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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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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복 === ||<table align=center> [[파일:external/www.rosugol.ru/4.jpg|height=340]] || [[파일:external/www.geraldika.org/028_12.jpg|height=340]] || || 소련 석탄산업부의 1947년형 제복[* 좌측부터 공훈광부(почётный шахтёр), 석탄산업부 관료, 석탄산업부 고위관료(예복), 국가 광업기술시찰국 고위관찰관, 광공업대학 학생(예복)이다.] || 소련 외무부의 1943년형 제복([[뱌체슬라프 몰로토프|장관]]) || 매체에서 흔히 표현되는 [[공산주의]] 국가의 모습은 거의 [[전체주의]]적 특징을 지니며 그 이미지는 [[열병식]]이나 퍼레이드를 자주 벌이고 일반 공무원들조차 제복을 입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특히 소련은 존재하던 시절에도 [[제1세계]]([[서유럽]]이나 미국 등) 국가들에 상당한 공포를 유발하는 존재였으며 특유의 군사적인 이미지 때문에 지금도 소련식 제복은 세계적으로 [[나치 독일]], 미국과 더불어 제복의 상징성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련은 초기에는 제복에 전혀 관심이 없는 국가였다. 20세기 초반까지는 [[권위주의|관료 권위주의]] 문화가 지배하던 시대였으므로 [[유럽]]도 제복은 비교적 흔하게 사용했고 멋을 중시했는데 동양([[대한제국]], [[청나라]], [[일본 제국|일본]] 등)에서조차 이런 서구식 제복뽕을 한 사발씩 들이켰다. 그래서 소련은 당시 서양의 시대상으로서는 [[미국]]과 더불어[* 미국은 정부기관의 제복이 거의 사용되지 않은 건 소련과 비슷했지만 군인의 정복은 유럽의 그것과 유사했다.]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본디 전근대부터 제복이라는 것은 예복이나 다름없었고 당연히 화려한 금자수 등이 사용되는 귀족적 상징으로 통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이념 하에서는 상극이었다. 현대 중국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인민복]]이나 기타 간소한 복제를 고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인데 [[부르주아]], [[귀족]]의 제국에서의 탈피를 국시로 건 소련에서도 당연한 이념적인 결론이었으므로 [[소련 공산당]]은 혁명을 완수한 후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내려오던 각종 전통을 완전히 단절시키면서 제국의 제복도 모조리 폐기했다. 물론 소련도 [[철도]], [[선박]]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본적인 분야의 제복들을 새로 제정하긴 했지만 그것은 제국 시절의 것처럼 화려한 자수가 들어가 있다거나 멋드러진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오히려 초기 [[붉은 군대|노농적군]]의 군복과 마찬가지로 농민이나 노동자의 작업복에서 채용한 복제에 간소한 [[계급장]]만 붙인 수준에 불과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 하면 보통 회색이나 백색의 [[원수(계급)|원수]]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 스탈린이 예복을 입은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전시]]에 원수 계급을 받은 이후부터이며 이전까지는 [[인민복]]을 입었다. 게다가 스탈린은 백색의 원수복을 보고 "웨이터 복" 같다며 크게 짜증을 낼 정도였고 전후에 장군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는 예복을 갖춰 입은 장군들 사이에서 혼자 인민복만 입고 있었다. 이는 [[레프 트로츠키]]를 비롯한 다른 소련의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들도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이 예복 보다는 인민복이나 정장을 갖춰 입었다. 