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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르 레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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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 == * 2018년 "러시아의 위대한 이름들"(Великие имена России)[* 2018년 10월 러시아 정부가 시민을 대상으로 주최한 공모전으로, 러시아에 위치한 47개의 공항에 붙일 이름을 여론 조사를 통해 공모하였다.] 프로젝트 당시 옴스크 국제공항에 붙일 이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결국 후보에서는 떨어졌지만, 옴스크에서 15km 떨어진 소규모 사설 비행장에 그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2021년 코무니즘 앨범 "Граница счастья"에는 이를 언급한 듯한 "[[https://www.youtube.com/watch?v=_j2OfjPOUtM|레토프 공항(Летов-аэропорт)]]"이란 노래가 있다. --정작 가사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함정--] * [[마약]]을 복용했다는 말이 많지만 LSD를 제외한 마약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단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그러하였고, 그렇고, 그럴 것처럼-- 알코올은 중독 소리를 들을 정도로 즐겼다. > (Много вопросов о твоем отношении к наркотикам. Не хочешь — не отвечай.) > (마약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원하지 않는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 Да могу ответить. Я не наркоман, к наркоманам отношусь плохо, сразу могу сказать, к торчкам, что называется. Есть два принципа приема наркотиков. Когда человек делает это для обретения силы в определенные моменты, и когда хочет избежать реальности. Последние обычно умирают. Я человек из области живчиков, мне нравится жить, мне нравятся живые. Легализация? Легализируй или нет — все равно это существеут. Кому надо — все все находят. А вот, например, ЛСД — это вообще не наркотик. Это очень опасная штука, которая носит психологический характер. Мы иногда употребляем. Я считаю, что это полезно. Но дураку ЛСД есть нельзя. Очень сильно расширяется сознание на какое-то время, используется для того, чтобы понять — правильно ли ты двигаешься, или нет. Правильно ли ты смотришь на жизнь или в чем-то сильно лажанулся. Обычно у человека используется 2-4 процента мозга. Считается, что под ЛСД работает 16 процентов. Детям и дуракам, разумеется, этого давать нельзя. Можно с ума сойти, действительно. > 네,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마약 중독자가 아니고, 마약 중독자에 부정적인 입장이며, 약쟁이에게는 약쟁이라고 바로 말할 수 있습니다. 마약 복용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떠한 순간에 힘을 얻고 싶을 때, 그리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그렇게 합니다. 후자는 보통 죽습니다. 나는 활발한 사람들의 지역에서 온 사람이며, 사는 것을 좋아하고, 살아있는 존재들을 좋아합니다. 합법화? 합법화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마약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누군가 필요한 게 있다면,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LSD는 마약이 전혀 아닙니다. 이것은 정신적인 성질을 지닌 매우 위험한 물건입니다. 우리는 가끔 그것을 사용합니다. 