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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영제국]]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대영제국)] ||<tablewidth=5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cc,#383b40><nopad>[[파일:영국 국기.svg|width=100%]]|| 일단은 초강대국이라는 용어는 [[냉전]]이 시작할 즈음에 만들어진 용어이기 때문에, [[대영제국]][* 참고로, 대영제국이나 British Empire는 영국이 특정 시점에 사용하였던 정식 국호가 아니라 영국과 그 식민지들을 묶어 부르는 별명 비슷한 것이었다.]의 국력과 별개로 당대에는 대영제국이 초강대국이라는 말 대신 강대국 중의 강대국(The foremost power of the world) 정도로만 언급되었다. 위의 저서가 1944년에 나왔으니 1944년 ~ 1947년 정도의 시기가 걸치기는 하는데 이는 대영제국의 존속 기간에 비하자면 매우 짧은 시간이다. 1944년부터 그렇게 불린 것은 책이 그때 나왔기 때문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초강대국에 가까운 국력을 지니게 된 것은 [[나폴레옹 전쟁]] 승리 이후 해상 패권을 확실히 확립하고 [[인도]]와 [[서유럽]] 일대의 패권을 잡은 [[1815년]]을 기점으로 하며,[* 대개 [[팍스 브리타니카]]는 1815년에서 1914년까지로 규정되는 편이다.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대영제국]]은 [[2차대전]]이 종전된 후 [[인도제국]]이 독립한 [[1947년]]까지 존속되었으며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전쟁]]이 일어나 [[미국]]과 (약간의) [[소련]]의 압력으로 굴욕적인 철군이 있기 전까지 [[미국]]으로부터 주도적인 강국으로 남아있었다.] 이후 [[제1차 아편전쟁]]에서 기존에 세계적인 강대국이었던 [[청나라]]를 굴복시켜[* 이전까지 유럽 세계에서 청나라는 나폴레옹의 표현대로 "잠자는 사자"처럼 여겨졌고, 청나라가 강요하는 황제-제후국의 예법을 순순히 따르는 유럽 국가들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강대국에서 이탈시킨 뒤 [[영국령 홍콩|홍콩을 할양받은]] [[빅토리아 시대]]에 그 위엄이 절정에 달했다. 식민지까지 합하면 영토는 [[식민제국]]답게 초강대국인 [[미국]], [[소련]]을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뉴기니 자치령까지 포함시킨 영토의 면적이 무려 '''현 영국의 145배'''(35,500,000km²)로, 소련 면적 22,402,200km²보다 1.5배 가량 넓다.[* 현 [[러시아]]는 [[소련 붕괴]]로 동유럽/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떨어져나가 면적이 25% 줄어든 17,098,246km²이다. 그래도 전세계 영토 순위 1위의 [[영토]] 대국인 것은 여전하다.] 또한 최전성기였던 [[빅토리아 시대]] 약 한 세기 동안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일례로 지금은 [[미합중국 해군|미국 해군]]이 담당하고 있는 [[카리브]] 해역의 [[세계의 경찰|치안 단속]]을 19세기에는 [[영국 해군]]이 담당했다.] 영국이 유일하게 경계했던 대상은 [[부동항]]을 얻기 위해 [[크림 전쟁]]을 벌이던 [[러시아 제국]]과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해 대영제국의 총 경제력을 추월한 [[독일 제국]] 정도였으며 같은 식민제국이라는 면에서는 [[프랑스 식민제국]]이 맞설만 하지만 이 역시 격차는 컸다.[* 다만 프랑스는 대륙 국가로서 육군력이 강력했기에 유럽 대륙 내에서의 영향력은 대영제국보다도 더 컸다. 여기에 근대부터 조금 불안불안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까지 합치면 유럽의 전통적인 5대 강대국(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이 된다. 1차 대전 패전 끝에 붕괴한 오스트리아는 근대 초입 시기에 이미 타 유럽 열강에 비해 국력의 열세가 확연해 영국과 비등비등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웠다.] [[영국 해군|대영제국 해군]]은 1위로 군림하면서 2, 3위를 합친 것보다의 우위를 19세기 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국력적 측면에서 다른 서구 열강들을 압도했는지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경제 규모는 이미 1차대전 직전부터 [[독일 제국]]에 밀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결국에 [[비스마르크 체제]], 그리고 장기간의 [[벨 에포크]]가 파국을 맞는 계기 중 하나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대영제국 중심의 1극 체제라고 칭할 정도까진 어려워도 상당한 수준의 우위가 유럽의 평화의 한 요인이었던 셈이다.] 군사적으로도 대영제국군이 세계를 제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군중시 정책으로 육군력이 부족한 탓에 여타 서구 열강을 완전히 군사적으로 제압할 역량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에 따라 [[독소 불가침조약]] 당시에 영국과 러시아 사이의 의견 차가 존재했다. 러시아 측에서 전쟁 시 몇 개 사단을 보내줄 수 있느냐는 말에 영국이 4개 사단이라고 했고, 러시아는 당장 120개 사단을 동원해도 될까말까한 상황에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벌어진 [[독소전]]에서 그 정도 규모의 사단은 전쟁 전체도 아니고 전투 1번에 소멸할 것이 분명했다.] 대영제국 정부도 이를 추구하지 않았다.[* 영국의 주된 외교 방침은 [[세력균형]]으로, 유럽의 강국이 나타나면 그 맞은 편에 가세해 해당 강국이 유럽을 장악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대륙의 강국인 프랑스나 떠오르는 강국이던 독일과 사사건건 부딪힌 것이다. 현대까지 이러한 외교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EU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다가 탈퇴한 것도 유럽 대륙 내에서 최고 의사 결정 기구가 한 개인 것에 대한 약간의 반발이 있기 때문이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러시아의 맞은편인 우크라이나를 매우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인구 역시 대다수가 식민지인이었으므로 동원 가능한 병력이 크지 않았다. 