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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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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은 전쟁 징후를 알고도 무시했다 ==== 후대의 많은 연구자들은 스탈린은 '진심으로' 히틀러가 '[[양면전쟁]]'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영국 공군]]이 소련의 바쿠 유전에 대해 폭격을 검토할 정도로 소련은 독일에게 많은 전쟁 자원을 공급했다. 아마도 스탈린은 소련이 독일에 전쟁 물자를 계속 공급하는 한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또한 스탈린은 히틀러에게 독일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희귀 광물을 제공하면서 소련과의 전쟁이 임박하면 독일에게 중요한 인센티브를 박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소련은 1939년부터 독일이 침공한 1941년 6월까지 94만여 톤의 [[석유]] 및 석유 제품을 보냈고, 16만 톤의 [[망가니즈|망간]] 단괴와 2만 3천 톤의 [[크로뮴]] 광석과 여타 대량의 자원을 독일에 제공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Nazi%E2%80%93Soviet_economic_relations_(1934%E2%80%9341)#Expanded_economic_relationship|2차 출처]] 실제로 최후의 화물 열차는 독일이 공격을 개시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국경을 넘어갔다. 독일 점령 하의 유럽과 일본에 산재한 소련 간첩들은 독일의 공격 징후를 1년 전부터 계속 보고했지만, 스탈린은 이런 정보가 오히려 독일의 역공작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실제로 독일에 의한 역공작이 없지는 않았다.] 게다가 [[무솔리니]]의 삽질로 독일의 공세가 [[이집트]], [[그리스 왕국|그리스]] - [[유고슬라비아]] 쪽으로 확대되자 스탈린은 히틀러의 의중은 소련 공격이 아니라 [[수에즈 운하]] 확보라고 잘못 확신하고 말았다.[* 재밌는건 히틀러는 처음엔 수에즈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독소 전쟁이 벌어지자 수에즈 확보에 관심을 가졌다.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북아프리카 군단이 아프리카에서 치고 올라와 소련의 남방 영토를 공격해줄 것이라고...] 이때는 히틀러가 대놓고 소련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면서 유고슬라비아의 쿠데타도 유대 - 볼셰비키들이 수작을 부린 것이라 주장하고 있었는데도 그러했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킬 결심을 하기 이전의 일이지만, 히틀러는 외무장관이었던 폰 리벤트로프의 제안대로 소련을 반영동맹으로 참가시켜보려고 불타는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를 억누르고 시도를 해보긴 했다. 이미 앞선 1939년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 당시 반공조약이 실질적으로 소련을 향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 [[영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1940년 11월 12일 소련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히틀러는 몰로토프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 '''[[대영제국]]은 이미 망했소. [[소련]]이 [[추축국|독일/이탈리아/일본 3국 동맹]]에 가입하면 [[인도 제국]]을 나눠 주겠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몰로토프는 앞서 전술한 것처럼 자신들의 관심사는 영국의 중동과 아시아 식민지가 아니라 발트해와 발칸 반도라는 것을 전하며 오히려 독일의 [[동유럽]] 동맹 세력 확장에 대해서 항의했다. 특히 당시 막 끝난 [[겨울전쟁]]으로 소련에 영토를 빼앗긴 [[핀란드]][* 핀란드는 독일 편에 붙었지만 [[추축국]]에 가입하지는 않았다.]와 [[베사라비아]]를 빼앗긴 [[루마니아 왕국|루마니아]]가 독일 편에 붙었다. 또한 하필이면 그날 [[영국 공군]]이 [[베를린]]을 [[폭격]]하여 몰로토프는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와 함께 [[방공호]]로 대피했다. 그때 몰로토프가 한 말이 걸작이다. > '''"[[대영제국]]이 망했다고 한다면 지금 떨어지고 있는 폭탄은 누구의 것이오?"'''