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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프 주가슈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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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오빠에게는 공명심도 권력욕도 없었고, 거친 면도 고집 센 면도 없었다. 그는 또 내면적인 모순이나 외향의 분열과도 인연이 없었다. 또 비교적 빛나는 인연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는 조심스럽고 가식이 없는 성격이고 대단히 근면하며 실제로 일도 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 그 조용한 태도는 사람을 절로 매료시켰다. >---- >이복동생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의 회고 [[소련]]의 군인이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장남. [[독소전쟁]]에 [[소련 육군]] 포병중위로 참전하였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스탈린의 장남이지만, 평생 아버지와 갈등과 반목이 매우 심했다. 스탈린은 야코프가 어린 시절 그를 거의 방치하기도 하였고, 그런 탓에 야코프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반항심이 심했다. 이후 새어머니와 살게 되면서 새어머니와 이복 동생들에게 차별당하자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더욱 심해졌고, 결국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그런 아들에게 제대로 총도 쏠 줄 못해 죽지도 못한 놈이라고 비웃었다. 부자간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마침내 스탈린은 부자관계의 단절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런 탓에 바실리 '''스탈린'''이라고 불린 동생과 달리 스탈린이라는 성을 쓰도록 허가받지 못했고[* 정확히 말하자면 스탈린은 자신의 성을 아들딸들이 쓰도록 허락한 적이 없다. 사실 스탈린은 원래 가명에서 시작된 이름인 데다 '스탈린'이라는 성씨가 소련 전체의 권력을 상징하는 이름이라며 바실리가 스탈린이라는 성씨를 쓰는 것을 질책하였다. 바실리가 그런 걸 다 씹고 다니는 망나니였다는 게, 그리고 천하의 이오시프 스탈린도 아들 앞에서는 약해지는 여느 아버지들과 똑같은 아버지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스탈린이 조지아에서 쓰던 성인 주가슈빌리를 써야 했다. 이복동생 바실리가 소련군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불과 26세의 나이에 공군 [[중장]]으로 승진하여 공군에서 가장 요직인 모스크바 군관구 공군 사령관에 임명된 반면 야코프는 바실리보다 14살이나 많은데도 초급 임관 장교의 계급인 중위에 불과했다. 게다가 바실리는 실제로 전선에 투입되지 않고 후방에만 머물면서도 26세에 군최고위 장성이 된 반면, 야코프는 소련 지휘부가 그를 후방으로 전근시키려 했지만 스탈린은 이를 막고 야코프를 최전선에 투입시켰다. 결국 격전이 벌어진 [[스몰렌스크 전투(1941)|스몰렌스크 전투]]에서 그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후에도 스탈린은 그를 적극적으로 구조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고, 독일의 포로교환 협상 제의에도 응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사망한 후에 스탈린은 야코프의 아내를 의심하여 야코프의 아내와 자녀들을 구금하기도 했다. 배다른 동생 바실리가 아버지의 권력을 믿고 망나니 같은 짓을 일삼다가 스탈린 사후 비참한 삶을 살았던 것에 비해 야코프는 훨씬 불우한 환경을 겪었지만 난잡한 여성 문제를 제외하면 동생에 비해서 큰 사고는 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나은 평판 혹은 동정을 얻고 있다.[* 죽은 자신의 아내가 생각나 첫째인 야코프를 외면하던 스탈린도 야코프가 성실하게 싸우다 전쟁포로로 잡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씁쓸한 말투로 자신의 측근들에게 야코프의 근면함을 칭찬하기도 했다.] 다만, 바실리가 워낙 개차반 같은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단지 반대급부로 야코프는 비교적 훌륭한 인성을 가졌다고 치켜세우는 것은 미화에 가깝다. 야코프 역시 제어불가에 가까운 막장 행동을 많이 했던 건 사실이었으므로 스탈린은 바실리보다 야코프가 훨씬 심한 막장, 망나니, 강도 같은 놈이라고 비난했다. 야코프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반항심이 워낙 심한 나머지 그를 엘리트 권력자로 키우기 위한 아버지의 뜻에 반항하기 위해 일부러 기술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그랬기 때문에 군부 실세가 되었던 바실리와 달리 사회적으로 평범한 계층의 삶을 살았고, 그 탓에 동생에 비해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막장 짓을 할 기회도 없었을 뿐이었다. 대신 그는 끊임없는 여성 편력을 일삼았고, 그의 난잡한 여자 관계에 대한 루머로 스탈린의 체면이 구겨졌다. 30대에 들어서야 아버지에 대한 반항을 줄이고 군사학교에 입학하여 아버지가 계획한 엘리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결국 전쟁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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