즉, [[식민제국]]이라는 체제가 현대의 기점이 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몰락했기 때문에 현대 이후에 정립된 국제정세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현대의 초강대국은 식민지가 아닌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상대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포섭하며[* [[소련]]의 [[위성국]] 역시 소련의 지시를 받는 세력이 추동한 것이긴 하지만 일단 해당 국가 내에서 지지 세력을 세운 것이다. 물론 소련은 직접 삼킨 나라도 많긴 했다. [[소련 붕괴]]로 이런 나라들은 다 내뱉었지만.] 본토의 막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소련의 경제는 미국에 비해 양적/질적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지, 소련에게도 전세계 공산주의 국가에 인적/물적 지원을 할 여력은 존재했다.]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식민제국은 근본적으로 영토의 대부분이 군사적으로 굴복시킨 [[식민지]]이며, 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군사력/경제력은 본토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아닌 게 아니라 이들 식민지는 본국에 대전쟁이 일어나면 같이 싸워주긴커녕 이때다 하고 [[독립]]할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주둔군은 필요했고,[* 그리고 이들은 식민지 통치 체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이었기에, 분명 전체 국력으로는 대영제국보다 한 수 아래인 [[일본 제국]]이 침략해오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 병력을 [[나치 독일]]에 전력 투사해야 했던 당시 상황의 영향이다. 비단 대영제국뿐 아니라 모든 [[식민제국]]들이 본국의 총력전 수행으로 인해 식민지 지역을 군사적으로 방어할 수 없는 상태였고,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후 대다수 식민제국은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영연방]]이라는 [[국가연합]]으로 전환된 [[대영제국]]이나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처럼 무혈 해체된 경우에는 어느 정도 영향력이 남아있으나, [[해방 전쟁]]에까지 이르고 이를 진압하다 실패하는 식으로 몰락한 식민제국은 이전의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오히려 군사력에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대영제국이 초강대국에서 밀려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제2차 세계 대전]]이다. 이 시기에 영국은 나치 독일 [[유보트]]의 영국 봉쇄로 미국으로부터 [[무기대여법]]으로 식료품과 무기를 빌려야했고 본토 외에도 동남아, 중동 등의 식민지에서 박터지게 전쟁을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치 독일]]은 특유의 [[파시즘]] 체제로 전쟁을 부추기는 체제였고, 가히 인류의 [[흑역사]]로 남을 만큼 여러 악행이 많았기 때문에 나치 독일과의 전쟁이 영국의 실책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와 관련된 [[윈스턴 처칠]]의 발언이 "훗날 대영제국이 이 시기를 [[This was their finest hour|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로 인해 대영제국은 막대한 경제적 타격은 물론 인적자원도 타격을 입었고 전후복구 하던 도중 [[6.25 전쟁]]까지 터지는 바람에 1954년까지 식량[[배급]]이 시행될 지경이었다. 전후의 질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아닌 공산주의 대표국가 소련과 자유주의 대표국가 미국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 그래도 종전 직후에도 대영제국 시절 당시의 영향력을 전부 잃어버리지는 않아서 몇 년간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는 어느 정도 유지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크긴 했지만 [[프랑스]]처럼 본토가 점령이 당한 수준은 아니며, [[미국]]으로서도 (함께 승리한 [[소련]]은 영 못 미덥고) [[나치 독일]]의 포화를 정면으로 받아내며 버틴 영국과 영국 식민지 출신을 향한 영국의 발언권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1947년 인도의 독립을 시작으로 식민지들이 줄줄이 독립하게 되면서 영향력이 축소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위기]] 당시 미국과 소련의 압력에 밀려서 물러서는 모습[* 요약하자면 수에즈 운하를 먹은 이집트에 대해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격분하며 이집트를 공격하려고 했으나(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하기는 했다), 소련이 이집트 편을 들어주며 핵 위협을 했고, 미국도 소련이 핵을 쏘면 자신은 도와주지 않겠다며 압박하며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결국 못 버티고 물러난 사건이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가 세계 패권 지위를 상실했고 그 지위는 미국, 소련에게 넘어갔음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을 보이면서 명백히 초강대국 지위에서 이탈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즈음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1965년 사망하자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골]]은 "영국은 이제 더 이상 강대국이 아니다"라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https://www.historyextra.com/period/20th-century/winston-churchill-top-secret-plans-for-his-funeral/|#]] 물론 영국은 지금도 [[강대국]]이지만 이 발언은 처칠이 활동하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대영제국]]만큼의 강대국이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후 프랑스는 영국과 확실히 차별화된 독자 행보를 강화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드골로서 처칠이 살아있을 때에는 [[자유 프랑스]] 시절 망명정부를 떠안아준 [[영국]]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대영제국이 해체된 시점은 1997년 7월 1일의 [[홍콩 반환]]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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