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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aea/스토리/Act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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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3 #===== >시라히메는 또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 >그녀는 매번 하듯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귀한 혈통을 선언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시라히메는 아주 격렬한 수치심이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 >온 사방으로 기억의 세계가 무너지는 와중, 그녀의 볼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 >다시 유리의 세계로 돌아온 시라히메는 손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질끈 감았다. > >손 사이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 >“으으으으... 뭐냐고, 이 기분은...” > >...시라히메가 말했다. > >“내 성은 어디 있는 건데!?” > >계속해서 말했다. > >“내 백성들은!? 동포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 >발을 구르며 주먹을 쥐고 이를 깨물었다. > >“한 번 더!” > >시라히메는 그렇게 소리 지르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기억으로 뛰어들었다. 무슨 기억인지는 몰랐다. > >그저 한시라도 빨리 그 식당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짓던 표정을 잊고 싶었다. >---- >세계가 소용돌이치며 형태를 갖추었다. 밤하늘이 나무에 가려져 달이 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 >숲속의 빈터에 그녀는 앉아있었다. 등 뒤로 모닥불이 타닥거리는 소리를 냈다. > >“보여?” 어린아이가 말했다. > >이 기억 속에서, 이 아이는 시라히메의 “동생”이었다. 꼬마 소녀를 바라보며 시라히메는 생각했다. > >이 기억의 주인인 꼬마의 언니는 어떤 별자리를 찾고 있었다. > >“아니, 안 보이네.” 백발의 소녀가 말했다. > >“계속 찾아보자.” 동생이 말했다. >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 >동생은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시라히메는 가까이 다가가 그 물건을 자세히 살폈다. > >옆면에 버튼이 달린 화면이었다. 화면에서는 영화, 아니, 애니메이션이 흐르고 있었다. > >눈을 가늘게 뜨고, 시라히메는 동생의 옆에 앉아 함께 화면을 바라보았다. > >다른 아르케아에서 보았던, 여느 창작물들과 비슷했다. >특별한 힘을 지닌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괴물과 싸우는 내용의, 특출난 것 없는 만화였다. > >“...이거 충전한 거 맞지?” 시라히메가 기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 >“아까 물어봤잖아.” 동생이 대답했다. > >“...그래서 충전했다고?” > >“했어!” > >“다행이네…” > >진심을 담아 속삭였다. 정말로 진심을 담아. >---- >어떻게 말해야 할까. > >왕족은 만화 같은 걸 보면 안 된다. 왕족은 정치가이자 지배자이며, 백성을 지도하는 존재이다. > >시라히메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 >그런데도, 아무 말없이 앉아 집중하며 만화를 보는 것이, 그 무엇보다 훨씬 친숙하게 느껴졌다. > >시라히메는 동생의 어깨에 자기 어깨를 기댔다. >동생도 반대로 자신에게 기대는 것이 느껴졌다. > >아주 편안한 기분이었다. > >아까 전까지 몸을 지배하던 수치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올라오는 분노 속에서 그녀는 생각했다. > >인생이란 때때로 아주 끔찍한 것이라고. >---- >유리 조각 안에서 목격한 끔찍한 일들을 제외하고서라도, 인생은 끔찍한 것이었다. > >좌절감, 탈력감,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무력감... > >그게 인생이었다. > >이 유리 감옥에 갇히기 전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고독한 옥좌에 앉은 고독한 지배자였을지도 모른다. > >아니면, 지금 이 기억이, 그녀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 >그랬다면... >---- >그랬다면, 인생도 조금은 괜찮지 않았을까. > >시라히메의 “동생”이 조그만 담요를 들고 와 자신과 “언니”의 어깨에 둘렀다. > >그녀는 동생을 바라보고서 조그맣게 “고마워.”라고 속삭였다. > >그렇게, 기억이 서서히 사라질 때까지, 시라히메는 말없이 만화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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