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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스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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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록 == 이 중에는 실제 스탈린이 했는지 어떤지 의심스러운, 출처가 없는 말들이 많으니 유념하고 보길 바람.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 ---- {{{#!wiki style="margin: 4px" {{{-1 이 말은 이오시프 스탈린이 말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은 독일의 소설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한 말이다.}}}}}}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나는 독재자가 아니라, 당의 결정을 따르는 일꾼일 뿐이오.]]'''}}}}}} ---- {{{#!wiki style="margin: 4px" {{{-1 1931년 한 영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Красная Армия есть современная армия, а современная армия — армия наступательная.}}} {{{-1 붉은 군대는 현대적인 군대이다. 현대적인 군대란 곧 공격적인 군대이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41년 5월 5일,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열린 군사학교 졸업식에서[* Виктор Суворов (Viktor Suvorov), Ледокол (Icebreaker), 1988]}}}}}}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아돌프 히틀러|히틀러]]라는 친구, 굉장하더군! '''[[대숙청|정적은 그렇게 다뤄야 해!!]]'''}}}}}} ---- {{{#!wiki style="margin: 4px" {{{-1 1934년 [[장검의 밤]] 소식을 듣고[*출처1 Richard Overy, 『독재자들: 히틀러와 스탈린, 권력 작동의 비밀』, 2008.]}}}}}}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지도자들은 왔다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인민들은 남습니다. '''오직 인민만이 영원합니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37년 [[대숙청]] 중 연설}}}}}}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정직한 외교관이란 나무로 만든 철이나 말라버린 물과 같다.}}}}}} ---- {{{#!wiki style="margin: 4px" {{{-1 어떤 나라의 외무장관이 평화 협정에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세계 평화를 지키겠다고 말한다면, 그 시간에 본국에서는 최신 군함과 전투기들을 만들고 있다고 보면 된다.}}}}}} ---- {{{#!wiki style="margin: 4px" {{{-1 『Speech "The Elections in St. Petersburg" (January 1913)』에서 인용}}}}}}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감사하는 마음은 개나 앓는 질병이다.[* 혹은 "예의나 배려는 개나 앓는 질병이다."라고도 전해진다. [[츤데레|정작 스탈린은 자신이 받은 호의가 어떤 것이든 크고 작은 것까지 잊지 않고 모두 갚아주었고,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물론 악감정 역시 사소한 것까지도 되갚았다.]]''']}}}}}} ---- {{{#!wiki style="margin: 4px" {{{-1 『The Memoirs of former Stalin's secretary (1992) by Boris Bazhanov』에서 인용}}}}}}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우리의 적들이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다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직접 해버리면 된다.}}}}}} ---- {{{#!wiki style="margin: 4px" {{{-1 『The Political Report of the Central Committee, The Fifteenth Congress of the C.P.S.U.(B.) (7 December 1927)』에서 인용}}}}}}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바그라티온 작전|가장 큰 기쁨이란, 적을 골라 세심하게 한 방 먹일 준비를 하고 무자비한 복수의 갈증을 충족시킨 뒤에 집에 가서 자는 거야.]]}}}}}} ---- {{{#!wiki style="margin: 4px" {{{-1 1923년 [[레프 카메네프|카메네프]], [[그리고리 지노비예프|지노비예프]]와 잡담 중에 나온 말.[* Trotsky's Diary in Exile, 1935, p. 64.][* [[레프 트로츠키|트로츠키]]는 이 말을 카메네프가 스탈린, [[펠릭스 제르진스키|제르진스키]]와의 대화 내용을 말해준 것을 회상한 거라고 했다.]}}}}}}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교황]]이라! 그런데 그 자는 몇 개 사단이나 갖고 있답니까?}}}}}} ---- {{{#!wiki style="margin: 4px" {{{-1 1935년 프랑스 외무장관 [[피에르 라발]]과 모스크바에서 회담하면서[* 당시 피에르 라발이 "소련에서 종교 탄압이 줄어들면 저희가 교황과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하자 스탈린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http://sonnet.egloos.com/4443362|1차 출처]], Sir Winston. 