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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스탈린/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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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년 계획|공업화의 신화적 성공]] === >"속도를 늦추면 뒤떨어집니다. 그리고 뒤떨어지면 패합니다. 우리는 패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패배는 우리가 바라는 게 아닙니다. [[러시아 제국|옛 러시아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뒤떨어진 탓에 끊임없이 패배한 역사였습니다. 러시아는 [[몽골 제국|몽골의 칸]]에게 패하고, [[오스만 제국|터키의 지방총독]]에게 패하고, [[스웨덴 제국|스웨덴의 봉건영주]]에게 패했습니다. 러시아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영주들]]에게 패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자본가에게 패하고,일본 남작에게 패했습니다. 러시아가 뒤떨어진 탓에모든 사람에게 패했습니다. 군사적으로 뒤떨어져서, 문화적으로 뒤떨어져서, 공업과 농업이 뒤떨어져서 패했습니다. 그들이 러시아를 친 것은 그게 이익이 되고, 그러고도 무사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혁명 전의 시인이 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는 비참하다, 너는 풍요롭다, 너는 강력하다, 너는 무력하다, 나의 조국 러시아여.' (중략) 우리는 선진국보다 50년에서 100년이 뒤떨어졌습니다. [[5개년 계획|10년 안에 그 격차를 없애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짓밟히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소련]]의 노동자와 농민에게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 [[1931년]] [[2월 4일]] 산업 관리와 경영자 협의회 당시 스탈린의 연설.[* 정확히 10년 후 [[독소전쟁]]이 발발했고, 10년 간 무자비하게 밀어붙인 산업화 덕에 [[나치 독일]]과 맞서 싸워 승리했으니, 스탈린의 예언은 들어맞았다.] >"러시아인이 [[전차]]와 [[비행기]], 함대로 무장하면 절대 정복할 수 없을 겁니다. 절대로. 그러나 기술이 없어 제대로 무장하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 제국|옛 러시아의 역사]]는 이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 [[1933년]] [[노동절]], 스탈린의 연설. >히틀러: [[T-34-76|"만약 누군가 나한테 소련이 3만 5천대의 탱크로 무장할 수 있다고 말해줬더라면 그 사람보고 미쳤다고 했을 거요."]] >(중략) >만네르하임: "우리는 소련을 20년, 아니 25년간이나 마음대로 무장할 수 있게 내버려두었습니다." >---- >- 아돌프 히틀러와 [[카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의 비밀대화 중. 하여간 결과만 보면 낙후한 봉건사회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던 소련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인물이다. [[유물론|원래부터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을 표방했으며,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생산력을 들었다.]] 스탈린은 생산력을 늘리는 게 공산주의로 가는 길이라 생각했고, 그랬기에 이런 생산력 증가에 모든 것을 걸었다. 특히 철강과 전기 생산이 중점적으로 강조되었다. 그 결과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소련은 대공황 시기를 지나자 서구 열강에 필적하는 공업국으로 성장했다.[* 사실 경제력으로 따진다면 스탈린이 소련을 '미국에 필적하는' 공업국가로 성장시켰다는 이야기는 명백히 과장이다. 스탈린 시절 소련은 잘 나갔을 때도 경제력이 미국의 1/4 ~ 1/3 수준에 불과했다. 그래서 1944년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결정했던 브레튼우즈 회의 때도 소련이 딱히 반대하지 못했다. 다만 소련이 진정으로 미국과 필적할 만한 초강대국으로 부각된 시점을 보통 소련이 최초로 [[핵무기|비대칭 전력]]을 보유하는데 성공한 시기, 즉 [[소련의 핵개발|RDS-1 실험 성공]] 시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RDS-1 실험은 스탈린이 아직 집권하던 [[1949년]]에 일어난 일이다.