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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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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 === [[이동휘(독립운동가)|이동휘]]와 김규열은 1929년 3월 중국 상하이에서 [[김철수(독립운동가)|김철수]] · 윤자영 · 오산세 · 김일수 · 최동욱, 김영만, 김영식, 안상훈 등과 당재건 방침을 협의했다. 그 결과 당재건을 위한 조직으로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중국 길림성에 당재건운동의 근거지를 두기로 했다(책임자 김철수). 기관지로 비밀잡지 『볼셰비키』와 대중기관지 『노력자신문』을 발간했다. 이후 그들은 흥남의 공장 등지에 세포 조직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 그러나 [[코민테른]]은 1930년 6월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를 해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코민테른 측은 조선공산당 재건에 관한 모든 책임을 중국공산당(당내 조선국내공작위원회)에 맡겼다고 통보해왔다. 결국 1931년 3월 재건설준비위원회를 해산하고 대신 ‘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준비회’를 만들었다. ‘전국평의회준비회’는 1931년 2월~3월 2개의 세포조직과 25명 남짓의 노동자 · 지식인을 획득했다. 이를 바탕으로 오성세 등은 4월 25일경 메이데이 투쟁을 준비했다. 4월 30일이 되자 신설동 종연방직공장, 서대문 대창직물공장, 철도국 용산공장 등에서 전단을 뿌렸다. 이 때문에 발각되어 6월까지 45명이 구속 기소되었다.[[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2829621&cid=62049&categoryId=62049&anchorTarget=TABLE_OF_CONTENT2#TABLE_OF_CONTENT2|출처: 박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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