『The Gathering Storm : The Second World War Vol.1. Houghton Mifflin, 1948(Houghton Mifflin Harcourt, 1986)』, p.121에서 인용][* 이 말의 출처는 [[윈스턴 처칠]]인데, 처칠은 라발이 그때 뭐라 답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열병식에 보이지 않는 종류의 [[레기온|군단]](legion)이 있다"고 답했을 것이라 추측해서 적었다. 이는 극단적인 관념론적 존재인 교황과 반대되는, 극단적인 유물론자인 공산주의적 [[반종교주의|반종교주의자]]의 관점을 한 마디로 보여준다.][*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는 처칠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듣곤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내 아들 요셉에게 그는 내 사단들을 [[천국|저 위]]에서 만나게 될거라고 전해주시오"라며 받아쳤다고 한다.[[https://time.com/archive/6609138/religion-urbi-et-orbi/|#]]]}}}}}}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내가 죽고 나면 사람들은 내 무덤에 쓰레기를 집어던지겠지만, 결국에는 역사의 바람이 그 쓰레기들을 전부 쓸어낼 것이다.}}}}}} ---- {{{#!wiki style="margin: 4px" {{{-1 언젠가 측근이었던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와 대화를 나누면서[* 『Felix Chuev's 140 Conversations with Molotov Moscow, 1991.』에서 인용.][* 여담으로 스탈린 사후 그의 평가는 진짜 저 말대로 되었다. 후임자인 [[니키타 흐루쇼프]]의 주도로 대대적인 스탈린 격하 운동이 일어난 이후부터 [[소련 해체]] 시점까지 흑역사로써 남아있었으나, 세월이 흐른 현재의 [[러시아]]와 구소련권의 극히 일부에서는 그가 이끌었던 국가적인 승리에 초점을 맞추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중이다. 다만 대부분의 구소련권 국가에서는 매우 평가가 나빠, 거의 [[아돌프 히틀러|히틀러]]와 [[마오쩌둥]] 급으로 욕을 먹는다. 큰 업적을 이루어냈지만 그에 비견될만큼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기에 바람이 대부분의 쓰레기들을 치우지 못한 걸지도...]}}}}}} || [anchor(표를 세는 사람)]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표를 던지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 {{{#!wiki style="margin: 4px" {{{-1 『Said in 1923, as quoted in The Memoirs of Stalin's Former Secretary (1992) by Boris Bazhanov』에서 인용}}}}}}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속도를 늦추면 뒤떨어집니다. 그리고 뒤떨어지면 패합니다. 우리는 패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패배는 우리가 바라는 게 아닙니다. 옛 러시아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뒤떨어진 탓에 끊임없이 패배한 역사였습니다. 러시아는 [[몽골 제국|몽골의 칸]]에게 [[몽골-타타르의 멍에|패하고]], [[오스만 제국|터키의 파샤]]에게 [[러시아-튀르크 전쟁|패하고]], [[스웨덴 제국|스웨덴의 봉건영주]]에게 [[북방전쟁|패했습니다]]. 러시아는 [[폴란드-리투아니아|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영주들]]에게 [[동란 시대|패하고]], [[크림 전쟁|영국과 프랑스의 자본가에게 패하고]], [[러일전쟁|일본 남작]]에게 패했습니다. 러시아가 뒤떨어진 탓에 모든 사람에게 패했습니다. 군사적으로 뒤떨어져서, 농업이 뒤떨어져서 패했습니다. 그들이 러시아를 친 것은 그게 이익이 되고 그러고도 무사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혁명 전의 시인이 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는 비참하다, 너는 풍요롭다, 너는 강력하다, 너는 무력하다, 나의 조국 러시아여(Ты и убогая, Ты и обильная, Ты и могучая, Ты и бессильная, Матушка Русь!).'[* 1840년에서 1870년 사이에 활동한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알렉세예비치 네크라소프(Николай Алексеевич Некрасов) 작 『Кому на Руси жить хорошо』에서 나오는 문구이다.] [중략] 우리는 선진국보다 50년에서 100년 가까이 뒤떨어졌습니다. '''10년 안에 그 격차를 없애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짓밟히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소련의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기꺼이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31년 2월 5일 산업 관리와 경영자 협의회에서 한 연설}}}}}}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이탈리아 파시즘|이탈리아의 파시즘]]이나 [[나치즘|독일의 국가사회주의]]는 그러한 [[스탈린주의|소비에트 사회주의]]와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로 공장, 토지, 은행, 운송수단 등의 사적 소유권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자본주의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36년 4월, Roy W.Howard와의 [[https://books.google.com.au/books?id=kF1bAAAAcAAJ&printsec=frontcover#v=onepage&q=Neither%20Italian%20fascism%20nor%20German%20national%20%22socialism%22%20have%20anything%20in%20common%20with%20such%20a%20%5BSoviet%20socialistic%5D%20society%2C%20primarily%20because%20private%20ownership%20of%20factories%2C%20plants%2C%20lands%2C%20banks%2C%20means%20of%20transportation%2C%20etc.