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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스탈린/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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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과 [[북한]]의 평가 === 한국과 관련되어서는 [[남북분단]]을 야기하고 [[소련군정]]을 통해 북한 정권의 수립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으며[* 특히나 1945년 9월에 38도선 이북에 공산주의를 국체로 한 단독정부를 수립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남북분단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1950년 [[6.25 전쟁]] 때 [[소련]]이 [[북한]]에 밀접적으로 군사지원을 하였고 남침을 지지한 북한 정권 탄생의 장본인이자 [[김일성]], [[마오쩌둥]]과 함께 '''민족 분열의 원흉으로 평가받는다.'''[* 물론 6.25 전쟁에 소련군이 직접 개입하진 않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스탈린의 지시로 일어난 것이라는 의견도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전쟁 요구를 승인'''해준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은 미국과의 전쟁을 우려해서 한때 71번이나 남침하는 것을 기각시키는 등 김일성을 말리기는 했고 개입도 중국과 북한의 징징거림에 어쩔 수 없이 소수의 조종사들을 투입하는 선에서 그친만큼 스탈린보다는 김일성과 모택동의 책임이 더욱 크다. 그러나 이 스탈린 원흉설은 한국에서 좌우 이념 할 것 없이 통용된다.] 그나마 [[대약진운동|전례 없는 국가 단위의 삽질]]로 인한 중국의 발전 저하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이 된 [[마오쩌둥]]과 달리 이쪽은 [[소련]]을 초강대국으로 발전시켜 냉전 체제를 장기화시킨 장본인이기에 객관적으로는 공과가 갈리는 독재자일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여지가 전무하다.[* 묘하게 [[펑더화이]]와 유사한데, 그쪽은 객관적으로는 명장이자 덕장으로 불리나 하필 6.25 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참전하여 북진통일을 가로막은 덕에 한국인들로부터 [[평생까임권]]을 얻어냈다. 물론 덕장인 펑더화이를 이오시프 스탈린같은 극악한 독재자에 비유하는 것은 그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군의 주적론에 나오는 [[6.25 전쟁]] 주역 중에도 당연히 김일성, 마오쩌둥과 함께 포함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린]]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군사정권기 인물들과 유사한 점이 있다. 중공업 위주의 개발독재자로써 절대권력을 쥐고 산업화를 밀어붙였다는 점, 그 와중에 국가의 건국이념[* [[소련]]의 경우 [[공산주의]]를 표방했으나 [[좌파 파시즘]]에 가까운 형태로 왜곡되었고, [[대한민국]]의 경우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비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독재 체제를 오갔다.]을 왜곡하고 인권탄압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모두 그렇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보수주의]] 진영에서 지지세가 강한 [[박정희]]의 경우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업적과 과오, 그리고 그 격차가 뚜렷한 것이 모두 스탈린과 유사한 평가를 받으며,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러시아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현대에는 대체로 [[보수주의]] 진영의 인물들이다. 물론 큰 틀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세세하게 살펴보자면 몇 가지 차이점도 있다. 첫째, 스탈린 시대 소련은 국영기업 위주였고 소련 정부가 세부적인 방향성을 일일히 통제하며 산업화를 이뤘던 반면, 박정희 시대 한국의 산업화는 민간기업이 이끌었고 정부는 각 산업 분야들이 겹치지 않게 큰 틀을 잡아주는 중재자 역할만을 했다. 이러한 박정희의 체제는 [[공산주의]]보다는 [[일본 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박정희가 영향을 받았다는 일본제국(사실상 [[만주국]])의 경제개발 정책 자체가 사실 스탈린의 경제 개발정책을 모방한 것이라, 결론적으로는 박정희의 정책은 스탈린의 영향을 받은 게 맞다.] 둘째, 소련에는 막대한 영토와 자원이 있었고 따라서 내수경제에 중심을 두고 자급자족을 추구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기에 수출중심경제를 방향성으로 삼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제한된 품목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셋째, 두 정부 모두 현대 공화정 국가에서는 드물게 정적에 대한 [[사법살인]]을 일삼으며 절대권력을 구축했지만,[* 사실 이들을 제외하면 사법살인 위주로 정적을 탄압하는 독재국가는 스탈린의 영향을 받은 공산화 초기의 동유럽과 [[이란]], [[이집트]] 등 몇몇 이슬람권 국가 정도밖에 없다.] 민간에 대한 통제는 박정희 시대, 심지어 유신정권에서도 스탈린 시대 소련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온건했고, 실제 인구대비 희생자의 수도 압도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또한 박정희는 일단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독재를 한 케이스라 유신 이전 [[대한민국 제3공화국]]에서는 선거로 당선된 민선 대통령이었지만, 스탈린은 태생부터 독재국가인 [[소련]]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선거를 치른 적이 없다.[* 단, 공정하게 평하자면 적어도 스탈린 집권 중기 이후로는 선거를 했더라도 스탈린이 지지받았을 확률이 매우 높았던 것은 사실이다. 후진국을 20년 만에 세계 제2의 공업대국으로 만들고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 승전한다면 어지간한 민주국가에서도 경쟁자 없이 압도적 지지율로 재선할 테니.] 그럼에도 두 정권이 큰 틀에서 유사한 모양새를 보인 것은 사실이고, [[조희연]] 교수는 [[박정희]]의 체제를 개발동원체제라 평하며, [[오토 폰 비스마르크|비스마르크]] 정권과 스탈린 체제가 박정희 정부와 같은 성격의 체제라고 평가했다. 