[* 당시에 [[프랑스 침공|프랑스는 점령당했고]] 미국은 아직 참전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보며 스탈린은 독일이 [[동유럽]]으로 세력을 확장 중이지만 자신들과 충돌을 할 의도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러한 스탈린의 판단은 히틀러를 너무나 '정상'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사실 영국에 남은 마지막 희망을 꺾어버릴 의도에서 소련을 굴복시킨다는 [[아돌프 히틀러]] 자신만의 논리는 사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믿기 힘들 만큼 복잡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굳이 분석해보자면 이렇다. 당시 유럽은 이미 영국과 소련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고, 나머지 국가들은 [[중립국|중립]]을 선언하거나 독일에 의해 모두 점령당한 상태였다. 만일 여기서 소련마저 독일에 의해 점령된다면 사실상 유럽에서 고립되어버린 영국이 스스로 항복하고 나오거나 설령 영국이 끝까지 저항하더라도 소련의 막대한 자원과 인구를 바탕으로 군대를 재정비해 영국을 치면 전유럽의 통일이 완성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게르만족]]은 세계에서 제일 우월한 민족이니 노예 [[슬라브족]]들을 상대로 결코 지지 않는다.'라는 히틀러 특유의 게르만 우월주의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소련군은 [[겨울전쟁]]에서 이미 한심한 작태를 보였기 때문에 더욱 기고만장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전선이 양면으로 형성되면서 안 그래도 부족한 군이 둘로 양분되었다는 거고, 부디 소련의 뒤를 쳐주길 바랬던 일본은 [[할힌골 전투|이미 소련의 진가를 알고 있었으며]], [[아리아인]]은 당연히도 세계에서 제일 우월한 민족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본을 공격한다|영국을 공격하는 편을 택하지 소련을 공격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굉장히''' 적기 때문이다.[* 이미 독일은 한 차례 [[양면전선]]을 만들었다가 [[제1차 세계 대전|크게 말아먹은 적이 있었다]]. 히틀러도 이때 교훈을 얻고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어 후방을 안정시킨 후 [[프랑스 침공]]을 감행해 대박을 터트렸고 소련을 침공할 때도 영국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평화협정을 맺자고 제안하거나 [[영국 본토 항공전]]을 벌였으나 실패해 소련 침공 시 양면전선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니 스탈린은 지극히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정국을 분석한 것이었고 히틀러가 양면전쟁을 피하려 한다는 것도 파악했지만, '''문제는 히틀러가 희대의 광인이었다는 거'''다. 이미 20여년 전에 대실패한 걸 뻔히 보고도 히틀러는 [[프랑스]]에서의 성공으로 과하게 자만한 나머지 1차대전의 교훈을 '''알고 있음에도 그냥 꼴아박았다'''.] 그래서 스탈린은 단지 독일에게 자원을 공급해 주고 독일 정찰기가 소련 위를 날아다녀도 자극하지만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스탈린은 독일이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 굉장히 고심했고, 그래서 전쟁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 전쟁 1달 전부터는 독일의 침공 징후가 확실했는데도 소련군에 경계 경보를 내리는 것을 주저했다. [[게오르기 주코프]]의 회고록을 보면 당시 [[국방장관]] [[세묜 티모셴코]] [[원수(계급)|원수]]와 [[총참모장]] 자신은 계속 경계령 발동을 요청했으나, 스탈린은 그게 오히려 전쟁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하루 전인 6월 21일에야 뒤늦게 경계령을 내렸으나]], 그때는 이미 독일군 [[특공대]]들이 소련군 제1선 부대들의 통신망을 절단해놓은 상태라 명령이 전달조차 되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스탈린은 히틀러가 정상적이라는 기본 전제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사실 이것이 스탈린의 큰 단점이기도 했는데, 강철인간이란 별칭답게 기계 같은 사고를 가진 스탈린은 자신의 상대도 기계적이고 냉혹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 생각하고 행동했기에 히틀러의 광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이후 냉전기에 서방국가들이 자국의 이권을 일부 희생하면서 타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행동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전쟁의 빌미가 될 수 있는 명분이나 우발적 충돌만 억제하면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위에서 말했던 대로 월경해서 정찰 활동을 하는 독일의 정찰기나 정찰 부대에 대한 대응도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독일군은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들며 소련군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정찰할 수 있었고, 이는 소련군의 초반 참패를 초래했다. 