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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멘트 보로실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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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년 === ||<width=400> [[파일:external/lichnosti.net/12829050941.jpg|width=100%]] || || 군 예복을 입은 노년의 보로실로프. || 보로실로프는 말년에 이르러 절대권력을 가지게 된 흐루쇼프의 공공연한 조롱거리로 전락했는데 하루는 흐루쇼프가 정치국 회의 석상에서 고참 볼셰비키들에게 스탈린 치하에서 저지른 일에 대해서 고백하라고 압박하던 도중, 보로실로프에게 "이봐 클림, 거짓말 집어쳐. 아직도 그런 짓거리를 하고 있나?"라고 공개적으로 모욕하였고, 보로실로프는 분노와 수치감으로 이마끝까지 새빨갛게 물들었으나, 흐루쇼프는 "당신은 이제 늙고 쇠약해졌어. 지금이라도 스스로의 눈으로 본 것에 대해 진실을 말할 용기와 양심을 가질 수는 없겠나?"라고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보로실로프는 흐루쇼프가 모두를 모욕하다고 불만을 드러냈으나 이미 권력과 영향력을 잃은 그가 흐루쇼프에게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상무회 주석 재임 중 이란 대사에게 "우리가 니콜라이 2세를 몰아내봤는데 황제 없이도 살만하더라."라고 외교적 결례를 저지르는 뻘짓을 하기도 했다. 보로실로프는 1957년 반당그룹에 가담했으나 몰로토프, 카가노비치, 말렌코프 등이 퇴출된 것과 달리 잠시 더 지도부에 잔류할 수 있었다. 이는 보로실로프가 스탈린주의자들 중에선 제일 만만했고 흐루쇼프와의 개인적 관계 등이 고려된 결과였다. 하지만 정치가 안정화되자 그도 끝내 제거대상이 됐는데, 1960년 5월 4일 간부회 회의에서 흐루쇼프는 보로실로프가 은퇴해야 한다고 제의했고, 이것이 통과됨에 따라 5월 7일, 흐루쇼프가 뒤에 있는 소련 최고회의는 보로실로프에게 "은퇴 요구"를 하고 흐루쇼프가 영입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으로 선출했다. 1960년 7월 16일 보로실로프는 제발로 물러나는 형식으로 간부회에서도 소환되었으며, 1961년 10월 22차 [[소련 공산당대회]]에서 중앙위원 선거에서 탈락하면서 그의 정치적 퇴장은 완결되었다. 보로실로프가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을 재임하던 마지막 나날의 어떤 식사 자리에서 모든 멤버들이 그를 외면하고 모른 체했다는 일화가 있다. 동료들의 외면에서 이미 그가 축출될 운명임을 깨닫고 미리 선수를 써서 "은퇴"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흐루쇼프의 몰락 이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보로실로프를 다시 정계에 복귀시켜 [[얼굴마담]] 노릇을 시켰다. 권위는 땅에 떨어져 있었으나, 그래도 혁명 원로였기 때문에 보수파였던 브레즈네프가 대우를 해 준 것이다. 1966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복귀하고, 소련군의 창설 50주년이 되던 1968년 두 번째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는 이듬해 1969년 사망해서 다른 원수들, 유명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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