사실 이러한 특징은 후발주자로 시작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당장 이웃나라들 중 [[대만]]의 [[장제스]] 정권이나 [[중국]]의 [[덩샤오핑]] 정권도 세부적인 정책은 좀 달랐을지언정 역시 비슷하게 평가할 수 있으며, [[일본 제국]]도 [[메이지 유신]] 이후 권위주의 체제 하에 급속한 국가개혁을 거쳐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이끌었다. 이런 류의 독재자들은 근본을 따지고 보면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리고 [[로마 공화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이며, 각론은 시대, 체제, 문화에 따라 다를지언정 "민주공화제 체제에서 초법적 권력을 휘둘러 빠른 개혁을 성취하고, 그에 따르는 민중의 광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절대권력을 유지한다"는 개념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또한 지금도 [[폴 카가메]] 등 [[제3세계]]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대한민국의 좌파, 운동권 내에서도 이오시프 스탈린과 스탈린주의는 별로 중요한 떡밥이 아니다. 애초에 스탈린주의 자체부터 극단적으로 전체주의적이었을 뿐더러 스탈린의 통치 역시 극도로 폭압적이었기에 근본적으로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시작한 운동권과 양립할 수 없다.[* 다만, 일부 운동권이 스탈린과 다를 바 없는 독재정권인 북한에 동정적이거나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서 비판받기도 한다. 다만 이쪽은 북한의 독재체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좌익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북한에 대한 옹호라 조금 결이 다르다. 물론 어느쪽이든 [[북한/인권|현 북한의 인권 실태를 감안하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운동권 자체도 한물간 마당에 스탈린 타령할만큼 한가하지 못하다. 또한 스탈린의 공과를 논할만한 역량을 갖춘 운동권이 소수일 정도로 운동판이 위축되기도 하였고 그런 상황에서 스탈린에 대한 논의를 굳이 하는 운동권은 운동권 내에서도 현실과 괴리된 고담준론을 좋아하는 좌파 오타쿠로 취급되는 것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스탈린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스탈린에 대한 공과에 대해서 긍정하건 부정하건 간에 대부분의 운동 단위들은 스탈린에 대해서 비판적인 접근을 취한다. 그 이유로는 오늘날 소련이 붕괴해버린 점에서 소련의 주요 지도자인 스탈린 역시 비판의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것과 스탈린 시기에 일어난 대규모의 소련 인민의 죽음과 숙청, 경직되어 버린 사회분위기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것의 불가피성의 여부를 떠나서 스탈린의 책임이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완전히 면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탈린시기 소련의 위기의 극복과 소련 생산력의 획기적 전환에 공7과3으로 소련을 반석에 세우는 데 공이 있었다고 평가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과3의 부정적 영향이 소련 붕괴의 원흉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마르크스, 엥겔스까지는 대부분의 운동권 단위들이 공통적으로 따르지만 심지어 레닌을 포함해서 그 후의 공산주의 사상가나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각각의 운동단위들이 다른 스텐스를 가지고 있고 이런 스텐스 차이에 스탈린에 대한 평가 역시 포함되어 있다. 즉 단위마다 그 평가가 다르다는 것이다. 스탈린주의를 표방하는 단위는 전국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와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가 대표적이다. 그렇지 않은 단위들은 아예 관심없거나 레닌에서 딱 끊거나, 아니면 트로츠키를 레닌의 후계자로 간주하고 트로츠키주의 노선을 따른다. 국내에서 나름 규모가 있는 사회주의 단체인 [[노동자 연대]]는 이오시프 스탈린을 반혁명의 화신 혹은 제국주의자로 간주한다. 이는 토니 클리프가 추구한 국가자본주의론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반면에 아고라 출판사와 연관이 있는 볼셰비키 그룹의 경우 트로츠키가 주장한 것 처럼, 스탈린이 타락한 노동자 국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이기는 하나, 관료 계급이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의미다.] 북한에서는 해방자이자 김일성의 남침전쟁을 도와주었던 영웅으로 손꼽혔으며, 김일성을 북한 주석자리에 앉히고 지금의 북한을 세우게 하였던 간접적인 인물로서 남한과 달리 호의적이고 영웅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1940~50년대의 북한에선 집집마다 스탈린의 사진을 걸어놓는 것이 흔했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에 김일성의 1인 우상화가 진행되면서 스탈린의 사진을 걸어놓거나 스탈린의 저서를 잘 읽지 않게 됐다.[* 북한의 국영출판사인 조선로동당 출판사에선 스탈린 선집을 1964년에 출간했다.] 다만 스탈린 사후 이후 지금까지도 경제 개발, 중공업 육성, 독소전쟁 승리 등 스탈린의 성과는 높이 평가받는다. 레닌 사후 스탈린 시절 공업화의 성공과 이를 통한 파시즘의 격퇴 그리고 미국을 위시한 서구 제국주의에 맞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북한의 역사 교과서나 여러 서적들에서도 이러한 점들을 강조한다. 반면에 스탈린의 지도체제에 대해 한계가 있었다고도 지적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주체사상에서 내세우는 소위 수령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스탈린이 수령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기에 흐루쇼프와 같은 수정주의자들이 생겨났고, 결국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해체로 이어졌다 평가하는 것.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오시프 스탈린, version=2238, uuid=a964f177-ce37-4495-9a8d-3e707e8c22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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