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밥위키
최근 변경
최근 토론
특수 기능
파일 올리기
작성이 필요한 문서
고립된 문서
고립된 분류
분류가 되지 않은 문서
편집된 지 오래된 문서
내용이 짧은 문서
내용이 긴 문서
차단 내역
RandomPage
라이선스
IP 사용자
216.73.216.107
설정
다크 모드로 전환
로그인
서버 점검 공지
|
개인정보 처리방침 개정 안내
소련/경제
(r1 문단 편집)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소비자경제 == 교육이나 의료는 전부 무상이었고, 국가에서 기초 생필품이나 공공요금, 주택은 물론이고 심지어 소설책이나 애들 옷값, '''여행 비용'''까지도 보조해 주었기 때문에 기초적인 물가는 매우 싼 편이었다. 또한 월세비가 대단히 싸다는 점과 일자리를 강제적으로 배정했다는 점때문에 저축을 많이 할수있었고 이 때문에 이 당사의 소련 청년층들이 오히려 현대 선진국 대도시 청년층들보다 훨씬 잘 산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 판이다.(...)[* 물론 소련 당국에도 주거지를 제공해준다고 해도 실제로는 방을 한두개 빌려사는 수준이지만, 현대 선진국에서는 그 방의 월세비도 턱없이 비싼 경우가 많다보니 나온 평가이다.] 다만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소련에서는 물자난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에 식료품같은 필수 품목을 제외하면 물자부족이 빈번했고, 때로는 암시장에서 국가가 지정한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구매해야 했다. 특히 소련 말기, 1989년-1990년 즈음부터는 고르바초프의 경영 자율화 정책으로 인해 기업들이 가격 통제가 아직 남아있던 국영 상점에 물건을 납품하지 않고, 암시장에 비싼 가격으로 팔자 물자 부족이 심화되면서, 물자들이 대거 암시장으로 흘러들었다.(암시장 환율이 상승한 것은 덤.) 이렇게 암시장으로 유출된 물자에 보조금으로 지출하는 금액이 커져서 당국에서 심각한 문제로 작용했다. 구매력은 높아서 수요는 많은데 아무리 보조금으로 돈을 쏟아도 전체 물자의 10%에서 15% 가량이 암시장쪽으로 유출되었기에 항상 물자가 부족했다. 자동차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경제력으로 여유가 생긴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차 생산량이 1년에 몇십만 대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자동차를 구하려면 기껏 비싼 돈을 현금으로 주고도 몇년씩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1970년대에는 생산량이 연 200만 대 수준으로 늘어났으나, 상당수의 자동차가 해외수출용으로 배정된지라 여전히 새차를 구하려면 2~3년씩 기다려야 하는 것은 일상적일 정도로 새 차를 구하려하는데 진입장벽이 높았다. 아니면 기다릴 필요없이 중고차를 구입할 수도 있었으나 가격은 새 차보다 훨씬 비싼게 문제였다.[* [[공산주의 유머]]에서 자동차 1대를 구하려면 몇 년씩 걸린다거나 하는 식의 유머가 소련에 있었는데 '''실제로도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소련 연방 내엔 다양한 차량 제조사들이 있었지만 그중 잘알려진 승용차 제조사는 크게 5개로 나눌 수 있다. [[ZAZ 자포로제츠]]와 같은 저렴한 소형차를 생산했던 [[ZAZ]], 소련의 국민차 지굴리로 유명한 [[라다]], 1960년대까지 볼가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고급차로 통했으나 1980년대 들어 품질과 상품성 측면에서 라다에게 역전되어버린 [[모스크비치]], 높으신 분들의 고급차로 잘알려진 볼가 시리즈를 생산한 [[GAZ]], 민간에서 구매하긴 어려웠지만 험지에서도 잘굴러가는 오프로드 차량을 생산하던 [[UAZ]]등이 있다. 1983년 기준으로 자동차 가격은 [[ZAZ 자포로제츠]] 시리즈가 5,600루블, [[라다 지굴리]]는 모델에 따라 6,400~9,000루블, [[라다 니바]]가 10,300루블, [[모스크비치]] 2140이 7,500~8,000루블, GAZ-24는 11,200루블에 달했다. 