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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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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 이론의 철학적 기반 ====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 >[[https://www.marxists.org/korean/marx/theses-feuerbach/index.htm|「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2 Thesen über Feuerbach}}}''」]] 이러한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은 1840년대의 전반기에 형성된 것인데, 여기에서 그에게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변증법]]과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적 [[유물론]]이다. 헤겔은 '자기 소외'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본래의 모습'이 존재하는데, 18세기 계몽주의 등에서 말해진 [[천부인권|천부 인권]]이 그것이다. 따라서 헤겔은 [[프랑스 혁명]] 또한 본래 자유로운 인간이 그 모습을 찾지 못하다가 비로서 자유롭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는 몹시 실망하는데, [[나폴레옹]]은 또 다른 억압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 본래의 모습이란 이상으로 곧장 나아가지를 못하고 나아가는 듯하다가 후퇴하는 모습이 세계사에서 계속해서 관찰된다고 여겼다. 이렇게 인간이 본래의 모습으로 못 나아가는 것을 그는 '자기 소외'라고 지칭했다. 다시 말해서 분명히 "인간은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데, 어째 현실은 그렇지가 않네?"라는 반응이다. 헤겔은 이 자기 소외가 왜 발생하지 답을 구하려고 고민했다. 그가 변증법을 도입해서 내린 결론은 본래 내재된 모순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수학 2차원 그래프로 표현하면, 직선이나 곡선이 아니라 계단형으로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혁명]]적으로 발전이 일어나지만, 일단 어느 정도 반영이 되면 한계에 곧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순을 포섭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감으로써 인류가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헤겔의 관점은 [[플라톤]]과 [[기독교]]의 관점과 거의 같다. 기독교에서 영혼이 신에게 가듯이, 인간의 정신은 신적인 이상을 향해 발전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영혼의 앞길에는 '시험'과 '고난'이 있는데, 이는 그 누구도 아닌 그 영혼을 가진 인간 자신의 결점, '죄'에 의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도 '본래'라는 신적인 상태로 발전해 나아가지만, 자기 자신의 모순으로 '소외'라는 시험을 겪고, 결국 이를 포섭하면서 발전한다는 것이다. 헤겔이 이와 같이 지독한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은 거의 모든 학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마르크스는 기독교스러운 헤겔의 '본래의 인간'을 역사의 최종 목표를 정해놓는 시각과 그 변증법에 공감했다. 인간은 장기적으로는 결국 완전 자유로워지는 상태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다만 그가 공감하지 못한 것은 '정신'의 발전이 발전의 본질이라는 헤겔의 시각이다. 서양 철학은 인간이 육신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세상도 정신(=디자인)과 물질(=재료)로 이루어져 있고, 둘 중에 정신이 본질이고, 우월하다는 시각이 주류였다. 비유하자면 설계도가 없으면 자동차는 금속 덩어리에 불과하고, 자동차의 본질인 타고 다니는 물건도 설계도에서 나오지 그 재료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19세기 [[과학]]에 의해 기독교가 급격히 쇠락하면서 마르크스 세대의 지성인들은 정신이 물질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기독교적인 미신이나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포이어바흐]]가 그 선구자였는데, [[유물론]]적인 시각에서 물질적인 것이 우선한다고 보고, 과학 같은 감각적인 경험에 근거한 학문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마르크스는 이 말에 크게 공감하여, '물질'을 중심으로 헤겔의 변증법을 다시 써 내려간다는 야심을 품는다. 마르크스는 인간 역사를 정신(= 윤리, 종교, 예술, 사상 등)의 발전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의 발전으로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 중에 도대체 그 무엇이 그러한 높은 위상을 지닐 수 있을지 고민해야만 했는데, 그가 눈을 돌린 것이 바로 당시 최신 학문이었던 [[경제학]]이다. 그는 경제학을 헤겔 철학에 도입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것은 포이어바흐와도 일맥상통했는데, 포이어바흐는 [[종교]]도 인간의 발명품이고, 거기에 인간적인 것의 핵심이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잘 관찰하면 인간의 본질적인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포이어바흐가 기독교에서 발견한 핵심은 '인간들 간 관계', 즉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경제학과 포이어바흐의 '인간 간의 관계'라는 키워드를 조합한다. 그 끝에 나온 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과 '물질'의 관계이다. 서양 철학은 항상 정신이 물질에 우선하고, 인과 관계상으로도 원인이라는 것이 [[플라톤]]이래로 줄곧 주류였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 생각을 뒤집는다. 그는 오히려 '물질'에 해당하는 경제에서 결국 '정신'에 해당하는 윤리, 종교, 예술, 제도 등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물질이 원인이고, 정신은 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2천 년이 넘는 정신과 물질 간의 [[인과 관계]]를 뒤집은 것이다. 