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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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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범|7]]''' === 타이거즈에서 등번호 7번의 대표적 주인공은 딱 2명으로 압축된다. 1980년대의 타이거즈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김종모]]''', 김종모 이후의 타이거즈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이종범]]'''이다. 프로 원년 외야수 '''[[김종모]]'''가 처음 달았다. 김종모는 선수로서 6번의 우승을 이끈 것은 물론 골든글러브 4번을 수상했다. 1992년을 끝으로 김종모의 은퇴했고, 1993년에 1차 지명으로 뽑은 나타난 유격수 '''[[이종범]]'''이 달았다. 해태 시절 이종범의 활약상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탓에 그의 등번호 7번은 '''[[대한민국]] 대표 [[유격수]]'''의 상징으로[* 물론 이종범 혼자만의 활약으로 7번이라는 번호가 유격수의 상징적 번호가 된 것은 아니다. 이종범의 이전에는 [[김재박]]이 있었고 이종범의 이후에도 [[박진만]]이 7번을 달았다. 7번의 원조는 김재박인 셈.] 굳어진 번호가 됐다. 이종범이 주니치 드래곤즈에 임대된 이후 1999년에 입단한 외야수 [[장일현]]이 이종범의 공백기간 동안인 1998~2000시즌에 단 적이 있었지만 2001년 [[KIA 타이거즈]]가 재창단되면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종범이 다시 달았다.[* 이후 장일현은 55번을 달았다. 프로에서는 아마 시절의 기대에 비해서 못 미쳤다는 평이 많다.] 타이거즈 내에서는 [[이종범]]의 이름으로 [[KBO 영구 결번]]으로 지정. 다시 말해서 7번 유니폼을 달고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선수는 김종모, 이종범, 장일현 단 세 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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