사실 초기 각료나 정치인들이 입던 인민복도 정해진 공통적인 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에 색만 맞춘다면 제복의 역할은 충분히 했다. 예전에도 인민 의원([[장관]])같은 고위 관료들은 단정한 인민복에 표식 정도만 단 옷을 제복처럼 입곤 했다. 단지 유럽처럼 [[계급장]]을 다는[* 많은 국가의 제복에서 화려한 자수 등의 장식은 계급장을 겸한다. 당연히 수뇌부가 될수록 화려해진다.] 제복을 쓸 필요가 없는 소련은 제복을 제정하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봤을 뿐이다. 이유는 간단한데 초기 소련에는 [[사회주의]] 원칙에 따라 관등과 같은 [[계급]]이 없었으며 직책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심지어 [[붉은 군대|군대]]도 마찬가지라서 장교도 직책만 있지 계급은 없었다. 그러다가 1935년이 되어 기강이 무너지고 군대가 무너지고 나라가 황폐화되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계급제도를 다시 도입했다.] 그런데 소련 내부 사정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무원]]의 제복 제정에 대한 문제는 외교무대에서 두드러졌다. 소련은 성립 초기에는 세계에서 [[미승인국가|비정통정부]] 취급이었고 열강들에게 그다지 큰 관심을 끄는 국가도 아니었거니와 국제 왕따였다.[* 미국은 [[러시아 혁명]]을 거쳐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RSFSR]]의 성립이 공표되고 나서도 신생국가의 시장을 노리고 사업 등의 목적으로 출국하려는 자국민들에게 '''[[미승인국|그런 나라는 없다]]'''며 금지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특징 때문에 나온 견제책이기도 했지만 [[러시아 내전]]이 끝난 후엔 인정한다.] 당연히 처음에는 격식 딱딱 차리고 외교를 할 일도 거의 없었지만 소련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연합국]]의 일원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고 결국 1941년에 [[소련 최고회의]]는 '소련 국외주재 외교공관 및 대표부(상주외교사절단)' 관등을 제정했다. 이때는 국제법상의 형식만 갖춰 대사, 공사, 대리대사 수준의 계급만을 만들었고 군대처럼 체계적으로 외무부의 관등을 나눈 것은 1943년에 제복을 제정하면서다.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소련을 완전히 개조해 버린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군복/러시아군|소련의 군복]]은 변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나치 독일을 꺾으면서 소련이 [[제2세계]]의 수장이자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설 것을 알았고 당연히 그에 걸맞은 권위를 보이길 원했다. [[소련군]]은 과거 열강이었던 러시아 제국의 영광, 위엄을 재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군복들을 그에 맞춰 개정했다. 소련은 원래 군복도 러시아 제국과의 단절을 위해 노동자의 작업복과 비슷한 형태로 간소하게 제정해 두었고 [[계급장]]마저도 금빛이 번쩍이는 전통적인 견장을 최대한 지양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후반기인 1943년부터는 [[러시아 제국]]식의 커다란 [[견장]]을 다시 도입하는 동시에 고전적인 수려한 예복들을 제정하기 시작했는데 소련의 제복정신도 여기서 시작되었다. 소련은 [[외교관]] 제복의 제정 필요성을 금방 실감했다. 지금은 그냥 외교관들이 평범한 정장만 입고도 회담을 잘만 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테일코트]]라든가 [[실크 햇]]은 공식석상에서 필수적인 복장 예절에 속했다. 그러나 소련에서 [[프록 코트]]나 [[실크 햇]]은 [[부르주아]]의 상징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며 '''착용하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련에서 외교관 제복 제정에 관한 문제는 >1. 이제 국제적으로 나설 일도 많은데 부르주아 스타일은 불법이라 할 수 없다. >2.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스타일로 하자니 느낌이 안 산다. >3. 