래도 뒷날에 인터넷의 영향으로 타이토의 사운드 팀 [[ZUNTATA]]가 작곡한 BGM을 포함하여 게임 이외의 부분이 주목받게 되면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지금도 일본의 아케이드 게임센터에서는 카이저 너클의 대회가 가끔 열린다.] 1990년대 부터 타이토는 타이토 스테이션이라는 오락실을 직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고 노래방 기기 사업에도 손을 댔다. 사업 파트너로는 [[JOYSOUND]]로 유명한 엑싱이 함께 했다. 업소용으로는 X2000 시리즈가, 가정용으로는 X-55가 유명했다. X-55의 경우 꼴에 타이토 제품이랍시고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미니 게임으로 내장하기도 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R8HZ7iEQVLo|광고 참조.]][* 이 외에도 통신 기능을 통해 다운로더블 게임을 즐길 수도 있었던 모양인데, [[클레오파트라 포춘]]은 본시 X-55용 다운로드 소프트웨어로 출시될 예정이었다. 상세는 항목 참조.] X-55 광고에는 그 유명한 [[아무로 나미에]]를 전속 모델로 기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래방 기기 사업은 2006년 엑싱같은 파트너 회사에 전부 양도했다. 그러나 노래방 관련 사업은 하술할 스퀘어 에닉스 산하 이후 시기인 2010년대 초까지도 간접적으로 계속 했다. 그리고 타이토는 '''1990년대 초에 게임기를 내놓으려는 시도까지 했었다.''' 일본의 위성 방송 기업인 [[WOWOW]]와 합작해 게임기를 내놓으려고 했다. 이 게임기가 공개된 것은 [[1992년]]의 도쿄 토이쇼라는 장난감 박람회에서 게임기 프로토타입 기체 목업과 프레젠테이션만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전부이다. 프로토타입 기기의 생김새는 [[PC 엔진]] 듀오와 심히 흡사하고, 패드 본체에는 방향키와 버튼 2개(+α)가 붙어있다.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버블보블]] 시리즈, [[다라이어스 시리즈]], [[오퍼레이션 울프]]같은 타이토의 인기 작품들을 이식하고, WOWOW가 위성 방송 기업이다보니 위성 통신을 통한 게임 스트리밍(!)까지도 구상에 두었다는듯 하나 '''당시 기술과 비용의 한계 때문에 프로젝트가 파기되었다.''' 어떤 의미로 닌텐도의 [[사테라뷰]]보다 3년을 앞선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http://www.denofgeek.com/us/games/taito/248383/wowow-the-1990s-taito-console-that-never-was|Den of Geek의 관련기사]], [[https://www.unseen64.net/2015/08/10/interview-taito-wowow-console/|타이토의 기술고문 산베 유키하루의 인터뷰(영어)]] [[https://twitter.com/ZackmannX/status/862893546189148160|관련 링크]] 발매한 게임들이 계속해서 흥행에 쓴 잔을 마신 것과 달리, 1990년대부터 직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아케이드 게임센터 타이토 스테이션이 회사에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자 타이토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점차적으로 게임 개발 예산을 줄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타이토의 개발 직원들은 이러한 본사의 방침에 반대 의사를 표하면서 차례차례 회사를 떠났다. 그 사이에서도 회사 내에 잔류하던 [[G 다라이어스]]를 제작한 개발 스태프들의 일부도 '슈팅 게임은 본사에서 더 이상 개발하지 않는다'라는 방침에 결국 반기를 들고 [[그레브]]를 설립해 독립했다. '''결국 1990년대 후반부터 타이토는 대부분의 게임 개발 부서를 해체시키고 사업 방향 자체를 기판 개발과 게임 센터 운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의 결과, 2000년대부터 시작된 아케이드 시장의 불황을 버티지 못하고 휘청이기 시작하면서 교세라는 21세기 들어 침체가 심했던 타이토를 결국 2005년 [[스퀘어 에닉스]]에 매각했다. 한마디로 블랙기업 교세라(타이토의 주 경영진)가 자회사였던 타이토를 도산 위기에 몰아넣고는 다른 회사에 팔아넘기는 그야말로 마지막까지 [[블랙기업]]다운 면모를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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