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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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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태의 [[왼손잡이]] 선수 수난사 == [[KBO 리그]] 내에서 희한할 정도로 [[왼손잡이]] 선수가 희귀하거나 잡아와도 제 역할을 못하는 두 팀[* 나머지 한 팀은 윤석환, 유희관 외에는 제대로 된 왼손 투수가 없던 [[두산 베어스]].] 중에 하나였다. [[선동열]], [[김성한]], [[이순철]], [[조계현]], [[이종범]], [[홍현우]] 등등 해태 왕조를 이끈 선수들은 예외 없이 오른손잡이다.[* 이 중 이종범은 야구만 오른손으로 치고 던졌고 나머지 일상생활은 왼손으로 하는 [[왼손잡이]]다. ~~좌타자를 해보지 못한 한은 [[이정후|아들]]을 통해 풀고 있다.~~ 하필 야구를 처음 시작할 때 야구부에 좌투용 글러브가 없어서 어쩔수 없이 오른손으로 야구를 했다고. 특히 이 시기는 우투좌타나 좌투우타, 하다 못해 스위치 히터 같은 개념이 없던 시대라 공격과 수비 모두 한손으로만 하는 게 지배적이었다. 이종범 본인도 나중에 우투좌타 개념을 알고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하고 후회했었다고 한다. 물론 막상 해보니 우타자가 잘 맞았던 것도 있고 좋은 성적도 냈지만.] 타자쪽에선 그나마 [[장성호]]라도 있지[* 그나마도 해태 왕조 시대 이후인 해태 말기~KIA 초반 6년 시절이 전성기인 선수이다.] 투수 쪽에선 왼손잡이는 [[김정수(1962)|김정수]], [[신동수(1966)|신동수]], [[강태원(야구선수)|강태원]]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거기에 이 좌완들도 뭔가 하나 모자란 선수들이었다. 김정수만 보더라도 제구력이 워낙 나빠서 김응용이 내가 발로 던져도 너보단 잘할 것이라고 까버렸고 강태원은 성준처럼 구속이 느린데다가 구종도 단순했다. 다만 김정수는 포스트시즌에서 활약이 눈부셨고, 해태에서 한국시리즈 8회 우승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7 신인드래프트에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였던 좌완투수 [[오철민]]을 1차지명하여 계약금 2억 4,000만 원[* [[해태제과|모기업]]이 부도로 쓰러지기 1년 전이던 당시 2억 4,000만 원은 해태로서는 너무나 큰 투자였다. 실제로 오철민이 받은 계약금은 [[김진우(1983)|김진우]](7억 원)가 입단하기 전까지 해태 투수 최고액이었다. 그나마 김진우는 해태가 KIA로 바뀌기 직전인 2001년에 지명을 받은지라 지명만은 해태에게 받은 경우였다. 물론 계약금은 KIA가 줬지만.]에 입단시키기도 했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때문에 [[김응용]] 감독은 투수든 타자든간에 왼손잡이를 데려오려고 그렇게 동분서주했고[* 오죽했으면 1990년 말 신인드래프트 때 광주일고 - 인하대 거포 [[김기태(1969)|김기태]]와 광주진흥고 - 한양대 우완 에이스 투수 [[오희주]]를 두고 고심했다가 오희주를 지명했다. 그러나 프로 데뷔 이후 둘의 차이는 천지 차이였다. 김응용 감독도 김기태를 못데려온걸 제일 아쉽게 생각한다고. 만약 김기태가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면 해태 전성기는 더욱 더 연장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한 [[송유석]]은 오희주도 10승 투수들이 즐비한 선발투수진과의 경쟁에서 패했는데 김기태가 설령 해태로 왔다고 하더라도 기존 선수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서 쌍방울 입단이 오히려 더 개인에겐 잘 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트레이드로 [[박노준]], [[정성룡(야구선수)|정성룡]], [[김상훈(1960)|김상훈]], [[동봉철]] 등을 데려오고[* 이상하게도 이 선수들은 빨간 유니폼을 입자마자 모두 폭망했다. 특유의 팀 분위기에 적응을 못했다거나 그 외 모종의 사건이 있었을 듯하다.], 결국 [[양준혁]]을 데려오면서 그 소원을 풀었지만 1년만 뛰고 [[LG 트윈스|LG]]행. 1980년대 중반에는 주전 라인업중 [[이순철]] 한 명 빼고 죄다 '김'씨에 오른손잡이라서 '김씨타선', '가장 한국적인 타선'[* 한국에서 제일 많은 성씨가 김씨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손잡이다.] 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정작 주전 라인업 중 왼손잡이가 3~4명이 되던[* 장성호, 양준혁, 트레이시 샌더스를 주축으로 장일현도 경우에 따라 선발로 나오기도 했다.] 1999년에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나마 왼손 타자들은 [[KIA 타이거즈]]로 넘어오면서 [[이용규]], [[김원섭]], [[최희섭]], [[최형우]], [[나성범]], [[최원준(1997)|최원준]]같은 선수들이 들어오며[* 사실 최희섭은 1998년에 이미 1차지명을 받은 상황이었다. 만일 예정대로 1998년에 그가 MLB에 가지않고 해태에 입단했더라면 그해 해태가 4강을 갔을지도 모르지만 야구에 만약은 없다. 특히 IMF로 자금난에 시달리던 해태가 최희섭의 몸값을 감당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고. 그리고 이용규와 김원섭은 트레이드로, 최형우와 나성범은 FA로 넘어온 선수들이다. 현 시점에서는 최원준 정도만이 육성으로 얻은 좌타자 케이스. 그외에는 한준수도 조금씩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해태 시절에 비해 많이 나아졌고 [[우투좌타]]라는 개념이 한국 야구계에 확산되어 좌타자가 더 많아진 뒤에는 오히려 우타자가 귀해진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으나[* 우타자로만 본다면 박찬호와 김도영, 김선빈, 이우성 등 좋은 우타자는 많다. 다만 나지완 은퇴 이후 황대인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탓에 우타 거포가 없는 것일뿐.], 왼손 투수는 여전히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특히 과거에는 왼손으로 공 던질줄만 알면 투수한다는 농담이 공공연히 돌 정도. 그나마 2009년 이후에 [[양현종]]이 포텐이 터지면서 조금은 나아졌다. 물론 지금도 왼손으로 공 던진다는 이유로 1군에 있는 투수는 수두룩하다.[* 후에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다시 현장에 복귀한 김응용은 [[류현진]] 때문에 한화 감독직을 수락했다면서 류현진을 메이저 리그로 보내기 싫었다고 밝혔었다. 해태 시절에 좌완에 한이 맺힌 김응용 전 감독은 현역 시절에 좋아하던 유형의 투수는 류현진과 같은 덩치 좋은 좌완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렇다 보니 삼성 감독이 되고서 해태 시절에 아끼던 [[강영식]]을 데려가기도 했다.] 물론 2023년 기준에선 이의리, 윤영철이라는 괴물급 신인 좌완 투수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한때 외국인인 파노니까지 포함하면 선발 5명중 4명이 좌완이라는 진풍경을 연출할 정도였다. 불펜에서도 이준영, 최지민, 김기훈, 곽도규 등이 등장하며 옛날처럼 좌완 기근이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아도 될 수준까진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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