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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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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table align=center><tablewidth=300><nopad><tablebordercolor=#CC0000,#CC0000> [[파일:attachment/소련군/godotgoda.jpg|width=100%]] || ||<bgcolor=#CC0000,#CC0000> {{{#white '''그대는 해를 거듭하며 강인해지는,[br]소비에트 인민의 군인이라!'''}}}[* 1988년 소련 '조국 수호자의 날'(День защи́тника Оте́чества, 2월 23일) 기념 포스터.] || 소련군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 직후에는 약 [[백만대군|'''1,000만 명'''에 이르렀고]], 냉전 말기에는 총병력이 '''500만 명''' 이상이었다.[* 대전 말기인 1945년 기준으로 무려 13개 전선군([[집단군]])을 굴렸다. 2023년 한국의 48만 상비군을 다 모아도 집단군을 편성하려면 [[예비군]]까지 전부 끌어와야 가능하다.] 국방예산은 2,000억 달러(1982년)였다. 해마다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중국]]의 국방예산이 2,400억 달러(2021년 시점)였으니, 국제 금 시세([[트로이 온스]]당 $400→$2,000)를 고려하면, 1982년의 소비에트 연방은 2021년의 중국이 지출한 액수의 5배만큼 국방예산에 투자했다는 뜻이다.[* [[파일:ShFR3.png]][br]그림에서 보듯이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대통령]] 시기의 소련 국방비가 오히려 미국을 앞섰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의 집권으로 미국도 군사비를 늘림에 따라 다시 미국의 국방비가 소련을 능가했고 1980년대 초중반의 국방비는 미국과 소련이 비슷했다. 그러나 소련의 경제력은 미국의 반밖에 안 되었다. 소련의 이런 국방비 몰빵은 결과적으로 소련의 해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실 미국도 1980년대처럼 국방비를 계속 투자했다가는 큰일날 뻔했다. 그나마 냉전이 해소된 [[조지 H. W. 부시]] 집권 후부터 대폭 삭감하면서 1990년대에 미국의 국민경제가 부흥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에 지출하는 전비의 증액에 따라서 미국도 2000년대의 후반기부터 경기 침체에 접어들게 된다.] 소련군은 1917년 10월 혁명 과정에서 조직된 적위대[* Кра́сная гва́рдия. 훗날 [[문화혁명]] 시기 [[홍위병]]도 여기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와 1918년 창설된 소비에트 러시아군(Вооружённые си́лы Сове́тской Росси́и)을 시초로 탄생했다. 이후 [[러시아 내전]]이 끝나고 소련이 건국된 1922년 12월 30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군'''(ВС СССР, Вооружённые Си́лы Сою́за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이라는 이름으로써 창설되었다. 소련 육군은 창설 초창기인 1922년부터 1946년까지는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 РККА, 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ая Кра́сная А́рмия], 약칭 '''붉은 군대(Кра́сная А́рмия)''' 혹은 '''노농적군'''([[勞]][[農]][[赤]][[軍]])으로 알려졌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1946년에는 타 국가기관의 개칭과 더불어 소련 군대(Сове́тская А́рмия)라는 명칭으로 개칭했다. 해군의 경우 마찬가지로 1922년부터 1946년까지는 노농적위함대(해군)[* РККФ, 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ий Кра́сный Флот], 1946년부터 1991년까지는 소련 함대(해군)[* Вое́нно-Морский Флот(직역하면 해양군사선단, 즉 "함대"이다. 서구권의 "fleet"에 해당하는 단어는 선단, 기단, 함대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나, 한자어 함대는 군함의 집단이란 단일 뜻만을 갖고 있다. 즉, 해양군사함대라는 기존의 번역은 겹말이 포함된 오역이다.) СССР, ВМФ СССР]으로 개칭하여 [[소련 붕괴]] 시까지 유지되었다. 지상군, 공군, 방공군, 전략로켓군이 속한 소비에트 군대와 해군 함선들과 해군 비승함 직별들이 속한 소비에트 함대로 나뉘었고 여기에 각 군종이 배속되는 형태라서 서방권과 대비해 군종별 독립성이 낮은 [[통합군]]의 성격을 보였다. 