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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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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한 전문 인력 === [[블라디미르 레닌]] 시기 소련군 간부라는 직업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임금과 복지에서 '''공장에서 일하는 숙련된 노동자보다''' 직업적 매력이 떨어지는 직종이었다. 참정권과 공직 진출권을 원천 박탈당한 구체제 장교,성직자,[[부르주아]] 계층의 입대 원천 금지령으로 붉은 군대의 전문 인력 만성 부족은 더욱 심화된다. 붉은 군대가 대대적인 개혁에 들어가는 1935년에야 계급제의 재도입과 동시에 실행된 소련군 간부의 봉급 인상과 구체제 인사 가족의 입대 허가 조치로 이 문제는 완화되며,그 이전에는 노동계급 출신 정규 교육 수료자들에 대한 강제와 반강제적인 동원으로 간신히 매꾸던 판국이었다.[[https://m.blog.naver.com/laguel/222394774789|#]] 소련은 가용 예산 이상의 군사력을 보유하기 위해 [[징병제]]를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전문 인력을 모병하기보다는 2년제 징집 병력으로 인력을 끊임없이 채워넣는 방식으로 군을 운영했다. 하지만 유럽권의 대다수 국가들이 징병제를 시행하면서도 직업군인 신분의 병사들을 별도 양성하거나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부사관은 [[직업군인]]으로 분류했던 것과 달리 소련의 부사관은 전문 직업군인이 아니었다라는 점이 문제로 작용하였다 [[10월 혁명]]으로 인한 구체제 장교단 숙청이 일으킨 문제다. 프롤레타리아 출신으로만 구성된 장교단을 보유하겠다는 정치적인 동기로 기존 장교 경력자들을 직위에서 제거하는 작업과 [[적백내전]] 이후 1930년대 안보 문제 확대로 인한 군 팽창을 동시에 하다보니 구체제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한 인원들은 빠르게 초급장교로 승진하고 그 빈 자리는 실질적으로 장기 복무하는 사병이나 다름없는 직위에 숙달되지 못한 인원이 매꾼 것. 소비에트 정권도 나름대로 부사관에 지원한 사병에게 직위 상승에 따라오는 봉급 인상과 인센티브를 부여했지만 전간기 붉은 군대는 장비의 도입과 부대 확대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심했다보니 유의미한 매력이 되진 않았고 대부분의 하급 부사관들은 전역해서 사회로 돌아가기를 선택했으니 부사관단은 오랜 경력이 부재한 혁명 이래로 장기 복무한 병사에 가까운 집단이 되었다. 이는 냉전 시기까지 이어지는 문제의 단초를 제공했다. 소련군의 [[부사관]]은, 쉽게 말하자면 국군의 [[부분대장]]/분대장, [[포반장]], [[전차장]]처럼 계급보다는 직책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실제로 1972년까지도 소련군은 병사들에게 짬밥 순서대로 부사관 계급장을 던져주는 수준으로 부사관을 운용했다. 병사의 상위연장이라는 부사관의 전통적인 의의를 따지자면 마냥 틀렸다고 볼 정책도 아니었고 연장/장기복무자들만 충분하다면 서구권의 부사관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계층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소련군의 병사 [[연장복무]]는 최대 8년까지 밖에 받아주질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된 [[장기복무]] 인력이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지원한 인력들도 낮은 소득과 복지 수준 때문에 다수가 이탈했다는 것과 함께 소련군 부사관 계층의 크나 큰 결함이었다. 그러다보니 부사관의 수준이 분대장급의 하급 지휘자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고[* 본래 전통적으로 상사급 부사관은 보병 소대장을 맡을 수 있는 계급이었다. 독일군은 부사관 소대장 편제를 따로 두고 있을 정도. 그런 면에서 보면 같은 보병이더라도 소련군의 부사관은 타국에 비해 낮은 지휘자 역할만 할당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 성장의 가능성도 막혀있는 체계이다.] 