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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생애]]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준석/생애)] ||<tablewidth=60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7210,#FF7210><nopad> [youtube(rJ1Xgrvbk7c, width=200%)] || ||<bgcolor=#FF7210,#FF7210><color=#ffffff> '''개혁신당 당대표 이준석''' || [[대구광역시]]에서 [[서울특별시]]로 상경하여 직장 생활을 하던 아버지 이수월과 고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김향자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터전은 [[서울특별시]] [[상계동]]이었다. 이후 목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조기졸업하여 [[한국과학기술원]]에 입학하고, [[하버드 대학교]] 합격 후 [[참여정부|노무현 정부]]의 1호 국비장학생[* [[김대중]]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설립한 과학장학재단의 '대통령 과학 장학금' 1호 수혜자 중에 이준석이 포함돼 있었다.] 신분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컴퓨터공학과/경제학과를 복수전공 했다.[* 이준석은 "하버드대 1학년 재학하던 2004년 6월부터 약 3개월간 [[유승민]] 의원실에서 여름방학을 이용해 인턴으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이준석 의원은 "내가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전공해 경제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유승민]] 전 의원은 (2000년~2003년까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했고 정무위 소속이었기 때문에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2645.html|#]]] 졸업 후 귀국하여 [[산업기능요원]] 대체복무로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기초생활 수급자 등 소외계층 학생들을 가르치는 비영리 교육봉사단체인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당시 [[강성태]]의 [[공부의 신]]과 양대 산맥을 이루던 교육봉사단체.]'을 설립하여 대표 교사로서 활동했다. 이 단체가 [[이명박 정부]][* 당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발굴.[[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128212|#]][[https://if-blog.tistory.com/1330|#]]]의 주목을 받아 언론에 처음 소개되었다. 2011년 12월 27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발탁되어 26살에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당명 변경으로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하며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이 지휘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하며 원내1당을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정부 요직, 비례대표, 보수텃밭 공천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대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2018년 [[2018년 재보궐선거|재보궐선거]],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진보 텃밭인 [[노원구 병]]에 각각 [[새누리당]], [[바른미래당]], [[미래통합당]]의 당적을 가지고 출마했고, 3번 연속으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강적들(TV조선)|강적들]], [[더 지니어스]] 등 다양한 시사방송과 예능에 꾸준히 출연하며 대중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2016년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2017년 [[상서중학교 성추행 의혹 교사 자살 사건|성추행 누명 교사 자살 사건]], 2018년 [[2018년 혜화역 시위|혜화역 시위]]와 [[이수역 폭행 사건]] 등에서 전개된 [[미투 운동]]의 '[[여자라서 죽었다]]',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 등의 구호가 시대착오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그동안 [[래디컬 페미니즘]]에 경도되어 정치권에서 터부시되어온 젠더 갈등 문제를 실질적으로 공론화하였다. 이후 정치권에서 젠더 문제를 다루는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2021년 재보궐선거|2021년 서울특별시장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캠프의 뉴미디어본부장으로 정치인 대신 일반 청년들을 유세차에 태우는 등 혁신적으로 선거캠페인을 이끌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상대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같은 해 [[국민의힘/제1차 전당대회|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도 출마하여 '3무(無) 선거운동[* 매머드급 캠프, 홍보 문자메시지 발송, 지원 차량을 없앤 선거운동. 