그러다가 소련 말기엔 [[벤츠]], [[볼보]], [[토요타]] 같은 수입차도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를 무작정 산다고 장땡이 아닌 것이 어지간한 정비와 유지관리는 스스로 해야 했다. 큰 사고나 고장이라도 났다하면 수리비가 매우 비쌌고 필요한 부품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는 일도 흔했다. 1970년대까지는 길에 아무데나 세워뒀다가 와이퍼나 각종 외부 부품을 도난당하는 일도 많았다. 소련은 도시에 있는 주거 단지마다 차고가 존재했는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개인 차고를 사서 차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산주의를 따르던 소련에서 보기 드물게 사실상 사유재산에 가까웠던 게 바로 차고인 셈이다. 대개 차고는 10대 단위의 일렬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태로 벽돌, 철제 패널과 나무 합판으로 비전문가가 지어서 외관이 제각각인데다 판잣집처럼 허름하고 승용차 한대가 겨우 들어가는 크기지만 셀프 정비를 하기 위해 바닥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구덩이를 만들어둔 곳이 많았고, 어떤 이들은 지하실을 파서 감자나 병조림같은 식품을 장기보관하거나 집에 두기 힘든 각종 잡동사니를 보관하기 다반사였다. 그리고 마음씨 좋은 이웃 남자들이 있다면 자동차 수리를 서로 도와주거나 유용한 팁을 얻는 것도 가능했다. 지금도 이러한 차고는 러시아 전역에 아주 많으며 부부싸움후 아내로부터의 피난처 혹은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동네 남정네들이 모여서 술판을 벌이거나 사교를 나누는 은밀한 공간으로 통한다.] 그래서 자동차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잡은 중역들이 타고 다녔으며, 사회초년생들은 보통 가격이 훨씬 싸면서도 구하기도 쉬운 오토바이[* 소련의 오토바이 제조사들을 살펴보자면 국내에서 [[IMZ 우랄]]이 가장 유명하며 무기 생산업체인 [[이즈마쉬]]로 유명한 IZh, 소박한 모페드를 생산하던 '리가', 그 밖에도 '민스크', '드네르프'등이 있다.]를 타고 다녔다.[* 한편 여성들과 노인들은 요금이 아주 쌌던 대중교통을 애용했다. 대신 자전거는 기껏해야 몇주~한달치 월급으로 살 수 있었던터라 교통에 열악한 시골에선 집집마다 한대쯤은 있었고 어지간히 가난한 집이 아닌 이상 남자아이가 12살쯤이 되면 편리한 통학을 위해서라도 선물로 사주곤 했다.] 1980년대 중순까지도 소련은 높은 중산층 비율과 값싼 휘발유값이라는 장점에도, 자동차 보급률은 5가구당 1대 수준에 머물렀고, 이것이 대도시 주택 문제를 가중시키기도 했다. 구소련권 대다수 국가에서 자동차가 사회초년생들이 타는 물건이 된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었다. 어쨌든 부동산 가격이 쌌던 환경인지라 개인이 많은 돈을 저축하기 용이한 환경이었기에 저축률은 매우 높았고 구매력도 높은 편이지만, 애써 모아둔 돈 가지고 비싼 전자제품이나 고급 모피 코트, 카페트,[* 오늘날에도 어르신이 사는 러시아의 시골집이나 아파트를 방문하면 벽에 큼지막한 페르시아 러그가 걸려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흐루쇼프 시대에 조립식 아파트를 대량으로 건설하던 시절, 단열과 층간소음을 줄이고 장식을 위해 걸어둔 것이 현재까지 이어진 잔재다. 이러한 카페트는 캅카스 지역에서 제조된 것을 고급품으로 치며 소련 시절엔 몇달치 봉급에 맞먹을만큼 잘사는 집의 상징과도 같았다. 요즘은 할머니 집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촌스러운 인테리어로 통한다.] 도자기같은 사치품을 구하려면 시장에서 중고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면 수령받는데 몇달씩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즉,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특성을 잘 활용하여 2억을 넘는 거대한 중산층을 만들어내는데에는 성공했지만[* 다만 [[미국]]이나 서방 국가들 기준으로는 대체로 중산층에서 중하류층 정도에 속했다. 집을 보유하기는 했다만 서방 국가들에 비해 소득 수준이 낮은 건 엄연히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당대 [[개발도상국]]들 기준으로는 충분히 중산층에 속하고도 남기는 했고, 소련의 1인당 GDP는 소련의 전성기였던 1960~1970년대 당시에 선진국의 끝자락 내지 개발도상국의 최상위 정도로 평가되었다.] 