그럼 일단 깔쌈하게 만들고 프롤레타리아의 기운이 오는 옷이라고 한다. [[독소전쟁]]으로 소련은 제복뽕에 맛을 들이고 [[군복/러시아군|군복]]을 제외하고도 [[나치 독일]]이 했던 것과 똑같이 각종 [[정부]]부처의 공무원들까지도 제복을 입게 하는 데 열을 올렸다. 사실 [[제2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제복 문화는 세계적으로 사장되고 있었는데 얘네들은 '''역행'''하고 있었다. 결국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 시절에 [[소련]]은 제복의 천국이라고 불릴 수 있는 국가가 되어 버렸다.[* 소련은 [[연합국]]의 [[무기대여법]] 물자에 '''금/은사'''를 대량으로 요구했다. 소련의 경공업 수준으로는 금/은사를 대량으로 생산하는데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쟁하고는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이런 터무니없는 부탁에 [[미국]]과 [[영국]]은 어이없어 했지만 그렇다고 안 들어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수천톤의 금/은사가 [[소련]]에 제공된다. 사실 소련의 제복들이 1943년을 기점으로 금자수 떡칠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그만큼 풍족하게 물자를 받아서다.] [[철도]], [[선박]] 등의 기본적 분야의 제복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무원]] 제복들이 1943년에서 1953년까지의 10년 사이에 제정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제복들을 '스탈린식 제복'이라고 칭한다. 소련은 1943년에 제정한 [[외교관]]과 [[검찰]]제복은 나름 금 자수 등의 디자인도 공을 들이는 등 여러모로 [[장인정신]]을 보였지만 이후부터는 [[복붙]] 수준으로 구색만 맞추어 [[T-34-85|그냥 만들기 시작해서 많이 만들]]게 된다. 이것은 [[나치 독일]]과 마찬가지로 제복이 딱히 필요 없는 기관에까지도 제복을 제정하다 보니 일어나는 문제였고 소련 성립 초기부터(대략 1918년) 있었던 기존의 제복들도 군복처럼 특정 형식 아래 개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관등이 제정되기 때문에 새 계급장 도입에 맞춰 옷들이 비슷한 구조로 고쳐지는 것이다. 소련은 관등을 군대 계급과 거의 동일한 형식으로 제정했기 때문에 대게 비슷하다. 즉 군대처럼 [[위관]], [[영관]], [[장성급 장교|장성]]의 구분도 존재한다.] 이러다보니 당연히 제복들은 형식이 거의 동일했고 그냥 옷의 색깔만 다른 수준으로 찍혀나왔다. 그러다가 스탈린이 죽고 소련의 새 지도자가 된 [[게오르기 말렌코프]]는 1954년에 스탈린식 제복들을 전부 손보아 형태를 간략화하거나 혹은 폐기해버리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하지만 끝내 (심지어 지금 [[러시아 연방]]을 포함해 [[독립국가연합]]의 많은 국가들에서도) [[이오시프 스탈린|강철의 대원수]]가 피워놓은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제복의 꽃은 지지 않았다]]. [[게오르기 말렌코프|말렌코프]]는 대부분의 제복을 폐지했으나 기존부터 있었거나([[철도]], [[우편]] 등) 스탈린식 제복의 시작이 되었고 퀄리티가 잘 뽑혔던 [[검찰]]과 [[외교관]] 제복 정도는 폐지하지 않았고 이것은 [[니키타 흐루쇼프]] 치세에도 이어졌다. 그런데 흐루쇼프가 실각한 후에 많은 제복들은 차츰차츰 부활하기 시작했고[* 일례로 전술한 석탄산업부는 1954년에 제복이 폐지되었으나 1976년에 부활했다.] 그 영향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나탈리아 포클론스카야]] 등이 입은 [[러시아 연방]]의 검찰 제복은 소련의 1988년형 검찰 제복을 기원으로 하며 기타 많은 [[독립국가연합]] 소속 국가들의 [[중앙행정기관]] 제복들도 마찬가지로 많은 개정이 있긴 했지만 원류가 소련 제복인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원래 정부기관이었다가 [[공기업]] 등이 되거나 [[민영화]]된 조직들, 이를테면 [[러시아 철도|루스키줴데]] 등은 상황이 반대라 전통을 많이 상실했는데 여기도 제복이 거의 [[코레일]] 수준으로 잡탕이 된 상태다. ||<table align=center> 국가행정기관[* 1946년 이전까지 [[소련 장관회의]]의 명칭은 '소련 인민위원회의'였고 [[부]](Министерство)는 인민위원부(Народный комиссариат)의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소련 헌법]]상 '국가위원회(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комитет)'도 중앙행정기관에 속한다. 