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스탈린이 소련을 미국에 필적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시켰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스탈린은 1928년부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정부의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산업화[* 특히 중화학 공업 분야.]를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였다. 이렇게 정부가 직접 나서서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독일과 [[일본]] 그리고 [[중화민국 국민정부|장제스 치하 중국]][* 당시 장제스도 경제와 공업화 면에서 큰 성과를 누리며 "난징 10년"이라는 불리는 짧은 황금기를 주도했다. 그러나 [[중일전쟁]]으로 인해 그 황금기는 무참히 박살났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아타튀르크]] 치하 [[튀르키예|터키]]에서도 벌어진[* 아타튀르크는 급격한 서구화와 공업화를 이루어내 현재에도 터키의 국부로 존경받는다.] 일이었지만, 소련은 규모, 범위, 강도에서 독일, 일본, 중국, 터키를 훨씬 능가했다. 대부분의 개발독재자들처럼 스탈린도 기술력의 중요성을 이해했고, 개인적으로도 경제개발에 큰 열의를 보였다. [[러시아 제국]] 시절에도 공업화는 추진되었지만 귀족 지주들이 농노라는 인력과 토지라는 땅을 독차지한 덕에 경제개발은 미지근했고 결국 계속 낙후된 농업 국가로 남았다. 그러나 스탈린은 자신의 절대 권력으로 귀족 지주들을 숙청하고 토지들을 몰수해 농업집산화를 이루어내면서 막대한 인력과 토지를 고스란히 흡수해 이러한 자산들을 중공업 부문으로도 전환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도 대접을 받았다. 대우가 훨씬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푸짐한 연구비를 타내 여러 최신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로켓 연구가 대표적인데, 현대 로켓의 아버지인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콘스탄틴 치올콥스키]] 같은 경우 러시아 제국 때는 지나치게 공상적인 연구 때문에 학계에서 푸대접을 받았지만, 소련 성립 이후에는 연구의 중요성을 알아본 소련 정부의 적극지원을 받게 되어, 소련 공군사관학교가 생겼을 때 창립 교수가 되었고 장례식도 국장으로 치러졌다. 비록 과학계에도 [[대숙청]]의 칼날이 덮치긴 했으나, 체포 후 길어야 이틀, 심지어는 오전에 체포당해 정오에 처형당한 많은 다른 분야의 인재들과 달리 숙청대상이 된 많은 과학자들이 사형을 면할 수 있었고, 암암리에 지원해준 훨씬 편한 전용 감방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세르게이 일류신]]이나 우주개발의 책임자가 된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대표적인 사례다. 물리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이름인 [[레프 란다우]][* 196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는 서슬퍼렇던 [[대숙청]] 기간에 "스탈린 독재는 히틀러와 다름 없다"고 말했다가 NKVD에 체포되어 반동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그 재능을 아낀 대물리학자였던 [[표트르 카피차]][* 197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가 스탈린에게 "쟤 죽으면 나도 그만두겠음"이라고 직접 위협 편지를 썼고, 다른 위협 따위에는 눈 하나 깜짝 안하던 스탈린이 '''직접''' 베리야에게 명령해 감방에 갇혔던 그를 석방하였다. 소련은 하마터면 천재 물리학자를 잃을 뻔했으나, 스탈린의 과학자 사랑으로 란다우는 목숨을 건졌다. 그리하여 1930년대 소련은 매년 10%가 넘는 경이로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한다. 당시 [[대공황]]으로 전 세계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은 더욱 경이적이었다. 그 결과 [[프랑스]], [[영국]], [[독일]]을 추월하고 1938년에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며 이후 1945년까지 독일과 엎치락뒤치락했다. 혁명과 내전으로 잿더미가 되어 당시 영국 식민지 [[인도제국]] 수준의 경제력을 가졌던 농업국가가 15년 만에 발전된 미국까지 넘보는 공업국가가 된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세계 2~3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기 때문에 소련은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 스탈린 주도의 경제개발은 단순한 총생산 증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소련 경제의 체질이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에 그 중요성에 있다. 더 나아가 스탈린식의 경제개발은 소련의 상하부 구조를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사실 러시아는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18세기 이래로 세계 5강에 꼭 드는 나라였다.