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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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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바초프 시대]] == ||<tablealign=center><nopad> [youtube(U2a0Z3V_dOA)] || 젊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등극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였다. 그는 [[1985년]]부터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을 시행했지만 하필이면 그해 하반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영국]]의 치킨게임으로 1986년 석유값이 폭락하여 세수가 크게 줄어버린 데다 같은 해 인류사상 최악의 원자력 재난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겹치면서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주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라스노스트는 소련 체제 하의 온갖 비리와 범죄를 드러내 [[소련 공산당]]과 소련 체제의 정당성에 흠집을 냈으며 한 번 시장의 고삐가 풀리자 인플레이션을 막아낼 방법도 없었다. 게다가 [[소련군]]에 대한 대규모 군축과 예산 삭감도 대대적으로 시행했는데, 500만명이 넘던 브레즈네프 시기의 소련군은 고르바초프 시기 300만명 아래로 하락했고 중거리 미사일 포함 전략자산은 3/4 수준으로 감축되었다. 소련의 전체 방위비 지출도 고르바초프에 의해 30% 이상 삭감됐다. 결과적으로 고르바초프의 혁신 정책은 원래의 의도는 거의 이루지 못한 채 소련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붕괴를 초래했고 억눌려 있던 [[내셔널리즘|민족주의]]가 발흥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발트 3국]] 등지에서 [[노래 혁명|처음으로 독립을 외치면서]] 소련에서의 탈퇴와 민족국가로서의 자주독립,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의 환원 등을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고르바초프는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를 통해 [[주권국가연맹|연방 체제만은 유지하려고 하였고]] 실제로 투표에 참여한 9개 공화국에서 77.8%의 지지를 얻었지만 동년 8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노선에 반대하던 공산당내 보수파들이 주도한 [[8월 쿠데타]]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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