이준석은 이 방법으로 역대 최소비용으로 당선.]'과 뛰어난 연설로 돌풍을 일으키며,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최연소 [[국민의힘|제1야당]] 대표가 되었다. 임기 시작부터 당대표 전용차가 아닌 [[따릉이]]와 대중교통을 타고 [[대한민국 국회]]에 출퇴근 했으며, [[국민의힘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공직자 자격 평가]], [[제1회 국민의힘 토론배틀 : 나는 국민의힘 대변인이다|대변인 공개 선발]] 등을 실시하고, 전임이었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행보[* 보수정당 대표로는 최초로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특히 고령의 김 위원장이 무릎참배 후 일어나면서 중심을 잃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를 계승하여 적극적인 [[호남]] 방문과 지역 정책제안으로 '서진정책[* 한반도 동쪽인 영남의 정치 세력이 서쪽의 호남 정치 세력을 끌어안는다는 뜻.]'을 펼쳤다. 이러한 개혁적 행보에 전통적으로 진보적 성향이 강했던 20-30대, 여성, [[호남]] 유권자들까지 지지를 확대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국민의힘]] 지지율 최고치를 달성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선) 버스는 정해진 시간에 출발한다"며 '정시출발론'을 원칙으로 삼아, [[윤석열]]을 포함하여 대권 주자 15인[* [[원희룡]], [[유승민]], [[윤석열]], [[최재형]], [[홍준표]], [[황교안]], [[김태호(1962)|김태호]], [[박진]], [[안상수(인천)|안상수]], [[윤희숙]], [[하태경]], [[장성민]] 등.]을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국민의힘 경선]]에 참여시키는 데 성공하고, 유례없이 많은 토론회[* 총 16회.]를 진행하여 흥행에도 성공했다.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경선]]에서 뽑힌 정치 신인 [[윤석열]]을 후보로 맞이하여 대선 전략으로 '[[세대포위론|세대결합론]][* 지역주의가 강하던 시대에 지역별로 공략하던 전통적인 선거 전략이 아니라, 2030세대와 60대 이상의 세대를 결합해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새로운 선거 전략.]'을 구상했다. 이후 신선한 캠페인[* 59초 쇼츠 공약, 후드티 메세지 등]을 실행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상대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됨에 따라 집권 여당 당대표가 되었다. 이어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대표로 [[국민의힘]]을 이끌어 '4년 무한책임론'을 선언하며, '20년 집권론'을 제시한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에 압승하여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이준석은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더 개혁하고 노력할 부분이 있다"며 혁신위원회[*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2022년 7월 8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이준석 성접대 허위 의혹 제기 사건|성접대 의혹]]에 대한 증거인멸교사 혐의(이후 무혐의 결론)와 관련하여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근거로 이준석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 사건|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의결]]했다. 이에 따라 이준석의 당대표 직무가 정지되었다. 이후 [[윤석열-권성동 텔레그램 논란|체리따봉 사건]]으로 당대표를 축출하기 위한 [[윤석열]]과 [[친윤계]]의 움직임이 공론화 됐고, 당내에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수립 논란|비대위로의 체제 전환을 추진]]하자, 이준석은 법원에 비대위 효력 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여러 차례 제기했다. 법원은 이준석의 첫 번째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해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이에 [[국민의힘]]은 당헌당규를 개정하여 [[정진석]]을 비대위원장으로 하는 새로운 비대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결국 법원이 이준석의 마지막 가처분 신청을 기각해 새로 출범한 비대위의 효력을 인정했다. 그러자 2022년 10월 7일,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당론을 따르지 않은 가처분 신청과 당 구성원에 대한 모욕적 발언[*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에 대한 논란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앞에서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정상배들에게서 개고기 받아와서 팝니다"라고 쓴 것을 문제 삼았다.]을 사유로 이준석의 [[이준석 추가 징계 사건|당원권 정지 기간을 추가로 1년 연장]]하여, 총합 1년 6개월의 당원권 정지를 의결하였다. 결국 [[윤석열]]과 [[친윤계]]가 주도한 당헌 개정, 비대위 재구성, 법원의 가처분 신청 기각, 2차례의 윤리위 징계를 통해 이준석의 [[국민의힘]] 당대표직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준석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정치 생명을 끝내겠다는 [[친윤계]] 의원들로부터 지속적인 욕설과 비방에 시달려야 했다. 