%2C%20remain%20untouched%20there%2C%20and%2C%20therefore%2C%20capitalism%20in%20Germany%20and%20Italy%20remains%20in%20full%20force.neither&f=false|인터뷰]]에서}}}}}}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동지들이여, 삶이 더 좋아졌고, 삶이 더 행복해졌다.[* 원문은 "Жить стало лучше, жить стало веселее!"로, 직역하면 "삶이 더 좋아졌으며, 삶이 더 쾌활해졌다!" 정도가 된다. 게임 [[Hearts of Iron IV]] 메인 화면에서는 "쾌활함이야말로 소비에트 연방의 가장 큰 특징이다"로 적절하게 의역되어 나온다.] 그리고 인생이 즐거울 때 일 또한 좋다. 우리의 삶이 나쁘고, 보기 흉하고, 불행했다면 스타하노프 운동이 있었겠는가?}}}}}} ---- {{{#!wiki style="margin: 4px" {{{-1 1935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스타하노프 운동 노동자 회의에서}}}}}}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인류 역사상 무적의 군대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41년 7월 3일, [[독소전쟁]] 발발 직후 [[https://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stalin/works/1941/07/03.htm|라디오 연설]]에서. 자세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어록#s-2.1.1|이곳을 참조]].}}}}}}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우리 조국의 자유를 위한 우리의 전쟁은 유럽과 미국 인민들의 독립, 그리고 민주적 자유를 위한 그들의 투쟁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이는 자유를 옹호하고 히틀러의 파시스트 군대에 의한 노예화와 그 위협에 맞서는 인민들의 연합전선이 될 것입니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이후 독일 침공에 대한 연설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1bgy5QR8h04|보기]]}}}}}}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교육은 누구의 손아귀에 쥐어졌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에 따라 효과가 결정되는 무기오.}}}}}} ---- {{{#!wiki style="margin: 4px" {{{-1 1937년 9월, [[허버트 조지 웰스]]와의 [[http://www.rationalrevolution.net/special/library/cc835_44.htm|인터뷰]]에서}}}}}}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신이 당신의 편이라고요? 그는 [[보수당(영국)|보수당]]원입니까? 그렇다면 악마는 저의 편이며 그는 훌륭한 [[공산주의]]자겠군요!}}}}}} ---- {{{#!wiki style="margin: 4px" {{{-1 1943년 11월, [[테헤란 회담]]에서 당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과 대화를 나누며[* Robin Cross,『Fallen Eagle: The Last Days of the Third Reich (1995)』 p. 21]}}}}}}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인해전술#s-2|양은 그 자체로 일종의 질이 된다]].}}}}}} ---- {{{#!wiki style="margin: 4px" {{{-1 출처 불명[* 본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양질전화 개념으로써, 군사력, 생산력, 또는 인적 자원 등에서 ‘압도적인 양적 우위’가 결국 질적인 차이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공포정치|공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지요]].'''}}}}}} ---- {{{#!wiki style="margin: 4px" {{{-1 출처 불명[* 카이로 회담 당시, [[윈스턴 처칠]]은 스탈린에게 충성을 다하는 부하들의 모습을 보면서 같은 우두머리로서 자신과 많은 비교가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떠한 결정을 내려도 그것에 대해 믿고 따르기보단 어떻게든 그 결정을 막으려고만 드는 자신의 부하들에 비해, 스탈린의 부하들은 겸손하며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탈린의 통솔력의 원천이 궁금했던 스탈린에게 그 비결을 물어봤다. 그러자 스탈린은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결국에 [[죽음]]이라는 건 나쁜 것을 잃는 것이다.}}}}}} ---- {{{#!wiki style="margin: 4px" {{{-1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죽은 사람은 어떤 것도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 [[콜 오브 듀티 시리즈/명언|게임 오버 시 나오는 문구]] 중 하나로 등장한다]}}}}}} ---- {{{#!wiki style="margin: 4px" {{{-1 출처 불명}}}}}}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인민은 [[낙엽]]과 같다. 하나씩 밟을 때는 바스락거리지만 한데 긁어모아서 불을 붙이면 매우 잘 탄다.