국가계획위원회(고스플란), [[KGB| 국가안전위원회]]가 대표적이다.] || 제정 혹은 스탈린 시대의 개정년도 || 비고 || || 외무부(Министерство иностранных дел СССР) || 1943 || [* 제복은 1943년에 제정되었으나 외교관 관등의 최초 제정은 1941년이다.] || || 검찰(Генеральная прокуратура СССР) || 1943 || || || 운수부(Министерство путей сообщения СССР) || 1943 || [* 초기에는 [[육해공]] 전부를 관할하는 부서였지만, 모두 분리되어 사실상 [[철도]]부가 된다. 제복 자체는 1918년부터 존재했다.] || || 삼림산업부(Министерство лесн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СССР) || 1945 || [* [[종이|제지산업]]도 총괄한다. 산림경비대는 1935년부터 별도로 제복이 존재했다.] || || 석탄산업부(Министерство угольн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СССР) || 1947 || || || 하운선박부(Министерство речного флота СССР) || 1947 || [* 제복의 최초 제정년도는 1924년으로 해운부와 동일한데 원래 같은 부처 소속이었다.] || || 해운선박부(Министерство морского флота СССР) || 1948 || [* 제복의 최초 제정년도는 1924년이다.] || || 재정부(Министерство финансов СССР) || 1948 || [* [[중앙은행|국립은행]](Госбанк)등의 [[은행원]]도 동일하다. 소련의 [[은행]]은 전부 국영이었다.] || || 지질부(Министерство геологии СССР) || 1948 || || || 예비노동자원부(Министерство трудовых резервов СССР) || 1948 || [* 직업교육을 잘 받지 못한 [[노인]]계층, [[직업전문학교]] [[학생]] 등을 관리했던 부서. 제복이란 것은 [[교복]]을 말하는 것이다.] || || 어업부(Министерство рыбного хозяйства СССР) || 1949 || || || 조달부(Министерство заготовок СССР) || 1949 || || || 체신부(Министерство связи СССР) || 1949 || [* [[우체국]]의 우정공무원도 동일하다. 제복도 1918년부터 존재했다.] || || 지리 및 지도총국(Главное управление геодезии и картографии СССР) || 1949 || [* [[부]]는 아니고 '[[소련 장관회의]] 산하 지리 및 지도총국(Главное управление геодезии и картографии при Совете министров СССР)이었다.] || || 국가검열부(Министерств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контроля СССР) || 1949 || || || 민간항공부(Министерство гражданской авиации СССР) || 1950 || [* 현재의 [[아에로플로트]]이다. 제복의 최초 제정년도는 1926년이다.] || || 발전소부(Министерство электростанций СССР) || 1951 || || || 국가세관위원회(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комитет таможенного контроля СССР) || 1951 || || [[소련]]의 특성상 군사조직이었던 [[KGB|국가안전위원회]], [[NKVD|내무부]]와 그 휘하 조직인 [[국경경비대|국경군]] 등은 표에 없고, [[소방관|소방]]과 [[경찰]]도 제외한다. 스탈린 시대 이후에 제정된 제복도 제외한다. 예를 들어서 소련 법무부(Министерство юстиции СССР)는 1971년에 제복이 제정되었으며 소련 교육부(연방공화국계몽부)에서 [[교복|학생제복]] 통일령을 내린 것도 스탈린 시대 이후다. 국제조직([[적십자]] 등)도 제외되어 있다. [[소련 붕괴]] 시점까지, 그리고 모든 분야의 제복으로 범위를 늘린다면([[피오네르|소년단]] 등) 소련의 제복 종류는 위 표보다 훨씬 많아진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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