나는 이것이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보는 LSD를 먹으면 안 됩니다. 의식은 어느 순간 강하게 확장되어, 당신이 올바르게 움직이고 있는지 여부를 이해하는 데 사용됩니다. 당신은 인생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뭔가 심각하게 망가져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사람은 뇌의 2~4%를 사용합니다. LSD 사용 시에는 16%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어린이와 바보에게는 줄 수 없습니다. 아마 정말로, 미쳐버릴 수도 있습니다. > ---- > 인터뷰 "Егор Летов. как он есть" 중에서 ([[하리코프]], 1998년 12월 10일, 류보피 파르펜티예바 기록) [[https://web.archive.org/web/20200713204931/https://www.gr-oborona.ru/pub/pub/1056114906.html|출처]][* 인터뷰의 해당 부분은 러시아 측 웹에서도 찾기 어려운 편인데,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yolvs1989&logNo=223414082280&navType=by|로스콤나드조르(러시아 정보통신감독청)에서 마약 사용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검열해 버렸기 때문이다.]]] * 세르게이 레토프와 함께 [[민족 볼셰비즘]] 활동으로 인해 [[라트비아]]의 [[출입국 금지|입국 금지]] 명단에 올라와 있어 2000년 공연 등의 이유로 라트비아에 입국하려다가 세관에서 쫓겨났다.[* 라트비아를 위시한 발트 3국은 소련 구성국 체제를 괴뢰 정권으로 간주하여 적법한 정권으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소련 점령 시절에 대해 이를 갈고 있고, 오늘날까지도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반러]] 감정이 강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제일주의를 외치는 민족 볼셰비즘의 창설자 중 하나였던 레토프의 입국이 거부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에스토니아]] 및 [[리투아니아]]의 입국 금지 명단에도 올라와 있을 가능성이 높긴 한데 확인되지는 않았다.] 당시 레토프 본인의 말에 의하면 처음엔 입국이 허가되는가 했더니 20분 만에 관리가 찾아와서 "[[러시아 파시즘]]"을 이유로 세르게이 및 예고르 레토프 형제의 라트비아 입국은 금지되어 있으며, 이는 '''2099년까지''' 유효하다고 통고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4489CB4s9M|당시 인터뷰]] * [[http://grob-hroniki.org/article/2021/art_2021-09-10a.html|민방위 앨범 커버에 대한 글]] * 레토프 노래들의 특징 중 하나는 "매우 많은 테이크"다. 레토프는 같은 노래를 여러 테이크로 제작했으며 이들은 특별한 고지 없이 여러 초판과 재판 앨범들, 컴필레이션 앨범들과 미공개 작업물들 사이에 뒤죽박죽 섞여 있다.[* 특히 민방위 시절 연속적으로 발매한 1988-89년 사이 앨범들은 들어보면 같은 노래를 서로 다른 테이크로 수록해놓은 경우가 많다. "그렇게 강철은 단련되었다", "전투 감각", "모든 것은 계획대로", "구토" 등이 그 예시로 트랙리스트를 보면 적지 않는 노래들이 겹치는데 다들 들어보면 어딘가 약간씩 다르다. 보컬 녹음이 다르다던가, 악기 반주가 약간씩 다르다던가, 시작과 끝부분이 몇 초씩 더해지거나 빠진다던가 등등.]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 Очень богатыми на раритеты оказались сессии альбома «Прыг-скок». Так, помимо дублей, вошедших в переиздание, известно также ещё по одному дублю песен «Про дурачка» и «Иваново детство» (входили в «Прыг-скок» в издании ХОР, BSA 1994 года, Moon Records «чёрной серии» и кассетное издание Звукореки / BSA), «Про червячков» (входил в «Прыг-скок» в издании BSA 1993 года, винил Золотой Долины и магнитоальбом), ещё два дубля «Песенки о святости, мыше и камыше» (один входил в «Прыг-скок» в издании BSA 1993 года, винил Золотой Долины и магнитоальбом, а другой — только в магнитофонный сборник «Попс 1984–90»). Еще один ауттейк из этих сессий никогда не входил в «Прыг-скок» — это заговор на смерть под названием «Песенка, сулящая несчастье», который можно услышать в магнитофонном сборнике «Хуй через плечо». > ---- > 특히 "Прыг-скок" 앨범 작업 당시 수많은 희귀본들이 녹음되었다. 