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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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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기갑군단과 15기갑군단의 마스 강 도하 ====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ordercolor=#536349,#333333><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1940map1.jpg|width=100%]] || ||<rowbgcolor=#536349,#222222><rowcolor=white> 5월 10일~16일간 독일 A집단군의 진격도 [br] 검은색 굵은 실선이 5월 16일 A집단군이 형성한 돌파구이다. || 한편, 본래 구데리안의 19기갑군단과 병진하기로 되어 있었던 '''라인하르트의 41기갑군단'''은 여전히 아르덴의 끔찍한 교통 정체 속에 갇혀 있었다. 5월 13일 16시, 계획대로 마스 강변에 도착한 것은 6기갑사단 예하의 1개 보병대대뿐이었고, 이들은 어찌어찌 몽테르메(Monthermé)를 확보하여 작은 [[교두보]]를 만들기는 했지만 이미 프랑스군의 방어 태세가 확고하여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 외 2보병사단은 5월 14일, 8기갑사단은 구데리안이 이미 아르덴 운하 서쪽까지 진출한 5월 16일에야 마스 강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 고착 상황을 돌파할 수 있던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기갑집단을 아니꼬워하던 보수적인 독일군 장군단이었다. 몽테르메에서의 정체를 핑계로 A집단군 사령부는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을 12군에 배속하려고 했고, 특히 라인하르트의 41기갑군단을 12군 예비대로 돌리면서 6기갑사단만 전선에 남기겠다고 명령했다. 온갖 눈치, 부조리에 불구하고 지금까지 충직하게 야전군의 지시를 따라 왔던 클라이스트는 결국 참지 못하고 A집단군의 명령을 완전히 무시, 예하 전 병력에게 공세를 지시한다. 6기갑사단은 고작 네시간 반만에 프랑스의 방어선을 분쇄하였고, 돌파에 성공한 6기갑사단장 [[베르너 켐프]] 장군은 도하를 완료한 가용 부대 전체를 묶어 프랑스군 후방 종심으로 돌파를 감행한다. 구데리안의 19기갑군단을 추월한 6기갑사단의 공격은 프랑스 군을 완벽하게 혼란에 빠뜨렸는데 6기갑사단은 선형전선 사상에 따라 보병사단과 함께 움직일 것이라는 프랑스군의 예상과 달리 좌우측면을 완전히 무시하고 16일까지 맹렬히 진격한다. 결국 몽코르네(Montcornet)까지 진격한 6기갑사단은 남쪽에서 치고 올라온 구데리안의 19기갑군단과 합류했고 프랑스 6군이 구축한 방어선을 각개격파하였다. 위와 같은 기갑부대들의 헌신적인 돌파 끝에 마스 강 중부 일대의 프랑스군 방어선은 사실상 완전히 붕괴되었고, 클라이스트 기갑집단 역시 존속할 수 있었다. 마스 강 북부에서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의 우측방 엄호를 담당하게 된 '''[[헤르만 호트]]의 15기갑군단'''은 프랑스 9군의 좌익 부대가 투입될 지역을 돌파하게 되었다. 15기갑군단은 벨기에군이 구축한 장애물과 아르덴 지역에서 지연전을 펼치는 프랑스군 1경기병사단과 4경기병사단을 극복해야 했다. 독일 15기갑군단 산하에 있는 2개 기갑사단 중 [[에르빈 롬멜]]이 지휘하는 7기갑사단은 5기갑사단보다 앞서 나가고 있었는데, 5기갑사단 예하 31전차연대를 증원받아 마스 강 도하를 시도했다. 5월 12일, 기존의 도하 지점이던 디낭의 교량은 프랑스군에 의해 폭파되었고, 이브와(Yvoir)의 교량도 다소 늦었지만 독일군이 장악하기 직전 폭파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브와로부터 3km 남쪽에 위치한 우(Houx) 지역을 흐르는 마스 강에는 하중도가 있었고, 이 [[하중도]]와 강의 양안을 잇는 제방은 수위 조절 문제로 인해 폭파하지 못한 상태였다. 5기갑사단은 해당 지점으로 도하를 시도하게 되었다. 7기갑사단은 우 남부와 디낭(Dinant) 북쪽에서 교두보를 형성하였고,[* 이때 롬멜이 직접 도하 작전을 진두 지휘했다.] 프랑스군의 격렬한 저항을 받으면서도 결국 우 남쪽의 교두보를 통해 마스 강을 도하했다. 5월 14일, 7기갑사단은 도하 뒤 옹에(Onhaye)를 목표로 한 공세에서 롬멜이 전사할 뻔한 위기를 겪었다. 선봉 부대를 이끌던 비스마르크 대령에게서 '''옹에에서 포위되었다(eingeschlossen)'''라는 비보를 듣고 사단장 롬멜이 직접 최전선으로 달려나간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4군 사령관 [[귄터 폰 클루게]] 상급대장도 2군단 예하 부대 투입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포위되었다는 게 아니라 '''옹에에 도착했다(eingetroffen)'''을 무선상의 발음 문제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다. 결국 간신히 옹에(Onhaye)를 함락시키며 마스 강 서쪽 12km에 위치한 모르빌(Morville)까지 진출한다. 5기갑사단도 하중도를 통한 도하에 성공한 뒤 오르바스티아(Haut-le-Wastia)를 함락시키는 등 맹활약을 펼친다.[* 이 와중에 5기갑사단장 하르틀리프와 롬멜 사이에 교량 부설용 자재를 놓고 갈등이 벌어진다. 자세한 내용은 [[에르빈 롬멜]]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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