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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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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수자 === 러시아는 원래, 서유럽과는 별도로 독립적인 문화권을 형성하여 교회법에서는 처벌 대상일지라도, 세속에서는 성소수자들을 처벌하는 법률이 없었으며 서유럽만큼 크게 차별하지도 않았다. 러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성소수자들을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서유럽화 정책을 실시한 표트르 대제 시기부터였으며 이후, 성소수자들을 크게 혐오하던 [[니콜라이 1세]]가 성소수자는 공민권 박탈 및 시베리아 유형에 처할 수 있다는 법령을 제정해 억압을 강화했다.[* 그러나, 두 황제의 법령들은 점차 사문화되어 제정 말기에는 성소수자인 황족과 귀족들이 마음껏 자신들의 성향을 공개하고 다녔으며, 여기에는 메시체르스키 같은 대귀족과 세르게이 로마노프, 콘스탄틴 로마노프 같은 황실 종친, 외무 장관을 지낸 람스도르프도 있었다.] 제정 시기의 유산을 청산하고자 했던 소련 건국 초창기에는 당시 러시아 제국에서 범죄였던 성소수자들을 합법화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법을 제정했다. 따라서 적어도 스탈린 이전 1920년대에는 성소수자들은 잠깐이지만 법적으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심지어 소련 수뇌부 중에서도 성소수자가 있었다. 트로츠키의 후임자로 초대 소련 외무장관이 된 게오르기 치체린은 동성애자로서 정치 배경도 [[멘셰비키]] 출신에 당시 소련 지도부에서 비주류에 속했지만, 레닌에게 중용받아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라팔로 조약]]의 체결에 참여하는 등, 외교적으로 중요한 업무를 담당했다. 치체린은 스탈린 정권 시기인 1930년에 은퇴했는데,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숙청당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스탈린 정권 시기부터 법령이 개정되면서 성소수자들은 다시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수만 명이 넘는 성소수자들이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주된 탄압 대상은 남성 성소수자로서 여성 성소수자는 정권의 관심에서 멀었다. 이는 제정 시기와도 유사한 행태인데, [[러시아 제국]]의 경찰과 [[오흐라나]], 지식인들도 남성 성소수자에게만 관심을 기울였지, 여성 성소수자들은 체포도 하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제정 시기 남성 성소수자 공동체는 의사, 지식인, 경찰들이 남긴 회고, 정보, 기자들이 목숨 걸고 공동체에 잠입해 취재한 기록들이 존재하지만, 여성 성소수자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정보를 철저히 은폐했고 의사나 기자, 지식인들이 정보를 수집하지 않아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굴라크]]에도 성소수자들이 존재한 것이 파악된다. 굴라크를 방문한 이들과 간수, 경비원들의 회고, 기록에 따르면 장교처럼 군복을 입고 남장한 여성들이 '남성역'을 수행하고 여성 연인과 함께 하고 있었다고 한다. 간수와 경비원들은 이 남장한 여성들을 간성인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소련 사회의 강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성소수자 공동체는 암암리에 명맥을 이어갔지만, 때로는 체제를 위한 도구로써 악용되기도 했다. 일례로 영국 외교관이었던 존 바살(William John Christopher Vassall, 1924-1996)의 사례가 있었다. 1952년 모스크바 주재 해군 무관이자 군종관으로 근무하던 바살은 성소수자로써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성소수자이자 대사관 직원이었던 미하일스키를 통해 모스크바 내 성소수자 공동체를 소개받았다. 하지만 당시 성소수자 공동체는 KGB의 감시망을 피해갈 수 없었고, 외국 외교관들의 약점을 수집해 첩보자산으로 활용하던 [[미인계]] 및 콤프로마트 공작[* 소련/러시아 정보기관에서 벌이는 공작의 한 종류로, 목표대상의 약점 또는 기밀을 파악해 이를 대가로 목표대상을 협박 또는 포섭하여 첩보기관의 자산으로 활용하는 공작을 말한다.]을 벌이던 KGB는 바살이 성소수자 공동체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입수하자, 바살을 위한 파티를 열어 다른 남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촬영했다. 다음날, KGB로부터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여러 장 받은 존 바살은 본국인 영국으로부터 처벌을 피하기 위해 수년 동안 소련의 간첩으로 활동해야 했었다. 소련에서는 [[성전환 수술]]이 1920년대부터 집도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당시의 성전환 수술은 [[인터섹스]]를 교정하려고 시행했다. 본격적인 성전환 수술은 1970년부터 집도되기 시작했다. 다만 성전환 수술이 집도되었다해도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다반사였던 시대인지라 트랜스젠더가 사회에 당당히 나서서 활동을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트랜스젠더가 처음 공론화된 것은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였으며,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서구권에서조차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결혼이 무효화되는 사건이 있었을 정도였다. 또다른 사례로 [[캐롤라인 코시]]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이 황색언론지에 의해 아웃팅 당한 이후로 한 동안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였다. 이런 시대상을 감안했을 때 서구권보다 보다 보수적이었던 소련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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