}}}}}} ---- {{{#!wiki style="margin: 4px" {{{-1 출처 불명[* 소수의 인민들이 저항하는 것은 별 것 아니지만 다수의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면 막을 수 없다는 말이라는 해석도 있고, 인민들을 적당히 탄압하면 저항하지만 본보기로 다수를 모아 처리하면 겁 먹어 찍소리도 못한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스탈린이 두 가지 [[러시아 혁명|해]][[대숙청|석]]을 모두 경험했던 인물인만큼 어느 쪽으로 받아들여도 말이 되기 때문에 이래저래 애매하다.]}}}}}}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사단(군사)|사단]]을 시장에서 판다면 사주겠지만, '''시장에서는 사단을 팔지 않는다. 증원은 불가능하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42년 5월,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 도중 포위섬멸 위기에 처한 [[세묜 티모셴코]] 원수의 증원 요청에 대한 답신.[* 소련군이 섣부르게 시작한 공세는 이 때의 독일군 역습을 받아 대참사로 끝났다. 마침 캅카스를 향한 하계 공세를 계획하던 독일군은 전투 종료 1달 만에 [[청색 작전]]을 발동했다. 티모셴코는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된다. 사실 스탈린의 책임이 워낙 컸던 패배다 보니 면피성 인사 조치이긴 하지만 이를 계기로 스탈린이 군부의 구체적인 작전 수행에 [[전화위복|사사건건 간섭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현대전]]에서 총포탄을 아껴서는 안됩니다. 탄약을 아끼는 것은 범죄요!}}}}}} ---- {{{#!wiki style="margin: 4px" {{{-1 1940년 4월 15일, [[겨울전쟁]]에 관한 고위 지휘관 회의에서.[* 의외로 [[http://panzerbear.blogspot.kr/2015/12/blog-post_7.html|포병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상당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력은 아껴도 포탄은 아끼지 말라거나, 공세에는 반드시 포를 동원하라거나 하는 발언을 전략회의에서 했다.][* 다만 이전에 있었던 [[대숙청]]의 영향으로 [[숙군|장교들이 싸그리 갈려나가는 바람에]] 겨울전쟁에서 소련군은 대단히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후일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소련 침공을 결심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가 된다. --- 붉은 군대의 베테랑들을 다 없애 버린 게 네놈 아니냐! 네가 유능한 장군들을 다 죽여 버렸잖아! ---]}}}}}}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석유]] 없이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장차 다가올 전쟁에서는, 석유 확보에서 우위를 점하는 자가 전쟁에서의 승리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27년 12월 3일 연설에서}}}}}}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간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35년 5월 4일 붉은 군대 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간부가 제일 우선시돼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간부 집단의 질적 향상이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다는 뜻이다.]}}}}}}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넌 스탈린이 아니고 나도 스탈린이 아니야! 스탈린은 소련의 권력이야! }}}}}} ---- {{{#!wiki style="margin: 4px" {{{-1 차남 [[바실리 스탈린]]이 스탈린이라는 이름을 멋대로 물려 쓰자 일갈하며}}}}}}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이제 우리는 누가 진정한 공산주의자인지, 그리고 누가 공산주의자인 척 말하고만 있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중략)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권력을 얻었으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권력을 행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28년 시베리아의 [[바르나울]]에서, 대대적인 [[집단농장|농업 집단화]]를 시행하기 전에.}}}}}}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포화 속에서 수천km를 달린 병사들에게 그러한 [[강간|즐거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합니까?}}}}}} ---- {{{#!wiki style="margin: 4px" {{{-1 구 [[유고슬라비아]]를 탈환하며, 주둔해 있던 [[강간#s-2.1|소련군이 현지 여성들에 대해 강간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항의했던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지도자 [[밀로반 질라스]]에게 답하며[* 당시 소련군에 의한 강간 사건은 동부 유럽 140만 건, 베를린 60만 건이나 된다. [[http://youtu.be/0D6aWk1IRPY|#]] 심지어 여성 소련군이 젊은 남성 독일군을 강간한 일도 많았다. [[http://youtu.be/VpcX7o7UyU4|#]]][* 그러나 이에 대한 근거는 티토 시기 반체제 운동을 한 밀로반 질라스의 62년 회고록뿐이고, 질라스는 냉전 이후 미국 네오콘과의 인터뷰에서 '''공산주의는 19세기 유물이자 재앙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의 극성 반공주의자로 변모한 인물이다. 