재판본[* 다음 앨범인 "Сто лет одиночества" 앨범의 비르고로트 2016년 재판본을 말한다. 이 재판본은 보너스 트랙으로 "Прыг-скок" 세션 당시 녹음된 여러 테이크가 들어 있다. (번역자 주)]에 포함된 또 다른 테이크와 함께 "Про дурачка" 및 "Иваново детство" 노래의 또 다른 테이크가 존재하며(ХОР 음반사, 1994년판 BSA 음반사, Moon Records 음반사의 일명 "검은 시리즈" 판본 및 Звукореки / BSA 음반사의 카세트 판본에 포함) "Про червячков"(1993년판 BSA 음반사, Золотой Долины 음반사의 LP 및 기타 마그니티즈다트[* 마그니티즈다트는 불법복제 카세트 빽판을 말한다. (번역자 주)]에 포함) 또한 마찬가지이다. "Песенки о святости, мыше и камыше"의 경우 서로 다른 두 테이크가 더 존재한다. (하나는 1993년판 BSA 음반사 및 Золотой Долины 음반사의 LP 및 기타 마그니티즈다트에 포함되었으며, 다른 하나는 컴필레이션 앨범인 "Попс 1984–90"에 포함) 이 세션 당시 녹음된 테이크 중 "Прыг-скок" 앨범에 수록되지 않는 노래로 "Песенка, сулящая несчастье"라는 제목을 단 테이크가 있으며, 이 테이크는 컴필레이션 앨범인 "Хуй через плечо"에서 들어볼 수 있다.[* 출처: [[http://grob-hroniki.org/article/2018/art_2018-02-01a.html]] ] * 이런 문제는 특히 자파드나 포세프 시절부터 초창기 그라지단스카야 오보로나 시절 작업본에서 그 절정을 찍는다. "시베리아 펑크 지망생 불순분자들의 아마추어 연주"는 당시만 해도 아카이빙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유실된 것도 몇 있고 당시 소련 상황상 질 좋은 녹음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상태도 좋지 않다. 여기에 이들 대다수는 알 수 없는 경로로 유출되어, 제대로 분류되지 않은 채 저질 카세트를 통해 마구잡이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История омского панка, The Best of G.O., The Best of ПОСЕВ, Поносные звучания 등 여럿 혼재하고 있는데, 비공식 컴필레이션도 있고 실제 데모 앨범이 유출된 경우도 있다. 여기에 팬들이 마그니티즈다트(카세트 빽판)로 유통된 것도 많고, 여러 음반사에서 불법으로 찍어내 팔아치운 것들도 많다. "썩어빠진 젊은이"나 "낙천주이"같은 초기 앨범들을 보면 ХОР, Мистерия Звука, Выргород, UR-Realist, Moon Records 등등 음반사마다 트랙리스트가 다르거나, 트랙리스트는 같아도 각기 다른 트랙을 쓰는 경우(예를 들어 이 판본은 1985년 녹음본인데 저 판본은 1986년 녹음본이라던가)가 흔하다.] 표지갈이가 상당히 심한 편이다.[* 이 카세트판들은 현대 들어서는 디지털 파일로 처리되어 VK나 얀덱스, 유튜브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다만 표지갈이 문제는 여전하다. 팬들의 노력을 통해 이 노래가 언제 어디서 녹음된 건지, 어떤 앨범에 수록된 건지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그럼에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http://grob-hroniki.org/article/2020/art_2020-11-11a.html|이에 대한 장문의 글(러시아어)]] 여기서 굳이 정본을 찾는다면, 2000년대 초반 레토프와 추마코바가 대대적으로 리마스터링하여 발매한 Выргород(비르고로트) 음반사 버전이 "정본"에 가까울 것이다. [br] 2022년 1월, 나탈리야 추마코바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레토프의 아카이브를 재정리하여 포세프 및 극초창기 음악들을 재발매하겠다고 발표했다. [[https://vk.com/grobfilm?w=wall-62224383_5864|VK 게시글]] 추마코바는 이를 2022년 내에 공개하겠다고 말했지만, 아카이브 자체의 문제[* 보관 상태도 좋지 않고, 제대로 라벨도 붙지 않은 여러 카세트와 릴테이프가 섞여 있는 상태라 이 녹음이 언제 녹음된 건지 어느 앨범에서 가져온 건지 파악이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덤으로 레토프는 생전 추마코바 등 타인이 이 아카이브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고 하기 때문에 파악된 게 많지 않다.]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현 러시아 시국]]상 실재 공개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되었다. 실제로 2022년에는 발매되지 못했고, 2023년 비르고로트를 통해 당시 작업물들 중 일부가 포세프의 명의로 발매되었다.