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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멘트 보로실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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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전쟁]] === [[1939년]] [[나치 독일]]과 은밀하게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은 후 [[아돌프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 등을 일으켜 [[중유럽]], [[서유럽]]을 유린하는 동안 동쪽의 [[발트 해]], [[흑해]] 연안 약소국([[발트 3국]], [[몰도바]])들을 병합하던 스탈린은 [[핀란드]]에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수비를 위해 핀란드 영토를 할양하고 핀란드 주요 영토를 조차해 줄 것을 강요했다. 당연히 핀란드가 보기에 이는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협상은 결렬되었고, 11월 30일 [[겨울전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국방장관이던 보로실로프는 친히 침공군을 이끌었고, 처음에는 4개 전선군 42만 명을 동원했다. 스탈린은 히틀러가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를 한달만에 집어삼킨 것처럼 자기도 [[핀란드군]] 정도는 금세 쳐부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련]] 성립 후 독립한 [[러시아 제국]] 시절의 영토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스탈린은 발트 3국처럼 핀란드도 소련의 한 [[공화국]]으로 편입시킬 참이어서 소련 내의 핀란드 망명객을 중심으로 [[핀란드 민주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당연히 그렇게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침공군의 총지휘를 맡은 보로실로프는 1940년 1월까지 소련군을 지휘했으나, 이미 시대에 뒤처진 군인이었던 보로실로프에겐 대숙청 여파로 지휘관 공백이 큰 상황에서 40만, 축차 투입된 병력까지 추가하면 물경 100만에 이르는 병력을 통솔할 역량이 없었다. 소련군은 한줌 병력의 핀란드군에게 대패했고, 보로실로프는 책임을 지고 총사령관과 국방장관에서 경질되었다. 이후 [[세묜 티모셴코]]가 소련군을 총지휘했다. 티모셴코는 양적 우위를 바탕으로 핀란드군의 [[만네르하임]] 방어선을 돌파했다. 그러나 소련군의 인명 손실이 워낙 극심했기에 스탈린은 이후 핀란드가 강화를 요청했을 때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 협정을 맺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스탈린은 옛 친구인 보로실로프가 처참히 패한 후 돌아오자 보로실로프에게 크게 화를 냈고, 보로실로프는 이때 무능을 질책하는 스탈린에게 '''접시를 던지면서(!)''' 대들었다. 이 광경을 본 흐루쇼프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스탈린은 격분했다. 군부는 카렐리야 지협(Isthmus)에 있는 핀란드의 방어선, 이른바 만네르헤임 선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설명하면서, 정보기관에 대한 비난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이 결국 하나의 주된 비난으로 모아졌는데, 이는 바로 보로실로프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국방인민위원이었으니 말이다. 엄밀히 말해 군사적 실패에 대해 비난받을 사람이 그 외에는 없었다. 적어도 스탈린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책임은 보로실로프에게 있었다. 그는 사전에 예상하지 못했고, 철저히 준비하지 못했으며, 이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샤포슈니코프가 참모총장이었다. 그의 참모들이 핀란드에 대한 작전 계획을 세우는 일을 맡았고, 우리 군 내 주요 직책들을 차지하고 있었다. 샤포슈니코프는 유능한 전문가로 평가받았지만, 결정적인 발언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문 역할에 머물렀다. 군사 문제는 그 당시 적군을 대표하는 보로실로프에 의해 결정되었던 것이다. (...) 스탈린은 비공식적인 대화에서 우리 군부와 국방인민위원부, 특히 보로실로프를 자주 비판했다. 때로는 모든 책임을 보로실로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 점에서 스탈린에게 동의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보로실로프가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기간 국방인민위원의 자리에 있었으며, "보로실로프 사수(Voroshilov marksmen)"[* 보로실로프 문서에 있듯이 보로실로프처럼 사격실력을 높이자는 운동을 얘기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이름까지 생겨났을 정도였다. 보로실로프의 자만심은 우리 인민의 경계를 무디게 하고 긴장감을 낮췄다. 그러나 책임이 온전히 보로실로프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우리가 모스크바 근처 스탈린의 다차에 방문했을 때를 기억한다. 스탈린은 화가 난 상태로 보로실로프를 심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우 격앙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보로실로프를 호되게 꾸짖었다. 이에 보로실로프도 분노하여 얼굴이 붉어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스탈린의 비판에 대항하여 이렇게 외쳤다. '''"이게 다 네놈 때문이잖아!"''' 보로실로프가 고함을 질렀다. '''[[대숙청|"붉은 군대의 베테랑들을 다 없애 버린 게 네놈 아니냐! 네가 유능한 장군들을 다 죽여 버렸잖아!"]]''' 스탈린은 이에 적당히(appropriately) 대답했다. '''그러자 보로실로프는 삶은 새끼 돼지가 담긴 접시를 집어 들어 테이블에 내리쳐 깨뜨렸다.''' 내가 아는 한, 이러한 사건은 단 한 번뿐이었다. >---- >Memoirs of Nikita Khrushchev vol. 1 그런데 스탈린은 놀랍게도 이런 불경한 짓을 한 보로실로프를 별로 탓하지 않고 이후 티모셴코로 교체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지었다. 보로실로프는 스탈린이 [[적백내전]] 때나 레닌 사후 [[트로츠키]]와 권력투쟁을 할 때 철저하게 스탈린의 편을 들었던 공신이자 스탈린 권력의 핵심 승리연합의 일원으로 그를 다짜고짜 제거하는 것은 스탈린의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일은 물론이고,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잘라내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의심병 스탈린이 소련 정치판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친구였던 보로실로프 한 명 뿐이었다. 물론 이후 그에 대한 스탈린의 신뢰가 날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이 역시 그의 리즈 시절을 증명하는 일화 정도로 남게 된다.[* 보로실로프 또한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있었다. 그런데 스탈린이 이 모든 잘못을 그에게 뒤집어씌우자 참았던 화가 폭발한 것이다. 보로실로프의 주장은 "야 스탈린. 그래 내가 군에 대해 무능한 것은 인정하는데, 정작 니가 '''대숙청'''으로 군을 개 씹창을 만들어 놓고 그것까지 내 잘못으로 덮어씌우려는 거냐? 이 '''씨발새끼'''야" 라는 늬앙스가 매우 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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