또한 1945년 1월 19일자 스탈린의 이름으로 내린 명령에는 강간을 금지하는 조항과 이를 어길 시 총살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https://www.facebook.com/107090729641832/photos/a.114521008898804/1026602984357264/?type=3&paipv=0&eav=AfZkOib2j6Ac7ETfmbbUAIvIr69_WIHm76F__64FyAVCxcDyAlcmOwplGldbJM1zfIs&_rdr|#]] 이것이 이후 일어난 강간들에 대한 완벽한 반박이 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러한 발언들이 맥락적으로 삭제되는 반면에, 밀로반 질라스의 일부 증언은 과하게 인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한정숙 교수는 소련의 최고지도자였던 스탈린은 나치와 독일 인민은 구분되어야 하며 인민은 생존해야 한다고 공언했고, 군에 전달된 스탈린의 명령 자체는 교전국 여성들에 대한 강간을 엄금하는 것이었다고 책에서 언급했으며, 그와 동시에 스탈린이 남성주의자여서 밀로반 질라스와 나눈 대화에서 원정군 군인들이 전시에 현지 여성들과 관계를 맺어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적도 있다고도 언급했다. 그러나 관련 각주에서 이 기록 자체가 스탈린 정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던 질라스의 회상에 바탕을 둔 것이기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 필요도 없다고 언급했다.][* 한정숙 외 지음, 독일 통일과 여성 - 젠더 관점에서 조망한 독일의 분단과 재통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26~27쪽.]}}}}}}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강한 군대를 가진 나라는 언제나 존경받는다. 그러므로 나는 핀란드군의 [[겨울전쟁|강인함]]에 경의를 표한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51년에 했다고 전해지는 말[* [[굽시니스트]] -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왜 [[T-35|전차]]에다 백화점을 차리려고 하나!'''}}}}}} ---- {{{#!wiki style="margin: 4px" {{{-1 1938년 5월 4일 [[SMK|신형 다포탑 전차]]의 목업모델을 보고 [[KV-1|포탑 한 개]]를 부러뜨리며 한 말.[* [[https://books.google.co.kr/books?id=Y-O3DAAAQBAJ&lpg=PP1&hl=ko&pg=PA94#v=onepage&q&f=false|Zaloga 2015: 94]] Zaloga, Steven(2015),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스탈린은 다포탑 전차인 [[T-28]]이나 [[T-35]]를 매우 싫어했다. 그리고 그러한 다포탑 전차들이 실전에서 완벽한 실패작으로 판명된 걸 보면 비록 스탈린이 전술, 전략적으로는 문제가 많았지만 무기를 보는 눈 하나는 있던 모양이다. 한편 이 말 때문에 밀덕들은 어떤 무기에 뭔가를 덕지덕지 붙여놓는 걸 '''"백화점을 차린다"''' 고 표현하곤 한다.][* 한편 저 백화점 드립을 두고 [[자본주의]]의 상징이라서 백화점을 싫어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당시 소련에도 백화점이 엄연히 있었다. 즉 자본주의의 상징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백화점처럼 여러 가지를 놓았다는 직접적인 비유법에 더 가깝다.][* 나중에 [[대한민국]]의 [[BLACKPINK]]의 [[뚜두뚜두 (DDU-DU DDU-DU)|뮤직비디오]]에서 진짜로 스탈린이 살아있던 시절에 나온 [[T-34-85|소련 전차]]를 백화점마냥 꾸몄다.]}}}}}}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제국주의]]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자본주의에서 시작되었다. [[파시즘]]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그 역시 자본주의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것은 한 줌의 자본가들을 물리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 {{{#!wiki style="margin: 4px" {{{-1 출처 불명}}}}}}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세상에, 이게 무슨 마르크스주의라는 건가. 이건 완전히 봉건주의잖아.}}}}}} ---- {{{#!wiki style="margin: 4px" {{{-1 [[마오쩌둥]]이 쓴 이론을 읽고[* The Coldest Winter, David Halberstam, p.532]}}}}}}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아니오(нет)!'''}}}}}} ---- {{{#!wiki style="margin: 4px" {{{-1 [[포츠담 회담]], [[얄타 회담]]에서 [[윈스턴 처칠]]의 양보 요구에 대답하며[* John Lewis Gaddis, 냉전의 역사: The Cold War(2010).]}}}}}}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조선 사령부가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김일성|귀관]]은 전혀 통보하지 않고 있다. [[북한군|그들]]은 전진할 생각인가? 아니면 전진을 중단하기로 했는가?}}}}}} ---- {{{#!wiki style="margin: 4px" {{{-1 1950년 7월 1일, 북한군이 남진을 멈추자 [[김일성]]에게 보낸 편지[* 당시 북한군은 [[춘천 전투]]의 여파로 큰 타격을 받았고, 작전 계획 자체가 아예 틀어져 [[서울]]에서 3일 동안이나 진격을 멈춰야 했다.] [[https://m.youtube.com/watch?v=ZZqQTyYjmKg|출처(2분 부터)]]}}}}}}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나로서는 굶주린 인민들과 실직한 사람들이 누리는 개인적인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진정한 자유란 착취와 다른 사람에게 억압받지 않는 곳, 실업이 없으며 직장과 집 그리고 빵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오직 그러한 사회에서만이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인 개인과 자유가 존재할 수 있다.