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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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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체 == 1927년 코민테른은 일본의 여러 문제에 관한 테제, 이른바 '27년 테제'에서 "식민지의 완전한 독립"을 규정하고 '''[[일본공산당]]이 조선과 대만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을 지도할 것'''을 중요 임무로 하달했다. 이후 코민테른은 [[일본 제국]] 영토였던 대만에 [[대만공산당]]을 조직시키면서 '[[일본공산당 대만민족지부]]'라는 일본공산당의 민족지부로서 결성하도록 지시하는 등 일국일당 원칙을 강화해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분열과 내부 투쟁을 지리하게 이어가고 있던 조선공산당이 별다른 성과 없이 파벌 싸움만 일삼고 있다는 인식을 국제공산당에서 공유하게 된다. 1928년 7월 17일부터 9월 1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코민테른 6차 대표대회에서는 [[헝가리]]의 쿤 벨러(Kun Bela)가 작성한 "식민지와 반식민지 국가의 혁명운동" 이라는 테제를 채택하고 앞으로 식민지 공산당의 운동 방침을 제정하였는데, 여기서도 조선공산당은 파벌 싸움을 지적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6차 대회에 참석코자 조선공산당에서 파견된 [[이동휘(독립운동가)|이동휘]] 등은 코민테른 본부에서 조선당의 대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방청만 겨우 허락받았을 뿐, 46차에 걸쳐 열린 회의에 발언할 기회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또한 코민테른에서는 동양부에 서울파에 속하는 이동휘뿐만 아니라 ML파, 화요회 등 타 파벌을 모두 불러 11월경 각각으로부터 보고를 들었다. 이후 코민테른 집행위원회는 "조선공산당 조직 문제에 대한 결정"을 발표하고, 여기서 "조선의 어느 공산주의자 그룹도 코민테른 지부로 승인할 수 없다"고 선포하여 조선공산당의 승인을 취소하였다. 이어 코민테른 중앙은 조선문제위원회(수석위원 [[사노 마나부]] 일본공산당 중앙위원장)를 구성하여 조선문제 테제, 소위 12월 테제를 작성하게 하였다.[* 최봉춘은 당시 코민테른 조선문제위원회 위원 4명이 수석위원 사노 마나부를 제외하고 Mif(파벨 미프, 러시아), Wiltanen(불가리아), 曜秋白([[취추바이]], 중국) 등 조선 문제를 깊이 알기 어려운 자들이었던 관계로 12월 테제는 실제로 사노 마나부가 작성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최봉춘, '조선공산당 파쟁론',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5집, 2010.)] 그리하여 1928년 12월 7일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정치서기국에서는 6차 대회 결의안인 ‘식민지와 반식민지 국가의 혁명운동" 테제를 근간으로 "조선의 농민, 노동자에 관한 테제"(소위 12월 테제)를 채택하였다. 조선공산당을 해체하라는 12월 테제는 1929년 3월 16~17일 코민테른 대외선전기관지에 게재되었으며, 동년 5월 1일 [[텐진]]에서 발행된 <계급투쟁> 창간호에 한글로 전재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조선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지령에 의해 해체되었다.'''[* 최봉춘, '조선공산당 파쟁론',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5집, 2010. pp.65.] 이후 12월 테제에 기초하여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려는 시도가 국내에서 빈번히 발생했으나, 1945년 해방시까지 코민테른은 그 어떤 그룹도 승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코민테른에 의해 조선공산당의 국내 조직 전체는 물론, 1930년 3월 만주총국 그리고 1931년 10월에는 일본총국까지 모두 해체되었다. 그리고 일국일당주의를 견지하는 코민테른은 조선공산당 재건 또한 일본공산당의 지도를 받도록 하여 일본공산당은 1931년 3월 17일자 기관지 <[[아카하타]]>에 처음으로 "조선, 대만 등 식민지의 독립"이란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4월 정치국 테제에서 "조선 대만 등 식민지의 완전한 독립"을 슬로건으로 표방했으며, 이어 5월 당 중앙상임위원회 직속으로 민족부(중앙위원장 風問丈吉이 민족부장 겸임)를 설치하고 예하에 조선부문, 대만부문을 두어 식민지의 공산주의 세력을 직접 지도하기 시작했다. 일본공산당 민족부 조선부문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0835|김치정]]을 지도자로 [[경성부]]에 설치되어[* 「第二章 移民国家日本の歴史」(坂東 2016, pp. 33–134), [[https://ja.wikipedia.org/wiki/%E5%9C%A8%E6%97%A5%E6%9C%AC%E6%9C%9D%E9%AE%AE%E4%BA%BA%E9%80%A3%E7%9B%9F|재일본조선인연맹(일본위키백과)]]에서 재인용.]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50_0040_0030_0020_0030_0020|#1]] 조선에서 공산당 재건운동을 지도했다[[https://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50_0040_0030_0020_0020|#2]][[https://global-studies.doshisha.ac.jp/gs/attach/page/GLOBAL_STUDIES-PAGE-EN-147/174912/file/010.pdf|#3]]. 그러나 1932년 10월 이후 일본공산당 역시 무력해지면서 1국1당 원칙하에 일본공산당이 조선, 대만의 공산당 구축을 지도한다는 코민테른의 방침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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