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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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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러시아 혁명]]은 세계 최초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 이행기 사회에 존재하는 노동자 국가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몇 가지 갖춰야 할 [[필수요소]]들이 빠져 있었다. '''첫째''', 러시아는 __생산력이 극도로 부족__했다. 트로츠키 본인이 불균등 결합 발전이라 지칭한 독특한 경제 형태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페트로그라드(레닌그라드)]]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최첨단 산업이 발달하고 공장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반면 국토의 대부분은 여전히 농업 중심의 후진적인 사회 구조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파이를 나누려고 해도 일단 나눌 파이 자체가 너무 작았다.[* 사회주의는 경제성장 자체를 등한시하거나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 충분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거의 완전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며, 레닌이 '국가와 혁명'을 집필할 때 말한 것처럼 '능력에 따라 일하고 기여한 만큼 차지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이상이다. 그걸 위해서 트로츠키주의는 국제혁명, 연속혁명을 강조하는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면서 동시에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집중과 독점'으로 표현한) 내적 모순이 심화되어, 허경영 말처럼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것'인 수준에 도달해야 실현 가능하다. 그렇게 내재된 모순이 극에 달하여 버틸 수가 없게 될 때 자본주의 체제가 변증법적으로 해체되고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므로, 나라에 정말로 돈이 없는 상황에서는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 그 때문에 먼저 파이를 키우기 위하여 [[신경제정책]]이 도입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생산력이 빵빵한 독일이나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프랑스 같은 서유럽으로 혁명을 수출하고 확산시켜서 러시아 혁명을 유럽 혁명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 볼셰비키의 궁극적 목표였다. 스탈린을 위시한 관료집단은 이걸 뒤엎어 버린 것이다. '''둘째''', 혁명 러시아는 __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어 군사적으로 고립된 상태__였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신생 노동자 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봉쇄하여 말려 죽이려고 달려든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전쟁에서 죽거나, 먹을 것이 없어서 귀농을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야말로 적백내전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서유럽 선진 공업 국가들의 노동자들에게 SOS를 쳐서 혁명을 서유럽으로 확산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을 지도할 혁명적 노동자 전위 정당이 존재하지 않았던 서유럽에서 혁명은 연거푸 실패하고 말았다.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핀란드, 영국 등에서 혁명적 노동자 운동이 점화되었고 독일 바이에른과 헝가리에서는 잠시나마 노동자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러시아 제국의 '''봉건 귀족들 가운데 일부가 은근슬쩍 공산당에 입당하여 관료집단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들을 깔끔하게 때려 죽이지 않고, 반성문 한 장 받고는 살려 주니까, 이들이 과거를 세탁하고는 공산당에 입당해서 당의 관료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이오시프 스탈린]]이 있었다.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관료집단이 빠르게 성장하면 정말 큰일날 것을 [[블라디미르 레닌|레닌]]과 [[트로츠키]]는 잘 알고 있었다. 나라에 돈도 없는데, 새로운 도둑놈이 탄생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들 관료집단을 때려잡고 당에서 축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레닌은 1922년의 제 11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 모스크바에서 책임 있는 직위를 채우고 있는 4천 7백 명의 공산주의자들과 이 거대한 관료 기구, 이 엄청난 집단을 생각하면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누구를 지도하고 있는가? 공산주의자들이 이 집단을 지도하고 있다고 진실로 말할 수 있을지 나는 크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레닌은 1923년 무렵 극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관료집단을 때려잡고자 다음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이들을 족칠 계획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 해에 본인의 마지막 저작인 '소수정예가 더 좋다'에서는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전면전과 국가 감찰기구인 라브크린[* 관료적 직권 남용을 억제하기 위하여 설립한 '노동자 농민의 감찰기구'였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의장이 스탈린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스탈린의 사조직으로 변질되었다.]의 축소를 주장하였다. 그러던 중인 1924년 1월에 레닌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타이밍이 하도 절묘했던 나머지 독살설이 나오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과로로 인해 뇌출혈로 죽었다.] 레닌 사후에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관료집단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에 따라 트로츠키는 소련에서 축출되었고, 스탈린을 견제하지 못한 대가로 카메네프나 지노비예프, 부하린과 같은 고참 볼셰비키들은 숙청으로써 대가를 치렀다. 이렇게 스탈린과 관료 집단에 의하여 러시아 혁명의 산물인,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 중심의 노동자 민주주의, 원래 레닌이 의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붕괴되고, 그 이름만을 무단 도용하여 만들어진 스탈린의 짝퉁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실상 관료 독재 체제가 수립된 상황은 러시아 혁명에 있어서는 하나의 퇴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로 추방된 트로츠키에 의하여 원래 레닌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추구했던 사회주의의 이상을 사수하고자 정립된 사상이 바로 트로츠키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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