물론 스탈린처럼 히틀러가 [[양면전쟁]]을 벌이는 일에 도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정상이다. 애초에 히틀러는 [[양면전쟁]]을 피하기 위해 스탈린한테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자고 제안했으니 지금 와서 갑자기 양면전쟁을 벌인다고 생각하기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히틀러도 양면전쟁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어 양면전쟁을 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양면전선이 형성될 때를 대비해 상대방도 양면전선을 형성하게 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했다. [[독소 불가침조약]]이 그 예시이며, 지구 반대편에 있어 서로 돕기 힘든 [[일본 제국]]과 동맹을 맺은 가장 큰 이유가 독일이 양면전쟁을 치를 때 동쪽에서 오는 소련을 양면전선에 빠뜨려 양면전쟁의 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는 열강이었기 때문이다. 소련을 침공하기 전에도 히틀러는 양면전선을 피하기 위해 영국과 평화 협정을 맺자고 제안하거나 [[영국 본토 항공전]]을 벌이는 등 갖은 수를 다 썼으나 전부 실패로 돌아가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려면 양면전선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렸다. 거기다가 양면전선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동맹을 맺은 일본은 이미 앞서 치른 소련과의 국경 분쟁에서 호되게 얻어맞은 이후 소련을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독일이 감히 전쟁을 생각하지도 않았던 [[미국]]을 건드려버린다.] 혹자는 바르바로사 작전 직전엔 육상전선이 없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당시에는 이미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전선이 진행 중이었기에 이는 사실이 아니다. 비록 2차 대전 초반에 프랑스를 항복시키면서 적어도 육군은 소련 쪽으로 집중할 수 있을 듯이 보였지만 [[이탈리아 왕국]] 덕분에 [[북아프리카 전역]]이 개전했고 [[이탈리아군]]을 보조하면서 영국군을 격퇴하라고 보낸 [[에르빈 롬멜]]은 독일군을 주력으로 몰아쳐 영국군 제8군을 격퇴하고 토브룩을 향해 공세를 펼치고 있었고 바르바로사 작전 바로 한달 전까지 독일군은 크레타 섬과 발칸 반도를 공략하였고 이들 지역에 대한 잔존 영국군과 현지 게릴라 소탕작전은 6월 초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히틀러는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희대의 또라이'''였다는 것인데, 스탈린은 그걸 모르고 있었거나 혹은 이를 알면서도 [[확증편향|믿지 않으려 했다]]. 사실 비단 스탈린 뿐만 아니라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이나 프랑스의 [[에두아르 달라디에]]도 앞서 있었던 [[오스트리아 병합]]이나 [[뮌헨 협정]]의 [[주데텐란트]] 강탈 등에서 옛날의 1차 대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최대한 독일 측의 요구사항을 받아주듯이 진행했으나, 상상을 초월한 히틀러의 전쟁광 기질 때문에 단치히를 비롯한 영유권 분쟁에 이어 폴란드까지 침공하게 되면서 비로소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스탈린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럴 리가 없다며 [[현실부정]]을 하는 모습을 보였을 정도였다.[* [[일본군]]의 [[만주사변]]처럼 일부 과격한 독일 장교들이 히틀러의 승인 없이 자의적 도발을 감행한 것일 뿐일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중에 가서는 정신을 부여잡고 소련을 지휘하긴 하지만 노발대발 화를 내기도 하고 독일이 왜 침공하겠냐며 전전긍긍한 것을 보면 이전까지는 정말로 히틀러가 소련과 전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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