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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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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이 문서는 [[소련]]의 [[경제]]에 대하여 다룬다. 세계 1위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소련 경제도 체급만큼은 높았다. [[경공업]]이 빈약해서 소비재의 다양성과 품질이 부족한데다가 식량도 미국, [[아르헨티나]] 등 농업 강국들로부터 막대한 양을 수입했지만, [[중화학 공업]]은 튼실하여 공업 생산량은 세계의 20%를 차지했다. 소련의 핵심 산업은 석유 · 광물 · [[철강]] · [[항공우주]] · [[화학]] · [[중공업]] · [[전자]] 등이었다. [* '''[[쿠바 핵미사일 사태]]''' 당시에도 식량을 실은 미국 화물선이 대서양과 흑해를 오갔다. 그렇지만, 쿠바 위기 당시의 소련은 농축산물 순수출국이었다. 아르헨티나에 극우 군사 정권이 집권한 시기에도 소련은 경제적 이해 관계 때문에 아르헨티나와의 관계를 유지했으며, 아르헨티나 또한 경제적 이익 때문에 미국의 경제 제재를 무시하고 소련과 거래했다. 그래서 양국과의 관계는 의외로 괜찮은 편이었다.][* 단순히 타국으로부터 수입을 많이 했다는 것이 그 분야의 생산량이나 공급량이 떨어진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순수입으로만 보면 유럽이나 미국이 소련보다 더 많은 식량을 수입했던 적이 더 길다. 소련은 정말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해외 원조 · 비축미 확보 · 사료 작물 구매를 위해 식량을 수입했다.] [[경제 성장률]]은 [[신경제정책]] 기간부터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해 재건을 이뤘으며, 스탈린이 5개년 계획을 시행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우크라이나 대기근]] 및 [[독소전쟁]]으로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1950년대 초에 전후 재건을 이루고 1960년대 후반까지는 상당히 높은 성장을 보이며 경제의 고도화를 이뤘다. 다만, 65 ~ 70년 동안 시행한 코시긴 - 리베르만 개혁이 중단되고 70년대 중반부터 3% 이하로 하락했다. 이러한 저성장은 1973년 [[석유 파동]]으로 막대한 양의 달러가 소련으로 들어왔음에도 개선되지 않아 브레즈네프 정권 중반기 내내 [[중진국 함정]] 현상을 겪게 되었다. 1982년에 집권한 [[유리 안드로포프]]는 노동 기율을 강화하고 각종 경제 정책을 시행해 일시적으로 효율성을 높여 경제 성장률을 4%대로 반등시켰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경제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1986년에 유가가 폭락하자, 동구권의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고 개혁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었다. 체르넨코의 뒤를 이은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조금씩 도입하고 여러 산업 분야에서 협동조합화를 시행했으나, 도리어 혼란만 가중되었다. 여기에 86년의 체르노빌 사태, 89년의 동구권 해체는 소련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고, 정치적 혼란까지 가중되어 소련의 붕괴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 때문에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의 소련 경제는 여러 가지 대 · 내외적 문제로 인해서 -2 ~ 2% 수준의 저성장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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