막상 경공업과 유통망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었다. 또한 공산주의 경제 내부 모순으로 인하여 각 사업체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에 대한 제어도 제대로 되지 못했다. 특히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물류 및 재화가 유통되고 공급되는 상거래를 활용할 수 없었기에, 국민 대다수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어도 이를 민간경제에 활용하기 어려웠다. 1980년대 소련인들의 평균 월급 수준은 200루블 정도로[* 이것도 시대별로 차이가 있으며 1980년대 전반기에는 평균월급이 200루블에 못미치는 수준이었지만 1980년대 후반에는 월급이 200루블을 훨씬 넘어선다.] 당대의 공식환율로 쳐도 좀 사는 중진국 수준에 불과했지만 교통비의 경우에는 버스, 지하철, 노면전차를 한번 타는데 5코펙이고 아파트 월세비도 대략 5루블(관리비까지 합치면 12루블), 보드카 1병값(1980년대 후반에는 반병값)도 5루블 정도면 충분했다. 또한 고기가 미국보다 비쌌지만 감당못할 정도는 결코 아니라서 육류 소비량의 경우에는 남유럽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1990년 기준으로 소련의 1인당 육류소비량은 75kg을 기록하였다가 옐친대에는 경제난으로 45kg까지 감소했는데, 이 수치를 회복한 것은 푸틴대로 그나마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닐 지경이다. 비록 사치품의 가격이 비싸다 해도[* 예를 들어 1970~80년대 소련의 국민차인 쥐굴리를 한대 사는데 2~3년치 봉급에 해당되는 금액이었다던가 컬러TV 가격이 몇달치 봉급에 해당된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또한 암시장에서 외제품을 사려고 하면 공식환율이 아닌 암시장에서 통용되는 환율로 책정되었기에 루블의 가치가 20% 가량 절상되었다.] 하지만 국내 물가가 저렴한 편이다 보니 각 가정에서는 수천 루블에 달할 정도의 예금 자산을 보유할 수 있었고, 소련의 소비경제 수준에 비해 출판이나 언론, 영화, 연극, 발레, 프로스포츠[* 물론 소련의 프로스포츠는 세미프로에 해당되어서 지금처럼 스포츠 스타가 되었다고 돈방석에 앉거나 하는 것까지는 아니었으며 소련의 인기스포츠 선수들이 올림픽에 멀쩡히 잘만 출전했던것도 아마추어 스포츠 선수로 분류되어서 그런것이다.]를 비롯한 소련의 문화산업이 매우 컸던것도 부분적으로는 당시의 책값과 입장료, 관람료가 비교적 값이 싸서 문화생활을 즐기는데 경제적 부담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잠재된 구매력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즉, 명목 월급은 200루블이지만 실질 구매력은 루블을 달러로 1:1 대응한 가격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1:1로 대응하기는 힘들지만 지금으로 치면 대졸초봉이 100만 원대에 좀 자리잡은 직장인들도 월 300만 원대 벌면 잘번다는 소리 나올 정도로 한국보다 훨씬 밀리는 수준이지만 1인당 PPP는 일본을 넘는 대만이나 월급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을 넘어서고 PPP는 10만 달러로 세계 3위를 찍는 싱가포르와 얼추 상황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좀 극단적인 예시로, 기본 봉급은 한화 몇만 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사회복지제도와 보조금으로 공공요금과 기초 생필품, 국산품 가격을 매우 싸게 유지해서 실질 생활수준은 중진국 수준인 [[쿠바]]도 있다. 월급은 수만 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구매력은 열 배가 훨씬 넘는다.] 이정도로 높은 구매력을 지녔지만 '''실제 소련인들의 소비 수준이 구매력에 걸맞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점이었다.''' 