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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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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전 발동 ===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ordercolor=#536349,#333333><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Battle-Stalingrad.gif|width=100%]] || ||<rowbgcolor=#536349,#222222><rowcolor=white> 천왕성 작전의 전개와 포위되는 독일군 ||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ordercolor=#536349,#333333><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스탈린그라드 소련군 진격.jpg|width=100%]] || ||<rowbgcolor=#536349,#222222><rowcolor=white> 폐허가 된 시가지를 넘어 진격하는 소련 육군 보병대 || 1942년 11월 19일, 소련 남서 방면군이 포병의 격렬한 지원 사격을 업고 진군했다. 총 24개 사단, 11개 여단으로 구성된 소련군의 대병력 앞에 스탈린그라드 북서쪽 방어선을 담당하고 있던 루마니아 3군은 소련군에 비해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 탓에 급속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겨우 5개 군단으로 구성되었던 루마니아 3군 중 일부만이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스탈린그라드에 집중하느라 기갑 타격대를 조직하지 않았던 파울루스는 공세 당일의 골든 타임에 아무런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예상을 웃도는 소련군의 대공세에 놀란 독일군은 48기갑군단에게 루마니아 3군을 지원하라고 명령했지만 동계 장비 부족과 고장, 그리고 동장군으로 인한 트러블[* 일화에 따르면 너무나 추운 나머지 휘발유가 얼어 작동이 안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 전부터 냉각수와 배터리의 화학물질이 얼어버리면서 48기갑군단 내에 기동 가능한 장비도 적었다고 한다.]로 인해 기동 가능한 전차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결국 48군단 전체가 가는게 아니라 48군단 예하부대인 루마니아군 1기갑사단만을 구원에 파견했는데, 이는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조치이었다. 루마니아군 1 기갑사단은 사단을 통틀어 상급부대와 연락할 수 있는 무전기가 딱 1대밖에 없었는데, 소련군이 사단사령부를 공격하는 와중 이 무전기가 박살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루마니아 1기갑사단은 완전한 유병(遊兵)이 되어버린 채로 박살나버렸고, 그들이 구원하려 한 루마니아 3군 역시도 격멸되고 말았다. 다음날 11월 20일에는 돈 방면군이 스탈린그라드 남동쪽에서 진군하여 독일 국방군 제6군의 우익을 담당하던 독일 국방군 제4기갑군과 루마니아 4군을 몰아붙이며 진격을 개시했다. 곧바로 루마니아 4군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독일 4기갑군은 양단되었다. 그리고 11월 22일, 스탈린그라드 서쪽에서 소련군 남서 방면군의 선도 부대와 돈 방면군의 선도 부대가 스탈린그라드 서쪽 카라치에서 조우하여 독일 제6군을 둘러싸는 거대한 포위망을 형성했다.[* 이때 소련군 전차는 단 한 번도 포를 발사하지 않고 손쉽게 독일군 방어선을 뚫었다. 독일군이 왜 적극적으로 반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나, 대부분 군사 전문가들은 이곳을 방어하던 부대가 급조된 부대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련에서는 이 만남을 기록 영화로 찍어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나중에 만들어진 연출이었다. 작전 당시 현지에는 사용 가능한 카메라가 없었다. 작전 개시 3일 만에 천왕성 작전을 대성공시킨 소련군은 작전 중에도 자신들의 장기인 기만술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대표적으로 독소 양측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길목인 칼라차 교량을 공격할 때, 대담하게도 5대의 T-34를 밀집대형으로 배치한 뒤 한밤 중에 모든 전조등을 환하게 밝히고 교량으로 접근시켰다. 공교롭게도 독일군의 노획 T-34 부대가 항상 이 다리를 지나쳤기 때문에 보초는 소련군의 T-34가 다리를 건널 때까지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나중에 T-34가 다리를 전부 건넌 다음에야 독일군 보초는 이 부대가 아군이 아닌 소련군 부대인 줄 알아챘다. 소련군은 가장 힘든 전투가 되리라고 예상했던 다리를 피해 없이 확보했다. 소련군은 약 10만 명 정도의 추축군이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것으로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소수를 제외한 독일 국방군 제6군 대부분과 양단된 독일 국방군 제4기갑군의 상당수 병력, 약간의 루마니아군 등 총 33만에 이르는 대규모 병력이 포위망 안에 완전히 갇혀 버렸다. 이는 사실상 B집단군 전체 병력이 포위망에 갇혀버린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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