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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전후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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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코스트 담론에 대한 비판 == 홀로코스트란 역사적 사건은 분명 다시는 있어선 안 될 참극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홀로코스트를 산업화해서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사용한다는 비난 여론도 나온다. 미국 유대인 로비 단체들이 학살된 유대인들의 유럽은행 예금이나, 몰수된 재산과 미술품 등에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해 받아내 상당액수를 유용하거나 하는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한국에서도 출판된 <홀로코스트 산업>을 보면 지은이 노르만 핀켈슈타인[* 핀켈슈타인의 또 다른 저서인 <우리는 너무 멀리갔다>에서도 [[가자 지구]] 분쟁에 관해 서술하며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상대로 같은 짓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보가 이스라엘 정부의 눈에 거슬렸는지 유대인임에도 이스라엘 입국이 금지당했다.] 또한 부모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임에도,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를 들먹이며 일부의 배만 채운다고 강력하게 비난하며 여러 자료를 내보이고 있다. 게다가 홀로코스트를 핑계삼아 이스라엘을 건국한 [[시오니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하는 짓도 결코 좋게 봐줄 수 없다. 더욱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닌 미국의 언론을 주도하는 세력이 유대인이기에 이 점을 고의적으로 우회하고 그들의 적인 아랍인의 잘못만 들춰서 비난하는 여론 조장에도 상당한 한몫을 한다. 실제로 이 홀로코스트 악용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은, 2차 대전 이후의 [[반유대주의]]에겐 핑계거리가 되었다. 반유대주의자들이 홀로코스트 부인론을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팔레스타인 문제와는 또 다르다. 역사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느냐 아니냐가 문제이다.''' 유대인은 전자이고, 팔레스타인은 후자다.(이스라엘은 전자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 중에서도 '역사적인 진실을 법적인 진실로 만들 필요가 없다'라며 반홀로코스트 부정법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table align=center><nopad> [youtube(DwKPFT-RioU)] || || 제2차 세계 대전의 희생자들 [[https://youtu.be/s3flpGLUOng|한글자막]] || 한편, 유대인 학살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이 집중됨으로써 다른 학살들이 외면된다는 비난도 존재한다. 실제로 2차 대전 당시 소련인들은 약 '''2,600만''', 중국인들은 약 2,200만이 죽어 유대인 사망자의 수 배에 이르렀다. 또한 인도네시아인 400만, 비유대계 폴란드인 300만,[* 홀로코스트와 중복되는 유대계 폴란드인까지 합하면 총 600만 명의 폴란드인이 사망했다.] 인도인 300만, 베트남인 220만, 유고슬라비아인 170만, 필리핀인 100만 등 백만 단위 사망자는 세계 각지에서 발생했으며 서유럽에서도 100만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유대인들은 대체로 600만이 죽었다고 추산되는데 대중은 유대인 학살에만 관심을 갖지, 동시기에 벌어진 다른 대규모 학살이나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 등 비유대계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유대인들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2차 대전에서 홀로코스트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많지만, 동시기 유럽에서 벌어진 [[T4 작전]],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벨라루스 점령|벨라루스 초토화작전]], [[바르샤바 봉기|볼라 학살]], 네덜란드 대기근, 노르웨이의 [[레벤스보른]] 사건, [[우스타샤]]의 세르비아인 대학살(SS 병사들도 기겁할 정도로 잔혹했다), 소련의 [[카틴 학살]]이나 아시아에서 발생한 [[난징대학살]], [[731 부대]], [[마닐라 대학살]], [[벵골 대기근]] 등 다른 대형 사건들을 떠올리는 사람은 해당 피해국 출신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드물다.] 또한 2차 대전보다 훨씬 현세대에 가까운 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에 발생한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나 [[르완다 학살]],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의 대규모 인종청소,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과 '''[[북한]]의 각종 [[북한/인권|인권유린]]''' 등 더욱 관심을 받아야 할 범죄들조차 관심을 덜 받고 있는 형국이다. 