일부 [[국민의힘]] 인사들은 성상납 의혹을 기정사실화하듯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속적으로 퍼뜨렸다. 심지어 [[친윤계]] 초선 의원 32명은 실명도 밝히지 않은 채 이준석을 비난하는 '익명 연판장'을 돌리는,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이례적인 촌극을 벌였다. 일부 [[윤석열]] 지지자들은 이준석의 자택을 찾아가 자살을 종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불명예스럽게 축출된 이준석은 이후 모든 연락을 끊고 잠행에 들어갔다. 2023년 4월 1일, [[전라남도]] [[순천시]]에 머물며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언어 통역 봉사[* 영어/중국어.]와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지역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 봉사 활동[* 수학/과학.]을 시작했다. 또 2023년 7월 28일, '[[여의도재건축조합]]'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할 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방송을 했다. 특히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영상을 가장 먼저 게시하며, [[학생인권조례]]를 정쟁화하려는 [[보수주의|보수]] 진영을 비판하고, [[교육]]과 [[보육]]의 분리 법제화를 제안하며 교권 회복 문제를 실질적으로 공론화했다. 2023년 11월 2일, [[2023년 하반기 보궐선거|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고 출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준석을 포섭하기 위해, 징계가 이루어진지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야 징계 취소 안건을 의결[* 즉, 징계를 할 정도의 증거인멸교사, 품위유지위반, 모욕적 발언이 있었다는 것을 [[국민의힘]] 스스로 번복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안과 관련해 [[국민의힘]] 내에서 어떤 공식적인 사과도, 개인적인 반성도 나온 적은 없다.]하였다. 이후 [[검찰]]도 무고건에 대해 최종 무혐의[* 말 그대로 '''어떠한 혐의도 없다'''는 뜻.] 처분을 내렸다. 2023년 12월 27일, 이준석은 정치권의 예상을 깨고 [[노원구]]에 위치한 숯불갈비집에서 [[국민의힘]] 탈당 기자회견 및 신당 창당 선언을 진행했다. 2024년 1월 4일, 온라인으로 당원 모집을 시작한 지 단 하루 만에 2만 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하며,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가장 빠르게 정당 설립 요건을 충족한다.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으로 개혁신당의 강령, 당헌, 당규를 직접 만들고, 2024년 1월 20일, [[개혁신당]]의 창당대회에서 초대 대표로 추대되었다. 2024년 1월 24일, [[한국의희망]]과 신설 합당하여 [[양향자]]는 원내대표를 맡고 이준석은 대표직을 이어갔다. 2024년 2월 9일, [[새로운미래]], [[원칙과 상식]], [[새로운선택]]과 4자 통합을 선언했으며 [[이낙연]]과 함께 통합신당의 공동대표로 추대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24년 2월 20일, [[새로운미래]]와의 통합이 최종 결렬되자,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세력들을 통합한 [[개혁신당]]의 대표직을 단독으로 수행했다. 2024년 1월 25일,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모든 교통수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불형 교통카드를 제공하겠다고 공약하며, 서울지하철 적자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갈등|도농 간 노인 이동권 불평등 문제]]를 공론화하였다. 또 2024년 1월 29일, '경찰·해경·소방·교정 공무원이 되려면 남녀 모두 병역 필'을 의무화하겠다고 공약하며, 병역자원 감소 문제를 공론화하였다.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탄2신도시]]가 위치한 [[경기도]] [[화성시 을]] 선거구에 [[개혁신당]] 후보로 출마, [[더불어민주당]] [[공영운]]·[[국민의힘]] [[한정민(정치인)|한정민]] 후보를 모두 꺾고 42.41%를 득표해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정치 입문 13년, 4번째 도전 만에 국회의원에 당선[* 해당 총선에서 거대 양당이 낀 3자 구도를 뚫고 당선된 유일한 사례다.]되었다. 사전에 오랫동안 표밭을 다지며 연고를 형성한 곳이 아니었음에도, 선거 운동 기간 내내 큰 격차로 2위에 그친 모든 여론조사는 물론 3~4%p차 경합 열세로 집계된 출구 조사까지 한 번에 뒤집으며 당선을 확정지었다. 당세가 미약한 제3지대 정당 후보로서 유일하게 단일화 없이 거대 양당 후보들과 3자구도로 겨뤄 승리했다. 2024년 5월 15일, [[천하람]], [[이주영(1982)|이주영]] 당선인들과 함께 [[광주광역시]] 국립 5·18 민주묘지에 도착해 7시간 30분에 걸쳐 안장된 모든 희생자들의 묘(995기)에 참배하고 헌화와 묘비를 닦았다. 