}}}}}} ---- {{{#!wiki style="margin: 4px" {{{-1 출처 불명}}}}}}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강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조합을 지주로 한다는 점이다. 서구에 있는 여러 [[공산당]]들의 약점은 무엇인가? 그것이 노동조합과 결합되어 있지 않고, 또한 이들 공산당의 몇몇 분자가 노동조합과의 결합을 바라고 있지 않은 점이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서구 공산당의 기본적 임무는 노동조합운동의 통일을 위한 캄파니아를 발전시키고 철저하게 추진하며, 전 공산당원이 빠짐없이 노동조합에 들어가 자본에 대항하여 노동자 계급을 결집시키는 체계적이고 끈질긴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공산당이 노동조합을 지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25년 12월 18일, 전연방공산당 제14차 대회에서}}}}}}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우리는 그들의 식민지를 프랑스에 반환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전략거점을 그들에게 맡기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45년 [[얄타 회담]]에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향후 처리를 두고 논의하며}}}}}}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영국과 미국이 서로 다르다고 믿지 마십시오. 그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정보기관은 모든 나라에서 우리에 대항해 활발한 공작을 벌이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들의 요원들이 당장이라도 우리와 전쟁이 터질 거라는 정보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저는 전쟁이 없을 것임을 완전히 장담합니다. 그런 정보는 쓰레기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전쟁을 벌일 능력이 없습니다. 그들의 군대는 평화 선동에 무력해졌습니다. 핵폭탄이 아니라 군대가 전쟁을 결정합니다. 그들 정보기관의 활동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은 우리를 협박해서 일본, 발칸 지역, 배상 등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들에서 우리에게 양보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들은 우리를 압박해서 우리 동맹국들(폴란드,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로부터 떨어지게 만들기를 원합니다. 30년쯤 뒤에 그들이 또 다른 전쟁을 벌이기를 원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 줄 것입니다. 대양 너머에 있고 전쟁의 영향에 대해 신경 쓸 필요도 없는 미국의 경우 특히 더 그렇습니다. 독일의 목숨을 살려 주는 그들의 정책이 이를 증명합니다. 침략자들의 목숨을 살려 주는 사람은 또 한 번의 전쟁을 원합니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45년 11월 14일 폴란드 공산주의 지도자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와의 대화에서}}}}}}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우리는 이란에 소련군이 주둔해 있으면 유럽과 아시아에서 우리 해방운동 정책의 토대가 약화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란에 군대를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국과 미국은 우리에게 만일 소련군 부대가 이란에 머무를 수 있다면 영국군 부대가 이집트, 시리아, 인도네시아, 그리스에, 또 미군 부대가 중국, 아이슬란드, 덴마크에 왜 머무를 수 없는가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국과 미국에 이런 빌미를 주지 않고, 식민지에서 해방 운동을 촉발시켜 우리의 해방 운동 정책을 더욱 정당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이란과 중국에서 부대를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혁명가로서의 귀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방도가 없었음을 확실히 이해하실 겁니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46년 5월, 스탈린이 아제르바이잔 자치 운동 공산주의 지도자에게 보낸 서한 내용 중 일부}}}}}}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독일은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서 보존되어야 한다. 독일의 사회 질서를 해칠 분열이나 시험은 없어야 한다. 목표는 [[3월 혁명|1848년 부르주아 민주혁명]]의 완성이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45년 여름 회동에서, [[발터 울브리히트]]에게 }}}}}}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사람들의 욕구는 다양하고 사회주의 하에서도 다양할 것이 분명합니다. 