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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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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 === [[냉전]]이 시작되자 소련은 미국에게 큰 위협을 느끼고 동유럽 위성국들과 함께 집단방위동맹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바르샤바 조약기구]]였다. 소련은 미국으로 상징되는 서방세력과 직접적으로 맞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동유럽]] 위성국들로 하여금 완충지대를 만들어서 2차대전과 같은 사태를 다시는 겪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보다 더 강한 국력을 보유했으며, 2차대전에서도 소련의 생산시설은 반 이상 파괴되었지만, 미국은 피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소련이 단기간에 미국의 경제력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40년대 말과 50년대 초 기준으로는 소련 입장에서 마냥 불리하지는 않았다. 미군이 총 병력 144만명 정도로 축소된 반면 소련군은 여전히 440만명의 정규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재래식 전력]]을 대규모로 확충하고 현대화하는 것보다는 핵개발이 더 싸게 먹힌다는 게 소련 정치가들의 결론이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돈이 많이 드는 재래식 전력을 줄이고, 이 재원을 경제개발에 투입하는 대신, 비교적 돈이 적게 드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으로 전쟁 억지력을 확보하려 했다.[* 이 전략은 1960년대 중국과 1990년대 북한이 따라한다. 자꾸 이 항목에서 1960년대 미국의 핵전력을 들어 소련이 핵개발 대신 재래식 전력에 집착했다는 설을 푸는 밀덕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는 흐루쇼프 회고록 및 소련사만 봐도 바로 나온다. 흐루쇼프가 2차대전의 영웅인 국방장관 [[게오르기 주코프]] 및 공군사령관 [[알렉산드르 노비코프]]를 해임한 것은 이들이 지나치게 재래식 전력 확충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는 2차대전으로 비대해진 군부의 반발을 불렀고, 흐루쇼프는 [[게오르기 주코프]]를 해임함으로써 일단 군부의 반발을 눌렀지만, 군부의 불만은 지속되었다. 이렇게 핵무기와 [[로켓]]을 강조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 [[스푸트니크]]와 [[차르 봄바]]이다.[* [[중소분쟁]]이 시작된 시기도 이 시기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막대한 규모에 비해 보유 장비는 다름아닌 소련이 스스로 이전한 무기였던지라 소련군은 냉전 종식 직전까지 장비의 질적 우위를 누렸지만 극동과 [[몽골 인민공화국]]에 총 수십개 사단을 배치해야하는 처지에 몰렸다.] 하지만 1964년 흐루쇼프의 실각 이후 새롭게 등장한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핵전력 강화에 더해서 재래식 전력의 대대적인 확충까지 추진하게 된다.이렇게 하여 1970년대 후반이 되면 소련이 군사비 지출로는 미국을 앞서는 상황이 되는데 이러한 군비경쟁은 소련 해체의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을 1979년 침공하면서 반소 [[무자헤딘]]과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벌이자 제3세계에서 입지가 악화되어 그나마 덜 적대적이던 중앙아시아 국경까지 전시 상태로 놓였고,6개 기계화사단과 2개 공수사단을 포함한 주둔군을 상시 주둔시키면서 전비 자체도 상당히 지출했다. 1985년 집권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의 동력 확보를 명분으로 1980년대 말부터 50만명의 감축을 시작으로 소련군의 인력과 예산을 감축하기 시작했다. 1991년까지 500만명에 달했던 소련군은 300만명 이하로 감소했고 핵탄두와 중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전략자산도 1/4 가량 대폭 감축했다. 소련의 전체 방위비 지출도 고르바초프 서기장 집권 이후 30% 이상 감소했다. 고르바초프는 군사력의 감축과 정치적 자유화를 기반으로 소련 체제를 개혁하려고 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급진적인 개혁, 개방 정책을 단시간에 밀어붙이다가 혼란 속에 1991년 [[소련 해체|소련이 붕괴]]하는걸 막지 못했고, 소련군은 해체되었다. 해체된 소련군으로부터 [[우크라이나군]]이나 [[아르메니아군]],[[아제르바이잔군]] 등의 국가들도 기반 병력과 장비를 물려받았다.[* 소련군이 이들 국가의 군사의 전신인 셈이지만 이전 소련군 병력을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는 자국군으로 편입하는걸 예외적으로 거부하고 [[러시아]]로 돌려보냈다.] 일반적으로 후신으로 널리 간주되는 군대는 주요 대도시와 UN 상임이사국 지위를 승계한 [[러시아군]]이다. * [[소련 육군]] * [[소련 해군]]: 전통적인 대륙국가였기 때문에 육군에 비해 해군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그래도 냉전 시대에 [[소련 해군]]은 [[미 해군]]의 뒤를 이은 세계 2위의 해군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을 제외하면 그 어떤 나라도 소련 해군의 전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문서 참조. * [[소련 전략로켓군]]: 초기에는 미국에 비해 핵전력이 미약했으나 1970년대 초반 부터 [[미국 전략공군사령부|미 전략공군]]을 앞서는 수준의 [[ICBM]]을 운용하는[* [[공산오차]]는 미국제 ICBM에 비해 뒤떨어졌으나 수는 미국에 비해 훨씬 많았다. 즉 딸리는 공산오차를 물량으로 씹어먹으려 했던 셈.] 막강한 군사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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