소련인들이 공산주의 체제에 불만족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은행에다가 돈을 어느 정도 저축할 정도로 여력이 있어도 정작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어렵거나, 발품을 팔아야되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자면 상당수의 공산품을 구매할 때 국영상점에서 길게 줄을 서거나 자동차, 가구 같은 경우는 받으려면 최소 몇 달에서 몇 년씩 기다려야 되는 등 구입에 심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의류비도 소득에 비해서는 상당히 비싼편이었다. 셔츠나 근무복, 교복, 아동복은 가격이 비교적 싸고 저렴한 편이었지만, 남성용 정장, 여성용 부츠나 코트, 스타킹같이 좀 고급스럽다 싶은 의류들은 몇 주치 급여를 초과하는 수준으로 몹시 비싼 경우가 많았다 하며, 외국에서 수입해온 옷들은 프리미어가 붙어서 소련 의류보다 몇배나 비쌌다. 공산권과 제3세계 국가에서 수입해온 옷들도 소련옷보다 가격이 2~3배 이상 가격에 책정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시장에서 미국 등 서방권에서 밀수된 의류품을 팔기도 했는데, 이들 의류품은 소련물가와 비교해 보면 터무니없는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그러나 위낙 불티나게 팔려나갔기 때문에 상인들은 잡혀가지만 않으면 손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그 만큼 잠재된 구매력이 컸다는 애기가 된다. 이와 비교하면 현 구소련권은 수입의류만큼은 가격이 확실히 싸진 편이었다. 신발 같이 미국보다 더 생산량이 더 많은 물품도 있기는 했으나 어쨌든 이것만으로는 소비재를 마음껏 사는데 충분치 않았고, 무엇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경기가 침체될수록 물건을 구하기 점점 더 어려워졌다는 문제점이었다. 이 때문에 공식상점에서 제때 공급해 주지 못하는 재화를 대신 공급시켜 주는 지하경제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이는 계획경제로 유통되는 물자가 지하경제로 흘러들면서 소련 사회 내 부패와 물자부족을 더욱 부채질하는 악순환을 불러일으켰다. 농민시장에서 가볍게는 다차([[별장]])에서 생산한 작물들을 교환하거나 판매하는 건 물론이고, 물론 직원들이 몰래 몇개씩 빼돌린 제품도 거래가 이루어졌으며 좀 여유가 있거나 직책이 있으면 수입품을 밀수해서 고가에 팔았다. 또한 암매상들도 판을 쳤는데 국영상점에서 파는 물품을 싸게 샀다가 몇배의 가격에 되파는 식이었다. 물론 암시장에서 파는 수입품의 가격이 암시장 환율에다가 추가적인 이윤이 붙기 때문에 물건값은 왕창 비쌌다. 잡지나 만화 같은 것을 조금만 골라살려도 해도 한달치 월급이 날라가는 것은 물론, 옷 같은 경우에는 이것저것 골라사면 1년치 봉급을 날려야 될 수도 있었다. 소련에서 1980년대 최저임금인 월 70루블 정도만 받아 먹고사는데 큰 지장이 없는 금액이지만 암시장으로 가서 환전할 경우에는 루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소련 붕괴 직전에는 그 정도가 심해져서 1991년 기준으로 20~100루블이면 1달러로 교환이 가능해졌으며 1992년에는 루블의 가치가 아예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리면서 러시아 경제가 달러화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사실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도시에도 [[백화점]]이나 슈퍼마켓, [[외화상점]], 전자제품 가게나 장난감 가게, 구멍가게 등 있을 만한 건 다 있었다. 문제는 소련 전역 내 유통망이 부실하여서 지역격차가 몹시 컸다. 소련의 유통구조에서는 인구수에 맞추어서 전국을 대략 4종류 지역으로 구분해서 배분해놓았는데, 주요 대도시들과 공화국의 수도, 산업중심지역, 비밀도시, 크림반도와 소치를 비롯한 휴양지는 1급지, 2급지로 분류되어서 물자가 넉넉하게 공급되는 편이었지만, 지방 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은 3급지, 4급지로 분류되어 상품 공급량이 적은 편이었고, 이 때문에 소도시와 농촌지역에서는 지역 구멍가게에서 파는 물건이 별로 많지 않거나 재고가 품절된 경우가 많아 소도시나 농촌 주민들이 지역 상점에 없는 물건을 구매하려면 기차와 비행기, 버스, 오토바이 등을 타고 큰 도시로 가서 사는 현상이 빈번했다.