사회주의는 사람들의 취향과 욕구의 양과 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스티르너의 평등주의 성향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1875년 고타 강령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후속 저작을 읽어보면 그들이 평등주의를 얼마나 심각하게 공격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평등주의의 뿌리는 농민의 정신, 공유와 공유의 심리, 즉 원시 농민의 "공산주의"의 심리에 있습니다. 평등주의는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와는 완전히 이질적입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러시아 볼셰비키가 모든 부를 모아 평등하게 나누고 싶어한다는 원시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와 전혀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크롬웰 시대와 프랑스 혁명 당시의 원시적인 '공산주의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 볼셰비즘은 평등주의적 "공산주의자"와 공통점이 없습니다.}}}}}} ---- {{{#!wiki style="margin: 4px" {{{-1 독일 태생의 전기 작가 에밀 루트비히(Emil Ludwig)와의 1931년 면담에서 [[https://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stalin/works/1931/dec/13a.htm|보기]]}}}}}}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소. 그러한 혁명이 부르주아의 지배에 적합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틀 내에서 평화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정신이 나갔거나 정상적인 인간의 이해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하며, 그렇지 않다면 극단적이고 공공연하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부정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오.}}}}}} ---- {{{#!wiki style="margin: 4px" {{{-1 자본주의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과 폭력을 동반한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없이 평화적으로 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 질문에 답변하며}}}}}}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식민지 국가들은 제국주의의 주요한 배후에 해당합니다. 이 배후의 혁명화는 제국주의가 자신의 배후를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동양에서의 혁명화가 서양에서의 혁명적 위기의 강화에 강력한 자극을 가한다는 의미에서 또한 제국주의를 약화시킬 것입니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25년 7월 니치니치 일본 특파원 퓨즈와의 인터뷰에서}}}}}}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자본주의 세계는 두 개의 적대적인 블록으로 나뉘어 있소. 민주주의 블록과 파시즘 블록이 그것이오. 소련은 슬라브인들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인 독일과 맞서 싸우기 위해 이를 이용하고 있소. 그러나 독일이 패배한 뒤에도 전쟁과 침공의 위험은 계속 존재할 것이오. 독일은 거대한 산업과 강력한 조직, 종업원, 전통을 가진 대단한 국가이기 때문에, 독일은 패배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또한 슬라브 세계를 적으로 보기 때문에 슬라브 세계에 계속 위험한 나라로 존재할 것이오. 제국주의의 위험은 또 다른 쪽에서도 나올 수 있소.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기는 주로 두 적대 진영의 부패와 상호 파괴에 의해 일어나는데, 이것은 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하는 데 유리한 점이라고 할 수 있소. 그러나 우리는 사회주의의 승리가 오직 소비에트 통치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발상은 잊어야 하오. 다른 일부 정치 시스템, 예컨대 민주주의, 의회 공화국, 심지어 입헌 군주정도 사회주의의 승리를 달성할 수 있소.}}}}}} ---- {{{#!wiki style="margin: 4px" {{{-1 1945년 1월 28일,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대통령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보낸 밀사 헤브란그와의 회담에서}}}}}} || ||<tablebordercolor=#cd0000><bgcolor=#cd0000> ||<width=100%><bgcolor=#fff,#1c1d1f>{{{#!wiki style="margin: 4px" {{{-1 경험이 보여 주고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가르치고 있듯이, 소비에트 시스템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가는 길우 한 가지만 있는게 아닙니다. 어떤 조건에서는 또 다른 길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히틀러의 독일이 패한 이후, 몇몇 나라에서 너무나 커다란 희생이 따랐지만 지배 계급을 파멸시켰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민대중의 의식이 고양되었습니다. 이 역사적 조건에서 많은 가능성과 길이 나타나 사회주의 운동 앞에 새롭게 열렸습니다.}}}}}} ---- {{{#!wiki style="margin: 4px" {{{-1 1946년 7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지도자인 [[클레멘트 고트발트]]에게 한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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