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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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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니드 브레즈네프|브레즈네프 시대]] == 흐루쇼프의 뒤를 이어 서기장이 된 인물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였다. 브레즈네프가 통치하던 시기 소련은 서방에서 '회색의 시대'라고 불렸는데 이 시기를 일컬어 '''침체기'''(Эпоха Застоя, Era of Stagnation)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통치기에 들어 생성된 용어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적으로는 안정되어 있지만 근본적으로 경제력이 서방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면서 점차 사회 전반적으로 점점 침체되어 가고 있었고 [[상명하복]]식 [[관료주의]] 체제로 인해 사회가 천천히 무너져 갔다. 경제 성장은 둔화되었으며 떨어져 가는 노동생산성도 증명되었는데 이는 브레즈네프의 시대엔 별다른 개혁도 없었고 개혁 시도를 흉내내더라도 별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브레즈네프 시기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상당히 높아져 소련 인민의 생활 수준은 전반적으로 안정되었으며 스탈린 시대와 같은 숙청도 거의 없었다. 한편 미국과의 무리한 군비 경쟁으로 인해 국방비가 [[GNP]] 대비 12%나 될 정도로 늘어나고 1978년 핵전력의 규모에서 [[미국]]을 능가하게 되었다. 물론 침체기라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때까지 소련은 공산권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었고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선언한 후 [[동유럽]]에 개입하여 [[프라하의 봄]]과 폴란드 시위를 유혈 사태로 만들면서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여기에 1979년 [[이란]]의 [[팔라비 왕조]]가 [[이란 혁명]]으로 폐지되고 소련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인도-아라비아해의 주도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미국은 본격적으로 대소 봉쇄를 시작하였는데 최초의 시도는 식량 봉쇄였다. 소련의 [[농업]]은 스탈린의 집단 농장화로 박살난 이래로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의 대대적인 농지 개간과 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량자급을 하지 못할 정도로 생산성이 떨어졌으며 이는 소련의 농·축산업 체계의 문제점을 나타내는 징표였다. [[러시아 제국]] 시대까지만 해도 중유럽을 먹여살렸던 과거[*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식량 수출국이었던 이유는 생산량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러시아의 무역구조상 수입품을 사기 위해서는 식량을 팔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가 막대한 식량을 수출할 때도 여전히 러시아의 평민들은 굶주렸다. (식량 수입국이었던 2000년대 초반의 [[중국]]이 [[대한민국]]에 [[쌀]]을 판매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다.) 비교 우위, 즉 가격 차이에 의한 교역이었지 미국처럼 잉여 생산력이 넘쳐나 할 수 있었던 교역이 아니었다.]와는 정반대로 소련은 미국에서만 매해 2,500만 톤이 넘는 곡물을[* 사실 소련의 밀 생산량은 세계 1위였지만 가축 사료용으로 대부분의 밀을 썼기 때문에 밀을 수입했으며 어찌 됐든 공산권의 맹주로서 [[친소]] 공산국가들에게 어느 정도는 베푸는 모습을 보여야 했기 때문에 곡물을 싼 값으로 식량이 부족한 공산국가들에게 대량으로 원조해서 곡물이 더더욱 필요했다. 그런 소련의 입장이 엄청난 잉여 곡물을 떠맡을 시장이 필요했던 미국의 입장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숙적과 식량을 대량으로 거래하는 어색한 상황이 나타났는데 이는 냉전기 [[미소관계]]가 단순한 적대 관계라기보단 일종의 [[적대적 공생]] 관계였음을 잘 보여준다.] 수입해야만 했으며 이 막대한 수입량을 다른 곳에서 대체할 수 없으리라 판단한 [[지미 카터|카터 행정부]]는 소련에 대한 곡물 수출을 중단했지만 수출 중단으로 인해 소련으로 흘러가던 막대한 곡물들이 시장에 풀리자 식량 가격이 대폭락하여 미국의 농가는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었으며 일시적인 식량 위기를 벗어난 소련은 폭락한 국제 곡물 가격을 이용해 다른 나라를 통해서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유가 하락을 대소 봉쇄의 일환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카터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유가 안정화 대책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른 한편으로 카터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반군]]에 [[FIM-92 스팅어|스팅어 지대공미사일]] 등의 각종 무기를 지원했다. 교외를 장악한 반군이 소련 손아귀의 도시들과 거점들을 포위한 상황에서 소련군은 수송과 교통을 위해 항공편을 사용하여야 했는데 미국의 물밑지원으로 상당한 무장력을 갖춘 무자헤딘 반군이 게릴라전으로 헬기 전력에 대항하자 소련은 빠져나갈 방법도 찾지 못하고 그저 국방비만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전면적인 경제 봉쇄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막대한 재정 출혈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원자재 수출로 간신히 명줄을 연장하던 취약한 소련 경제를 붕괴시키는 단초를 만들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석유]]값이 일정 수준은 되었기 때문에 버틸 수는 있었지만 그 취약성은 극대화된다. 브레즈네프의 장기 집권은 그의 사후 권력을 이어받을 만한 [[소련 공산당]]의 권력자들이 함께 [[고령화]]되는 악영향도 초래했는데 그의 사후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와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집권 중에 노환으로 사망해 버리면서 권력의 공백은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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