[* 레토프의 생일에 맞춰 9월 10일에 발매되었다. ~~앨범에 적힌 감사의 말에 보면 "나타샤, 우리 포세프 앨범 어디 있어요?"라고 재촉한 사람들에게도 바친다는 재미난 말이 들어 있다~~ ] * 여러 노래에서 [[북한]]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 Я купил журнал Корея, там тоже хорошо (나 "조선" 紙를 한 부 샀다, 그 곳도 마찬가지로 좋다)[* 여기서 "조선(Корея)"은 한국을 말하는 게 아니라 북한이 러시아에서 발행하는 체제 선전용 잡지의 제목이다.] > Там товарищ Ким Ир Сен, там тоже что у нас, (그 곳엔 [[김일성]] 동지가 있다, 그 곳 사람들도 우리와 다를 것 없이 살아간다) > Я уверен что у них тоже самое, и всё идёт по плану (그들도 우리처럼 살고 있다고 나는 믿고, 모든 건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다) > '''- Всё идёт по плану (모든 것은 계획대로, 1988)'''[* 다만 레토프는 해당 노래에 대해서 "평범한 소련 인민이 죽을 듯 지친 체 일터에서 집에 돌아와 (프로파간다에 점령된) TV를 보면서 쉬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 노래를 썼다고 밝혔기 때문에 단순히 북한 찬양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체제선전용 잡지인 "조선"만 보고 저 "[[북한|시베르나야 까레야]]"도 우리처럼 살고 있다고 지레짐작하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저 노래의 가사 자체가 "우리 레닌 짱짱 페레스트로이카 우왕굳 공산주의 만세" 식으로 서술되어 있어 표면만 보면 착각하기 쉽다. 참고로 레토프는 당시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이 그랬듯 페레스트로이카를 비판의 대상으로 보았고 당시까지는 레닌이나 공산주의도 타도의 대상으로 보았다.] > ---- > Цель оправдывает средства, давай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하나니, 어서) > Убивай, насилуй, клевещи, предавай (죽여라, 강간하라, 비방하라, 배신하라) > Ради светлого, светлого, светлого, светлого, светлого здания идей Чучхе (밝디밝게 빛나는 [[주체사상]]의 건물을 위하여) > '''- Харакири (할복, 1988)'''[* [[블러]]의 [[Song 2]]보다 몇 년 앞서 나왔음에도 비슷한 구조를 가진 탓에 러시아 웹에서는 "서구가 우리의 음악을 베꼈다"고 간간히 말이 나오는 곡이다. 물론 농담이다. 블러가 이 시베리아 깡촌 밴드를 알았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하니...][* 1993년 이후에는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공연을 할 때면 저 "주체사상의 건물"을 "민주주의의 성당"(храма демократии)으로 바꿔 불렀다.] > ---- > Идеями Чучхе да насыщаются народы (인민들은 [[주체사상]]에 배불리 자라났다) > Пронзительно взывая героическим сознаньем (영웅적인 의식에 통찰력 있게 호소하며) > В далёкий Пхеньян наши помыслы струятся (저 머나먼 평양으로 우리의 사상이 퍼져나간다) > Там наш великий вождь — сын прославленной Отчизны (그곳에 우리의 위대한 수령님이, 명성 높은 조국의 아드님이 계신다) > Навеки все мы все — Паломники в Корею (언제까지나 우리 모두는 조선으로 향하는 순례자이다) > '''- Паломники в Корею (조선으로 향하는 순례자, 1989)'''[* 이 노래도 약간 이론의 여지가 있는 것이, 마지막에는 "Восславим же все вместе Михаила Горбачёва"(우리 모두 다같이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찬양하자)라는 가사가 나오고 그 뒤로 "[[야루젤스키]] 만세", "[[카스트로]] 만세" 등 공산권 [[독재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레토프를 위시한 당시 펑크 씬은 고르바초프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저 노래도 약간의 야유와 반어법을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즈볼 활동을 하면서 공산주의에 심취한 모습을 보이던 90년대 공연 세트리스트를 보면 미국에 맞서 [[6.25 전쟁]]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을 기리는 "Песня про китайского народного добровольца"(젊은 중국 인민군의 노래)가 자주 나타나는데 이 노래는 북한의 시인이었던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B%AA%85%EC%95%94|조령출(조명암)]]이 지은 동명의 시의 러시아어 번역본에 멜로디만 덧붙인 것이다.