따라서 결과물에 불과한 사회의 '정신'은 더 이상 가장 중요한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오히려 [[경제학]]과 [[과학]]이 예전의 [[신학]]의 위상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과 물질의 뒤집한 인과 관계를 바탕으로, 그는 사회의 경제 관계와 물질적인 부분인 '하부 구조'가 원인이 되어서 정신인 '상부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한편 [[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이 철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인간의 운동이다. '운동'이라는 개념은 서양 철학에서 가깝게는 헤겔, 멀게는 [[스피노자]],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물체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듯이 있듯이, 세상의 모든 것이 '성질'이라 불리는 특정한 상태가 있고, 여기에서 벗어나면, 이를 향해서 나아가려고 한다(='운동한다')는 것이다. '운동'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역학의 개념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극단적으로 비약을 해서 온갖 형이상학적인 것까지 그대로 적용시켰다.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비약은 2천 년 서양 철학에서 거의 그대로 이어졌는데, 헤겔이 부자유 상태의 인간이 언젠가는 결국 자유로운 상태를 향해 간다는 '본래 인간'을 떠든 것도 이러한 사고방식의 부산물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차별이 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운동한다고 여긴 지점이다. 마르크스와 같은 견해를 가진 자들은 서양 철학에서 [[청년 헤겔학파]], 또는 '헤겔 좌파'라고 부른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종전의 시각에서는 변화란 어차피 신적인 힘에 의해 알아서 굴려지듯 피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제1원인론]])이거나, 사유를 통한 합리화로 사변적으로 일어나든가([[헤겔]]) 하는 것임에 반해, 마르크스는 인간의 실천 행위(=혁명)이야말로 변화의 힘이라는 헤겔 좌파의 시각을 대중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저 유명한 작품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의 마지막 13번째 명제에서 잘 나타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그가 말하는 인간적 해방이란 공산주의 [[혁명]]을 통한 모든 인간의 자기소외의 극복과 계급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였다. 그에 의하면 [[사유재산|사유 재산]]이란 인간의 노동이 대상화된 것, 즉 객관적 형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인간의 노동의 산물이 사유 재산이 되면서, '''거꾸로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노동자)을 지배하는 현상'''을 그는 인간의 자기 소외라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요컨대 그에게서 공산주의란 단순한 재산의 공동 소유가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한 인간 소외의 극복, 인간성(인간의 본질)의 적극적인 회복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볼 때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프랑스 혁명]]의 자극에 의하여 촉발되었지만, 동시에 헤겔과 포이어바흐 철학의 주제였던 소외의 개념을 핵심으로 하여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철학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였다. 그는 1845∼46년 엥겔스와 더불어 『독일 이데올로기(Deutsche Ideologie)』를 집필, 여기서 사회의 물질적 생산 관계와 생산력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임을 규명하고 이데올로기나 정치는 물질적 생산 관계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적 유물론|역사 유물론]]을 제시하였다. 이에 의하여 그들은 헤겔에서 파생된 독일의 각종 [[관념론]]과 포이어바흐의 사회의식 없는 유물론적 휴머니즘[* 포이어바흐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잘 드러난다. A4 두어 페이지밖에 안 하는 글이므로 인터넷에서 찾아서 읽어보자. 특히 마지막 11번 테제는 정치적 좌우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명문이다.]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옮아갔다. 물론 이들은 인간과 인간의 의식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을 추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회적 존재'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다만 마르크스는 이후의 연구들에서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의식하려 노력하면서도, 결국 개인별로 원자화시켜서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근대 기계론적 패러다임의 한계로 볼 수도 있다.] 이들의 새로운 유물론은 형이상학적/기계적 유물론을 극복한 사회적 유물론[* 후에 디츠겐이나 플레하노프에 의해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고 불려진다.]이었다. 역사 유물론의 성립으로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 이론은 그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역사 유물론에 의하면 인간은 생산을 중심으로 서로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 한 시대의 생산관계는 그 시대의 생산력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하였다. 생산력과 그에 따른 생산관계라는 경제적 요인은 사회의 토대이며, 정치 제도·법률·사상·종교·문화 등은 이 경제적 토대 위에 구축된 상부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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