장교마저도 수년마다 근무지를 옮겼기에 한 부대에 장기간 머물며 [[부사관|윗 계급에게 부대 운영에 대한 조언, 아랫 계급에게는 장비조작등의 노하우를 전달해줄 인원]]이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는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병사들이 군에 남아 부사관으로써 제 역할을 다하니 문제가 크지 않았다.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 역시 이들을 군대의 등뼈라고 칭찬했을 정도였을 정도. 그럼에도 인사체계의 한계 상 이들도 언젠가는 전역을 해야 했고, 남고자 한다면 장교로 밖에 길이 없다보니 자연스레 정통한 부사관이 급속도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정교한 최신 장비를 사용하는 부대일수록 이 문제점이 두드러졌는데, 복잡한 군사 장비를 가장 오래 다뤄본 병사도 8년이 한계였고 그나마 대다수는 2년차에 집에 가버렸다. 장교들도 그 계급 특성 상 근무지를 자주 옮길 수밖에 없다보니 해당 장비에 대한 미숙련 인력만이 부대에 남아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괜히 타국의 군대가 징병제를 유지하더라도 최신 장비를 다루는 병과에 한정하여 직업 병사를 양성하거나, 부사관 같은 하급 간부들을 조직의 중핵으로 여기고 육성하는 것이 아니었던 거다. 소련군도 자신들의 문제점은 잘 인지하고 있어서 1972년부터 준사관 제도를 시행, 준사관들을 대거 뽑아 이들에게 상급 부사관의 역할을 맡도록 하였다. 준위 계급은 2년 병사복무를 마치거나 그 이상 복무 중인 이들이 지원 가능했는데, 그 병사들 중에서 우수한 자원은 이미 장교로 지원하고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세계 최대급 병력을 자랑한 소련군이다 보니 그만큼 장교 수요도 많아 장교로의 지원과 임관도 쉬운 편이라 우수한 인재들은 다 장교로 몰려드는 바람에 생긴 사단이었다. 또한 준사관 제도가 실시된 이후, 병사의 연장복무 제도는 사라졌다. 그나마 서방의 부사관과 유사하던 부분조차도 없어지니 소련군에게 부사관이란 병사들이 존경어린 눈으로 바라볼 정도의 최고참도, 자진해서 군대에 더 남아있으려던 열정적인 애국자도, 충분히 숙달되어 장비조작만큼은 빠삭한 인력도 아닌 '그냥 병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북한의 초기복무사관과 유사한, 정확히는 북한이 훗날 따라하게 되는 장기복무 기술부사관 제도 역시 일찍이 등장했지만 이미 쉽게 준사관이 될 수 있는 마당에 과연 누가 부사관을 하려고 들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 부사관의 업무를 준사관에게 떠넘기는 제도가 잘 먹혀들었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병사들에게 지지를 받는 부사관에서 다시 그 부사관들의 존경을 받는 준사관이 되는, 선발에 선발을 거쳐 임관되는 서방의 준위와 달리, 아랫계급 땜빵을 친다는 느낌으로 계급장을 찍어낸 소련군 준사관이기에 준위를 보는 시선이 서방과 같을리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준사관은 초창기 소련군의 부사관처럼 장교로 임관 못하는 2급 자원정도로 여겨지고 말았다. 부사관을 대체하려던 준사관이 당대 부사관의 부정적인 인식도 함께 대체해버린 셈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준사관의 지원율은 소련군 초창기 부사관처럼 떨어지기 시작했고, 부사관과 마찬가지로 붉은 군대가 해체될 때까지도 준사관에 대한 예우와 인식도 서구권에 근접하지 않았다. 그래서 [[데탕트]] 시기에 서방의 군대를 방문한 소련군 장성들이 서방의 [[부사관단]]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소련 해체 후 신생 러시아군은 유의미한 부사관단을 양성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2008년에 부사관 양성체계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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