[* 사실 이 노래를 잘 뜯어 보면 딱히 북한 만세 같은 메시지는 나오지 않으며 우리 우방 중국 만세 미국 꺼져라 같은 메시지가 나올 뿐이다. 여담으로 [[반미]] 코드가 러시아 팬들의 취향을 직격한 건지 이 노래는 현재도 많은 러시아 팬들 사이에서 인기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레토프 본인도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는 아주 자주 부른 노래이기도 하다.][* 레토프는 [[한국어]]([[대한민국 표준어|표준어]]든 [[문화어]]든)를 구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디서 이 북한 시의 러시아어 번역본을 구했는지는 미스테리다. 민방위 공식 사이트에는 레토프가 부른 거의 대다수의 노래 가사를 올려 두었는데 이 노래의 경우 "Тё Рен Чур"의 가사를 기반으로 하였다고 올려 두었기 때문에 한동안 러시아 웹에서는 이 "툐 렌 추르"가 누구냐는 팬들의 질문이 종종 등장하곤 했다.] [br][br]레토프의 이러한 성향에 대해 약간의 변론(?)을 해 주자면 그가 활동하던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막나가는 실상이 현재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보니 북한을 "굶어 죽어라도 마이웨이를 시전하는 소비에트적(?) 미친놈들에 대한 로망"이 담긴 시선에 입각해 호의적으로 바라보던 것으로 추정된다. 레토프는 2008년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북한의 폭압적 진실을 잘 알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의 행실을 고려해 보았을 때 그가 2010년대 이후까지 살아 있었다면 북한을 더 이상 호의적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장폴 사르트르]]가 [[마오이즘]]과 [[남침유도설]]을 옹호하고 [[존 레논]]이 [[마오쩌둥]]을 긍정적으로 보았던 사례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된다. * 형인 세르게이 레토프는 현재 러시아에서 유명 색소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원래는 항공공학 분야를 전공하였고 [[부란]] 우주왕복선 개발에도 참여한 적 있는 우수한 재원이라고 한다. 현재 레토프의 미망인 나탈리야 추마코바와는 여러 개인적 문제로 인해 서로 사이가 나쁘다. * 특별히 믿는 [[종교]]는 없었으나 많은 러시아인들이 그러하듯 [[정교회]] 신앙에 가까웠고, 실제로 [[세례]]를 받을 생각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받지는 않았다. * 초기 가사만 보면 상상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상당한 인텔리였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상당한 양의 장서가 있고 [[니콜라이 고골]]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도스토옙스키는 젊은 시절 옴스크에서 유배 생활을 보낸 적이 있다. 실제로 그의 가사를 분석해 보면 수많은 소설, 영화, 시에 대한 레퍼런스가 가득하다. * 생전 고양이와 선인장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레토프는 배지, 우표, 동전 등을 수집하는 게 취미였으며 상당한 규모의 [[선인장]] 컬렉션 또한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곡 중에는 자신의 죽은 고양이에게 바치는 노래[* "과다복용(Передозировка)", 1992년 앨범 '백 년 간의 고독(Сто лет одиночества)' 수록. [[https://www.youtube.com/watch?v=YGfvzvRueeY|한국어 자막 영상]] ]도 있다. 여담으로 레토프의 증언에 따르면 본인이 기르던 고양이들은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이]]를 잘 먹는(...) 특이한 식성을 보였다고 한다. * 축구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고 죽기 몇 년 전에는 [[로만 아브라모비치]] 때문에 [[첼시 FC|첼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사업 역사상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한 건 처음 봤다는 게 그 이유다. 