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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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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레스트로이카 == 체르넨코 개혁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연방 교육의 문제는 계속 심화되어 갔다. 1980년대 중반 소련의 전체 예산에서 교육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7%였다.[* 동 시기 국가와의 비교: [[프랑스]] 7.1%, [[일본]] 6.3%, [[미국]] 6.1%, [[서독]] 4.5%] [[신경제정책]] 시기와 스탈린 정권 시기에 연간 10% 이상의 예산을 교육에 투자하던 연방의 열정은 사라져 버렸다. 연방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미국보다 12배, [[영국]]보다 8배 적었으며 학교 시설의 노후화도 심각했다. 학생의 개성과 진로, 학생과 교사들의 창의성은 계속 무시받았다. 교육 현장에서 크렘린으로 보낸 보고서들은 당대 소련의 교육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었다. 학교 재정은 부족했고 교원과 학교에 지급하는 지원은 열악했으며 교사에게 주는 임금도 낮았다. 학생들의 지적 수준도 문제가 심각했으며 결석률도 아주 높았다. 그래서 소련 정부에서는 1984년의 개혁을 이어가면서 새로운 형태의 개혁을 준비했다. 1986년 28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 고등 교육 과정에 대한 재편성을 결의하고 개혁안을 수립했는데 교육 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을 담은 이 개혁안은 국민적 토의를 거친 뒤 1987년 3월에 공포되었다. 위에서의 개혁이 이뤄지자 아래에서의 개혁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교사와 교육 전문가, 교직원들 사이에서 교육의 민주화와 교육 수준의 향상, 학교 자치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게다가 [[글라스노스트]]가 촉발시킨 언론과 대중매체의 활성화와 교육 제도 개선에 대한 여론의 형성은 이들의 활동을 크게 고양했다. 1986년 10월 진보적인 교사들이 단체를 설립하여 교사의 창조적 교육 활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교사의 교육 역량 증대를 위해 교사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986년 12월, 소련 정부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스크바에서 연방 교직원 대회를 개최했다. 각 연방 내 공화국의 대표들이 자신이 소속된 공화국의 개혁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1988년, 교육의 다양화와 질적 향상을 목표로 하는 리가초프 보고서가 크렘린에 제출되었다.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에 교육계에서 논의된 주요 쟁점은 학교 수업의 인센티브 문제 · 교육 과정의 조정 · 관료주의와 교조주의 · 설비 노후화 · 교육의 질적 수준 하락 · 학교 민주화와 자치제 · 부족한 예산 문제 등이었으며 체르넨코 개혁에서 개선하지 못한 교과 과정 · 구시대적인 수업 방식과 교수법 · 강의식 교육에 대한 비판도 이뤄졌다.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소련에서도 직업 교육이나 기술 교육에 대한 인식이 계속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이나 학부모나 직업 학교와 기술 학교를 기피했고 직업 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박탈감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일이 많았다. 직업 학교의 학생들이 일반계 학교 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습 의욕이 낮은 것은 불문가지였다. 그래서 서비스업과 생산직, 공학 계열로 진학한 학생들에게 경력과 전문성에 대한 인정, 빠른 취직과 좋은 급여, 추후 고등 교육 과정을 이수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보장을 해줄 필요성이 대두했다. 직업 학교의 학생들에게 일반계 학교의 학생들보다 더 많은 장학금과 지원을 해준다거나 일반계 학생들보다 더 쉽게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는 보장을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반계 학교에서도 별도의 교육 과정들을 개설해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교육 기관이 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다. 직업 교육이나 고등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을 신설해 학생들이 진로 적성에 맞는 학교에서 효과적인 학습을 하자는 것이었다. 학업 성취도가 진학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도 고등 교육 기관으로의 진학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설득할 수단이 필요하단 여론도 강했다. 소련 정부는 교육 현장과 학생, 학부모, 여론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교육 행정의 개선을 추진하고 시설 노후화와 예산 문제, 학교 자치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교육 기관의 부분적인 독립 채산제도 도입하려고 했다. 독립 채산제가 도입되면 각 학교는 교부된 예산을 자주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학교 회의의 재량에 따라 독자적으로 학교 기금을 조성할 수 있는 권한을 받게 될 것이었다. 학교 기금은 관련 부처의 지원, 학부모나 시민의 기부, 학교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한 경제 활동으로 확보한 재정 등을 수입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연방 정부 차원에서는 교육 예산의 증대와 지방 소비에트의 재정권 확대, 기업으로부터의 교육 예산 지원 등의 방안을 구상했다. 교육 행정 조직의 관료주의, [[교조주의]], 비효율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간 여러 개로 나뉘어 있던 교육 부처들을 통폐합하고 주, 시 단위로 교육 행정 기관에 속하는 인민 교육 회의를 설치했다. 인민 교육 회의는 교직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대표나 사회 단체 대표가 학교 관리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관이었다. 학교 민주화를 위해서 학교 운영의 책임 주체를 교장에서 교사, 관리자, 학생, 학부모 대표로 이뤄진 학교 회의로 전환하고 대학의 자치권도 확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조치들 중에서 일부는 구상만 했고, 일부는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일부는 시행하기 전에 소련이 해체되고 말았다. [[소련 붕괴]]의 충격 속에서 발트 3국을 제외한 연방 구성 국가들의 교육 환경은 지옥 밑바닥에 쳐박혀 버렸고 러시아를 비롯한 다수 국가들의 교육은 오랜 시간 동안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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