비단 [[제2차 세계 대전]]뿐만 아니라, 예컨대 미국 워싱턴에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을 개관할 때 미국 원주민들은 그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작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그들을 학살한 땅 위에 건설된 미국이 그에 대한 기억은 배제하면서 멀리 유럽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을 추모한다는 것은 위선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학살은 외면하고 오직 유대인 학살만을 강조하는 경향에는 미국 언론의 영향력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언론들의 절대다수가 유대계이며 이들은 당연히 이스라엘에 호의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만을, 그것도 '''유대인이 죽은 사실만''' 강조했다. 유대인의 4~5배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던 소련과 3~4배의 희생자를 배출한 중국이 미국의 주요 적국이라는 점도 이러한 성향을 더욱 더 부채질했으며, 결국 우리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벌인 학살이라고 하면 홀로코스트'''만'''을 떠올리게 되는 주요한 계기가 되고 말았다. 한편 사상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고도로 합리적인 관료 체계,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독일에서 이러한 기술을 활용하여 산업적인 방식으로 인간을 학살하였다는 사실은 유럽 여러 학자들의 문제 의식을 자극하였고,[* 군대나 경찰을 이용하거나, 폭동에 의한 학살은 자기네들도 워낙 많이 저질러봐서 크게 감흥이 없었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철학, 사회과학 연구자들의 그룹으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르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레오 뢰벤탈 등이 있었으며, 위르겐 하버마스, 클라우스 오페, 알프레드 슈미트 등 2세대 학자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대다수가 유대계라서 나치 시기에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전후에는 68혁명을 비롯한 신좌파운동에 큰 영향을 줬다.]로 불리는 일군의 철학자들은 이렇게 목표의 정당성을 생각하지 않는 도구적인 합리성과 이성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하는 작업을 수행하며 유명한 저서를 다수 남겼다. [[계몽의 변증법]]이 그 중 하나이다. 이것이 사회 교과서에서 나오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형식적 법치주의의 예시, 뉘른베르크 법이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었는가에 관련되어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이외에도 한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 문제로 이후에 체포된 아이히만 공판을 보고 기록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쓰기도 하였다. 또한 이는 [[모더니즘]]에 대한 회의를 낳으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발단이 되었다. 일부에서는 홀로코스트가 과대평가되었다는 비난도 있다. 그 중 한 가지 원인은 동구권의 몰락인데, 얼핏 듣기에는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동구권의 몰락은 유대인 문제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동독]]이 대표적인 경우지만 이들은 반나치즘을 국시처럼 내세우면서 유대인 학살 문제 등을 과장하면서 자신들의 문제점을 희석시키려던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동구권 몰락 후 [[아우슈비츠]]의 희생자 수가 300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건설 개시 단계부터 장기간 소장을 지냈던 [[루돌프 회스]](루돌프 헤스와 스펠이 다르다. 회스(Höß)다. 소설이자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유대인 희생자를 처음엔 250만 정도[* 실려온 사람 숫자가 유대인만 250만으로, 이들 중 거의 대부분이 죽었다는 것이었다.]라고 진술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100만을 조금 넘는 숫자로 정정했다. 1946년 봄에 처음 진술할 때에는 상관에게 들은 수치였고, 이후 1946년에 진술을 정정할 때는 [[폴란드]] 법정에 제출할 자술서 성격의 회고록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수용소 처리능력과 자신이 기억하는 실제 처리량을 비교해 본 결과 150만 이상은 수용소에서 죽이기 어려웠을 거라고 정정한 것이다. 회스의 진술 신뢰성은 상당히 높아, 현재는 아우슈비츠에서 직접 살해된 인원을 약 150만 이하로 추산하는 것이 정설이다.] 정정되는 등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나치즘]]의 반공산주의적 측면이 부각되면서 일부에서는 재평가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착각하지 말것은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네오나치]]가 아니다.이들 역시 [[네오나치]]와 나치가 행한 여러 만행에 대해선 의견을 같이한다. 