그의 유일한 법적 배우자 나탈리야 추마코바도 그의 축구에 대한 애정을 공유했는데, 그녀의 최애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고 한다. * 원래 이름은 이고리지만 레토프의 부친에 따르면 이름이 너무 평범해 보인다는 이유로(그리고 이름을 가능한 한 가장 바보같이 짓는다는 이유로) "뒤진 예고르(Егор Дохлый)"라는 예명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후일[* 최소한 1985년 이후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Дохлый"는 빠지고 예고르라는 이름만 남았다. * 아버지 표도르 레토프는 전직 군인으로[* 예고르가 자신의 밴드 이름을 "그라지단스카야 오보로나(민방위)"라고 붙였을 때 부친은 예고르에게 "지금 날 놀리기 위해 그런 이름을 지은 거냐"고 물었고 예고르는 "몇몇 사회적 밴드의 사회적 보호"를 의미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은 인터뷰에서 이를 회고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놀리려는 의도 또한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붉은 군대 합창단]]에서 잠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으며, 형 세르게이 레토프는 유명 재즈 색소포니스트다. 부친의 회고에 따르면 예고르의 첫 베이스 기타는 세르게이가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 또 다른 시베리아의 여성 가수 [[얀카 댜길레바]]와 80년대 동거했으며 두 사람의 유명세로 인해 예고르는 얀카를 가장 사랑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표도르 레토프의 회고에 따르면 둘의 관계가 그렇게 좋기만 한 건 아니었으며[* 두 사람은 서로를 남편/아내라고 부르기까지 했지만 80년대 말에 헤어졌는데 히피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둘은 이에 대해 (히피들처럼) 관계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얀카는 1991년에 사망했는데(공식 원인은 실수로 강에 빠져 익사했다는 것이지만 자살설과 타살설이 존재하며 주변 지인들은 자살설을 더 신뢰하는 편) 장례식 당시 레토프는 그녀의 죽음이 긍정적인 면도 있으니("жизнеутверждающая"라는 표현을 사용) 울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했으며 자신과 얀카 사이의 편지를 모조리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고르는 장례식 날 밤 슬픔을 못 이기고 자신의 팔에 크게 자해를 했다고 한다.] 오히려 당시 예고르가 가장 좋아하던 여자는 얀카의 친구이자 가수였던 안나 '뉴리치' 볼코바(Анна "Нюрыч" Волкова)였다고 한다. 둘은 90년대까지 동거했으나 좋지 않게 헤어졌고[* 부친의 회고에 따르면 둘이 언젠가 모스크바에 갔을 때 다른 여자 하나가 레토프에게 집적거린다는 이유로 볼코바가 그 여자를 때렸고 이에 레토프가 볼코바를 멍이 들 정도로 때렸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 일 주일 뒤에 볼코바하고 완전히 헤어졌다고 한다.] 레토프의 유일한 법적 배우자는 그라지단스카야 오보로나의 베이시스트이기도 했던 나탈리야 추마코바(Наталья Чумакова)로[* 얀카의 장례식에서도 둘이 만났다는 기록이 있어 이 둘의 관계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담으로 둘 다 알코올 중독 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둘의 관계는 레토프가 사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여기까지 작성된 내용은 [[https://www.omsk.kp.ru/daily/26279/3157577/#:~:text=%D0%9B%D0%B5%D1%82%D0%BE%D0%B2%20%D0%BD%D0%B0%D1%87%D0%B0%D0%BB%20%D1%81%D0%BE%20%D0%B2%D0%BD%D0%B5%D1%88%D0%BD%D0%B5%D0%B3%D0%BE%20%D0%B2%D0%B8%D0%B4%D0%B0,%D1%81%D1%87%D0%B8%D1%82%D0%B0%D0%BB%20%D0%B4%D1%83%D1%80%D0%B0%D1%86%D0%BA%D0%B8%D0%BC%2C%20%D0%BF%D0%BE%D1%82%D0%BE%D0%BC%D1%83%20%D0%B8%20%D0%B2%D1%8B%D0%B1%D1%80%D0%B0%D0%BB.&text=%2D%20%D0%9F%D0%BE%D1%81%D1%82%D0%B5%D0%BF%D0%B5%D0%BD%D0%BD%D0%BE%20%C2%AB%D0%94%D0%BE%D1%85%D0%BB%D1%8B%D0%B9%C2%BB%20%D0%BE%D1%82%D0%B2%D0%B0%D0%BB%D0%B8%D0%BB%D0%BE%D1%81%D1%8C%2C%20%D0%B0%20%D0%95%D0%B3%D0%BE%D1%80%20%D0%BE%D1%81%D1%82%D0%B0%D0%BB%D1%81%D1%8F.