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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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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소 불가침조약]] === 이때 스탈린의 마음을 흔든 것은 다름 아닌 독일이었다. 독일 또한 침략 전쟁에 소련이 개입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으며[* 사실 이는 1차대전 전부터 이어져온 전통(?)이다. 독일은 독일 제국 시절에도 서쪽의 프랑스와 동쪽의 러시아로부터 [[양면전쟁|양쪽에서 동시에 공격받는 걸]] 우려했고 그래서 [[슐리펜 계획]]을 세웠다. 비록 이 계획은 원래부터 있던 문제에 그나마 장점도 없애버린 채 고쳐버린 데다가 판단 미스 등등의 이유로 실패했고 결국 독일은 양면전선에 빠져 독일 패망에 기여하다시피 했으니(정작 러시아는 [[러시아 혁명]]으로 먼저 망했다.) 나치 독일으로서는 양면전선을 만들지 않는 게 제1의 목표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나치 독일]]도 결국 양면전선이 형성되는 바람에 망했으니 그 판단은 틀린 건 아니었다.], 계획의 스타트를 끊게 될 [[폴란드 침공]]에 소련이 개입하면 초장부터 만사를 그르칠 수 있으므로 소련에게 추파를 보내기 시작했다. 8월 2일,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가 소련에게 [[발트해]]에서 [[흑해]]까지의 지역의 결산을 제안했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에서는 이를 유럽에서 옛 차르 제국을 재건할 가능성이라고 표현했으며, 스탈린은 리벤트로프를 만날 때 [[http://gdb.rferl.org/4001076F-528B-4625-9F85-B1C4E52C8547_mw1024_s_n.jpg|어린애같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1939년 8월 17일 [[몰로토프]]는 리벤트로프와의 회담에 동의했고, 같은 해 8월 19일 양국은 [[https://en.wikipedia.org/wiki/German%E2%80%93Soviet_Credit_Agreement_(1939)|독소 신용 협정(German-Soviet Credit Agreement)]]를 체결하였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전보를 교환한 후, 8월 23일 리벤트로프를 위시한 독일 외교단이 소련으로 비행기를 타고 갔다. 당시 [[모스크바]] 공항에는 [[하켄크로이츠]] 깃발들이 장식되어 있었고 [[크렘린]]에서는 스탈린이 직접 외교단을 맞이했다. 이로써 1939년 8월 23일, 독일과 소련은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독소 불가침조약과 독소 신용 협정에 의해 소련은 폴란드를 독일과 나눠먹고, 독일과 소련은 상대방이 약소국([[발트 3국]], [[루마니아 왕국|루마니아]] 등)을 침략하는 것을 묵인했으며, 독일은 소련에 기계류를, 소련은 독일에 자원을 공급해 주기로 약속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고 9월 17일부터는 소련이 참전해 폴란드 동쪽을 침략함으로써 [[폴란드 제2공화국]]은 멸망하고, [[독소 폴란드 점령|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 통치]]하게 되었다. 1940년 6월에는 소련이 [[발트 3국 점령|발트 3국을 강제 합병하였다.]] 이후 독일이 프랑스 침공에서 승리하자 축전을 보내는 등 독일과 화기 애애한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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