[* 미국이 영국의 공업생산을 추월하면서 세계 1위의 총생산 국가가 된 게 1870년대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강대국 중 하나였지, 초강대국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주산업은 농업이었으며, 공업의 비중은 매우 낮았고, 사회는 봉건제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는 후진 농업사회였다. 그리하여 러시아 제국은 그 덩치와 국력을 가졌어도 초강대국으로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러시아는 '''일선 병력 수십 만명에게 쥐어 줄 소총과 탄약조차 부족했고'''[* 이런 문제점은 1차 세계 대전보다 10년 먼저 겪었던 [[러일전쟁]] 때에도 마찬가지였고, 당시 러시아는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먼 극동으로 파견된 러시아 군인들한테 줄 총탄이 무려 2800만 발이나 부족할 만큼 공업 생산력이 취약해서 끝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우월한 공업 생산력을 지닌 [[독일 제국]]에게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러시아의 모든 부분에서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제정시절에는 의무교육도 없었고, [[문맹]]률은 90%에 육박했으며 20세기 들어서도 문맹률이 크게 줄지 않아 러시아 혁명 직전에는 문맹률이 75%에 달했다. 허나 스탈린 집권기간동안 교육기관의 확충으로 문맹율은 1% 미만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광범위한 지식층이 생겨났다. 또한 제정시설 러시아의 과학기술은 유럽본토에 비해서는 2류로 간주되었고, 연구기관이나 교육기관 모두 형편 없었으나, 스탈린 시절 소련의 과학기술은 뿌리를 내리고 일취월장하여 20세기 중반에 가면 미국과 맞먹을 정도로 발달하게 된다. 스탈린 덕으로 소련이 20세기 후반에 미국과 맞장뜰 수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소련은 스탈린 이후 G2로 평가받은 바 있지만, 러시아는 그 이전이나 이후로도 그 위치에 이른 바가 없었다. 스탈린 시절과 그 사후 40년 정도가 러시아가 세계사에서 보여준 최고의 전성기였다. 19세기에 러시아 제국은 나폴레옹을 패퇴시키기는 했지만, 당시 양대 최강대국은 프랑스와 영국이었지, 러시아 제국이 아니었다.] 소련이 독소전쟁의 상흔이 가시기도 전인 1950년대 [[스푸트니크]]와 [[보스토크]]로 우주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스탈린 시절에 키워놓은 중공업과 과학기술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오시프 스탈린이 전개한 공업화 덕분에 1950년대 소련은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인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고,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복지정책이 실행되었다. 특히나 실업률이 많이 낮아져 고용률 면에서 확실한 성과를 거두었다. 히틀러의 침략으로 일어난 [[독소전쟁]]으로 소련은 또다시 잿더미가 되었으나 종전 3년 만에 경제를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그가 사망한 1950년대에도 소련의 GNP 경제성장률은 평균 8%,[* 60년대까지도 소련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나 70년대부터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는데 1970년대 소련의 경제성장률은 3.7%였다. 그래도 소련은 붕괴되기 직전(1990년)에도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았다. 1990년 당시 소련의 1인당 GNP는 $9,300 대였지만 한국의 1인당 GNP는 $5,800대였다. 지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의 반밖에 안되는 러시아를 보면 소련보다 얼마나 몰락했는지 알 수 있다. (이걸 역으로 뒤집어 본다면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를 전환했을 때 부작용이 심각했다는 얘기도 된다.) 덧붙여 저 당시 서방의 국민소득은 1만 달러 ~ 2만 달러였다.] 소련의 국민소득 대비 투자율은 28%로 아주 높은 수준이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도 나중에 국가 주도로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소련과 아시아국들의 성장에는 비슷한 면이 많지만, 아시아국들은 미국이라는 거대시장을 잘 이용한 반면, 소련의 경우에는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것'''이기에 이 시기의 소련의 경제성장은 더더욱 경이적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다. 