|표도르 레토프를 인터뷰한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 기사]]를 참조함.] * 2000년대 이전 라이브에서는 [[https://youtu.be/lIxE1PgXSLk?t=87|이 영상]][* 노래는 '소총은 축제요(Винтовка - это праздник)']같이 춤을 추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 춤이지 얼핏 봐서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허우적거림(...)이다. 러시아인들 입장에서도 웃긴 건지[* 참고로 해당 영상의 가장 위에 올라와 있는 댓글 "Охеренный танец)"는 'ㅈ나 죽여주는 춤이네 ㅋ'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 웹에서 문장이나 단어 뒤에 붙는 )는 한국어의 ㅋ나 영어의 :)와 유사한 의미이다.] 유튜브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DxzBpabLmus|이 영상 같은]] 패러디 영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영상의 원본은 1988년 옴스크 시락(СыРок) 공연인데, 이 장면이 원체 인상적이라(...) 레토프 관련 밈 영상에 단골로 등장한다.] 사실 춤 정도면 양반이고, 원체 독특하고 똘끼넘치던 양반인지라 [[https://www.youtube.com/watch?v=a_oVRXLAZNw|꽐라가 된 채]] [[https://www.youtube.com/watch?v=VghCTB3sRXA|공연을 강행하는 등]][* 두 클립 모두 1999년 [[이젭스크]] 공연의 일부로, ~~중간중간 술을 마셔대며~~ 만취한 채 공연을 강행하였다. ~~한국어 자막은 무시해라~~ ] 전위적 행동을 자주 선보였으며, 팬들도 그에 못지 않게 똘끼가 넘쳐 서로 술마시고 패싸움을 벌이거나 무대에 난입해 대신 노래를 부르거나 경비원들과 레토프를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다 구타하는 등 기행을 선보이는 걸로 유명했다.[* 사실 이런 팬들의 [[양아치]]스러운 행위는 90년대 많은 러시아 밴드들이 겪던 문제였다. 당시 러시아의 정치/사회/경제적 상황은 막장을 달려가고 있었고, [[훌리건]]들은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공연장에 가는 일이 빈번했다. 이런 막장 환경 속에서 많은 음악가들은 음악을 그만두거나 해외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 [[크루이즈]]의 발레리 가이나, 마스테르의 안드레이 볼샤코프, 알파의 세르게이 사리체프 등이 그 예시.][* 저런 기행만 보면 왜 저리 저 미치광이가 인기를 끌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저래 보여도 레토프의 가사와 음악은 대학교에서 연구 강좌가 개설될 정도로 철학적/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한가득 내포하고 있으며 (레토프가 고골과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즐겨 읽던 인텔리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실제 공연 참석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또라이스러운 행실'을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발산해 관객들마저 광기로 물들게 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xEsizUhl_c|1998년 5월 모스크바 공연 영상. 파도마냥 무대로 향해 뛰어들려고 시도하는 관중과 이들을 잡아 내팽개치듯 던져버리는 가드들을 주목. 결국 막판에 가면 레토프가 크라우드 서핑을 시전하고, 누가 윗옷을 가져가 버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NrznubcOuIc|여러 공연에서 목격된 "샤먼 예고르와 미치광이 추종자들" 모음집]] * 유명세와 여러 '독특한' 가사와 공연 및 생애 등으로 러시아 웹에서는 [[심영(야인시대)|심영]] 비스무리한 합성물 주제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자면 [[https://www.youtube.com/watch?v=ozcy6c7TwXw|이 영상]][* 2004년 곡 "죽여라(Убивать)"의 후렴 부분만 가져와 붙여넣기 한 것. 참고로 해당 노래는 흑백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서로 배척하고 죽이는 인류에 대한 노래다.(Переключить на чёрно-белый режим - и убивать!)]이 있다. 2018년에 등장하여 한때 소소하게 유행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ddhGKqFpPY4|이런 것도 있다. AI 기술을 이용해 목소리를 추출해 낸 것.]][* 영상 자료는 위에서 언급된 1999년 [[이젭스크]] 공연에서 가져왔다.] * 1980년대 중후반에는 반삭 모히칸 스타일로 공연을 하는 일이 잦았고, 밴드 피크 클락손(пик клаксон)[* 예브게니 및 올렉 리셴코 형제의 2인 밴드. 레토프도 같이 활동했으나, 주로 스튜디오 앨범 작업 시에만 같이 활동했으며 철저히 프로듀싱 및 드럼 부분에 한정되었다. 