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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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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생활 규정 == 혁명기에는 교칙과 징계 규정을 대대적으로 개정해 징계의 강도가 대단히 낮았지만, 스탈린 정권이 재차 규정을 개정해 처벌의 수위를 높이고 교칙도 아주 엄격하게 개정했으며 교권 침해는 강력하게 처벌했다. 이후, 해빙기부터 소련 학교의 교칙과 징계 규정은 점차 완화되어 가지만, 미국과 캐나다, 서유럽[* 영국, 아일랜드 제외]의 선진국들에 비하면 교칙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편이었다. 소련의 학교에서는 소지품 검사를 시행해 사치품이나 서유럽제 재화 같은 금지 품목을 압수한다거나 화장과 매니큐어 사용을 금지했다. 1970년대 이전까지 몇몇 학교에서 볼펜을 쓰는 것이 글씨를 올바르게 쓰는 데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볼펜을 금지하고 만년필을 쓰는 것을 강요한다거나, 교칙의 제정과 운용이 학교의 재량에 있다는 점을 악용한 몇몇 학교에서 외투를 입는 것까지 금지시키는 일도 있었다. 스탈린 정권 시기에는 학생들의 [[두발]]을 엄격히 단속하여 남학생들은 군인처럼 머리를 [[투블럭]] 수준으로 짧게 잘라야 했고 여학생들도 머리 모양을 제한 받았다. 그래도 스탈린 사후에는 통제가 완화되어서 남학생은 옷깃 위까지 머리카락을 기를 수 있고 여학생들도 좀 더 다채로운 스타일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개별 학교의 두발 규정은 학교장의 재량이었기 때문에 각 학교와 학년별로 규정이 상이한 편이었고, 두발 규정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바초프]] 정권 초기까지 계속 유지했다. 다만, 일선 학교에서는 서방의 문화를 모방하거나 사치스러운 물품을 학교에 반입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어서 한국처럼 두발 단속에 열을 올리지는 않았다. 앞머리 염색과 [[레게 머리]] 같은 독특한 스타일은 금지했으며 남학생이 옷길 아래로 내려오는 장발이나 여학생이 긴 생머리를 끝까지 고수하면 교칙 위반으로 징계를 먹거나 [[퇴학]]당할 수도 있었다. 소련의 여학생들 중에서 긴 머리를 유지하고 싶은 학생들은 반드시 머리를 묶어야 했다. 고등학생은 성인의 스타일을 모방해도 묵인해 주었지만, 이 또한 개별 학교별로 사정이 달랐다. [* 긴 생머리는 무조건 머리를 묶는 억압은 공산권 국가들로 퍼져 나가서, 현재도 북한에서 장발을 유지하는 여성들은 항상 머리를 묶고 생활하고 있다. 소련에서 염색약은 시중에서 판매되지 않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염색을 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염색을 했다가 발각당하면 가차없이 미용실로 보내졌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서구권에서 유행한 [[록 음악]]과 [[히피]] 문화가 소련으로도 전파되어 남자가 장발을 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정부 당국은 초기부터 단속에 나섰지만, 남성의 장발 문화는 계속 확산되었다. 더욱이, 소련의 언더 그라운드 가수들이 서방의 유명 가수들을 모방해 장발을 기르고 다닌 것은 장발 문화의 확산에 기름을 부어 청소년과 청년층 남성들 사이에서 장발을 더욱 크게 유행하게 만들었다. 공식적으로 활동하던 소련의 주류 남성 가수들은 옷깃 위까지만 머리를 기를 수 있었다. 이는 라디오 - 텔레비전 위원회 의장으로 재직하던 세르게이 라핀이 국영 방송사 사장의 직권을 남용하여 자신의 보수 · 반동적인 취향을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규정 이상으로 머리를 기른 남성 가수들은 방송에 나올 수가 없었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은 남성 가수들은 반드시 규정에 맞춰서 머리를 잘라야 했다. 소련의 [[청소년]]들은 3달 간의 기나긴 [[여름방학]] 기간 동안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다니다가 개학식 전날에 자르거나 개학 이후에도 장발을 안 자르겠다고 버티다가 징계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규정은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에 폐지했고, [[러시아]] · [[발트3국]] · [[우크라이나]] · [[몰도바]] · [[벨라루스]] · [[조지아]] · [[아르메니아]] 등의 국가에서 두발 규정은 과거의 기억으로 남았다. 물론 국가별로 사정이 달라서 규제가 있는 나라들도 존재한다. 체벌은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러시아 제국의 교육자들은 학생들이 가정에서 어떤 일을 겪는지를 잘 알고 있어서 [[체벌]]을 극도로 비판했고 젬스트보 초등학교에서는 체벌 금지가 아예 권고 사항이었다. 그래서 젬스트보 학교의 교사가 학생을 처벌하는 것은 신문에 실릴 정도의 사건이었다. 이런 선구자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소련의 교육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체벌을 원천 금지했다. 스탈린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1930년대부터 뒤틀린 교수법과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확산되어 체벌에 대한 통제가 완화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체벌을 한 교사들을 징계하긴 했지만, 몇몇 교사들이 학생들을 폭행하는 사건들이 페레스트로이카 시기까지 꾸준히 발생했다. 게다가 조국 전쟁 중에 일부 남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하자, 정부에서 체벌의 재도입을 검토하는 일도 있었다. 심각한 상해를 입히지 않더라도 교사가 학생의 신체를 꼬집거나 문구류를 집어 던진다거나, 뒤통수를 때리는 등의 폭행 사건이 간간히 발생했기 때문에 연방 정부에서는 계속해서 체벌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연방 정부의 진압에도 불구하고, 아동 학대나 가정 폭력이 근절되지 않아서 일부 교사들이 이를 악용하는 일도 있었다. 학생 통제를 위해 교사가 학부모에게 자녀의 비행을 알리면, 학부모가 자녀를 벌주는 일종의 대리 체벌 관행이 오랜 기간 동안 성행했던것이다. [* 그래도 인접한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면, 교칙이 상당히 유화적인 편이었다. 소련의 주변국들의 경우, 세계 대전과 국공 내전이 끝난 뒤부터 일본(1947년) · 북한(1948년) · 중국(1949년)은 법적으로 체벌을 철폐했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질서 유지를 이유로 체벌이 여전히 성행했었고, 체벌이 실질적으로 없어진 것은 일본은 90년대부터, 중국과 북한은 2010년대 이후에서였다. 중국의 경우에는 문화 대혁명 기간 동안 체벌이 감소하기는 하지만, 홍위병들이 위세를 이용해 학교를 압박해서였지, 교육 관념이 변해서는 아니었기 때문에 홍위병이 하방되자마자 원상태로 돌아갔다.] 간혹, 소련은 교칙이 강력하고 체벌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학교에 질서가 잡혀 있고 학생들이 규율을 잘 따랐다고 말하는 무지몽매한 작자들도 있지만, 소련에서는 수업 분리 · 교내 봉사 · 상담 등의 방식으로 학생을 선도하는 일이 보편적이고, 체벌은 원천 금지된 상황이었다. 게다가 소련에도 문제 학생들은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에, 이 작자들의 반응은 과거의 향수 때문이라고도 볼 수가 없다. 연방 해체 이후에도 벨라루스와 몇몇 미승인 국가들을 제외한 모든 구소련권 국가들은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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