소련이 해외 시장이 봉쇄된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인구가 있었고 드넓은 땅에서 자원이 쏟아져 나왔다. 또, 소련은 혁명과 내전으로 잿더미가 되기 이전 제정 시절에는 GDP만 따지면 프랑스보다도 더 높은 세계 5위였다. 유럽에 비해 떨어진 것은 사실이나 세계적으로 강대국 임에는 틀림없었다. 아예 식민지로 전락해버린 우리나라와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 또, 내전으로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된 것은 맞지만 원래 역사적으로 그런 쑥대밭 국토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GDP 성장률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2차 대전 이후 1950~60년대의 전세계가 GDP 성장률이 높았던 것은 전후 수습의 탓이 크다.] 이후 신생 국가들의 산업화 모델이 되었다.[* 가령 [[김일성]] 역시 중공업화를 신나게 추진했다. 하지만 김일성의 중공업화 정책은 소련과 달리 실패하고 말았다. 소련의 공업화는 소비재 위주가 아닌 중공업이라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데 북한 같은 작은 나라에서 수출목적으로 많이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수입대체로 자력화 목적인데 그런 생산력 수준으론 경제적 생산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소련-중국간의 갈등과 소련의 붕괴에 따른 석유 수입통로 봉쇄 등이 원인이긴 했다. 하지만 체제 내의 무능으로 동력을 잃은 것도 역시 사실.][* 한국도 [[박정희]]가 [[만주국]]에서 근무하였고 만주국의 경제개발계획도 소련의 스탈린식 경제개발을 본떠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만 한국은 [[한강의 기적|성공적으로 경제개발을 이루었다]]는 차이가 있다.] 1930년대에 스탈린이 진행한 소련의 공업화 정책은 또 다른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1941년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을 당시 [[하르키우|하르코프]]와 같은 서부 지역에 위치한 소련의 주요 군수공장들을 '''통째로 뜯어내어''' 독일군의 공습이 닿지 않는 우랄 산맥으로 성공적으로 이전시켰고 그 덕에 [[우랄바곤자보드|우랄열차공장]]과 마그니토고르스크 제철소와 같이 우랄산맥 인근에 있는 공장들을 가동하여 독일군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에 필요한 탱크나 비행기 등을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물론 1941년 [[일본 제국]]의 [[진주만 공습]] 이후 [[무기대여법]]이라 하여 미국이 소련에게 상당한 물자를 제공한 것도 영향이 있었지만, 소련 경제는 1942년 후반 여섯 달 동안 독일이 그해를 통틀어 얻을 수 있었던 생산 수준에 도달했을 정도로 전쟁 수행에 성공적으로 헌신했고, 그 수치는 주목할만 했는데, 그 반년 동안 소련은 15,000대의 항공기와 13,000대의 탱크를 생산해냈다. 즉 탱크와 항공기 생산에서 엄청난 성과를 올려 독일군의 침략을 상대했던 것이다.[* 스탈린 강철권력 p.714~15를 참조] 독소전쟁 당시 소련의 대량 군수물자 생산은 1930년대 중공업 위주의 공업화가 기반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중일전쟁]] 당시 [[중화민국]]도 비슷하게 [[미얀마]]의 버마 로드를 통해 미국의 무기대여법이라는 지원을 받긴 했지만 중국의 자체 공업 기반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군을 지연시키는 것을 넘어 반격해 섬멸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반면, 스탈린의 소련은 그야말로 총력전 체제를 몸소 실현시키며 그동안 마련한 막대한 군수공업지대를 바탕으로 소련군의 전력을 금방 회복시키고 성장시키면서 결국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거둔 대승리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소련은 스탈린이 이루어낸 신화적인 공업화를 바탕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셈이다. 또한 스탈린 덕분에 항공업도 꽤 많이 성공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피스톤 운동을 하는 엔진의 피스톤 [[프롭기|프로펠러 비행기]]인 [[Li-2]], [[Il-12]], [[Il-14]] 수송기 겸 여객기인 항공기였다. '''당시 스탈린 밀어붙이기식으로 [[5개년 계획#s-2.1|경제개발 및 공업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서기장이었기에 이 피스톤 운동을 하는 항공기들의 도움으로 먼 데까지 편하고 빠르고 안전하게 갈 수 있을 정도로 항공기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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