레토프는 특히 80년대 많은 음악가들과 협업했으나 이들의 작업물에 자신의 당시 음악 스타일을 많이 도입했는데(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얀카 댜길레바]]의 작업물) 리셴코 형제의 피크 클락손 작업에 있어서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과 함께 아돌프 기틀레르(адольф гитлер) 프로젝트를 같이 하던 시절에는 무려 고스 스타일의 메이크업을 하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이 시절의 검은 안경과 데님 자켓으로 대표되는 펑크 스타일의 복장은 80년대 예고르 레토프를 상징하는 스타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검은 안경+데님 자켓 코디는 1989년 2월 26일 하리코프에 위치한 문화궁전 "헴스"(ДК "ХЭМЗ", Харьков)에서 있었던 합동 공연 "[[https://www.youtube.com/watch?v=o7xP5lSeT2Y|스탈리니즘에 반대하는 락]]"(Фестиваль «Рок против сталинизма»)에서 마지막으로 선보였고 이후 이 차림으로 공연에 나오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사실 민방위는 이 공연에 초청받지는 않았는데, 공연이 끝난 뒤 갑자기 튀어나와서 15분 동안 공연을 선보였고 청중들은 미쳐 날뛰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공연의 마지막 타자였던 락 밴드 "라즈니에 류디"(Разные люди)"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자신들이 무대를 마치고 들어갔다가 다시 등장해서 앙코르 공연을 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민방위가 등장해서 15분 가까이 연주를 했다고.][br] 90년대에는 스타일이 좀 '얌전해져서' 단정한 가죽 자켓 차림과 함께 종종 뿔테 안경을 썼고, 이 때부터 머리를 장발로 기르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급속한 노화와 함께 머리칼도 마녀마냥 부스스하게 변했고, 사이키델릭한 무늬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즐겨입었다.[br]이 장발에 관련된 아이러니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당시 예고르는 반옐친 편에 가담하였고, 시위와 가두행진에도 여러 번 참가하였다. 옐친 측의 유혈 진압이 시작되자 형 세르게이 레토프는 예고르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고르는 진압이 본격화되기 하루 전 모스크바에서 옴스크로 가버렸기에 목숨을 건졌다. 옴스크로 간 이유에 대해 레토프는 옴스크에서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예고르 사후 세르게이는 한 인터뷰에서 가두행진 당시 몇몇 노파들이 장발의 예고르에게 "이 히피족야, 어긴 너희 같은 놈들이 있을 곳이 아니야, 썩 꺼져" 같은 말을 던졌고, 이 '모욕'이 레토프가 모스크바를 떠난 것에 영향을 미쳤다고 증언한 바 있다. * [[레토]] 감독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영화 '페트로프의 감기'에 레토프의 곡들이 대거 삽입되었다. 주로 오피즈데네프시니예 시절 작업물들. * [[포스트락 마이너 갤러리]]에 이 사람의 노래를 찾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노래를 구하게 된 경로[* 글쓴이의 증언에 따르면 2000년대 [[부산항]] 근처에서 습득한 카세트 테이프에서 알게 된 노래라고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러시아인들이 자주 오가는 곳이다 보니 놀랄 일은 아니다. 음질이 상당히 열화되었지만 샤잠 등으로 검색할 수 있을 정도로는 남아 있었다.]가 상당히 특이하여 잠시 관심을 끈 일이 있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ostrockgallery&no=834552&page=1|#]][* 해당 노래는 예고르 이 오피즈데네프시니예 명의로 발표된 О отшествии преподобнаго в пустыню от славы человеческия(공허에서 인간의 영광을 향한 성자의 떠남에 대하여)로 앨범 Сто лет одиночества(1993)에 수록되었다. 글쓴이의 증언에 따르면 카세트에 "CAO"라는 문자열이 적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СЛО(__С__то __Л__ет __О__диночества)일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글자 엘([[Л]])은 필기체 등에서 [[그리스 문자]] 람다([[Λ]])처럼 적기도 해서 [[키릴 문자]]에 대해 지식이 없던 업로더가 반쯤 지워진 글자 A로 착각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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