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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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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 소련 시절 생산된 공산품 및 예술품들은 무식할 정도로 튼튼한 것으로 유명했다. 공산주의 경제 특성상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오랫동안 쓰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디자인은 투박하고 실용적인 기능만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일단 성능은 충족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소련산 가전제품, 생활용품들은 현재도 잘 쓰이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미르]]주에 있는 콜추기노(Kol'chugino, Кольчу́гино)에서 생산되던 [[주전자]]는 무려 [[황동]]으로 만들어졌고 두껍고 튼튼해서 60년 이상 묵은 제품도 여전히 구소련 국가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현역으로 잘 쓰이는 걸 볼 수 있다.[* 종처럼 생겨서 주름무늬가 들어간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그 외에 [[툴라]]의 [[사모바르]]나 구소련산 슬라바, 라케타, 포베다같은 [[기계식 시계]]들도 잘 쓰이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런 제품들은 [[앤티크]] 제품으로써 두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소련시절에 생산된 물건들에는 크게는 [[사모바르]]와 [[도자기]]인형 같은 것부터 작게는 전기케이블, 전구, 과자, 담배갑 같은 시시콜콜한 것도 제품 표면이나 포장지에 가격이 찍혀있는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이 가격이 급하게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툴라에서 생산되고, 현재도 러시아에서 계속 생산되는 전기 사모바르의 경우, 1960, 70년대의 가격은 40루블로 일정하나 1980년대 이후 50루블, 60루블로 치솟는다. 그리고 가격자유화가 이루어진 1991년산 이후의 사모바르는 가격표시가 되어있지 않다. 물론 이 가격은 국영상점의 판매가이며, 국영상점의 물품은 늘 부족했기 때문에 국영상점의 물건을 확보한 다음에 인민들에게 비싼 값으로 되파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 의외로 [[복권]]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원래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고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사행성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복권이 금지되었지만 이후로 소련이 내전 상태에 빠지면서 재정 상황이 말이 아니었던지라 1921년부터 다시 발행을 시작했던 것, 이후로 일시적으로 발행하는 수준이었다가 1950년대 후반부터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복권이 생기기 시작했고, 소련에서 카지노 같은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박 수요가 복권으로 몰려들어서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급으로 활성화되었던 것이다. 다만 초기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당첨되면 현금으로 돌려주는" 로또 형식의 복권보다는 빙고와 같이 당첨되면 상품을 증정하는 형태의 복권이 대다수였다.[* 로또 형식의 복권은 1970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했다.] 정기 복권 발행 초창기에는 주로 자동차를 상품으로 주는 복권이 인기였고, 이외에도 냉장고나 소정의 현금, 예술 상품을 당첨 상품으로 내거는 복권도 있었다. 이처럼 복권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다 보니까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렸을 당시에도 재원의 절반 가량을 복권 판매로 충당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복권 1등에 당첨되었다고 미국이나 유럽처럼 백만장자 자산가가 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1등에 당첨되면 몇년치 봉급에 해당되는 금액을 받았고 간혹 복권을 다발로 사서 운이 좋을 경우에는 약 10년치 급여에 달하는 금액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소련 시절 최대 당첨금은 1985년도의 6만 루블로, 당시 기준 40년치 급여에 해당되는 수준이었다.] 1982년작 영화인 "스포츠 로또 1982년"(Спортлото-82)라는 코미디 영화도 제작되어서 크게 흥행한 것을 보면 당시 소련에서 복권이 서민들의 소소한 여흥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대부분의 당첨자들은 돈으로 받기보다는 자동차를 선택했다고 한다.[* 푸틴도 젊은 시절에 이렇게 어머니가 복권을 사서 자동차를 얻어서 내내 타고 다녔다.] 여담으로 당시 소련에서는 같은 숫자가 3번 이상 나오는 복권에는 '행운'이 담겨있다는 일종의 미신이 있었으며, 이는 현대 러시아에도 일부 남아 있다. 이런 복권을 "행운의 티켓"(Счастливый билет)이라 부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Fi1BwN-dALI|"행운의 티켓"에 대한 노래 (한국어 자막 포함)]] * 빈병 줍기가 쏠쏠한 용돈벌이 수단이었다. 소련의 물가 수준에 비해서 [[빈용기 보증금]]의 액수가 15~20코펙으로 제법 되었기 때문이었다.[* 병의 크기에 따라 보증금은 조금씩 달랐다. 1970~1980년대 소련에서 [[펩시]] 병은 330ml였고, [[맥주]], [[보드카]], 우유병은 500ml. [[와인]] 병은 700ml였다. 1980년대 기준으로 소련인들의 평균 월급은 대략 150루블쯤이였는데, 달러로 비유하자면 월급을 1,500달러 받는 사람이 빈병 하나에 보증금으로 2달러를 받는 격이였다! 한국으로 치자면 월급을 200만원 받는 사람이 빈병 하나 팔아서 3천원을 받는 것과 동일한 수준이다.] 당시 공식적으로 근로를 할 수 없었던 소련 아동 입장에서 이 금액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15코펙이면 시내버스 혹은 노면전차를 3번 타거나 빵 한 덩이[* 한국 빵집에서 파는 그런 조그마한 빵이 아니라 식빵 크기의 호밀빵을 말한다. 밀도가 높고 포만감이 높아서 러시아인 기준으로 혼자서 식사용으로 이틀은 먹을 수 있는 양이다.]를 살 수 있었고, 자잘한 학용품이나 군것질거리는 그보다 더 많이 살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 콘 하나가 7코펙에서 28코펙이었다 한다. 그래서 소련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용돈벌이용으로 빈병을 줍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물론 성인들 입장에서도 적은 금액이 아니였기에 대다수의 알뜰한 소련 가정에선 남녀노소 할거 없이 주기적으로 병을 반납하러 동네마다 있는 유리병 수거장에 줄을 서는게 일상이였다.[* 플라스틱 병이 등장하기 전이라 대부분의 술과 음료들은 유리병에 담기는게 당연하던 시대였고, 잔치라도 치렀거나 식구가 많은 가정일수록 빈병 수입도 짭짤했다. 좀 많이 모아가면 빈병 보증금만으로도 간단한 생필품과 식료품을 구입하기에도 충분했다.][* [[https://www.rbth.com/history/334961-5-ways-children-made-money-ussr|(출처) 5 ways children made money in the USSR, Georgy Manaev, Russia Beyond, 2022년 04월 21일. (영어)]]] * 1960년대 소련인들이 상상한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5923635|2017년의 미래상]]. * 밤문화의 경우에는 대체로 심심했던 편으로 평가된다. 물론 소련에 술집들도 많았고 문화회관과 디스코장에서 춤판을 벌이기는 했지만, 나이트클럽처럼 술을 따로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술도 파는 나이트클럽이 개장한것은 1990년대에 와서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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