즉, 소련군은 예하에 육해공을 두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트 군대'와 '소비에트 함대'의 단 두개 군종만 있었다고 봐도 된다는 얘기다. 계급 체계도 군대형과 함대형으로 나뉘어, 승함 직별 해군과 [[해안경비대]][* 소련 국경수비대 소속] 등만 쓰는 함대형 계급 일부를 제외하면 군대형 계급 체계로 통일돼 있었다. 따라서 해군 소속이더라도 [[해안포]] 부대, [[해군보병대]], [[해군 항공대]]와 같은 비승함 직별이나 의무병과, [[군법무관|법무병과]]와 같은 일부 직별은 군대식 계급을 썼는데, 이들의 경우 군종에 구애받지 않고 인사 이동을 수시로 했기 때문이다. 즉, 한 [[군의관]]이 공군 [[비행단]] 의무대에서 근무하다 해군 [[순양함]]으로 발령받는 식의 모습이 비교적 흔했다. 특히 오데사 군관구, 발트 군관구, 레닌그라드 군관구는 아예 해군 항공사단 자체를 파입부대로 두고 있었는데 이 지역은 각각 [[흑해함대]], [[발트함대]], [[북방함대]]의 주둔지였기도 했으며, 해당 부대들 모두 [[NATO군]]과 대치하고 있었지만 지역 특성상 함대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기에 이러한 구조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사령관이 육군으로 고정되어 있는 [[국직부대]]에 해군 장병이 파입된 격이다. 특히 [[발트해]]와 [[북극해]]는 한번 얼면 '''답이 없기 때문에''' 시간끌기나 얼음 깨기 담당으로 배치시켰을 수도 있다.] [[KGB]] 소속인 소련 [[국경수비대]]와 MVD(소련 [[내무부]]) 소속인 [[내무군]]은 군에 속하지 않는 [[준군사조직]]이기 때문에 아예 편제 자체가 별도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완전 별개의 군은 아니었던 관계로 [[독일 주둔 소련군집단]]에는 국경군도 편제 외 부대로 들어가 있었고 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군집단에는 아예 둘 다 편제되어 있었다. 이 둘 모두 그 지역의 사회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복 자체는 군대 소속이라면 무조건 남색, 함대 소속이라면 무조건 검은색이었다. [[https://www.tridentmilitary.com/New-Photos8/rgu27.jpg|해군보병대]]와 [[https://www.tridentmilitary.com/New-Photos8/rgu22.jpg|해군 항공대]]도 비록 군대식 계급 체계를 따라갔지만 정복만큼은 검은색이었다. 이는 [[정치장교]]도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해군 비승함 직별은 정복에 수장이 없다.] 창군 초창기에는 [[종심작전]]의 창안 등 큰 발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1937년 [[대숙청]]으로 장병들이 대거 숙청되면서 부실해졌고,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초창기 고전하는 원인이 되었다. 소련군은 [[독소전쟁]] 초창기 [[추축국]]을 상대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경험과 전략을 축적하면서 종심작전을 부활시키는 등 군사적으로 크게 성장한다.[* 붉은 군대가 초기의 막장상태에서 크고 아름다운 무적의 스팀롤러로 변하는 과정을 담은 책으론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Russia's War)>이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한 시점에서는 군사력이 워낙 강한데다, 자본주의 세력에 투쟁할 것을 명시한 공산주의 이론과 [[냉전]]이 겹치면서 서구권으로부터 두려움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냉전 기간 동안 소련군의 주된 임무는 전쟁 발발시 나토군을 분쇄하고 서유럽으로 진주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막대한 양의 병력과 전차, 항공기를 준비하고 육군 병력의 70% 가량을 유럽지역 국경에 공격형으로 배치하고 있었다.[* 사실 순수공격형이라기보다는, 나토군이 침공 징후를 보일 때 선빵을 날린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공세형 수비.] 하지만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약 10여년 가량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고전하면서 자국이 보유한 군사역량을 크게 소모했다. 특히 소련군은 전쟁 과정에서 막대한 전비를 소모하면서 소련 경제에 부담을 안겼고, 이는 1980년대 후반 소련 경제가 악화되면서 [[소련 붕괴|소련이 해체]]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독립국가연합]] 국가들이 소련군에서 자국군으로 전환을 마치는 1993년까지는 독립국가연합 통합군으로써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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