이들의 주장은 홀로코스트로 인해 학살당한 사람들의 정확한 수치가 알려진 수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당시 독일의 여건 등을 고려해보면 이와 같은 주장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 다른 비판으론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국가들도 [[제노사이드]]를 행했는데 나치의 유대인 학살만 들먹이냐는 내용도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 대규모 [[식민제국]] 외에도, 그 작은 [[벨기에]]조차 [[콩고]]에서 [[고무]] 등의 자원확보 과정에서 총합 2000만의 홀로코스트 희생자보다 못하긴 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망자를 야기했으며[* 이전에 1500만 희생자로 홀로코스트보다 많다고 서술되었으나 당시 인구밀도가 높기 힘든 콩고가 그 정도 희생자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령 그렇다고 해도 홀로코스트 희생자는 600만 유대인뿐만이 아닌 1000만 명의 소련인도 포함되어 있다.] 이외에도 인류사의 수많은 나라에서 제노사이드가 발생했다. 상기한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 설립식에서 미국 원주민에게 행한 만행들은 사과하지 않고 유대인의 아픔을 기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던 외침은 쉽게 묵살할 것이 못 되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원주민들에 대한 강제이주 및 학살에 대한 원죄가 있다.[* 실제로 어느 [[팔레스타인]] 역사학자는 "현재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만 들먹이며, 정작 나치처럼 학살한 자신들의 과거는 합리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전후 학자들이 홀로코스트에 충격받은 이유는 단순히 그 규모 때문만이 아니라 '특정 인종 자체를 지구상에서 절멸한다는 충격적인 발상' 및 '인간을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듯 학살했던 방식', '그 동안 서양 철학에서 사람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하게 했던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이성을 이용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학살했던 방식' 때문에 다른 [[제노사이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다른 나라들이 자국의 죄과는 돌이켜보지 않으며 홀로코스트만 비난하는 점에는 문제가 있다. 동성애자들은 독일에 남아있던 동성애자 처벌법(소도미법 또는 계간죄)인 형법 175조로 인해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해방되자마자 다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것도 나치가 모았던 정보를 토대로 말이다. 독일 형법 175조는 1969년이 돼서야 사문화됐고 1994년이 돼서야 공식적으로 형법에서 삭제되었다. 2002년이나 돼서야 독일 정부는 동성애자 커뮤니티에게 사과했고, 형법 175조에 의한 피해자 구제는 2016년 현재 진행형이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 가면 1만 9073㎡의 부지에 콘크리트 비석 2,711개가 설치된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가 있는데, 동성애자 홀로코스트 추모비는 길 건너 티어가르텐 한가한 구석에 코딱지만 하게 설치되어있다.[*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는 2005년에 건립되었고, 동성애자 홀로코스트 추모비는 성소수자 단체가 추진해 2008년에 완공되었다. 연속성을 노린 것인지 동성애자 홀로코스트 추모비는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의 콘크리트 비석 1개와 동일한 크기와 재질로 만들어졌다. 다른 점이라면 조그만 창이 하나 달려있는데, 창 안을 들여다보면 내부 모니터에서 동성커플의 키스 장면이 들어간 영상이 재생된다.]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 추모비에는 홀로코스트로 인한 희생자의 숫자가 1,000만 명으로 기재되어 었다. [[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 희생당한 '''모든 사람'''의 수를 합친 숫자로 유대인뿐 아니라 [[폴란드]] 등의 슬라브인 및 전쟁포로들, 집시들, [[동성애자]], 장애인, 나치에 반항한 항거자[* 나치당 입장에서는 정치범.]까지 포함한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 한 생존자의 이야기]]에서는 인종차별적인 면모를 보이는 미국 거주 유대인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바 있고, 이 일화를 국내에 소개한 [[한양대학교]] 사학과 [[임지현(역사학자)|임지현]] 교수 역시 이런 유대인들의 배타적 태도를 비판한 바 있다. 또한, 임 교수의 저서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배타적 태도가 반드시 외부 집단에 한정되었던 것도 아니고, [[시오니즘]] 운동에 참여하여 [[팔레스타인]]에 이주했던 유대인들이 전후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에서 유럽에 잔류했다가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에 대하여 보인 우월의식에 대하여 비판한 바도 있으니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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