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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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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체 이후 == * '''코민포름'''[anchor(코민포름)] 코민테른이 1943년 해체됨으로써 국제공산주의운동을 추진하는 국제기구가 사라지게 되었고, 이는 당시 국제공산주의자들에게 상당한 불만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마셜플랜]][* 또는 마셜계획 ]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반공]], 반소주의 공세가 강화되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1947년에 일명 ‘즈다노프 독트린’으로 창설한 것이 국제공산당 정보국, 즉 코민포름이다.[* '코민테른'과 '코민포름'을 헷갈려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Com'''munist '''Intern'''ational, '''Com'''munist '''Inform'''ation Bureau의 차이다. 우리 외래어 표기법은 어원을 딱히 드러내지 않고 발음만 옮기게 되어 있지만, 굳이 '콤인테른', '콤인포름'으로 적는다면 전자가 '''국제'''적 성격을, 후자가 '''정보'''적 성격을 띤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 혁명의 지도 기관이었던 코민테른에 비해 코민포름은 정보 및 경험의 교류와 활동의 조정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에 지나지 않았고, 참가 국가 역시 [[소련]], [[폴란드 인민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헝가리 인민공화국]], [[루마니아 인민공화국]],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프랑스 제4공화국]], [[이탈리아]]의 9개국에 지나지 않았다. 즉 [[동유럽]] 국가,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로 구성된 지역 조직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그나마도 48년에 티토주의 논쟁으로 유고슬라비아가 축출된 후에는 8개국밖에 안 남았으며, 뭣보다, 비 공산주의 국가에 공산주의 혁명을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던 코민테른에 비해 이미 공산당이 집권한 국가들+공산당이 제도권 내에서 큰 지분을 가지고 있어서 공산주의 혁명의 가능성이 오히려 없는 나라 2개로 이뤄진 조직이라 말 그대로 대형 공산당 간의 협의 조직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도 소련의 독주가 두드러지면서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1956년 해체한다. 회의도 47, 48, 49년에 한 번씩 열린 것 말고는 특별히 안 열렸고, 그냥 기관지를 통한 각국 정세 분석이나 소속 정당의 활동 방침에 대한 보도나 논평밖에는 한 게 없으니 있으나 없으나 했다. *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 이후 소련은 코민포른의 기관지였던 '영구평화를 위하여, [[인민민주주의]]를 위하여'의 편집부를 개편하여 새로운 잡지인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를 창간하고 이 잡지의 편집부를 각 국가의 공산당들 사이의 연락 기구로 삼았다. 당시 프라하에 소재한 이 잡지의 편집부는 각 국가의 공산당들이 파견한 대표들이 모여서 구성되었고, 공산당이 집권한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북한, 쿠바등에서도 대표를 파견하였으며 일본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 비 집권 공산당도 대표를 파견하고, 심지어 [[그리스]]나 [[칠레]] 등 자국 내에서는 탄압으로 인하여 공산당의 활동이 불가능한 국가들에서도 해외 망명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공산당에서 대표를 파견하는 등 참여 국가의 범위 측면에서는 코민포름보다 훨씬 넓었지만, 이 잡지 자체는 공식적으로 어떤 정치적 권한도 갖지 못한 '''그냥 잡지일 뿐이었다.''' 코민포름의 해체 이후 유일하게 남은 범세계적 공산주의 정당의 협의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 잡지 편집부에 파견되는 대표는 이론이나 토론기술 측면에서 능력이 공인된 각 국 공산당의 최고위 간부들이었고, 당시 체코 내에서도 대사급 외교관에 준하는 예우를 받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정치적 영향력이 없었다. 이나마도 참여 국가의 폭을 확 넓힌 것 때문인지 화기애애하게 유지되지 못했다. [[중소분쟁]] 이후 중국이 화나서 대표를 철수하고, 북한도 중국 따라서 대표를 철수하고,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는 동유럽 위성국가 대표들과 프랑스나 이탈리아, 일본등 부유한 국가의 공산당 대표들은 시도 때도 없이 싸웠으며, 또한 당시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의 폐쇄성 때문에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대표들이 자본주의 국가의 공산당에서 온 대표와의 교류를 꺼리기까지 했다. 결국 이 편집부조차 68년 바르샤바 조약기구군의 프라하 진주 당시 사실상 와해됨으로서,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추진하는 국제기구는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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