[* 공산주의 유머에서도 소시지 열차라고 해서 이를 반영한 유머가 있다.] 이는 소련 후기 물자난이 심해질수록 점점 빈번해졌다. 재미있는 점은 소련 후기의 월급수준을 현재 물가수준으로 환산해 보자면 현재 러시아의 급여수준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80년 소련의 평균 월급이 185루블인데 공식환율로 환산하면 281달러로 나온다. 지금보기에는 현저히 낮은 수치지만 이 당시에는 미국의 1인당 GDP가 1만 2천여불정도이기 때문에 지금의 미국 달러가치로 비교하면 안된다. 소련과 러시아의 물가수준을 비교했을 때 유통환경의 개선으로 수입공산품과 고급품을 제외한 나머지 옷값, 상당수의 전자제품은 러시아가 훨씬 싼편이지만,[* 옷의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있어보인다 싶을 경우에는 한달, 두달치 급여를 써야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을 정도로 소련이 생필품 가격에 비해 옷값은 지나칠 정도로 비싼 편이었다. 그래서 다채롭게 옷을 입을려면 직접 만들어입거나 부업벌이로 돈 꽤나 모아야했다.] 부동산과 공공요금은 러시아가 훨씬 비싸다는 평으로 이는 러시아로 체제가 바뀌는 과정에서 부동산 민영화로 부동산 비용이 크게 상승한 여파이며, 그래서 집값과 월세비로 지출해야되는 비중이 러시아 일반인들에게 매우 커졌고, 이 때문에 체감적인 물가는 소련이 더 낮은 편이다.[* 가계저축률만 봐도 이런 차이를 느낄 수 있는데, 소련은 저축률이 매우 높았지만, 현 러시아는 가계저축을 안하거나 못하는 가정이 60%를 넘긴다. 다만 이는 러시아인들이 금전적인 여유가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1990년대 러시아 경제가 극도의 혼란을 겪으면서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루블 환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예금 가치가 폭락한 경험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러시아에서는 경제가 어려운 조짐을 보일 때마다 루블 대 달러 환율이 실시간 검색어에 언급되거나, 달러를 사재기하는 현상이 종종 목격된다.] 이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독립국가연합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임금이 현상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련 붕괴 이후 30년 동안 물가 상승세를 고려하면 소련 시절에 비해서도 급여가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실제 러시아 재무부 소속 노동연구원같은 공신력있는 기관에서는 현재 러시아의 급여 수준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제기하고 있지만,[* [[https://wne.fa.ru/jour/article/view/284/274|(출처) Уровень благосостояния трудоспособного населения как концентрированное выражение качества трудовой жизни (러시아어)]] (직장생활 환경을 나타내는 집중된 현상으로써의 노동가능 인구의 복지수준), О. И. Меньшикова, Всероссийский научно-исследовательский институт труда Министерства труда и социальной защиты РФ, 2020.] [[블라디미르 푸틴|현재 러시아 정부 특성상]] 개선될 지는 미지수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
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 BY-NC-SA 2.0 KR
또는
기타 라이선스 (문서에 명시된 경우)
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216.73.216.107)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사용자
216.73.216.107
IP 사용자
로그인
회원가입
최근 변경
[불러오는 중...]
최근 토론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