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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뮬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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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tablebordercolor=#f00,#f00><nopad> [[파일:grandprix1.jpg|width=100%]] || F1은 직접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열렸던 일련의 자동차 경주를 계승하고 있다.[* 일부 관점에 따라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통칭 '그랑프리 레이스'를 그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그랑프리 레이스는 국가 대항전의 성격으로 각 국가의 자동차 제작사들이 참가하여 일련의 통일된 자동차 규격과 경주장 규격을 정하고 경기를 치렀는데, 이때 '바퀴가 노출되어 있는 1인승 경주차'[* 흔히 '''오픈휠''', 오픈 콕핏, 포뮬러 카(차량) 등으로 불린다. 각각 바퀴가 노출되어 있는 차, 운전석이 노출되어 있는 차, F1과 비슷한 모양새의 차량을 의미하여 의미하는 특징이 각기 다르지만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는 차는 포뮬러 레이스 카들 말고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딱히 없으므로 오픈휠 차량을 의미하는 명칭으로 굳어졌으니 저렇게 부르면 그냥 F1 스타일 차량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와 시작점과 마침점이 연결되어 있는 [[서킷(모터스포츠)|서킷]]의 개념이 확립되었다. 이후 F1은 1920년대와 1930년대 유럽 자동차 경주 챔피언십 대회에서 유래되었으며, 모든 참가자들의 레이스 카가 따라야 하는 일련의 규칙으로 규정이 구성된다. F1은 1946년에 합의된 새로운 공식으로 1947년 1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발효되었다. 새로운 규정에 따른 첫 번째 그랑프리는 공식의 시작을 예상한 1946년 토리노 그랑프리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시기 다수의 그랑프리 경주 조직 기관에서는 이전의 AIACR 유로피언 챔피언십을 대체할 새로운 챔피언십을 제안했지만 전쟁 발발에 따른 레이스 중단으로 인해 새로운 자동차를 바탕으로 한 국제 포뮬러 대회는 1946년까지 공식화되지 않았다. 1946년 FISA[* 이곳의 기원은 레이스를 포함하여 자동차 대회 초기의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1904년에 설립된 [[FIA]]가 자동차 레이스 조직을 CSI(국제 스포츠 위원회)에 위임한 19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1978년 장마리 발레스트레(Jean-Marie Balestre)가 인수하여 FISA로 이름이 변경될 때까지 지속되었고, 1993년 FIA의 구조 조정으로 인해 FISA가 사라지고 모든 자동차 레이스는 다시 FIA의 직접 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다.]의 전신인 [[FIA]]의 '''C'''ommission '''S'''portive '''I'''nternationale(CSI, 국제 스포츠 위원회)에 의해 포뮬러 1(Formula One)이 처음으로 정의되었으며 1947년 1월 1일에 전 세계 모터스포츠의 최고 싱글 시터 레이싱 카테고리가 발효되었다. 새로운 'International Formula'(국제 포뮬러)는 처음에 포뮬러 A, I 또는 1로 다양하게 알려졌고 해당 클래스의 Voiturette Formula(뵈튜레, 소형 포뮬러 차량)의 대회 명칭은 포뮬러 B, II 또는 2였다. 이보다 더 작은 500cc 부문은 1950년에 포뮬러 3로 국제적으로 인정되었지만 포뮬러 C라는 명칭은 붙은 적이 없다. 때문에 공식적으로 국제 포뮬러 대회 3개는 각각 포뮬러 1, 포뮬러 2, 포뮬러 3로 명명되었다. 처음 만들어진 F1은 당시 주로 엔진 용량에 따라 정의된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규정을 기반으로 했다. 이 규정은 [[슈퍼차저]]와 [[자연흡기]] 자동차 사이에 새로운 균형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슈퍼차저가 장착되지 않은 전쟁 이전 그랑프리의 4.5리터 자동차는 전쟁 이전 1.5리터의 슈퍼차저 Voiturette(소형차)와 레이스할 수 있었지만, 전쟁 이전의 슈퍼차저 3리터 그랑프리 자동차는 참가가 금지되었다. 첫 번째 F1 레이스가 무엇인지는 약간의 논쟁이 있다. 챔피언십 이전의 새로운 규정에 따른 첫 번째 레이스는 9월 1일에 열린 1946년 토리노 그랑프리였으며, 이 경주에서는 [[알파 로메오]] 158 알페타를 주행한 아칠레 바르지(Achille Varzi)가 우승했다. 하지만 이는 규정이 공식적으로 시행되기 전이었는데, [[ERA(레이싱 회사)|ERA]][* English Racing Automobiles(영국 레이싱 오토모빌스)] 차량을 탄 렉 파넬(Reg Parnell)이 우승했던 1947년 스웨덴 겨울 그랑프리도 있었으나 도로가 아닌 얼음 위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적절한 레이스가 아니라고 여긴다.