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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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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권 국가 == 의외로 [[냉전]] 시절의 [[공산주의]] 국가들, 정확히는 [[소련]]을 위시한 [[제2세계]] 국가의 경우에는 쿠데타가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 공산주의 국가들은 [[정치장교]] 제도를 기반으로 한 [[문민통제]]가 매우 튼튼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산 세력 내의 권력 투쟁도 무력을 동반한 쿠데타보다는 형식상 합법적인 정치 투쟁 및 숙청으로 행하였다.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쿠데타는 소련의 [[8월 쿠데타]]와 [[폴란드 인민공화국|폴란드 인민 공화국]]의 친위 쿠데타 정도인데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인 군부 주도의 쿠데타는 아니다. 공산 국가의 원조였던 소련은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초기에 1차대전으로 해체된 군을 재건하면서 러시아 제국군 장교들을 대거 영입했는데, 정권을 잡은 [[볼셰비키]]들은 [[프랑스 혁명]]이 혁명군을 이끌던 유력 지휘관인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로 끝장난 것을 항상 [[타산지석]]으로 삼고 군의 쿠데타를 경계했다. 이 때문에 군에 [[정치장교]] 제도를 도입했다. 당에서 파견된 정치장교들은 군령권을 지휘관과 양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사인이 없이는 그 어떤 명령도 실행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쿠데타가 일어날 수가 없었다. 또한 이들은 일반 장교들을 감시하고, 각각의 성향을 당에 보고했고 아무리 유능해도 반당적인 언동을 보이거나 성향이 불온한 자들은 가차없이 숙청되었고, 당에 대한 충성심이 미온스러운 자들은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에, 일반 장교들은 겉으로나마 항상 당에 충성한다는 것을 보여야 했다. 이랬기 때문에 공산국가의 군부는 철저히 당에 복종했으며, 쿠데타를 실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물론 당은 군부에 이런 감시만 행한 것은 아니었고, 이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많은 혜택을 주었다. 일단 군인의 위상이 높았고 대부분의 공산국가에서는 일반인이 당원이 되는 것이 까다로웠지만,[* 소련 말기나 현재 중국 같은 경우 전체 인구의 10% 정도에 불과하며, 당 가입 이전에 몇년간의 관찰기간 동안 여러 가지로 당에 대한 충성심이나 봉사정신을 보여야 한다.], 공산 국가의 경우 장교나 장기근속 부사관들은 대부분 당원일 정도로 혜택을 받았다. 이렇게 당원이 되면, 예비역이 되더라도 공무원이 되기도 쉽고, 예편 후에도 군 산하의 여러 기관이나 방산업체의 간부로 지내며 고액의 봉급이 보장된 혜택을 받았다.[* 사실 자본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며, 장성급으로 예편하면 적어도 노년에 빈곤에 허덕일 일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국가의 군인들은 자기들이 당의 충성스러운 전사이며, 당의 지배가 자신의 이익이라는 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당에 반역하는 쿠데타를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공산국가의 군부는 공산당의 당군임은 틀림 없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군의 정신교육에서 "우리는 인민의 무력"이라는 관념을 계속 주입을 받았기 때문에 막상 민중봉기가 있더라도 유혈진압은 매우 꺼렸다. [[동독]]의 [[국가인민군]]도 [[베를린 장벽]] 붕괴시점에서 시위군중을 진압하라는 당중앙의 명령을 지휘관들이 거부해서 동독은 붕괴했고,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대통령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독재에 항의하여 봉기가 일어난 [[루마니아 혁명]]에서 [[루마니아 인민군]]은 민중의 편에 섰고, 차우셰스쿠의 공안-정보기관인 [[세쿠리타테]](Securitate)의 직속병력이 봉기를 진압면서 유혈사태가 났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에도 시위가 일어난 북경군구의 여러 지휘관들은 유혈진압을 거부했고, 사령관인 [[쉬친셴]] [[중국 인민해방군]] 중장 같은 경우는 문서화되지 않은 구두명령을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항명하여 체포되었다. 결국 공산당 지도부는 북경군구의 병력을 빼고, 시위군중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제남군구[* [[산둥성]]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의 병력을 동원해 진압했을 정도였다. 소련 붕괴 직전의 러시아 [[8월 쿠데타]]에서도 움직인 병력은 쿠데타 가담자인 크류치코프 [[KGB]] 의장 직속의 [[스페츠나츠]] 부대와 안보보좌관 아크로메예프 원수를 따르는 모스크바 인근의 친위사단 병력이었을 뿐이었고, 대부분의 소련군 부대는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위대의 유혈진압을 거부했고, 결국 [[국가비상사태위원회]]와 쿠데타 세력은 실패를 인정하고 투항했다. 1991년 2월 24일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동유럽 공산권 국가 중 가장 악랄했던 국가로 유명하다.] 일부 군부대[* 대부분 [[티라나]] 북동부에 있는 군사 학교의 장교 그룹이었다고 한다.]가 개혁적이었던 [[라미즈 알리아]]를 축출하고 민주화운동을 이끄는 신진 야당인 [[알바니아 민주당]]을 제거하려 한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이 과정에서 철거된 전임 지도자 [[엔베르 호자]]의 흉상을 복원하기도 했다.] 실패했다. [[https://www.nytimes.com/1991/02/24/world/albania-s-hard-liners-and-democracy-backers-battle-for-control.html|#]] 공산국가에서 유일하게 벌어진 성공한 쿠데타는 [[폴란드 인민공화국]]에서 벌어진 1981년 [[친위 쿠데타]]이다. [[자유노조]] 운동때문에 폴란드 공산정부가 혼란에 빠지자 공산당은 국방장관이었던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당시 현역군인이자 대장)을 [[폴란드 통일노동자당]](공산당) 당수 및 각료회의 의장(총리)으로 추대했고 야루젤스키는 취임 후 [[폴란드 계엄령]]을 선포하여 초법적 통치기관을 설립, 군을 동원해 [[독립자치노동조합 '연대'|자유노조운동]]을 진압하고 민주파 운동가들을 투옥했다. 그리고 1985년 아예 현역군인 신분으로 국가수반에 올라서 1991년까지 독재정치를 폈다. 다만 동유럽권 공산정권이 붕괴할 때 순순히 무혈로 물러났고, 민주화된 폴란드에서 재판을 받으나 노환으로 인해 죽을때까지 법적으로 단죄받지 못하였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국방부장이었던 [[린뱌오]]는 주석 [[마오쩌둥]]을 암살하고 정권을 잡기 위한 쿠데타([[9.13 사건]])를 벌였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이는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 개인숭배가 강화되면서 정치장교를 통제하는 당이 마비되었고, 린뱌오가 거의 [[중국 공군]]을 사병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북한]]에서도 1980년대 소련의 [[프룬제 군사대학]]에 유학한 친소파 군인맥들이 김일성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프룬제 군사대학 유학파 쿠데타 모의 사건]]을 꾸몄다가 모두 숙청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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