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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사회주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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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일국사회주의는 [[러시아 내전]]이 마무리된 후 기대했던 혁명 수출이나 서유럽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스탈린 등의 소련지도부가 채택한 [[정치현실주의]]의 소산이기도 했다. 이들은 막상 국가를 경영해 보자 혁명운동과 국가운영은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인민들은 더 이상 막연한 미래의 유토피아보다는 당장 먹고사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러시아 내전 시기처럼 타국에 혁명을 수출하다가는 서유럽 열강들의 공적이 되어 세계적화는 커녕 소련에 대한 고립만 심화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1920년대 후반까지 소련에 본부를 둔 [[코민테른]]은 서유럽에서 여러 혁명활동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은 서유럽 열강 각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었다. 이런 고립은 스탈린이 기획한 여러 경제 개발 계획에 차질을 야기했다. 결과적으로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론을 선언하며 타국의 혁명에 지원을 최소화하면서 서유럽에 대한 혁명수출을 중단하게 된다. 그리하여 1930년대 초반까지는 미국, 영국을 포함한 여러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과 외교관계가 정상화되었다. 이렇게 외부 간섭의 여지가 최소화되자 소련은 경제성장 및 [[대숙청|반스탈린파 숙청]]에 매진할 수 있었다. 당시 소련의 외교방침은 세계적화보다는 현상유지였고, 소련의 영향권 안에 있는 각국의 공산당은 자국 혁명보다는 공산당내의 트로츠키파 숙청에 더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당시 스탈린의 해외개입의 사례로는 중국과 스페인이 있다. 중국에서는 1927년 [[장제스]]가 [[4.12 상하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공합작]]을 파기하고 정권을 장악하자 스탈린은 공산당에게 반격을 명령해서 여러 도시봉기를 일으켰으나 모조리 실패하자 흥미를 잃고 거의 방치했다. 이후 [[마오쩌둥]]이 소련의 지원 없이 [[중화소비에트공화국|해방구]]를 열고 확대해나가자 소련에서 공부하던 중국인 유학생들을 파견하여 해방구의 지휘권을 인수하지만 이들은 실패했고, 마오쩌둥은 [[대장정]] 이후 다시 당권을 장악했다. 1949년 공산당이 승리를 눈앞에 둔 [[국공내전]] 말기까지 공산당에게 휴전을 종용하기도 했다. 스페인에서는 좌익세력이 포진한 공화파 정부의 요청으로 지원군을 보내긴 했는데 [[파시스트]]인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물리치기보다는 공화파에 다수 포진했던 무정부주의자와 트로츠키주의자를 때려잡는 데 더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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