[* 또한 해당 경기가 F1 레이스였는지, 포뮬러 리브레 레이스였는지에 대해서도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 다른 사례로는 1947년 넬로 파가니(Nello Pagani)가 [[마세라티]] 4CL을 운전하여 우승한 [[포(프랑스)|포]] 그랑프리인데, 이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지만 대체적으로 첫 번째 그랑프리는 F1의 시작을 예상한 1946년 토리노 그랑프리로 여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운 챔피언십 대회는 [[포뮬러 1/1950시즌|1950년]]에 시작되도록 제정되었다. F1의 첫 번째 세계 챔피언십 경주는 1950년 5월 13일 영국의 [[실버스톤 서킷]]을 시작으로 7개의 라운드로 구성된 첫 시즌으로 시작되었다. 드라이버 챔피언십과 달리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제도는 즉시 도입되지 않았다.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십은 첫 해부터 몇몇 레이스에서 시상했고,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은 [[포뮬러 1/1958시즌|8년이나 지난 후]]에 신설했다. 초창기에는 유럽에서 늦은 봄부터 초가을(가을)까지 20개 이상의 레이스가 열렸으나 모든 경기가 챔피언십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경쟁력 있던 차량들은 [[이탈리아]], 특히 알파 로메오에서 주로 나왔으며 드라이버들로는 [[알베르토 아스카리]]와 [[후안 마누엘 판지오]] 같은 1910년대생 드라이버들이 떠오르는 반면, 루돌프 카라치올라, 맨프레드 폰 브라우치히 및 타지오 누볼라리 등 1900년대 생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그랑프리 드라이버들은 경력을 끝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럽과 [[미국]]을 가끔씩 오가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아프리카에선 [[모로코]] 그랑프리와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 그랑프리가 열리긴 했으나 각각 [[포뮬러 1/1958시즌|1958년]] [[포뮬러 1/1993시즌|1993년]]을 끝으로 사라졌다.] 전 세계 모든 대륙의 국가를 순회하며 약 24개의 그랑프리를 치른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F1, 본능의 질주]]에서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매주 짐을 싸서 전 세계를 순회하는 이른바 [[서커스]] 대회에 가깝다.] 2019년에는 [[중국]]에서 70시즌 만에 1000번째 그랑프리가 열렸고, 2020년에는 개최 7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국에서 70주년 그랑프리가 열리기도 했다. ||<tablebordercolor=#f00,#f00><tablebgcolor=white><width=33%> [[파일:포뮬러 1 로고(1985~1986).png|width=100%]] ||<width=33%> [[파일:포뮬러 1 로고(1987~2001).png|width=70%]] || [[파일:attachment/포뮬러 1/logo.jpg|width=100%]] || || 1985~1986 || 1987~2003 || 1994~2017년까지 쓰였던 구 로고[* 2018년에 새로이 나온 F1 로고가 뭔가 동글동글하게 나온 탓도 있지만 이 당시 로고를 잘 보면 날카롭게 각져있는 모양새, 그리고 [[르망 24시]]의 로고처럼 F 바로 오른쪽의 공백에 '''"1"'''이 형성되어 있어 이때의 로고가 지금의 로고보다 낫다는 의견을 가진 팬들이 많다.] || ||<tablebordercolor=#f00,#f00><tablebgcolor=white>[[파일:F1 anniversary logo.png|width=100%]]|| || [[파일:F1 75주년 로고(White).png|width=50%]] || || 시대별 F1 연도 기념 로고 || F1의 로고는 초기부터 정형되게 존재하지는 않았다. 이는 다른 모터스포츠 대회들도 마찬가지였다. 포뮬러 1 최초의 로고는 1985년부터 생겨나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FIA는 1994년부터 2003년까지는 2번째와 3번째로 바뀐 로고를 혼재해서 사용하였다. [[알랭 프로스트]], [[아일톤 세나]]와 [[나이젤 만셀]], [[게르하르트 베르거]] 등이 활동하던 예전 경기 영상에서 2번째 로고가 자주보이는 이유이다. 1970년대 ~ 1990년대에 스포츠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기 전에는 흔히 '레이싱' 하면 생각나는,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상남자]] 스포츠'''였으나[* 당장 [[제임스 헌트|이 사람]]만 봐도...] 에클레스톤, 리버티 미디어 등이 이끈 F1의 세계화와 상업화 이후 그런 이미지는 없어지게 되었다. 때문에 20세기 시절의 F1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리버티 미디어의 F1 인수 이후에는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크게 발전하여 F1 공식 유튜브 채널과 넷플릭스 시리즈를 통해 접근성이 매우 향상되었다. 2017년 전체 팬의 8%만 여성이었지만 2022년에는 40%까지 비중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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