이들은 전날 밤 [[김해시]]에서 재배된 국화 1천송이를 싣고 차를 직접 운전해 가져와 [[광주광역시]]에 헌화하며 영호남의 화합도 기렸다. 2024년 5월 19일, [[개혁신당/제1차 전당대회|전당대회]]에서 [[허은아]] 후보가 [[개혁신당]] 제2대 대표로 당선되며 이준석은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이후 정책연구기구 '개혁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임명됐다. 2024년 12월 3일, [[12.3 비상계엄]] 선포 후 자신의 [[대한민국 국회]] 진입을 막은 경찰과 강하게 대치하며, [[행정부]]가 [[입법부]]의 권한을 제약 할 수 없도록 한 [[헌법]]을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 위반한 사실을 공론화했다.[* 이후 2025년 4월 4일, 탄핵이 인용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도 해당 사실이 '...국회의원 및 국회 직원 등의 국회 출입 및 본회의장 진입을 막고...'로 명시되었다.] 2025년 2월 18일, [[래디컬 페미니즘]]의 [[동덕여자대학교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동덕여대 폭동]]과 [[극우]]의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서부지법 폭동]]을 함께 비판하면서, 이념과 진영을 초월하여 급진주의 세력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 폭력 시위 문제를 공론화하였다. 2025년 2월 21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합의해 통과시킨 연금개혁안에 대해 "국회가 미래세대를 학대하고 착취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며 연금개혁 문제를 공론화시켰다. 2025년 4월 10일, 서울 목동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사건에 대해,"학생권이 강화됐다고 해서 교권을 무시해도 된다는 해석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교권 침해 문제를 2023년에 이어 재공론화했다. 2025년 2월 2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홍대]] 버스킹거리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가장 먼저 앞장서는 '퍼스트 펭귄'이 되고자 한다"며 '세대교체론'을 전면에 걸고 사실상 대권도전을 선언했다. 2025년 3월 18일, [[개혁신당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단독 출마해서 찬성 92.81%, 반대 7.19%로 [[제21대 대통령 선거]]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2025년 4월 8일, 만 40세의 나이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가장 먼저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 등록을 마쳤다. 2025년 4월 9일, [[강남역]] 대로변 건물 1층에 대선 선거사무소를 마련하고, '압도적 새로움'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대구광역시]]에서 첫 공식적인 유세를 시작했다. 2025년 6월 3일, 선거기간 내내 이어져 온 단일화 압박을 극복하며 대선을 완주하였고, 2,917,523표를 득표하며 8.34%의 득표율을 달성하였다. 전 지역구에서 10% 안팎의 고른 득표를 했으며, 20·30대 남녀 유권자 모두에서 최종 득표율을 크게 상회하는 지지율[* 20대 이하 남성 37.2%, 여성 10.3%, 30대 남성 25.8%, 여성 9.3%.[[https://www.yna.co.kr/view/GYH20250603000500044|#]].]을 기록했다. 특히 적극적인 중도 확장을 통해 계엄령과 탄핵으로 실시된 조기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의 과반 득표를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2025년 5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2024년)|사회민주당]] 소속 의원 21인[* 진보당 3인([[정혜경]], [[윤종오]], [[전종덕]]), 더불어민주당 4인([[김남근]], [[민형배]], [[박홍배]], [[임미애]]), 조국혁신당 12인([[강경숙]], [[김선민(1964)|김선민]], [[김재원(1975)|김재원]], [[김준형(교수)|김준형]], [[박은정(1972)|박은정]], [[백선희]], [[서왕진]], [[신장식]], [[이해민]], [[정춘생]], [[차규근]], [[황운하]]), 기본소득당 1인([[용혜인]]), 사회민주당 1인([[한창민]]).]은 이준석이 [[이재명 장남 도박 및 음담패설 사건|이재명 대통령 장남의 성범죄]]와 관련하여 한 질의를 문제삼아 국회의원직을 제명할 수 있는 [[이준석 의원직 징계안|징계안]]을 [[대한민국 국회]]에 제출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선대위원장, [[한준호]] 공동선대위원장, [[김용민(1976)|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도 이준석의 의원직 제명[* 징계가 시행되어 국회의원직 제명이 이루어지면, 1979년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에 이어 헌정사 두 번째 사례가 된다.]을 촉구했다. 이에 2025년 5월 30일, 이준석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저는 죽지 않습니다. 분연히 맞서 싸우겠습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하셨던 [[김영삼]]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말씀을 기억하겠습니다"라며 [[이재명]] [[유신독재]]의 출발을 알리는 서곡과도 같다고 평가했다. 2025년 7월 27일 [[개혁신당/제2차 전당대회|개혁신당 제2차 전당대회]]에서 제3대 개혁신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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